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과 포도주

by 김경민 posted Dec 1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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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와서 손빨래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간단한 속옷을 빨려고 시도한 것이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욕조 가득 물을 담고 세제를 뿌리고 빨래를 동동 띄우고
김이 모락모락나는 욕조 속으로 들어가 발로 푹푹 밟는다.
그리고 헹구기를 세번...1시간이 넘는 빨래와의 씨름은 온 몸에 땀이 나게 한다.

즐기는 건 절대 아니다.
한번의 빨래에 약 10불이 들어가는 이곳 사정에
궁상을 떨고 있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시작하고는
이내 처량한 마음으로 끝을 맺는다.
남편은 여러번 그러지 말라고 말렸지만,
이놈의 속아지는 변하지 않고 있다.

빨래를 하고 나면 뿌듯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생긴다.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냐부터 시작해서.. 내 궁상은 시작된다.

단 한번도 가난해서 끼니를 거른 적도 없다.
그렇다고 단 한번도 마음껏 돈에 구애를 받지 않고 산 적도 없다.
여기와서 수입보다 더 많아진 지출이 가끔 나를 쓸쓸하게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마음껏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여유로울 수 없는 것이 아주 가끔 나를 힘들게 한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늘 여기에 계십니다.
나의 삶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도무지 제 마음에는 하나님의 친밀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나를 덩그러니 내버려두십니까..
제게는 충분하진 않아도 적당한 돈도 있고,
우리 가족이 지내기에는 충분히 넓은 집도 있고,
남들도 부러워할만큼 우리 가족은 향기롭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 인생이 하나님이 아니면 안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도움의 손길로인해 빚진 인생을 살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이 저를 떡과 포도주로 먹이고 계시고,
내 인생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고 계심을 체험하게 해주십시오.
나는 어리석어 하나님이 사랑한다 말하지 않으시면
매일 이렇게 시무룩해집니다.
하나님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없어진다해도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고 함께 하실거라는 것을 믿음으로 가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내 기도 골방은 안방에 마련된 드레스룸이다.
빽빽히 걸려있는 옷들 사이에 난 작은 자리에 이불을 깔고 기도한다.
조용하게 시작했는데 결국은 눈물이 범벅이 되고 만다.
모든 것을 뒤로 밀어버리고
하나님과 나
그렇게 둘이 만난다.

다음날 아침 ~~~~띠리링~~~~
뭘까?

"여보세요. 혹시 김요환 목사님 계십니까? "
"네.. 지금은 샤워 중인데요."
"아 그러세요. 제가 10쯤 뒤에 다시 연락드릴께요. 귀찮게 해드린 것은 아닌지.. "

참 오랫만에 듣는 겸손한 억양... 기분을 좋게 하는 분이셨다.

10분 뒤 남편은 걸려온 전화에 연신 네.. 네..를 연발하고 끊었다.

"남편.. 누구신지 모르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겸손하신 분 같아.. 뭣 때문에 전화하셨어.?"

.................(궁금해 지고 있는 것을 안다)

"응.. 토요일 주일이면 새벽기도에 꼭 참석하시는 분이 계셔. 그분 교회는 토요일 주일은 새벽기도를 하지 않아서 말이야.
그런데 오늘 내게 봉투하나를 주시잖다. 나는 이게 헌금인지 청년부 식사를 대접하라는지 몰라서 그냥 성경책에 두었지. 지금 전화하셔서  식사대접 한번 하고 싶었는데, 늘 성경책에 끼워다니다니 오늘에야 생각이 났네요.실례가 안되었으면 좋겠어요.'그러시더라."

돈 봉투에는 20불짜리 10장이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난 울어버렸다.
영문도 모르고 식사를 하던 남편과 시내는 눈이 동그래졌다.
속으로 엄마는 돈이 그렇게 좋은가 그랬을 거다.

나의 어리석고 작은 투정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나는 다른 이를 통해 빚을 졌다.
빚을 진다는 것은 부담만이 아님을 배웠다.
빚을 지면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