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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23

2008.03.19 16:37

폭우 조회 수:436 추천:24

에베소서 2장 16절~19절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에베소서 2장 19절은 “그러므로”라고 하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앞에 진술한 내용을 이해 했다고 하면 뒤에 나오는 이 진술도 동일하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를 두고 앞과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같은 뜻이라는 말입니다.
앞에 이야기 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11절부터 시작한 이야기는 이방인들인 에베소 교인들에게 너희가 원래는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죽음 가운데 있었던 존재들이며 아무런 희망도 없고 기회도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여있던 담을 허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 사이에 놓여있던 담도 허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을 하나로 만드셨고 함께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러므로”라고 하는 진술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진술이 무엇이냐 하면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그 진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먼저는 수동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고 나아가서는 적극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먼저 사도는 성도들을 향해서 수동적인 측면에서 접근합니다.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가 그렇다는 것입니까? 예! 에베소서 성도들이 그렇다는 것이고 나아가서 우리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외인도 아니고 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전에 우리가 외인이었고 손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2장 앞에서 이야기하던 것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었고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외인이었다는 것은 외국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이 무엇인지를 너무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저희교회 집사님들이 많이 미국에서 근무하십니다.  미국사람들이나 집사님들이나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고 전혀 다르지 않은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유독 내가 미국인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국경을 통과 할 때입니다. 몇 번을 통과해도 그렇게 유쾌하지 않은 곳이 국경인 것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외인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같은 일을 하고 겉으로 똑같아 보인다 해도 내가 가진 것이 시민권이냐 아니면 비자냐에 따라 국경에서의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같은 나라 백성은 동질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사는 것에 있어서 자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살았고 또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해도 또 인기 있는 사람이라해도 그 나라 시민권이 없는 사람이라면 역시 외국인일 따름입니다.

외국인들은 그 나라에 계속 거주하기 위해서 또 그 나라에서 권리를 얻고 누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비자를 갱신하고 또 무엇인가 그 나라에 기여한다고 하는 증명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돈을 쓰는 것일 수도 있고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제 외인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시민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는 존재들이었는데 이제는 그곳이 나의 당연히 거할 처소이고 나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의 진술은 우리가 손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다른 이의 집에 손님으로 와서 거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집에 거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던 때의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핵심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어떠한가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식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니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말해주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몸이 마음이 직관적으로 아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집에 들어갔는데 이곳이 우리 집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아십니까?
집의 구조를 살펴보고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이 누군지 만나보고야 그 집이 우리 집인지 아닌지 안다면 그것은 아마도 심각하게 술 취해 들어간 집이거나 처음 이사한 곳에 찾아 들어갈 때의 이야기일겁니다. 대부분은 그저 들어가는 것으로 아니 밖에서 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곳이 집입니다. 만약 집을 들어가려고 보았는데 갑갑하다면 분명히 무엇인가 큰 잘못을 했거나 아니면 슬픈 소식이 있을 때일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쨌거나 집을 보면 편안하고 마음이 풀리는 곳일 겁니다.


사도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러하고 하나님의 집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이며 집인 곳은 조금 구체적으로 지금 우리에게는 아마도 교회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교회가 의무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사도는 우리가 교회의 식구이며 손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들어가서 어색하거나 혹은 들어가서 화장실을 쓰거나 함께 밥을 먹을 때에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우리의 교회가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더 이 진술에는 적극적인 면이 있습니다.
앞ㅇ레 있는 진술의 적극적인 측면입니다. 바로 우리는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시민이요 그 집의 식구라는 것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사도는 두 번이나 강조함으로 우리의 현재 위치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었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집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아직 어색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며 그 권속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도는 그 앞에 한 가지 단어를 붙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분명한 신앙의 선조들과 같은 나라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았던 사람들 아브라함이요 모세이며 다윗과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는 나라에 우리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 나라 들어간 것처럼 우리도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인데 이것이 우리에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확실함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기억하십니까? 바로 그렇게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게 하시고 오가는 길 위에서 때로는 고난을 당하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것을 어디까지 하시냐 하면 하나님의 백성 될 때 까지 하실 것입니다.

모세를 광야로 내어 모셔서 40년을 훈련시키신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일꾼으로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아니 그 정체를 바로 알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때로는 광야로 인도하시고 또 왕궁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를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권세를 누리며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써의 권리를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대하시며 우리를 그 백성으로 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그의 자녀 된 자리에 있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때리셔서라도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 가져다 놓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잘 알지 못할 대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로는 징계로 때로는 격려로 우리에게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알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나라 백성으로 지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어떠한 것도 없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기 위하여 밤이나 낮이나 눈을 감지 않으시고 주목해서 지켜보고 계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딘가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를 당신의 나라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 인도하시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감당하신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밝히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고 그 나라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희생하시기 까지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생명을 위해서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아니 그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성도들과 동인한 시민이라고 불러주시는데 그 성도들이 바로 자기의 아들을 드리기까지 믿음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나님은 사자 굴에 들어가더라도 또 뜨거운 풀무 불에 들어갈 찌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포기 하지 않겠다던 다니엘과 그 세 친구처럼 우리를 인정해 주신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적어도 우리는 그 자리에 서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자녀된 자리에 서 있기 위해서 때로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 자리에 가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분이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손님처럼 하나님의 교회에 출입하는 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나라 속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을 좋아 하시겠습니까? 우리를 자녀 삼으신 분이 우리를 자녀로 훈련시키실 것입니다.

두려워말고 우리 한번 애쓰며 기도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그저 나는 적당한 수준에서 예수를 믿겠다고 말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에 나의 힘을 쏟는 것이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만 못하다면 참으로 우습지 않겠습니까?
저는 자주 자기의 분야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참으로 신실하게 또 힘 있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공부를 위해서 밤잠을 거의 자지 않으면서 공부했다는 이야기이며 무엇인가를 알고 배우기 위해서 체력이 바닥이 날 때까지 또 자기의 감정이 상하기까지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 존경스럽고 또 한편으로 부럽습니다.

“루이스 암스트롱”이라는 재즈 뮤지션을 잘 아실 겁니다. 그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적인 일화 가운데 하나가 트럼펫을 잘 불기에 자기의 입이 너무 작아서 면도날로 자기 입을 찢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그는 연주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아니 그 백성으로 걸맞은 삶을 살기위해서 혹은 그 자녀 된 자리에 걸맞은 삶을 살기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내 개인적인 삶에서의 어떤 헌신들이 있습니까?
이 고난 주간에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시기 가지 사랑하셔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는데 과연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자녀 된 자리에 걸맞기 위해 애쓰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만약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하면 우리 이제 심각하게 고민하고 다시 한 번 나를 점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교회 오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면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짐이고 버거운 일이라면 우리 그 자리에서 벗어 나기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하나님의 구원의 감격이 나의 삶을 지배하지 못해서 어렵고 힘들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못하고 세상의 다른 것들이 더 즐겁고 재미있다면 우리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을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은 기쁨이며 행복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의 나라에서 시민으로 대접받으며 그 권리를 누리는 것이 어떻게 힘겨운 짐이 되어야 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서 식구로 사는 것이 어떻게 불편한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젊었을 때 잠간 집을 떠나 밖에서 사는 것이 행복할지 모르지만 집에 들어오면 편안하고 행복한 것이 정상 아닙니까? 그것도 너무나 사랑이 풍성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아버지의 집에 들어와 사는 것인데 말입니다.

우리 그 권세를 누리기 위해서 또 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 된 자리를 기뻐하며 행복해 할 수 있도록 만드심을 믿는 것입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처럼 살고 싶다는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을리 만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처럼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그의 구속의 은혜를 안다면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한다면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가운데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자녀의 자리에 들기 이전에는 동일한 삶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이제는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는 누구라도 하나님의 백성이지 못했고 그 자녀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것은 나의 삶이 그 자리에 맞도록 노력하는 것이어야지 그 지리에 누가 맞는가를 심판하는 자리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서 함께 하나님의 자녀로 또 시민으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가족이며 한 나라 백성이라는 사실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연약한 부분이 있음을 고백하고 그 연약한 부분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지 서로가 그 연약한 부분으로 인해서 싸우거나 시기하거나 분노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족이라면 우리의 적이 가족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때로는 마음이 안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가족 안에서의 문제입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때로 싸울 수도 있지만 그 싸움은 결국 함께 좋은 길로 가기위해서 혹은 서로 더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한 가족이 서로 보지 않을 것 처럼 싸우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제는 상처 난 가족들이 너무도 많은 시대여서 가족들도 서로를 향해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행하기도 하고 싸움도 싸우지만 그래도 가족들은 다른 이들을 만났을 때에는 함께 한 가족으로 싸우는 것이 정상입니다.
아무리 싸우는 형제들도 나가서 누군가 다른 친구에서 동생이 괴롭힘을 당한다면 함께 동생을 괴롭히는 곳에 서는 형은 없습니다.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동생의 편이 되는 것이 정상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이며 한 나라 백성입니다. 때로 우리 가운데 연약함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는 것으로 끝나는 존재들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에 다툴 수 있는 존재들이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서로의 연약한 부분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 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의 기뻐하신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일은 나의 본연의 모습을 알고 나아가 나의 현재의 자리를 아는 것을 전재로 합니다.
내가 죽을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아는 사람은 결코 한 가족 된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그 죽음에서 끌어올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다면 간혹 잊거나 실패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한 가족 된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공유하는 것이 교회여야 합니다. 이직도 지어져 가는 교회는 우리가 그런 노력을 하다가 지쳐 보았기 때문에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하는 교회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힘씀도 애씀도 없이 그저 교회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공통된 관심사가 결코 이 세상의 것과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 애썼는지와 그로 인해 얼마나 깊이 좌절해 보았는지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이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내어 놓을지라도 그것을 위해 기도함으로 도울 수 있는 공동체이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우리 교회를 통해서 기쁨과 감격이 넘쳐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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