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당은 왜 제거되지 않는거야?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열왕기하 14장에서 유다왕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왕으로 칭하지만, 여전히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지적이 있다. 아마샤뿐만 아니라 비교적 하나님 앞에 선한 왕들이 이 산당만큼은 제거하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찾아보니 그럴만한 이해가능한 이유들이 있었다.
그들이 정복한 가나안 땅에는 높은 산과 언덕 곳곳에 우상을 위한 산당이 세워져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성전이 없으니 그 산당들이 성전을 대신했고 성전이 세워진 이후에는 대부분의 평민들은 예루살렘까지 가기가 쉽지 않았기에 가까운 산당에서 제사드렸고, 그것이 우상을 접하는 기회가 되고 우상과 혼합된 토착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가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이해가능한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른다.
구원받아 새 생명이 되면 구원 받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습관, 생각, 가치관, 신념을 다 버려야한다.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의 옛 것들을 하나님 말씀과 혼합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좇으라고 하셨는가보다. 내 속에 나의 것이라 주장하던 것이 다 비워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채워지면 다른 것으로 나를 채우려하지 않을 것이다.
열왕기하 14장에서 유다왕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왕으로 칭하지만, 여전히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지적이 있다. 아마샤뿐만 아니라 비교적 하나님 앞에 선한 왕들이 이 산당만큼은 제거하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찾아보니 그럴만한 이해가능한 이유들이 있었다.
그들이 정복한 가나안 땅에는 높은 산과 언덕 곳곳에 우상을 위한 산당이 세워져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성전이 없으니 그 산당들이 성전을 대신했고 성전이 세워진 이후에는 대부분의 평민들은 예루살렘까지 가기가 쉽지 않았기에 가까운 산당에서 제사드렸고, 그것이 우상을 접하는 기회가 되고 우상과 혼합된 토착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가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이해가능한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른다.
구원받아 새 생명이 되면 구원 받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습관, 생각, 가치관, 신념을 다 버려야한다.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의 옛 것들을 하나님 말씀과 혼합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좇으라고 하셨는가보다. 내 속에 나의 것이라 주장하던 것이 다 비워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채워지면 다른 것으로 나를 채우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아마샤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자기의 결핍을 채우려다가 오히려 유다에 큰 실패를 안겨준다. 그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얻은 성과를 과시하려다가 오히려 유다의 가장 중요한 예루살렘 성벽이 이스라엘을 통해 훼파 당하는 치욕을 겪게 했다.
오늘도 부단히 나를 부인할 때 나의 옛 것들이 비워지리라.
그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워지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성전되기를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