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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로만........

2006.11.16 15:00

폭우 조회 수:394 추천:28

“은혜로만”

출애굽기 20장 22-26절

20: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20: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20:25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20:26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오늘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야 말로 우리가 너무 많이 들어왔고 또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어서 더 이상 설교하지 않아도 되는 주제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또 이 “하나님의 은혜”만큼 우리에게 설교되어져야 하고 여전히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말씀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고백하십니까?
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여 예배할 것을 명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그 무엇으로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여 우리가 예배할 수 있을 따름이고 우리는 그 은혜를 의지해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길을 가다가 시내산에 이르러 그곳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언약을 율법을 받아 언약하는 장면 가운데 있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를 담임목사님께서 강해하고 계시니까 이 출애굽기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스스로가 죄인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너무 스스로를 잘 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죄인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렇다고 뚜렷하게 큰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내려오신 하나님의 영광을 감당할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이십니다. 무한한 영광과 거룩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천사들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수행하고 찬양하는 스랍들도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인하여 얼굴을 가리고 발을 가리워야 하는 것 처럼 인간은 그저 그 존재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죄의 속성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죽음을 경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의 이스라엘도 그러했고 지금의 우리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예배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백성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 가운데 거하시면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말씀으로만 동행하시는 것이 아니고 물리적으로 그들 가운데 거하시면서 그들과 동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그들의 진 가운데 거하시면서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를 위한 전제 조건을 말씀하셨는데 그 많은 것들 중에 오늘 본문은 단순하게 그 제단에 관한 것만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먼저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상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이 본문전에 십계명을 말씀하시고 지키도록 하신 하나님께서 예배를 말씀하시면서 다시한번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어야지 죽은 것이나 상징으로 새겨진 것에게 예배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연약해서 얼마나 눈에 보이는 것을 믿기를 좋아하는지요.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면 우리의 오감을 통하지 않고는 전혀 실제의 것으로 믿지 않고 또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오감을 통하여 믿어지시는 분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으로 보거나 만들어서 대신할 상징으로 표현해서는 않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온 세상 가운데 계시고 그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예배를 하나님이 필요해서 드리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주 착각하기를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통해 기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좋아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당신의 명성을 확인할 수 없어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으셔서 우리에게 예빼하라고 하신 것 처럼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찬양과 예배가 없어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들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땅에 있는 돌들이나 하늘에 나는 새라도 물속의 고기나 우주에 거하는 별들이라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를 허락하신 것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축복하시고 용서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함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치 설날이 되면 세배하는 아이들 처럼 아버지 어머니가 아이들이 세배해 주어야 즐거운 것 처럼 생각하고 “내가 세배해 드릴테니까 세배돈 많이 주세요” 한다면 이는 어린 아이인 것입니다.
나이가 먹고 성숙해지만 이렇게 세배하고 인사드릴 부모님이 계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의 세배를 통해서 나를 사랑하시는 부모님을 만날 수 있고 그분들의 사랑을 받을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예배 역시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고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신다 말씀하여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로 제단에 관하여 성경은 분명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20:25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20:26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토단을 쌓고 그 위에 양과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는 것이고 그러면 그 곳에 하나님이 강림하셔서 복을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토단을 쌓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어느 곳이라도 쌓을 수 있는 제단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느곳에 있든지 간에 그들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그곳이 아무리 돌이 없고 안전하지 않아도 또는 불편하고 제단을 쌓기 힘든 곳이라도 그들은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번제와 화목제는 이스라엘이 항상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제사들이었습니다. 죄를 범하였을 때에도 혹은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에도 혹은 서원의 제사를 드릴 대에도 화목제와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항상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환경을 핑계로 예배하지 않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평안하여도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고 그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지 아니하면 그곳에 하나님은 임재하지 않으십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돌로 제단을 쌓을 때에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의 손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할 제단을 쌓기를 하나님은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악함을 아셨습니다.

만약 인간이 그대로 자기의 힘을 다해 정성껏 제단을 쌓을 수 있었다면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제단을 만들 것이라고 경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결코 그 제물에 있거나 그 제단에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제단의 돌을 다듬고 쌓아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겸손하게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나의 의지와 능력, 나의 공로나 정성은 부수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이 가져야할 당연한 자세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이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예배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배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예배를 드릴 때에 그 예배를 하나님이 열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다른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예배를 드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어떠한 노력도 아니라 우리의 어떠한 능력도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하여 당신을 예배하고 그 앞에 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역사 안에 인간이 노력해온 수많은 노력들을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이끌어 내기 위해 스스로를 다듬고 채찍질하며 고난 가운데로 몰아넣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려는 시도들을 행해왔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이들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럼 솔로몬의 성전은 무엇이냐고 말씀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그 성전을 멋지게 지었기 때문에 그 성전을 기쁘게 받으시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순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의지했기 때문에 그 성전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보석으로 지어진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여도 역시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에 의지한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초라한 것 같고 부족한 듯 하여도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우리의 아바 아버지가 되신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착각하기를 우리의 열심과 노력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야지 하고 생각한 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소원을 들으신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때로는 40일 금식기도도 하고 1000천 번제 헌금도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에 간절한 소원을 들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그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금식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사야 58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58:3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58: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58:5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58: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58: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금식하지만 그의 삶이 하나님의 싫어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 금식이 무슨의지가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삶을 살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겠다고 밥을 굶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오히려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소원하고 항상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그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훨씬 더 쉽게 체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뻐하는 금식은 하나님의 뜻에 자기의 삶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고 예배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어떠한 노력도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으면 부족한 것입니다.

아버지께 무엇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졸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들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그 원하시는 길로 행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조르지 않아도 기쁨으로 우리의 소원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원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착각을 멈추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 그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나의 노력중 일부를 포함한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 주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은 마치 하루 종일 품꾼을 찾아 포도원을 기웃 거리다가 저녁 다 늦은 시간에도 일을 찾지 못하고 앉은 사람을 불러다가 자기 포도원에서 일을 시키시고 그에게도 동일한 금액 할품삯을 그대로 다 주는 하나님의 마음과 같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자주 착각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이 하라시는 일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또 교회서 봉사도 하고 여러 가지 일도 했기 때문에 이 비유로 따지면 중간쯤에 온 사람은 될거야 그러고 보면 참 불공평한 비유가 아닐 수 없어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지?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나중 온 사람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루가 다 끝이 날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포도원에 와서는 일을 시작하려고 옷을 갈아입든지 아니면 연장을 챙기든지 하고 준비를 마치자 일이 끝난 사람들 말입니다.
그럼 다른 사람은 누구입니까?
모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아무것도 일하지 않았지만 내가 너에게 동일한 품삯을 줄게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라도 한 두시간 일해서 나의 일한 것을 인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할 까봐 이렇게 아무런 것도 없는 상태의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당신께 예배할 때에 우리가 어떤 노력과 공로를 들고 가지 않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손도 대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제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의 소망에 끌어 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나의 열심을 하나님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기도하면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우리의 노력과 소원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심중을 아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환경과 상황에 나의 마음과 행동을 맞출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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