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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만난 북조선 서커스단

2009.02.20 15:38

폭우 조회 수:390


독일에서 만난 북조선 서커스단


[독일에 사는 어느 자매가 보내온 편지입니다.]


샬롬!!!
우리 주님안에서 평안하시지요?
새해에는 우리 주님께서 주신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는
권사님, 장로님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저희들도 우리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저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친구들(동무들)을 만났던 것이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인 것 같습니다.

똑 같은 유니폼을 입고
제가 파트로 일하는 가게를 찾은 것이 12월 중순이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아이로부터 "너희 나라 아이들이 왔다"는 말을 듣고  
우리나라 아이들???  
"내가 볼 때는 꼭 중국아이들 같은데" 했더니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의아해서 그 사람들에게 독일어로 물어 봤습니다.
"당신들 어디서 왔습니까?" 했더니 알아듣지 못해서
"어디서 오셨습니까?  한국분이세요?"  했더니
너무도 뜻밖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북조선에서 왔슈다" 하고는 금방 사라져 버렸습니다.  

"북조선"이라는 말에 내 가슴은 너무도 콩당콩당 뛰었습니다.
난생 처음 직접 들어보는 그 특유의 억양과 말소리
그리고 너무도 가냘프게 생긴 형제자매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들이 어떻게 이곳에 왔을까 하는 의문으로 일하는 시간 내내
신경이 온통 그곳으로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1월에 써커스를 보러 갔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북한 친구들이 공연하는 것을 보았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서커스를 보면서 북한 아이들이 잘해 주기를 바랬었는데
마지막 제일 어려운 것을 통과하지 못해
다시 한 번 시도 했었지만 결국 하지 못했었습니다.

많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
이번에는 그들을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그 다음주 수요일, 일하고 있는데 그들이 또 우리 가게에 왔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만국 통상어(손짓 발짓)로
세탁비누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가가 한국 말로 물었습니다.
"세탁비누를 찾으세요?" 했더니  
"응, 그래 그래, 세탁비누야요, 맞아요" 하며 물로 된 것을 원한다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써커스하러 오셨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했습니다.
같이 따라온 아이가 내가 한국말을 하는 것을 보고 너무 신기하다면서
"그런디 어디에서 조선말은 배왔습니까?"

그때 나도 "한국 사람입니다" 라고 말했더니
"아 ~ 조선사람이라서 조선말을 잘하는구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언제 내가 또 일을 하냐고 물었습니다.

금요일 한다고 했더니 그럼 그때 다시 보자고 하면서 갔습니다.
그런데 나는 목요일부터 감기 몸살로 아파서
그 다음주 화요일까지 일하러 가지 못했습니다.

수요일에 일하러 갔더니 함께 일하는 동료가  
어떤 남자가 매일 와서 나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독일말을 아무리 해도 알아듣지 못해서
손짓 발짓 하면서 아파서 못 온다고 했답니다.

수요일, 다시 그 가게에서 그들이 나를 보더니 너무 반가워했습니다.
그동안 아파서 못왔다고 했더니,
"이곳에서도 배추를 파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김치가 필요 하세요?
제가 조금 갖다 드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선뜩 승낙을 하지 않았습니다.

숙소에 세탁기가 없느냐고 했더니 없답니다.  
손빨래를 한다고 하기에 그럼 빨랫감을 갖다 주면
내가 세탁기에 빨아서 갖다 주겠다고 했더니
말이라도 너무 고맙답니다.
그러면서 괜찮다고 했습니다, 손으로 빨아도 된답니다.

금요일에 다시 가게로 와서 나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자기들을 이웃 도시에 데려다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토요일은 쉬는 날이라서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렸을 때 반공 교육을 받았던 일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혹시 내가 어디로 납치(?)당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내일 북한 아이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했더니
남편은 핸드폰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영화 크로싱 포스터




만나기로 한 날 아침에 일어나서 김치 한 통, 깎뚜기 ,
성탄절 때 먹으려고 구워 놓은 과자 등등을 챙기다 보니
너무 무거워서 결국은 남편과 차로 함께 갔습니다.

두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데려다 주기를 원하느냐 물어봤더니  
디지탈 카메라를 사러 간답니다.

그런데 상점 이름도 모르고, 주소도 모르고.
그냥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자기들이 안다고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주차장으로 우리 차를 타러 갔는데
그들은 그곳에 있는 차들을 보고 깜짝 놀라며
이곳에서 자동차를 빌려서 타는 곳인 줄 생각했답니다.

우리 집에서부터 타고 와서 이곳에 잠시 주차해 놓았다고 했더니
그럼 이곳에 있는 차들이 모두 개인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반신반의 표정을 하며
정말 개인 것이냐고 또 물어 봤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어떻게 이들에게 하나님을 전할 것인가
고민하며 하나님께서 지혜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물었다. 어디에서 내 남편을 만났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만났다고 했더니  
그들은 '교예'로 알아듣고 써커스하는 곳에서 우리가 만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남조선은 교예가 없디요?'

나는 교회로 알아 듣고 '무슨 말씀이세요.
남조선에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아니랍니다.  남조선에는 교예당이 없답니다.

'교예당이요? 교예당이 무엇을 하는 곳인데요' 하고 내가 물어보니
'응~~ 그곳에서 싸카스를 하디요' 라고 답변을 해서
그때서야 서로 다른 '교회'와 '교예'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이면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라고 했더니

그 중 한 사람이 '아~ 교회당요' 한다.
옆사람이 그곳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사람이 이들이 믿는 신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에 와 보시니 어떠세요? 참 잘 살지요?'  물었더니 그렇답니다.
그래서 '왜 잘 사는줄 아세요' 하고 물었더니
왜 잘 사는가 잘 모르겠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성탄절이 가장 큰 명절이라고 하면서
'성탄절이 무엇인지 아세요' 했더니
'당신들이 믿는 신이 난 날'이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면서 한 가정에 자동차가 한 대씩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없는 집도 있고, 2~3대 있는 집도 있다고 했다니
그러느냐며 이것저것 물어 봅니다.

이야기 하다보니 당초 가고자 하는 도시가 지나치는데
그들은 여전히 그 가게를 모르겠답니다.
그 다음 도시가 가까워졌습니다. 다시 차를 돌려
큰 전자제품 파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더니 그곳이 맞답니다.

세일하는 카메라 가게였습니다. 무려 열 개를 산다고 했습니다.
내 남편은, 그 카메라는 질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
한 개를 사더라도 질이 좀 더 좋은 것으로 사라고 권했지만
동무들에게 선물 할 것이니까 그냥 그 디지탈 카메라를 사겠답니다.  

내 남편은, 카메라만 사면 사용 할 수 없다며  
카메라에 맞는 칩과 건전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맞는 것을 찾다 보니 두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너무 미안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꼭 자기 배우들이 하는 싸카스를 보러 오랍니다.

그래서 1월 2일날 표를 사놓았다고 했더니
꼭 봐야 한다며 몇번이고 확인을 하며 정말 보러 올 거냐고 되물어서
온 가족이 함께 갈 거라고 덧 붙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벌써 헤어져야 할 장소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싸가지고 간 김치와 과자를 건내주고  
다음주 화요일 다시 만나기로하고 헤어졌습니다.......


1월 2일  시부모님, 우리 둘, 시누이네 아이들 셋
모두 아홉 명이 국제서커스를 보러 갔습니다.
그들은 내가 10시 15분쯤 간다고 했었는데
10시부터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너무 반가워 하면서
우리 자리가 어디인지 보고 가더니
10여분 후에 팝콘을 사가지고 와서 주고 갔습니다.

우리 시부모님은 어리둥절해 하셨습니다.  
그동안의 사연을 알려주고 우리는 고마운 마음으로 먹었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하는 것을 보는데
가슴이 너무 조여 볼 수가 없었습니다. 참 잘도 했습니다.

11시에 시작해서 오후 2시에 끝났습니다.
끝나고 그들은 또 우리를 찾아 왔다 어땠느냐고 물어보고
그들이 이번에 상을 탈 수 있는가 물어 봅니다.

모나코에 가면 참가한 선수들에게 시상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기 전에 아나운서가 무슨 말을 했는가
어떻게 자기들을 소개했는가 물어 봐서 통역을 해주고  
아뭏든 나는 너무 가슴이 조여 볼 수가 없었다고 했더니  
'싸카스는 그런 맛으로 보는 것이디요~~' 하며
아주 자랑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밖에 나와 함께 사진도 찍고 헤어졌습니다.
나는 휴가라서 1월 7일에 일을 하러 온다고 했더니  
자기들을 옛날에 갔던 그 상점에  한번 더 데려다 달랍니다.
그래서 토요일에 그들을 만나서 쇼핑하는데 또 도와 주었습니다.



중국에서 바라본 북한의 헐벗은 산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 만세!'(?)

  

1월 11일이 마지막 공연이고 12일 새벽에 모나코로  떠난다면서
많이 아쉬워 하며 집사님을 한 번 만나고 가면 좋겠답니다.

집사님께 연락을 해서 주일 예배후 만나서 점심이라도 대접하자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집사님 이야기를 듣고
두 분의 집사님들이 당신들도 꼭 한 번 써커스를 보셔야 한다며 따라 오셨답니다.

그 시간에 표를 살 수도 없는데 어떡해요 그랬더니,
당신들이 보여 주시겠다면서 따라 오랍니다.
무대 뒤로 해서 비집고 들어가 빈자리에 앉았습니다.

관객들은 북한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치며 많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너무도 아슬 아슬한 장면들이었습니다.

나와 집사님은 우리 아이들이 하는 것이 끝난 뒤
무대 뒤로 가서 잘했다면 격려해 주었더니
통역관으로 함께 온 최여사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남조선 여성동무들이 와서 더 잘한 것 같아요."
우리는 함께 웃었습니다.....

그곳에서 이런 저련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김 선생은 나에게 물었습니다.
이곳에서 살려면 한 달에 집세를 얼마를 내야 하며,
의료보험료는 얼마를 내야 하는가
이런저런 것을 물어 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세상에서
북한 같이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집 공짜로 주고,
의료보험 내지 않고 공짜로 치료 해주고,
학비 내지 않고, 세금도 없지,
모든 물건은 서로 나눠 쓰는 나라는 북조선 뿐이랍니다.
그래서 살기 좋은 나라라며 자랑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 했습니다.
아~그렇군요. 참 좋으네요,
학비도 없고, 의료보험료도 없어도 다 치료해 주고,
세금도 없으니 정말 살기가 좋겠군요........

그런데 모두들 잘 사나요?
이곳 사람들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지내나요?  
이곳은 10개 벌어서 3개 주고 나머지는 다 내 것인데요 .  
김 선생님께서 사신 카메라를 모두 나누어 사용하나요?
아니 잖아요?
했더니 아무말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중에 한 분이 배가 고프시답니다.
그제서야  이분들이 아직 점심식사를 않은 것이 생각이 나서  
식당에 가서 점심을 사드리겠다고 했더니
하시는 말씀 '그저 조선 사람은 밥하고, 국하고 김치만 있으면 최고디요'
그러시면서 자기들이 해 드시는 곳으로 가잡니다.

햐얀밥 한 공기와 무우국에 고추가루 풀어넣고, 새우 무침이 전부였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내가 급하게 만든 약밥하고 김치 조금 가지고 간 것을 내 놓았더니
약밥은 아이들이랑 함께 먹는다고 놔두고 김치만 먹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밑반찬이도 좀 갖다 줄 걸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곳에서 두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김선생이라는 분이 하시는 말씀, 이선생을 만나서 참 좋았답니다.
그래서 집사님도 알게 되었고,
또 맛있는 소고기 무우국에 김치, 가지 말린 것,
깻잎김치 등등  여러 날을 잘 먹을 수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시는 말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젊은 여자가 빨래를 해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마음씨가 너무 고마웠답니다.
그래서  이선생이랑 친해 질 수 있었답니다.
"제가 젊습니까? 몇 살 정도 보이세요?" 라고 했더니
나를 35세 정로도 봤다고 했습니다.

함께 간 집사님이 나더러 한 턱을 내랍니다.
그러시면서 "50이 넘었어요" 라고 하니까 믿기지 않으시답니다.
나는 말만 했을 뿐 그들의 빨래를 해 주지도 않았는데  
그 말이 그렇게 고마웠다니 ........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같은 민족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금방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과  대화를 하면서
그들이 참 어린 아이 같이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를 많이 경계하였던  
총책임자 분도 함께 대화를 하며 농담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올 12월에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모나코에서도 잘 해서 꼭 등수 안에 들 수 있도록 기도한다면서  
서로를 껴안고 작별을 하는데 모두들 목이 메였습니다.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고
우리는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뒤를 돌아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떠나갔지만 금방이라도 내 등 뒤에서  
'이선생 수고 많슈다' 하고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아
일하면서 몇번이고 등뒤를 돌아 보곤 했습니다.

저희들을 사랑하시는  주님 !!!
북녁땅에 있는 우리 동포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들의 어려움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그곳의 믿음의 형제 자매님들을 지켜 주옵소서.

그들이 어려움으로 인해 믿음을 잃지 않는 힘을 주옵시고
그들의 기도 소리를 들어주셔서
우리 형제 자매님들을 돌아봐 주옵소서.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우리 믿음의  선조들을 기억하셔서
그들을 구원 하여 주옵소서.


북녁땅에 있는 우리 동포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돌아봐 주셔서
북녁땅에 다시 복음의 꽃이  활짝 피게 하소서.
이들을 통하여 우리 주님 홀로 영광 받아 주옵소서,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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