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다가 낙심과 실망의 시간들을 만나면 원래의 옛모습으로 돌아가 숨으려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과 믿음으로 용기있게 걸어가던 모습은 어디가고 영적인 피곤함과 무기력함에 빠져서 한 발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아이처럼 떼를 부리며 버티고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이 쌓여져가고 마음이 점점 어두움 속으로 사라져가는 듯 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을 향한 어떤 기대감이 내 속에서 자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저 떼를 부리고 있는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지금의 나를
하나님이 어떤 말씀으로 어떤 방법으로 일으키시고 회복시키실 지에 대한 기대감입니다.
엄마 앞에 그저 울며 보채며 자기의 어리석은 행동에 반응할 엄마의 수 십 가지 경우들을 그리며 기다리는 아이처럼 말이다. 영적인 낙심과 좌절로 인해 피곤하며 무기력할 때 오히려 나는 하나님을 향해 무언가를 기대하며 기다리게 됩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때로는 낙심이라는 거대한 무게감에 눌려 영적인 피곤함, 무기력함에 빠져서
자신이 만든 어두운 자리에 버티고 서서 주의 음성만 기다리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나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런 떼쟁이에다가 실수투성이....어리석고 작은 나를
미소지으며 스다듬고 안아주었던, 언제나 가까이 매일 만난 그 사랑을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서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왜 이러고 버티며 떼를 부리는지 너무 잘 아십니다.
진심이 아닌 말들을 기도시간에 내어 뱉을 때에도
내 마음이 결국 어디를 향할지 미리 아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되는 어리석은 행동을 멈추시려고 강압적으로 나를 다그치거나 혼내시지도 않으십니다.
그저 오늘도 나를 쓰다듬으시며 안아주시며 나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 수고가 많다. 힘들지....니 마음 안단다.”
세상을 만드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아십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표현하시기 위해 가장 소중한 아들을 주신 분이 나를 아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 나를 아십니다.
이 사실이야 말로 세상의 모든 죄의 요소들과의 싸움에서 낙심하여 무기력할 때에도 일어설 수 있게 합니다.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히 8:11)
온 세상 사람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모두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 그들을 죄로부터 해방시키고 생명의 삶을 살도록 할 것이라는 이 말씀이 다시 나를 일으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아는 그 날을 고대해봅니다.
여전히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의 더미 속에서 겨우 숨만 고르고 있는 나의 지체들을 그들의 전쟁과 같은 이 땅의 삶을 중보하고 응원합니다. . 하나님은 좋은 완전한 언약의 중보자가 되셔서 혹 내가 멈추어 움직일 수 없을 때에라도 이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되는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