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스왈드 샌더스의 "그를 생각하라"

2004.06.09 08:52

폭우 조회 수:583 추천:57

오늘은 선배 목사님이 선물한 책을 나누어본다.
오스왈드 샌더스 선교사님의 글

그 첫 글 "그리스도를 생각하라"

"예수를 생각하라"(히3:1)
"참으신 자(예수)를 생각하라"(히12:3)

히브리서의 이 두 구절의 "생각하라"에 사용된 헬라어는 서로 다른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구절은 장기적이고도 고도로 집중적인 천문학자의 관찰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두 번째의 '생각하라'는 셈하고 비교하겨 무게를 달아본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면, 이 말씀들은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나 슬픔,
시험들을 주님의 것과 비교하고 재면서 그리스도에게로 우리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집중하고 고정시킬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평안의 비밀은 무엇인가?
위의 두 구절은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고 고요히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우리들의 영적인 질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이 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먼저 우리의 자기만족이 치유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를 더 높게 평가하지 않습니까?
또 다른 사람의 태도나 행동을 쉽게 비판하지 않습니까?
비판이란 항상 우월한 입장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면서 비판하기보다는 아무 흠이나 죄가 없으신 주님께 나 자신을 비추어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 자신까지도 버리신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의 자기만족은 시들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우리를 자기 연민에서 건져 줄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우리 모두가 걸려들기 쉬운 영적인 병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한탄하고 인생이 그들에게 준  부당한 대우를 아파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외되어 있고 이해 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억눌려 있습니다.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12:3)

주님께서는 오해 당하고, 외면당하며, 무정함을 맛보고, 오판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은 자기 가족으로부터 오해를 당하는 아픔이 어떤 것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고난과 우리의 것을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의 자기연민은 상당히 가벼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낙심과 침체에 대한 해독제가 될 것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그를 생각하라"(히12:3)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선수가 경주에서 우승한 후에 완전히 기진맥진하여 쓰러져버린 경우를 묘사하는 데 이 "피곤하다"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의기소침케하는 것이 사탄이 우리를 쇠약하게 만드는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사탄의 다른 궤계를 물리치더라도 그는 이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시 도전해 올 것입니다.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주님은 멸시와 거부와 중상모략을 당하셨습니다.
그의 사역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큼 성공적인 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그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 그를 의심하고, 거절하고, 버린후에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으셨습니다.
그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다시금 용기를 얻으십시오.

또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무기력에 대한 자극제가 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12:4)

우리는 우리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 가운데서 죄와 싸우는 전투를 벌이면서 벌써 무기력해져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의 영혼이 떠나기까지 단 한순간도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해이해져 본 적이 없으셨습니다.

바지막으로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들의 망각증에 대한 치유가 됩니다.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히12:5)

우리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을 잊어버린 채 우리 스스로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경계하심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지도 말고, 또 너무 낙심하여 침체에 빠지지도 맙시다.
후에는 그것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을 확신하고 그것을 가슴으로 안아들입시다(히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