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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28

2008.05.14 10:07

폭우 조회 수:424 추천: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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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3장 14절~19절

3:14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3: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도바울의 편지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가 참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과 그 놀라운 사랑에 대하여 풍성하게 누리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가 알고 누린 것들을 교회들에 설명하기를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다만 그런 바울의 설명과 힘쓰는 열심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른 경지에 이르기가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에베소교인들과 같이 그의 편지를 직접 받아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금 예수님을 믿어 그의 백성이 된 우리들조차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의 그러한 소망과 바람이 더욱 극명하게 설명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도 자기가 누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은 에베소서 3장을 묵상하면서 14절 이하의 말씀은 아마도 1절에서 바로 연결되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간에는 바울이 또 다른 격정에서 스스로가 감옥에 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결코 아픔이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알게 되는 더 큰 은혜였음을 설명하였고 이제 14절부터 원래 하고자 하던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이제 하려는 것은 그가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너희도 누리기를 바란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삶에 대하여 권면하려는 것입니다. 그 시작을 오늘 3장 14절 이하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설명할 대에 그는 기도함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가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알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깊은 기도의 제목을 다 설명하려면 아마도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분명하게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애정을 가지고 그들이 그저 구원받은 것에서 그들의 믿음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구원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나아가서 그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넉넉해지기를 원하는 것이며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심으로 말미암아 아니 그 사실을 믿음으로 우리 가운데 그분의 사랑을 자양분으로 풍성해 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모든 것을 알아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 풍성함이 얼마나 넓고 깊고 높은지를 깨달아 알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충만하게 하시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에 다른 분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2장의 말미에 말했던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의 위치뿐 아니라 에베소서 교인들의 위치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위치는 먼저는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입니다. 성도들은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그들과 동일한 하나님의 나라 시민이라는 위치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그의 권속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으로 그의 자녀가 아버지에게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령을 모신 성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혼자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거하시면서 나의 기도를 인도하시고 그 기도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신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중간에 이 사실을 한 번 더 깊이 숙고하고 나서 그의 기도를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같은 위치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임을 알게 하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3장을 시작하면서 언급했던 말을 시작으로 오늘 14절을 연결합니다.

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3:14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3: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바울은 다른 설명 다 빼고 나면 지금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는지를 다 살펴보기 전에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바울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이 특별한 일이겠습니까 마는 지금 바울의 형편을 살펴보면 그의 기도가 특별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옥중에 있습니다. 로마의 감옥에 있는지 아니면 다른 어느 도시의 감옥에 있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로마의 시위대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곳에서 그가 차꼬에 차여서도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스스로의 상황을 호전시켜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니까 그럴 수 있었겠지의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기도했다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기도할 수 있음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를 속박하는 것은 현실 가운데 로마의 군대이고 그로 하여금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없도록 하는 어쩌면 사단의 세력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힘과 세력도 바울이 기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을 억압하는 것은 어쩌면 현실 가운데 여러 것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가졌던 병이 있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가 자주 매맞고 아프며 가난했음도 알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의 바울도 또한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결코 바울이 기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환경에 거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막을 것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현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쓰는 악의 세력들이 우리를 속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쉽고 평안하게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회사의 일이 우리를 교회 출석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고 우리가 하는 사업이나 일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을 방해 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에 방해를 끼칠 수도 있을 뿐 만 아니라 때로는 아픈 육체가 혹은 마음이 아파서 예배할 수 없도록 우리를 방해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어떤 세력도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외부의 환경도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도록 억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심리상태나 기분이 기도 할 수 없게 하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리 내부의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하기로 작정한다면 우리의 기도를 막을 어떤 힘도 없음을 우리가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또한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주신 것이며 그의 시민이기에 허락하신 특권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주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입십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고 또한 지금 편지를 통해서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리고 가르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가르침 위에 기도를 더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가르침만큼이나 중요한 것입니다.

“교육은 백년지 대계”라고 합니다. 하루나 일년이 아니라 백년을 두고 바른 계획을 할 것이라는 의미이겠지요. 그러나 그 교육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기도라고 하는 것을 바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속담에 한 시간을 행복하려면 낮잠을하고 하루를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며 한달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년을 행복하려면 상속을 받고 평생을 행복하려면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주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주어진 것 가운데 평생을 행복하기 위해서 아니 하루를 행복하기 위해서도 할 것은 기도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토록 애쓰며 가르쳤던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풍성함을 알도록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편지를 통해서 또한 그들의 신앙을 위해 권면하기를 마지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모든 내용이 참으로 영적이며 세밀하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고백합니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혹은 설교를 통해서만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완전해 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가르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머리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그들의 머리에서 마음으로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며 그들의 가슴에서 또한 손과 발로 전해지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함으로 우리가 아는 것을 실행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그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부르십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함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의 삶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우리의 기도의 전부를 나를 위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울은 스스로를 위해 기도하지만 그러나 너무도 자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자라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의 신앙이 성숙하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들의 믿음이 풍성해 지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기도하게 하셨습니까?

그냥 알아서 우리가 처한 환경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기도하면 그때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행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그 지혜의 경륜 가운데 우리를 향해 일하시기로 작정하신 계획이 바로 기도 가운데 하시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아시지요. 우리가 굳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지 않아도 우리를 도우실 수 도 있고 우리를 바르게 세우실 수 있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믿음을 굳건한 위치에 올리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특권 가운데 최고의 특권인 기도를 잘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함으로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경험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기도를 바로 사용하지 못하면 우리는 여전히 이 당에서 엉뚱한 어려움을 인해 좌절하고 마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기도를 시작하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고 싶은 것은 그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의 무릎을 굻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무릎을 꿇는 다는 것은 그의 자세의 신중함과 간절함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자세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 자세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 것만이 간절함을 표현하는 것이냐고 말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간절함이 표현되어지는 처음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꼭 무릎을 꿇어야만 하나님이 기돼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하는 자세는 분명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세여야 합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무릎을 꿇고 비노니”에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첫 자세는 바로 이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우리의 겸손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의 요구 조건을 들고 협상하러 나가는 자세도 아니고 나의 필요한 목록을 들고 제출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우리의 현재 형편을 알리고 그 속에서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도우시는 지는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되어 질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여서 우리가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란 이것입니다. 아마도 이번 주일에 이 기도의 자세에 대해 함께 나눌 것입니다 마는 우리의 기도는 결국 누구를 향해 기도하는 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며 그 하나님께 어떤 자세로 나아가는 것인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 제목을 들으시기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인지 잘 아시지 못하므로 우리에게 우리의 상황을 알게 하고 우리의 소원을 전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아시기를 원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우리의 것을 드러내는지를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기대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간절하고 겸손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만을 위해서 기도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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