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정거장

by 김경민 posted Jan 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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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Dance, like nobody is watching you.
Sing, like nobody is listening you.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Work, like you don't need money.
Live, like today is the last day to live

오늘은 아니라고 하면서 늘 이곳을 지나쳐왔다.
내일이 되면 이 날도 지나야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많은 날들이 지난 바로 지금
적당한 시간을 찾지 못한 채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곤 오래 묵은 기억들 속에서 손바닥만한 시 한조각을 떼어냈다.

시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도 아니고 드라마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시다.
'내 이름은 김삼순'
나이에 맞지 않게 늘 처음처럼 사랑하는 순진하고도 착한 삼순이
그래서 나이에 맞추라고 호되게 꾸짖는 세상 앞에 흐느껴우는 삼순이를
살며시 위로해주던 시가 바로 이 시다.

오늘 나는 삼순이처럼 버스 정류장 앞에 서서 몇 구절 되지 않는 이 시를 쳐다보고 있다.
버스도 지나가고 택시도 지나가고 이름모를 사람들도 그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데,
처음 와 본 정류장처럼 낯설고 차갑기만 한 이곳에 난 홀로 서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타고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와 있는지 모르지만,
난 오랜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온 몸이 피곤하고 녹초가 되어있다.
그리고 또 어디론가 가기 위해서 다른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난 언제부터 혼자 여행한 걸까..
예전 같으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거나 말할 상대를 찾았을텐데
지금은 혼자 서 있는 것이나 혼자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덤덤한 걸 보면
혼자된 시간이 오래되었나 보다.
손에 여비도 없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를 초조함도 없는 걸 보면
여행도 끝이 나고 이제 쉴 집으로 가는 중인가 보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늘 이 정거장에 서 있었던 것 같다.
단 한 시간만에 들르기도 했고,
단 하루 만에,
단 한달 만에 들르기도 했던 것 같다.
이번엔 아주 오랜만에 온 것 같다.

왠지 모를 익숙한 이 정거장...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 시 앞에 서 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울음을 참고 있는 내 앞에 미동 없이 제 말만 하고 서 있는 이 시가 처음에는 밉고 화가났다.
나는 더 이상 순진하지도 않고 마냥 밝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는데
다시 첫사랑을 시작하라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한번도 내 여행을 지켜보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더 이상 울음을 참지 못했다.
나는 울었다.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결국 내가 다시 이곳으로 올지 이 시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다시 예전처럼 춤추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일하고 살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면 이 정거장은 아주 오래전 나를 위해 이곳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가던 길 주저하며 돌아볼 때
잠시 앉아 쉬라고
아주 오래 전부터 여기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까지..

다시 한번 용기가 필요했다.
여행을 계속해야하는데, 버스를 갈아 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같은 버스가 계속 지나가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내일이 되면 그날도 아니라고 했다.
이번엔 정말 한참을 고집피웠다.

이제 가야할 시간인가 보다.
가던 길 쉬었으니 가야하나 보다.

언제고
다시 멈추어 서서 이곳에 서 있겠지..
다시 이곳에 서서 낯선 장소에서 낯선 시를 보듯이
멈추어 서 있겠지..

아마도 그 땐 이곳에 오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야.
아마도 그 땐 이곳이 어딘지 금방 알 수 있을거야.
아마도 그 땐 이 시를 외우며 다음 버스를 설레이며 기다리겠지.
아마도 그 땐 종착지가 그리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러나 지금은 가야할 시간인가 보다.
가던 길 쉬었으니 지금은 가야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