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by 김경민 posted Jun 2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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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영화를 한편보았다.
제목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한 사람의 인생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위한 준비기간이기도 하다.
동자승과 노승의 동거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영상이 보여주는 매력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남편과 연애할 때 영화를 본 뒤 서로의 느낌을 주고 받으면서 싸웠던 기억이 난다.
이제 생각해보면 견해 차이인 것을 서로의 세계를 맹렬하게 보여주려고만 했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더 크게 싸웠던 것 같다.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면 조금 주저하게 된다.
과거의 기억도 그러했고
또 내가 과연 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주려고 했던 바를 조금이라도 이해했을까라는 생각에...

다른 내용을 다 뒤로 하고서
내가 가장 크게 감명을 받은 부분을 소개하고 싶다.

봄.. 동승은 물고기와 개구리, 뱀에게 돌을 달아 가지고 논다.
     노승은 동승에게 돌을 달아 다니게 하고 그 고통의 의미를 알게 한다.
     "물고기와 개구리, 뱀을 찾아 풀어주어라. 만약 그 중에 하나라도 죽으면 그 죽음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여름...동승이 어른이 되어 우연히 사랑을 만나게 된다.
       여인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고 동승과 사랑을 나누면서 그 병을 치유받게 된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노승에게 들키고 만다
      " 네 병이 다 나았느냐? (둘을 보며) 그게 약이었구나..다 나았으면 돌아가라"
       여인은 떠나고 어른이 된 동승은 사랑을 위해서 속세로 떠나게 된다.
      
가을...온 맘을 다해 사랑한 여인은 불륜을 행하게 되고
      자신의 사랑을 배신한 그 여인을 죽이고 만다.
      그 남자는 끊임없이 분노하고 분노하고
      마음 속에 끓어 넘치는 분노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다시 절로 돌아오고 노승은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맞아준다.
      예정된 시간처럼 가을을 맞이하고 그를 맞이했다.
      칼로 바닥을 수없이 찍는 그를 보며 노승이 말한다.
      " 그렇게 화가 나느냐.. 니가 좋아하고 탐나는 것이면 다른 이들도 그렇지 않겠느냐
        속세가 그런 것을 몰랐단 말이냐"
      노승의 지혜와 사랑으로 죄값을 위해 감옥으로 간다. 노승은 자기 일을 다 한 것처럼 스스로를 화장한다.

겨울..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절로 다시 돌아온 그는 노승이 그랬던 것처럼 혼자서 절을 지키게 된다.
      한 여인이 아이를 데리고 절을 찾는다.
      그 여인은 아이를 맡기기 위해서 온 것이다.
      밤에 아이를 내버려두고 달아나다 주인공이 세수하기 위해서 파놓은 작은 얼음웅덩이에 빠지게 되고 죽게 된다.
      그는 커다란 돌을 가슴에 묶고 일만이천보를 걸으며 속죄한다.
      
그리고 봄.... 동승이 자랐다. 천진난만한 동승은 다시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을 가지고 논다.
              동승은 물고기, 개구리, 뱀의 입을 벌려 돌을 박고 그것들이 가라앉으며 꿈틀대는 것을 보며 마냥 웃는다.

많은 부분 감동을 받았지만 특히 감동을 받은 부분은 겨울 부분이다.
주인공은 자기를 배신한 여인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녀를 죽이기까지 분노했다.
자신의 상처에 대한 보상으로 그녀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여인을 죽이고서도 삭혀지지 않는 분노에 힘겨워해야했는데,
정작 자신이 아무 생각없이 파놓은 얼음웅덩이에 사람이 빠져 죽고 만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나의 상처에 집중하고만 있었다.
다른 이들이 내게 준 상처로 인해서 돌덩이를 가슴에 달고 다니느라 힘들어했다.
마음대로 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다른 이들이 준 돌덩이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차마 내가 무심결에 파놓은 웅덩이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한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서
내가 파 놓은 웅덩이로 인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빠져서 죽음을 경험할지 모르는데 말이다.

내가 받은 상처의 의미는 자유를 억압하거나 분노로 숨을 곳을 찾아 은둔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내 상처는 다른 이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함이요,
내가 다른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상처들에 대한 예민함을 기르기 위함이다.
그 노승처럼 자신도 누군가에게 주었을 상처와 아픔을 속죄하듯 속세와 떨어져 외로운 섬지기로 살듯이
내 섬으로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다가오는 자에게 위로와 쉼이 되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