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시내와 시현이네

동물학대

시내의 스피치 제목이다.

그 아이가 이제 자라서 자신이 관심있고 고민해보아야할 주제들을 찾고

또 그 과정 속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전달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야하는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물론 3학년 때도 하지만

6학년이 되면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져야 한다.

그런데  리서치를 하다가 말고 녀석이 갑자기 내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시내왈: 엄마!! 이 주제로는 더 이상 스피치를 준비할 수 없어.
            나 이제 고기 안 먹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눈에 눈물이 송글송글 맺히더니 펑펑 울기 시작했다.

사실 토요일이라 아빠와 함께 베트남 쌀국수 집에 가서 고기가 듬뿍 쌓인 국수를 열나 맛있게 먹은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게 과연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성경에서 고기가 이빨 사이에 끼어있는 그 와중에 하나님께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돈을 펑펑 쓴 아빠는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는 이렇다.

스피치를 위해 리서치 하던 중에

동물 학대의 여러 가지 예들을 보게 되면서

도저히 그 동물들이 불쌍해서 볼 수도 없고 스피치 글을 쓸 수도  없다는 것이다.

시내가 리서치한 내용을 들어보니

대부분이 자신의 꿈인 의사와 연결된 것이었다.

인간의 필요를 위해 실험으로 죽어가는 동물들
 
또 그 동물들을 물건 취급하며 함부로 대하고 사용하며 버리는 인간들

그 사이를 오고가며 아이는 앞으로 자신도 그 부류 속에 속해야한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주눅들어 있었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의 대부분은 인간의 죄인됨이었다.

늘 아빠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시는

"세상에서 제일 악한 것이 인간이야"가 우리 입에서 계속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인간 속에 언제든 우리는 포함되어야한다고 결론내었다.

시내는 자신이 너무 무리한 스피치를 시작한 것 같다고 후회했다.

그러나 그 아인 꼭 이 과정을 지나야한다.

앞으로 더 많이 자신에게 실망하고 좌절하며 그런 자신을 또 다시 일으키고 사랑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에게 첫번째 경고가 될 이 과정을 잘 이겨내리라 생각한다.

시내는 어느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방해가 될 수도 있다며 조용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그 힘든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이제는 울지 않고 강하게 버티면서 말이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동 식물과 상호 교감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상상의 식물들이고 동물들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묘사된 이미지는 창조 때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영화 속에서는 자연과 외계종족이 함께 그 별을 공유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평화롭기까지 했다.

 이유는 아마도 함께 창조된 생명으로서 가지는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나비족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동물을 사냥한다해도 그것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죽은 동물에 대한 예의를 정성스럽게 표했다.

또한 자신의 이동수단으로 도움을 받아야할 동물들을 다스리는 방법도

채찍이나 강요가 아닌 교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언제부턴가 나에게도 사라지고 있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나 예의를 들여다보고 부끄러워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처음 세상을 만드시고

아담이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을 때

에덴 동산은 생명 간의 교감으로 풍성했으리라.

그 때는 동물들이 세상 속에서 물건으로 이용당하고 버려지며 잊혀지는 존재가 될 거라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오늘 우리 딸이 조심스럽게 그 거친 세계로 발을 내딛고 있다.

우리 아이는 이 글을 어떻게 만들어갈까?

그리고 어떻게 결론맺을까?

자기가 만든 신념을 어떻게 다루며 살아갈까?

아픔과 당황스러움으로 어떤 글을 써야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는 그 아이에게 희망을 기대하게 된다.

비록 아이가 ‘난 이제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아’라는 단순한 결론으로 그 스피치를 마무리한다고 해도

아이에게 희망을 묻고 싶고 기대감으로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