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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3 / 1장3-6절

2007.05.30 14:26

폭우 조회 수:533 추천:25

에베소서 강해3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를 쓰는 바울은 1절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한 인식과 또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너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사람이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사람임을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속이 다른 어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것은 예수에 대하여 전하는 사도이며 나아가 그를 따르는 사람인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이들에 대해서도 같은 인식을 하고 있다. 그는 그들을 성도로 부를 뿐 아니라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들로 표현함으로 자기가 이 에베소서를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을 읽고 이해하며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구별된 성도가 된 사람들이며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베소서를 통해 듣고자하는 것은 그 하나님의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전하는 구원의 감격과 은혜에 대한 진술이며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그 은혜로 주어진 평안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며 완벽한 축복이며 나아가 우리의 불안정하고 불편한 삶의 터전에 주시는 평안인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인 것이다.

바울은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을 진술하는 첫 머리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 놀라운 은혜를 말하고자 이 글을 시작하고 있는데 이는 바울이 먼저 찬양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하나씩 쓰고자 하여 이 은혜를 아마 상기해 보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그 일을 생각하는 순간 바울은 다른 것보다 먼저 “찬송”이 흘러 나왔고 이 찬송을 함께 나누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 저것 생각하고 설명하기 전에 마음에 충만한 감사와 감격으로 찬양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어서 바울은 “우리 찬양합시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바울의 현재가 옥중이라거나 혹은 다른 어떠한 추가 설명없이 이 말을 통해서 바울은 자기가 전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찬양할 만한 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우리가 알고 믿는 믿음이 어려분의 기억과 제 기억속에서 저의 말과 삶 속에서와 여러분의 말과 삶 속에서 이렇게 드러나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오늘 찬양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인해 기뻐하실 수 있었습니까? 여러분이 예배하러 나오시면서 여러분의 마음에 풍성한 은혜를 사모하며 나올 뿐만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감사의 고백과 찬양을 올려드리기 위해서 나오시고 계십니까?
사도는 우리에게 이 글을 통해서 먼저 찬양하자고 권면하면서 스스로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을 지금까지 지탱해온 힘이었고 고난과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도 여전히 한 길을 갈 수 있도록 한 에너지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감옥 그 사슬에 묶인 상태에서도 매 맞고 차가운 감옥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도 찬양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이고 40에 하나 감하는 매를 맞으면서도 돌에 맞으면서도 여전히 찬양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 모인 우리들에게 그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항상 찬양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삶이 있기를 또한 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성도의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발을 땅에 디디고 산다는 것 때문에 또 나의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죄의 힘에 무너지는 나를 바라 볼 때마다 나의 성도됨을 망각하기도 하고 나의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됨을 잊어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여전히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잊어버리고 그 하나님을 나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잘못을 범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하여 분명하게 선언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찬양합시다라고 다짜고짜 쓰고 나서 그 찬양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그 찬양이 3절부터 14절까지 죽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찬양의 이유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복을 인함이라고 고백하면서 어떤 북을 받았는지를 진술하고 있습니다.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복이라고 하면 우리가 모두 너무 좋아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구절을 읽고 외워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주시마 약속하신 부분을 찾아 읽고 외우기를 즐겨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복을 그냥 복이라 말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에 대하여 신령한 복이라고 밝혀서 오해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 주신 복을 인해서 찬양할 것인데 바울은 이 복을 먼저 성부 하나님의 주신 복을 찬양할 것을 선포하는 글을 3절에서 6절까지에 쓰고 있으며 성자 예수님을 인하여 주신 복을 인하여 찬양할 것에 대하여 7절에서 12절까지 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인하여 찬양할 것을 13절과 14절에 기록함으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모든 존전에 찬양을 드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를 소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며 이 삼위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매 찬양의 말미를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쓰고 나서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리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찬양하면서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지막으로 성령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쓰면서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대하며 예배하는 우리가 하여야 할 반응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그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저저주시는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찬양이 되어야 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본분을 자주 잊어버리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창조의 목적이자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나의 수준으로 내려서 이 세상의 많은 다른 종교들과 같은 위치로 전락시켜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올 때 마다 하나님께 부탁할 것들을 들고 나오고 그 부탁을 들어주시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성을 또 들고 나옵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아서 조금 더 선하게 살고자 하고 착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구제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기를 바라고 남들의 상처 입히는 말에도 신사적으로 대꾸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갈증을 느끼고 갈등합니다.
“나는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왜 아직도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는 것일까?”
“나의 애씀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왜 이렇게 박에 살 수 없는 것일까?”
우리에게 이런 갈증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그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이 있지 않다는 것이고 그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한 다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찬양이 부족하고 심지어 찬양조차 하나님에게 잘 보이기 위한 어떤 것으로 드려지기까지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며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냥 구원하셨다고 말할 뿐 아니라 이미 창세전에 계획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시기를 기뻐하셨고 나의 죄에도 불구하고 나를 회복시키셔서 하나님의 자녀 만드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계획을 삼위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계획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감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양은 자주 노래로 또는 기쁨의 노래로 생각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찬양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는 웃으면서 즐겁게 드리는 것이어야 할 것 처럼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풍성하심은 모두 우리의 찬양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하고 그 신실하심을 굳게 붙잡는 것이 바로 우리의 찬양입니다.
때로는 나의 고난과 힘겨운 현실로 인해서 울 수밖에 없고 괴로움에 절망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가운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성화되어가는 중입니다. 또 아직 하나님의 거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온전히 거하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이 땅에 거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달려가는 존재들이고 이 땅에 살지만 소속은 하나님의 나라에 두고 사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때로 지칠수 있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이고 이것은 미래에 나의 행동과 삶에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평가가 아니라 이미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바울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신령한 복” 여기에서 우리는 고민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물질의 복이나 건강의 복이나 이 땅에서 잘되는 복을 주셨으면 쉽게 수긍하고 알수 있을 텐데 그리고 찬양하기도 쉬울 텐데 신령한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하나님께 나아오면서 이 신령한 복이 아니라 “물질의 축복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도데체 이 신령한 복이란 무엇입니까?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렇습니다. 우리를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택하신 축복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입니다.
그냥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열심히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또 구제하고 선한 일을 해서 하나님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주시는 축복이 아니라 벌써 천지를 만드시기도 전에 그 아름답게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 거하게 하셔서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실 당신의 자녀로 택하신 축복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이 은혜를 우리가 아는 순간 이 온 세상의 아름다움이 달리 보이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 당에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왜 인간을 여섯째 날에 창조하셨습니까? 그것은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이미 모든 세상이 준비되어 있기를 하나님은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다스릴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놓으시고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온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마지막 창조하실 인간을 염두에 두고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창조의 놀라운 계획이 아담을 위한 것이었을 뿐문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실 때에 이미 나를 구원하셔서 그 하나님의 땅에 살 것을 계획하시고 창조하셨고 그 풍성한 땅에 거하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은혜입니다. 우리가 지금 죄에 오염되어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면 하나님을 뵐수도 없지만 아직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아니 우리가 창조되던 그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인 신령한 하늘의 복을 우리가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온전히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기뻐하고 찬양할 수 없다면 찬양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입술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훈련하고 마치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속이자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그러할 수 없을 때에라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면서 나의 행동이 그렇게 하나님의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