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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와 시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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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언덕위의 하얀집을 장난삼아 이야기 했었지.
철이 든 뒤로는 그 하얀집에서 앓고 있을 사람들 때문에 함부로 장난삼아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제 중곡동에 위치한 그야말로 언덕위의 하얀집에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오고 가며 그곳은 어떤 곳일까 상상만 했었지, 막상 그곳에 들어가고 또 환자들과 마주친다는 것이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상담공부를 하고 있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역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이 환자라는 사실 그것도 특별하게 정신적으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고 나는 정상인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들은 감기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있는 병을 앓는 사람들도 아닌데, 그들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관리를 맡고 계신분으로부터 병원을 소개받고
12병동이라는 개방병동 즉 폐쇄된 곳에 있으신(증상이 심한) 분 보다는 증상이 약한 분들이 계시는 곳으로 향했다.
만나는 환자분들은 모두 기운이 없어보였고 약에 취해 졸려보였다.
내 마음에는 환자들이 새로운 존재를 향해 거부감을 가지고 달려들면 어쩌지라는 고민들이 일어났고,
그들과 옷깃이 스치는 순간마다 으슬으슬함을 느꼈다.

오늘은 미술치료 중에 9분할통합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집단미술활동을 했다.
"자~~ 오늘은 8절지에 9칸을 만들어서 그 칸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1-9까지 숫자를 쓰고 그 순서에 맞게 병동생활에서 느낀점이나 하루일과에 대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써보세요."
조용하고도 명확한 미술치료사의 지시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보조를 하는 선생님들뿐 환자들은 무표정했다.
환자 7명(남자) 모두는 의욕도 없어보였고, 약간의 틈만 보이면 졸거나 표정없이 책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새로움일텐데도 그들은 전혀 관심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미술활동이 시작되자 앉아있던 수련중인 의료사회복지사들이 빠르게 일어나 아주 간단한 지시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깨우듯이 여러번 이해시켜주었고, 그것도 안되면 직접해주는 도우미 역할을 했다.
어떤 분은 그림을 순서대로 조리있게 설명하고, 어떤 분은 한자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써가며 그림인지 글인지를 표현했고, 어떤 분은 상징적인 그림들을 침착하고 조용하게 표현해냈다. 그 와중에도 아주 의욕없음을 드러내며 자주 잠을 깨우듯 지시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들에 대한 수련원들의 태도였다.
다정하게 한사람 한사람 곁을 지켜가며 이야기해주고, 또 아이가 엄마를 다루듯 미소를 지으며 터치도 서슴치 않았다.
그들의 태도 때문에 경계하던 내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환자분들에 대한 편견의 벽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조용하면서도 오랜 작업으로 만들어진 내면의 그림들과
그 그림들을 어눌하면서도 짧은 문장으로 짝을 지어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 착한 사람들이구나..라는 말이 마음에서 연거푸 울렸다.

엄모씨: 양치를 해야한다. 약을 먹어야 한다. 산책을 가야한다. 음악을 듣고 싶다. 퇴원을 하고 싶다.
엄모씨는 병동생활에서 해야할 것들과 그 가운데 하고 싶은 것을 아주 평이하게 표현했다. 약때문인지 아님 원래 말이 어늘한지 알지 못하지만,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글과 그림이 잘 짝을 이룬 것 같았다. 해야 한다라는 강박감 뒤에 어떤 어두움이 있지 않을까 궁금증이 일어났다.

이모씨: 모든 그림을 상징화했다. 복작한 심정은 어두운 색을 가지고 채크로 표현했고, 약에 취한 상태를 노란색으로 굵게 곡선을 그어 표현했고, 기분이 좋아 행복한 상태를 동그라미에서 하트로 초록색스페이스로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표현했다. 가장 인상적인 분이셨다. 그곳에 참여하신 분들 중에 가장 증상이 약한 분이라 하셨다. 그래서일까 가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가 그분에게는 있었다. 진지했고, 가장 신중하고 시간을 오래끌었던 분이셨다.

김모씨: 9칸 모두는 월드컵과 관계있는 글과 그림이었다. 축구공, 오필승코리아, 축구 신발....
병동생활을 그리라고 했는데, 그는 전혀 관계 없는 월드컵을 그렸다. 시작하기 전에도 엎드려 있거나 지쳐보였는데, 별로 작업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마도 적막한 병동생활을 벗어나 월드컵과 같은 뜨겁고도 흥분된 감정과 만나고 싶은 소망이 그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30대 중반의 잘생긴 외모였다.

안모씨: 약먹기, 양치질하기, 독설,상처, 사랑, 믿음, 신앙, 천국행티켓
영어와 한자를 능숙하게 사용했고, 글씨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자신이 그린 그림의 의미를 아주 진지하고도 명확하게 표현했고, 신앙과 연결된 어두움이 그에게 있는 듯 했다. 알고 보니 사시에 합격하고 바로 입원한 분이라고 했다.
그를 세상과 멀어지게 한 것이 무엇일까...

박모씨: 입술, 신발, 꽃, 차, 배, 13, 눈, 나뭇잎...
신발을 신고 꽃을 꺾어 차와 배를 타고 13일간 여행을 떠나 눈에 좋은 것을 보고 나뭇잎이 있는 가을에 돌아온다.
연결성이 전혀 없는 듯 하였는데, 연결을 지었다.
암모씨가 박씨는 여행을 참 좋아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키와 몸이 아주 건장했고, 외모는 출중했다.
어디를 가고 싶은 걸까....


어떤 책에서 보았다.
내면의 아픔이나 분노를 밖으로 드러낸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해를 입혀 감옥에 가고,
반대로 내면의 아픔이나 분노를 가슴으로 묶어둔 사람들은 그 무게와 힘겨움 때문에 정신병원에 간다고...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크로 작은 하트를 여러개 그려놓고 자신의 마음이 그런 상태가 되길 바라는 걸까..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천국행티켓을 그려놓고 이 세상에는 미련이 없다는 말을 하는 걸까..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단 13일만 여행을 떠나 눈에 좋은 것들을 보고 가을에 돌아오고 싶다는 걸까...  

책상만을 응시하고 졸려하던 모습 속에서 꼭꼭 감추어 놓았던 마음들이 색깔들을 빌어 세상에 나왔다.
두려움 없이 세상 속으로 나와 사랑하는 것은 그들의 꿈이자 그리움일 것이다.
이제 아주 작은 출발을 알리는 작품들을 만들어냈지만, 곧 색깔을 입고 나온 마음들 처럼 그들도 두려움 없이 세상으로 힘차게 달려나올 것이다.
그들을 만난 것은 내게 큰 행운이다.
하나님이 게으름에 취해 타성이라는 약에 취해 땅만을 응시하는 내게 그들이라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내가 그들을 통해서 어떤 그림을 그릴지 아직 알지 못하지만,
다음주 수요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그들이 환자여서가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내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내 삶을 평가받기 때문이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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