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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22

2008.03.14 11:26

폭우 조회 수:438 추천:21

에베소서 2장 16절~18절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주에 18절에 나오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이를 믿는 우리의 믿음의 가장 정수를 이야기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서 이방인인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인 됨의 은혜와 그 구원의 놀라운 비밀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그 은혜의 광대함과 이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얼마나 크고 놀라우신가 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 되는 첩경이며 이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됨을 누리를 첫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을 이야기하면서 결론적으로 한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 18절의 말씀입니다.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모든 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에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은혜, 능력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원래 하나님의 만드신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회복함으로 하나님께 순전히 나아 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므로 기쁨이 되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하여 이를 막고 있던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다는 것이 바로 구원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우냐고 바울은 묻고 있는 것이고 나아가서 이를 계획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이를 실천적으로 이루신 예수님의 구속, 그리고 이를 우리 개인에게 직접 알게 하시고 나아가 하나님의 사람 되게 하시는 사역을 말하면서 이것이 바로 나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이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은혜이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을 오늘 조금 더 실제적인 곳으로 끌고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구원이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면 과연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 갈 것인가에 대해서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조금 구체적으로 말한다고 하면 바로 “기도”일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구원을 계획하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까지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아는가?
2.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알고 있는가?
3.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진실인가?
4.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가? 자유한가?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고 그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하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분명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자주 잘못된 의심 가운데 서고 있습니다. 확신이 없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지요.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제는 어떠하다고요. 예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러하냐고 묻는다면 잠간 고개를 갸웃하게 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이 배운 기도는 어떤 것입니까? 자주 우리는 이런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 “5만번 기도 응답받은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 이런 제목을 보면 눈이 확 뜨이고 그 기도응답의 비결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응답 받는 비결은 배우고 싶어하지만 정작 기도가 무엇인가는 고민하지 않고 배우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죠지 뮬러가 말한 다음과 같은 말은 기억하고 따라하려고 하지만 그가 만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모릅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것은 그가 기도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그 응답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과 자세 혹은 그의 고백은 도외시한 체 그가 받은 응답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바르게 기도하는 것도 얼마동안 기도를 계속한다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끝까지 기도를 계속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리라는 것을 확실하게 믿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축복을 받을 때 까지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고,  쉬지 않고 축복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여러분 기도가 무엇입니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에 대하여 우리가 배울 것은 가장 먼저 들으시는 분인 하나님에 대해서여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나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그분에게 대하여 나의 형편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먼저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아버지 되신 사건인 구속의 사건 즉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대속의 죽으심을 마음 가운데 품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어집니다.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결코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해서 시험하시고 실패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어려운 길로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올바른 기도의 자리에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바로 우리의 기도는 우리에게 닥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 가운데 여러 계획을 가지고 계신 주권자로 여전히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시며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으로 이해할 때 또 그분을 만나고 인정할 때 우리는 그분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원하고 이를 통하여 우리에게 선한 길로 인도하실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고 기도하는 사람은 우리의 기도가 혹시라도 늦었거나 잘못되었을까 걱정하기보다 나의 형편과 마음을 아뢰므로 그 마음을 받으시는 하나님께 나아 갈 것입니다.
내가 드리는 기도를 어떻게 언제 응답하실까 걱정하기 이전에 나에게 이렇게 기도 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 은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는 나의 삶을 인하여 회개하고 또 찬양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가장 기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사실을 조금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8절 말씀을 통하여 기도의 두 가지 정수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먼저 “저로 말미암아” 아버지께 나아간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 성령으로” 아버지께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먼저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목적 지향적이지 않고 오히려 대상 지향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의 중심은 나의 기도의 내용이나 그 기도의 응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은혜이며 이를 통하여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누리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비로소 우리의 기도가 다음 두 가지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도할 수 있다는 것
2. 한 성령으로 인하여 기도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베드로전서 3: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본래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누누이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구약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오셨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방법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래서 수많은 제사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죄를 해결해 주심으로 이제는 언제라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피로 말미암아 갈 수 있었던 하나님께 우리는 이제 피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만 의지하여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도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의 청구서가 되어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오히려 감사이며 감격이고 찬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게되어진 사실에 주목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허공에 맴돌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실 때 우리의 인간의 죄인됨을 그대로 만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덧 입혀진 예수님의 의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시면 아 내 아들이구나 하고 반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아버지를 만나는 아들의 그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며 그분께 나아가는 것은 예수님의 의를 인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기도가 나의 요구사항의 나열이고 그것을 얼마나 빨리 들어주실 것인가에 대한 것이라면 들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기도는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기도는 결코 나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와 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의 섬세한 교제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알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듣는 것이 바로 기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해 주신 예수님의 죄사함의 사역이 의미롭지 않겠습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응답하라고 하는 최후 통첩이거나 우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이 기도의 자리에 서게 되었는가를 고백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참 어려운 것은 부이지 않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기 대문일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기도는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으심으로 우리가 나의 말을 그저 외우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도록 먼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어떻게 응답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구해야 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기도는 한 성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한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방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나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은 성령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에 따라 우리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라는 것은 비단 신비주의 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기도는 성령에 민감할 때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그 자격을 얻었으며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바른 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기도 할 때에 성령을 무시하면 아니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지 못한다면 자주 우리의 기도는 주관적이되거나 나의 생각을 읍조리는 것이 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성령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것은 나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여 나아가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기도 상대가 하나님이심을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마음을 알아가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일 겁니다. 나의 상황은 내가 잘 알지만 하나님의 마음이나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비로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얻은 많은 신앙의 선진들이 때로는 방언의 은사를 얻었던 것입니다. 방언이라함은 조금 더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이 가기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전적으로 예수님을 통과하여야 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진리의 분명한 토대 위에서 성령의 전적인 인도를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때로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알 수 없어서 힘겨워 한다면 그 마음 그대로 하나님께 낭가야 할 거입니다. 그리고 말슴 가운데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닙게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실 것입니다.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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