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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와 시현이네

2006.09.29 13:15

몸에 맞지 않는 옷

조회 수 731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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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쓰는 편지

오늘 새벽기도를 갔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제가 앉은 자리 옆이 아닌 뒷자리에 자리를 정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저는 남편과 자리를 따로 앉았습니다. 따로 앉으니 마음에 수백가지 말들이 오고가더군요.
그냥 단지 따로 앉은 것 뿐인데, 어찌나 시끄럽게 조잘되던지...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우리 두 사람이 부부싸움 한 줄 알면 어쩌지?'
'내가 기도할 때 너무 시끄러워서 다른 자리에 앉았나'
'여기로 오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집에 가서 이야기하나'
일찍 새벽기도 갔었는데, 예배 시작하기까지 기도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 평소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떠오르더군요.
내가 참 불편하게 산다고...
난 참 많은 사람을 늘 짐처럼 지고 사나봅니다.

캐나다오기 전에 핵심감정찾기라는 집단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회기에 했던 작업이 생각나네요.
가장 어린 시절로 돌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길거리에 서서 울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암울해보이고 슬퍼보이기도 하더군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마음이 그렇게 그리고 있었나 봅니다.
그 그림을 보며 그 안에 있는 내 핵심 감정을 찾는 것은 어려웠는데,
지금 이순간 그 그림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 저는 늘 엄마를 잃는 슬픔에 잠기곤 했습니다.
악몽중에 가장 아픈 악몽은 엄마가 죽거나 엄마가 멀어져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습니다.  
아버지의 변덕스런 성품이나 화를 잘내는 성품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그런 아버지와 사시는 어머님이 슬퍼서 저를 떠나실까 두려웠습니다.
어머님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상황에는 맞지 않는 밝음과 쾌활함으로
아버지와 어머님을 즐겁게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어머님도 잃지 않고 아버님도 잃지 않으니깐요.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 과장된 옷을 입혔던 것 같습니다.
내 감정은 어디에도 없고 홀로 되지 않기 위한 삶의 투쟁이 그 때부터 시작되었나 봅니다.
저는 거북한 분위기도 참지 못합니다. 또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합니다.
또한 과장된 멘트를 이용해서라도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습니다. 분명한 것은 과장된 옷들이었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옷들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지금도  
몸에 맞지 않는 과장된 옷을 입고 억지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외롭게 서있는 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과장되게 남을 칭찬하거나 남을 추켜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분위기가 좋아지지 않아도 그 분위기의 책임을 떠맡지 않고 싶습니다.
누군가 외로워보여도 쉽게 그 사람의 외로움에 끼어들지 않고 싶습니다.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주눅들거나 성급하게 나 자신을 판단내리고 싶지않습니다.
당연히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있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도 내가 하고 싶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내가 싫다면 억지로 시키지도 않고 또 그렇게 억지로 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내가 편해질 때까지 내 웃음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기다려주실 것입니다.
내가 불편하면 하나님도 그리고 내 곁의 많은 이들도 불편하니깐요.
내가 불편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지면 상대도 나의 칭찬이나 관심에 감사하겠지요...

남편과 자리를 따로 앉으니... 불편했습니다.
부부인데 함께 앉아야하지 않나...
그래서 남편에게 물었더니,
내가 한칸 앞에 앉아서 그냥 자기는 늘 앉던 자기 자리에 앉은 것 뿐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앉던 자리가 있더군요. 늘 그자리...
참내.. 남편은 남의 눈이나 혹은 내가 어떻게 생각할까보다 자기가 제일 우선입니다.
자리 조차도 자기가 좋아하는 자리를 정하고 매일 만나 주더군요.
가끔 그런 모습을 보면 이기적이라고 소리소리 지르는데....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부부가 따로 앉아도 되는데,
문제는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부부 중 누군가가 불편한 거 겠지요...
생각해보니 내 경우는 아직도 몸에 맞지 앟는 옷을 입고 있는 내 자신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누가 그러든.. 나만 괜찮으면 되는 것을...
그 옷을 벗고 몸에 맞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색깔과 크기와 디자인을 입으면서 막 뛰어다니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뭐라그래도 우선 내게 내 옷을 맞추고 싶습니다.
이제까지는 내 옷에 나를 맞추느라 너무 불편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억지로 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니 아이들도 떠오르네요.
사실 우리 딸들에게도 제가 만든 살벌한 옷들을 입히고 거기에 맞추라고 강요했습니다.
얼마나 불편할까... 늦지 않았다면 지들이 입을 옷을 지들 스스로 선택하고 또 만들어 입을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럴려면 백마디 말보다 내 삶이 그러해야겠지요.
엄마가 보기에도 자유롭게 움직이고 편해보이면 자신들도 그러해야겠다고 생각하겠지요... 정말 그래야겠습니다.
하나님.. 당신 곁으로 가면 나는 늘 이렇게 치유받습니다.
상담비 하나 없이 이 세상 최고의 상담사와 상담받은 기분입니다.
내게 맞는 옷을 함께 골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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