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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동화] 미운 돌멩이

2004.07.17 00:01

폭우 조회 수:333

미운 돌멩이
이 현 주

나는 미운 돌멩이랍니다.
돌멩이들 가운데도 모양이 예쁘고 색깔이 고운 돌멩이가 있습니다만,
나는 아무런 특징도 없고 색깔도 없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흔해 빠진 돌멩이랍니다.
돌멩이로 태어나 모양이 예쁜들 무엇 하겠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지금 자리 잡고 있는 이 개울가에서만 해도, 벌써 여러 돌멩이들이 놀러 나온 사람들의 눈에 띄어 그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거나 배낭에 실려 먼 곳으로 갔습니다.
˝야, 이 돌멩이 좀 봐. 아기 사슴같이 생겼어!˝
착하게 생긴 계집아이가 이렇게 소리 지르며 내 옆에 있던 돌멩이를 집어 드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가슴은 저리도록 아팠습니다.
가끔 어른들도 배낭을 메고 와서는 모양이 예쁘고 색깔이 고운 돌멩이를 찾아 개울가를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그들이 찾아낸 돌멩이들은 모두 생김새가 그럴 듯한 것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소녀, 촛대, 짐을 진 노인, 꼬리 없는 원숭이......
사람들은 찾아낸 돌멩이들에게 한 가지씩 이름을 지어 주고는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그들이 왔다 갈 때마다 개울가에서는 돌멩이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것들은 모두 나처럼 못생긴 돌멩이들뿐입니다.
어디 하나 자랑할 만한 구석이 없는 두루뭉수리들뿐입니다.
모양이 그러면 색깔이라도 사람들 눈에 띌 만큼 고울 일인데, 모두들 칙칙한 넝마를 걸친 문둥이 꼴입니다.
이래 가지고서야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기는 아예 틀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사람들은 예쁘고 고운 돌멩이만 좋아할까요? 생각하면 야속하기조차 합니다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못생긴 자신을 서러워하면서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남 모르게 눈물 짓는 것일 뿐입니다. 돌멩이가 어떻게 우느냐고요?
궁금하신 분은 이른 새벽, 해가 떠오르기 전에 안개 낀 개울가로 나와 보십시오.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여 외롭고 슬픈 돌멩이들마다에 이슬 방울처럼 맺혀 있는 차가운 눈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예쁜 돌멩이들만 좋아할까요?˝
어느 날, 나는 작은 물새의 깃털을 입에 물고 내 위를 스쳐 가는 하늬바람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돌멩이들로 자기 방을 아름답게 꾸미지.˝
하늬바람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내 곁을 맴돌면서 대답해 주었습니다.

´아, 그런 사람의 방 안에서 한 자리 차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무룩해진 나에게 하늬바람이 물었습니다.
˝너도 사람들이 데리고 가 줬으면 좋겠지?˝
하늬 바람이 내 마음속을 너무나도 뻔히 들여다보았으므로 나는 더욱더 슬퍼졌습니다.
그러나, 하늬바람은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나와 다른 못생긴 돌멩이들 둘레를 돌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슬퍼하지 마라, 이 못생긴 돌멩이들아. 사람들이 가지고 간 돌멩이는 겨우 한 칸 방을 꾸미고 있지만 너희는 이 지구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지 않느냐? 하하하...... 하느님이 지으신 이 세상은 너희들같이 못생긴 것들이 있어서 아름다운 법이란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늬바람은 이번에도 내 속을 들여다보았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몰라. 높은 데 올라가면 다 볼 수 있지. 높은 데서는 알 수 있어. 너희들 못난 돌멩이들이 굽이치는 개울을 따라, 큰 강을 따라, 바다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아름다운 비단폭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지를......˝

말을 마친 하늬바람은 물새 깃털을 고쳐 물고, 푸른 하늘 위로 맴돌며 솟구쳐 올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