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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편 묵상

2008.04.25 22:39

폭우 조회 수:1426 추천: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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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편 묵상

 

 

표제 : 베냐민인 구시의 말을 듣고 감정이 격해(식가욘) 여호와께 부른 다윗애가

 

시편7편은 애통의 시이면서 한편으로는 자기의 무죄를 항변하는 시이다.

표제는 다윗이 지었으며 베냐민인 구시의 말을 듣고 지은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그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사울이 베냐민 지파였고 사울로부터 고통을 많이 받았으므로 그와 연관하여 생각해 볼 뿐이다. 탈굼에는 사울의 쫓김을 당하던 때에 지은 시라고 기록하고 있다.

 

시편 7편은 간절한 기도이면서 자기의 격한 감정을 토로하는 시이다. 특별히 자기를 무고하게 모함하는 이들을 향하여 자기의 무죄를 증명하고 그들의 악을 갚아주시기를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참 자주 억울한 경우를 당하게 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삶은 무고하게 모함을 당하기도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기도하며 나의 진실은 가려져 버리고 오히려 다른 이들의 악한 이야기로 진실이 왜곡되는 경우도 많은 것을 본다.

특별히 요즘과 같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거짓을 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우리의 현실에서는 더욱 이러한 아픔을 겪게되고 또 고민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가 토로하고 있는 것 처럼 “하나님 왜 악인이 오히려 의인보다 잘 되는 것 같아보입니까?” “그들의 거짓과 죄악은 하나님께서 왜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라는 의문이 절로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삶에서 지금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는 이러한 의문과 아픔이 없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러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사실 악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의 입을 때려서라도 그 악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고 그들의 거짓은 만천하에 드러내어서 그들의 죄악을 폭로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그러나 성경은 자주 우리에게 말하고 있기를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시인은 악을 행하는 이들과 그로 인해 모함 받는 자기의 형편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간다. 세상의 법정에 서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심판자가 되시는 줄 알기에 시인은 자기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시인은 1절을 시작하면서 “여호와께 피한다”고 고백한다.

7: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7:2 건져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아마도 시인의 상황이 급박하였기 때문에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리라. 구약의 성전 제단뿔을 잡은 이들 처럼 혹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한다고 고백하는 이들 처럼 시인도 하나님께 몸을 피하여 자기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다.

 

7: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7: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

7:5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셀라)

 

하나님께 피한 시인은 자기에게 쏟아지는 모함과 고소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무죄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래서 세 번이나 “만약에”라는 말로 자기를 고소하는 이들의 고소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만약에 그들이 고소하는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자기를 하나님께서 보호하지 않으시고 사자같이 덤벼드는 원수들에게 던지셔도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의 육체와 영혼을, 그리고 명예까지 모두 앗아 가도 좋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자기에게 주어지는 상황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7: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

7:7 민족들의 집회로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하나님께 이제 구원을 호소하는데 시인은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던 그 때의 외침으로 자기를 구하실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 6절과 7절은 네 개의 동사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데

먼저 “여호와여 일어나소서”라고 외침으로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이다. 나의 상황에 하나님께서 무심히 계시지 말고 임하셔서 개입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억울한 우리가 드리는 첫 기도일 것이다.

두 번째는 한글성경에는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지만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오르소서” 라고 외친다.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이제 심판장의 자리에 앉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그저 자기의 형편을 아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고소하는 이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재판정에 서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나를 위하여 깨소서” 이렇게 외치는 것은 이제 나의 하나님이 나의 대적들을 향하여 징계를 발하시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잠들어 계시므로 깨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전쟁에 참여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외침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심판을 명하소서”라고 외친다. 하나님께서 판결하셔서 결정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운신 분이어서 결코 굽은 판결을 하시지 않으실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감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거짓과 참된 마음을 다 아시기 때문이다.

 

7: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7: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7: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을 향하여 재판정에 오르시고 판결하시기를 요청한 시인은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한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며 악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 악을 향하여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결코 잠자는 신이 아니라 지금도 이 땅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자주 그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여전한 악을 보면서 악이 득세하는 것과 같은 세상을 보면서 우리가 자주 절망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시는데 그 계획의 지혜로우심을 알 길이 없고 우리가 그 깊이를 헤아릴 수도 없다. 예수님의 구속의 죽으심을 그렇게 설명하셨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에서 내려 와보기를 요구하는 어리석을 범한 사람들도 있었음을 우리는 본다.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일들을 지금 우리가 겪는다면 우리가 다 알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이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숨어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이해하고 볼 수 있는 대로 행하시지 않으신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이 세상을 주관하고 꼐신다는 사실이며 결코 악인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그 큰 사랑과 긍휼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악을 행하는 악인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으로 그 하나님이 심판하신 악인의 모습을 노래한다.

7:12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7:13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

7:14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았도다

7:15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7:16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악인은 하나님이 직접 그를 꺽지 않으심에도 그의 악행을 인하여 스스로 멸망하게 된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와 다르다 그러나 분명하게 그 악을 갚으신다. 다만 아직 그를 기다리시는지도 모른다.

한경직 목사님이 설교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성도중에서 한분이 목사님에게 묻기를 “하나님이 왜 유다를 선택하셔서 제자를 삼으셨을까요? 혹시 그가 예수님을 팔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악역으로 부르신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물었습니다. 잠시 생각하신 목사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그러게요. 왜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셨을까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우리가 감당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억울함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참으시기에 내가 살아 있을 수 있고 나의 죄악을 인하여 구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나에게와 나의 원수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억울함이 있다면 하나님께 아뢰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이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갚아 주시기를 간구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눈을 뜨고 우리를 살피시며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7:17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의 제목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