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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와 시현이네

2005.07.15 21:56

건조대와 빨래집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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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하늘은 아주 넓다.
큰 건물들이 없는 것 때문일까
아님 하늘을 바라보는 녹색나무 외에 다른 빛깔이 적어서일까
녹색빛을 안고 있는 하늘은 너무나도 넓다.
눈이 부셔서 제대로 바라볼 수는 없지만,
창가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에 안겨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 하늘에 나를 말리고 내 안에 있는 작은 세균과 냄새들이 날아가길 소망한다.
내가 그렇게 하늘과 바람에게 신세를 지고 있자니
우리와 함께 이곳에 와준 옷들에게도 좋은 선물을 주고 싶어서일까
어느 때부터 건조대와 빨래집개에 집착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바지런하지 않던 내가 손으로 빨래를 주므르고
그것이 스스로 말라가는 자연스런 모습을 보는걸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조대가 필요했다.
배를 타고 건너온 한국산 건조대는 10배나 비쌌고
아슬하지만, 마트에서 어렵게 구한 뼈대만 앙상한 건조대는 이제 아파트 배란다에 자리를 잡았다.

조그만 대야에 큰 빨래들을 밟고 주므르며 맑은 물에 행구어준다.
그리곤 물이 흥건한 빨래를 손으로 꼭 짠다. 그 때 물이 떨어지며 내는 소리가 즐겁다.
1달라를 주고 산 나무로 만든 빨래집개는 만화속에서 그리고 영화속에서 보던 것과 똑 같다.
하얀 건조대와 나무로 된 빨래집개에 매달린 빨래들이
하늘 품에서 펄럭인다.
나 뿐 아니라 빨래들도 묵었던 냄새와 세균을 날리고 있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알아가는 일은 나를 가장 흥분시키는 일이다.
그래왔고, 그렇다고 믿었다.
어쩌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잘 하고 있는지 점검도 하지 못하고 달려오진 않았나...
한없이 넓은 하늘과 빛나는 나무들 속에서
사람이라는 풍경없이
사람이 없는 풍경으로 인해 편안해지는 것은 왜일까.
흥분과 바쁜 시간들 속에서 잠시 나를 따로 내어두신 그분의 배려 때문일까
착한 아이처럼 기대와 사랑으로 바라봐 주는 이를 위해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있다.

건조대와 빨래집개....
이미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누군가 산책을 하다 우리 빨래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자신의 옷장에 두고 잊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리라.

그렇게 우린 많은 것들을 쉽게 얻고 그리고 쉽게 잊어버린다.
스스로를 쉽게 이유없는 바쁨 속으로 던져 버리고 녹초가 되어서야 찾아온다.
그리곤 다시 이유없이 어딘가에 던져버린다.
결국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비참함과 외로움으로 고통 받을 때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나도 그런 고통을 경험했고 그들을 만났다.
나의 절절한 아픔이었기에 다른 이들의 고통 또한 절절했는데
점점 비슷한 갈증과 아픔들을 대하는 예민함들이 무뎌지고 둔해져만 갔다.
사람이 아닌 일이 되어버렸구나...

건조대와 빨래집개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의 선함을 발견하는 첫 만남이었다.
그 만남을 통해 소소한 것들에 대한 예민함을 단련시킬 준비를 한다.
혹 의미를 잃어버리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둔한 눈과 마음으로 지쳐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마음 넓은 하늘과 나무들 속에서 눈과 귀를 선물로 받았듯이
나도 그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너도 좋으니...나도 네가 좋아해서...좋다.."


디모데전서4:4-5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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