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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와 시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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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0장에 나오는 므리바사건은 나에게 늘 어려운 본문이었습니다.

오합지졸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 모세는 인내와 겸손으로 이끌어왔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눈 앞에 고대하던 가나안땅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임박한 약속의 땅의 입성을 눈 앞에 두고도 여전히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던 백성들의 요구 앞에 모세는 분노를 드러내고 맙니다. 백성을 향한 그의 행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고 그가 가진 유일한 소망이 거부가 됩니다.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가장 큰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그렇게까지 하셔야하나...

목회자이기에 하나님이 모세를 향해 반응하시는 모습이 더 이해가 되지 않고 섭섭하기까지 했습니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시대를 상징하는 사람입니다. 그냥 단순히 한 사람의 목회자나 리더가 아니라 구원이라는 큰 그림 속에 구약과 율법을 상징하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했고 또 사용하신 사람입니다. 눈 앞에 가나안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도 먹고 사는 문제에 불평과 불만을 표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를 위한 모델 입니다. 모세라는 지도자가 있다해도...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눈에 보이는 삶을 산다해도 결단코 자신의 의로움으로는 하나님 앞에 다다를 수 없는 죄인인 우리의 모습을 상징해줍니다. 

 

38년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땅을 밟으며 하나님이 누구이신지..그분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배웠지만  여전히 먹고 사는 일은 그들에게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눈 앞에 가나안 땅이 보인다해도 말입니다. 감사하게도 그런 존재가 우리라는 것을 그들을 통해 배우게하셨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오히려 하나님은 긍휼이 여기시고 그들의 삶을 볼보시지만, 

모세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동안 보이지 않던 분노를 표출해내고 맙니다. 

그는 38년을 함께  알아갔던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의로움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아주 작은 그 기대마저 실망이 되는 순간 하나님의 거룩함과 믿음 보다 자기 감정에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인 우리는 38년을 인내하고 가르치면 나의 의로움이 구원의 어느 지점까지는 다달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희망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만으로 가득 찬 구원이라는 공간 속에 끊임없이 나의 뭔가를 더하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내가 전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평생이 걸려도 모자라는 것이 인간입니다. 즉 내가 철저히 죄인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없이는 답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난해하고 무척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이 본문이 오늘 저를 바로 세우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신뢰와 사랑을 의심하게 끔 하는 본문이 아니라  

모세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자비, 사랑을 철저히 가르치시는 본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는 전적으로 죄인된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빛으로 완전히 덮어야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노년의 모세라 할지라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치지 않으시고 

그에게 남아있는 의로움의 작은 조각도 허락하지 않고 단호하게 그를 가르치시고 계신 것입니다. 모세를 향한 완전한 사랑과 신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멋진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완전히 신뢰하는 아들 속에서만 있는 모습 일 수도 있겠다 이제 이해하게 됩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오셔야하는 이유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려는 죄의 욕망이 저에게 있습니다. 율법으로 의를 이루고 나 스스로를 해방시키려고 하는  죄인의 본성이 계속 저를 유혹하고 흔들리게 합니다. 

특별히 코로나 19으로 인해서 나의 의지와 생각이 아무 소용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내 의를 찾으려는  욕망과 유혹은 저를 괴롭힙니다. 내 의가 빛을 내지 못하는 순간을 참아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온갖 소일거리들을 찾아 바둥대고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서 방법을 찾아내고 또 열중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또한 온갖 뉴스를 찾아다니며 여전히 사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분노하며  감정이 가자는 대로 움직이다보면 하루가 저물어 있곤 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빛을 찾아다니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빛만이 유일한 답이 되어 세상을 비추어야하는 시기인데도 여전히 저는 저의 빛을 찾아내느라 실망하고 분노하고 우울해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그저 물을 구하는 명령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 하라고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물이 필요한 그들을 위해 빌고 긍휼이 필요한 그들을 위해 구하고 인내가 필요한 그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완전한 의로움이 완전한 사랑이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며 순간순간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씀 앞으로 서기를 원합니다.

번잡하고 움직임이 많았던 나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쉼을 얻고 안식을 얻어야겠습니다.

내 작은 빛은 사라지고 완전하고 선명한 하나님의 빛 만이 나와 내가 속한 세상을 비추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