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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누구를 쓰시는가?

2004.07.10 00:21

폭우 조회 수:543 추천:39

                                          여호수아 6장 11절~18절

6: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6: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6:3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6:4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6:5 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떼 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6:6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6:7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 고로
6: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 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6: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6: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6:14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6: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6: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6: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가로되 내가 너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


오늘 본문은 사사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다가 드디어 하나님의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시대의 이야기.
이제는 이미 가나안에 정착해서 산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고 이미 광야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다 죽어서 그때의 이야기들이 할아버지들의 옛이야기로 전해 내려오던 시기였습니다.
전쟁의 기억들은 사라지고 그때의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에 대한 감사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자기들의 생각을 따라 사는 것만이 남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고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을 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몇몇 족속들을 남겨두었고 혹은 노예로 삼았습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2:20 여호아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와 세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2:21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이 이들을 쫓아 내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고 그 이유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방의 우상을 섬기며 그들과 언약하였기에(2:2) 하나님은 이들을 그대로 두어 이스라엘의 가시를 삼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이스라엘의 시작부터가 이미 실패의 역사인 셈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백성으로 살았을 리가 만무합니다.
이스라엘은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자마자 바로 하나님을 떠나고 가나안의 우상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그들에게 제사지내는 죄를 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남겨두신 이방 민족들을 가지고 징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바로 그 역사의 반복이 바로 사사기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그 징계를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사사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구원하신 이스라엘은 “샬롬”의 기간을 보내다가 다시 “엔샬롬(평화가 없음)”의 기간으로 돌아서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일의 반복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을까요?

어떻게 이렇게 지독하게도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바로 떠날 수 있느냐는 거죠.
이스라엘을 유혹하고 그들이 넘어갔던 이방의 우상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들은 그렇게 쉽게 또 자주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수 있었을까요?


가나안의 우상들....
   1.바알신 : 농경의 신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아내인 (아낫)아스다롯과 연합하여 농사를 풍요롭게 하며 비를 내리는 신이다.
즉 농사를 짓는 가나안의 생활 양식이 만들어낸 우상인 것이다.
   2.아세라 : 바알의 죽음에서 일으켜 세운 최고 신의 아내
    바알이 죽음의 신과 전투에서 저서 죽자 이를 살려내는 역할을 하는 여신


그들의 제사는 대부분 성적인 환락이 있는 제사였다 왜냐하면 바알과 아내인 아낫-아스다롯이 서로 교합함으로 농작물이 풍요롭게 생산될 수 있는데 이를 자극하기 위해서 제사드리는 여사제나 남자 사제들이 이곳에서 성교를 함으로 신들을 자극하고 이로인해 풍요를 기원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이러한 유혹을 이기기가 쉽지 않았다.

풍요의 유혹과 성적인 환락의 유혹...
그래서 이들은 자주 빨리 그 우상에게로 넘어지고 하나님을 떠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어떠한가?
우리들은 혹시 이들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옳다고 알고 있지만 자주 내가 사는 세상의 유혹들에 넘어져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는가?
그들이 이야기하는 풍요나 넉넉함이 우리를 유혹하거나 그 속에 있는 쾌락과 즐거움이 우리를 시험할 때 자주 넘어지지는 않는가?


이렇게 자주 넘어지는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이 돌이키기만 하면 구원을 허락하셨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때 비로소 그 고통을 인해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에게 돌이키고 기도함으로 호소한다.
그들은 평안하고 여유로울 때에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고통이 임하고 괴로움이 심해지면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한다.

참 우리와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평안할 때 하나님이 아니라 고통할 때 괴로울 때 하나님을 찾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엔샬롬”의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방법이었다.
성경은 그들을 사사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들은 영웅이었다.
때로는 혼자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 적장(왕)의 가슴에 칼을 꼽고 유유히 걸어 나오는 사람이기도 했고(에훗) 적국의 탄압에 의연히 일어서서 민족을 독려하고 그들과 대항해서 전쟁을 해서 민족을 구하는 여인이 있는가하면 그 전쟁에서 적장을 집으로 들여 잠자는 사이 그 머리에 말뚝을 박아 죽인 여인이 있기도 하고 나아가 몇 십만이 넘는 적군을 상대로 단 3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몽둥이와 횃불, 항아리를 들고 싸워서 대승한 영웅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나귀턱뼈 하나로 적군을 무수히 죽이기도 하는 괴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이스라엘의 고난중에 하나님의 신의 동행을 의지해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신이 그들에게 인하므로”라고 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이 일을 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이들을 사사로 세우셨을까?
무슨 이유로 이들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맡기셨는가?
오늘 본문은 그중에서 한사람 기드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기드온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부르시고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는지 나눠보기로 합시다.


기드온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1.기드온은 뜻밖에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11절을 보면 기드온은 그저 자신이 수확한 농작물을 미디안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기위해서 몰래 타작하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들에 대항해서 싸우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고 지금 처해있는 이스라엘의 고난에 의연히 일어서려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수확한 것만 빼앗기지 않으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기드온은 하나님을 의지했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그가 용감하게 의분을 일으키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숨어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가치감도 없는 기드온에게 찾아오셨고 그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을 맡기고 계신것입니다.
그에게 무어라 부르고 있습니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2.25절 이하에는 기드온이 하나님만을 온전히 섬기는 사람이 아닌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그 아버지집에 바알을 위한 제단과 아세라신을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즉 기드온 역시 자기집에 우상을 섬기는 제단이 있는 것에 대해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가 비록 적극적으로 우상을 섬겼는지 아니면 소극적으로 우상을 섬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우상숭배에 대해 목숨을 걸고 싸울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는 것을 당연시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무관심한 삶을 사록 있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그런 싱앙의 상태를 좀더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12절 - 하나님의 사자는 그를 “큰 용사”로 부르면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있을”것을 말씀하고 계신데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하나님이 정말 우리와 함께 계시기는 한 것입니까? 하는 의문일 뿐이었습니다.
13절 -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다시말하면 내가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고 그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의 현실을 보면 전혀 그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는 없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지금의 현실이 하나님을 섬기기 힘들며 세상의 가치관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섬길 용기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단을 집에 놓아둘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3.하나님의 부르심에 머뭇 머뭇하는 용기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 동행의 약속을 의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야음을 틈타 바알과 아세라신을 찍고 그 제단을 헐기는 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동행하심에 대해 의심하고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듭 새로운 확신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6: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6: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6: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가로되 내가 너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


하나님의 음성이 그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시마 약속하셨으나 그는 자기가 그일을 감당할 자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보기에 따라 겸손이며 자기를 낮추는 일이지만 또 다른 입장에서 보면 아직도 하나님의 음성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가 하나님인 표징을 얻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이 일을 맡기신 것을 확인 하기 위해 여호수아는 두 번의 표적을 구한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양털뭉치의 표징” 비가 하나도 올 수 없는 시기에 하나님께 비를 구하고 그 비가 사방지면을 다 덮을 때 오직 자신의 양털뭉치만은 비에 젖지 않고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기를 구하고 그 표징이 있은 후에 거듭해서 이번에는 그와 정 반대되는 표징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바로 응답하며 급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가 꼭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머뭇거리는 여호수아가 정말 준비된 하나님의 용사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셨습니다.




· 하나님이 만드신 일꾼 기드온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에게 당신이 확신을 주시고 격려하십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큰 용사”의 모습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당신의 뜻과 힘을 의지하여 나아가는 사람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기드온은 그런 의미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용사가 되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자신의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확신과 능력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다르고 우상을 버릴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도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런 기드온을 왕으로 삼으려 하지만 기드온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이제 기드온은 온전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구원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신 것을 온전히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쓰실만한 일꾼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없고 할 수 없다 고백하는 사람일지라도,
침체되어 힘겹고 버거운 생활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이 쓰실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당신의 일을 위해 사용하시는가?


요즘 여름 사역들을 준비하고 또 진행하느라 지쳐있는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한편으론 안쓰럽고 또 한편으론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요즘 여러분들을 보면서 가지는 생각은 참 우리들이 이런 아픔이나 어려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지요.


“나는 정말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역하고 있는 것인가?”

“정말 내 이런 못난 모습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좀 더 성장한 다음에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혹은 관두련다. 이렇게 하느니 안 하는 게 낫지!”

“그냥 날 좀 놔두세요. 나중에 내 문제가 해결되고 신앙이 좀 자라면 다 할 수 있을 텐데 왜 지금 나한테 이런 부담을 주시는 겁니까?”


우리는 그런 궁금증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 하는 것일까?
아니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당신의 일을 위해 사용하시는가?
아니면 언제쯤 하나님은 우리들이 얼마나 훈련되었을 때쯤 우리를 사용하시는가? 하는 것 말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쓰시는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그냥 교회만 다니는 사람에서 그쳐버리고 싶습니까?


만약 에이 나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간신히 구원이나 받고 말래 이렇게 생각하나요. 그렇더라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쓰셨는가?


하나님은 준비되지 않았을 찌라도 당신이 사용하고자 하시는 이들을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당신의 부족한 부분이나 연약한 부분을 다듬고 연단시켜서라도 당신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바로 당신이 하나님의 쓰실만한 일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