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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와 시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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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4:12-21

온 인류의 마지막 유월절 양이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그분이 지셔야할 십자가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인간인 나로서는 가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그 길에서 만나는 사건을 통해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시는 사건과

그 식사의 자리에서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며 예수님은 계속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라도 너는 항상 두 가지 선택의 문제에 놓일텐데 어찌하려는냐" 라고 말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시간을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느냐

혹은 자기의 옳음을 따라 사느냐는 것인데 무엇을 선택하겠냐는 것입니다. 

물동이 하나를 들고 가던 자를 따라 가서 그의 집주인에게 유월절 장소를 부탁하고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시고 작정하신 일이 아니고서야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황당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과 연합되어 말씀에 순종하면 이 황당한 사건이 그저 일상이 되는 삶이 됨을 가르치고 싶어하십니다. 반대로 유다처럼 아무리 자신의 이성으로 잘 짜여진 계획을 가지고 살지라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비어진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에 남겨진 그리스도인의 삶 또한 늘 이 두가지의 갈림길에서의 선택을 해야합니다. 하나님과 연합된 믿음의 삶과 나홀로 가는 삶....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분명 실체가 있음을 하나님과 연합됨을 통해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유월절 장소를 구하는 사건을 통해 알려주시며, 반대로 실체가 있는 것들이라 믿었던 것들은 언제라도 왔다가 사라질 수 있는 것임을 유다를 통해 알게 하십니다.

내 삶 전부가 하나님과 하나되어 믿음이 실체가 되는 삶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