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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2007.07.29 01:51

폭우 조회 수:560 추천:31

에스겔 24장 15절~24절

24:1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4:16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24:17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24:18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고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기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
24:19 백성이 내게 이르되 네가 행하는 이 일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되는지 너는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므로
24: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4:21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둔 자녀를 칼에 엎드러지게 할지라
24:22 너희가 에스겔의 행한 바와 같이 행하여 입술을 가리우지 아니하며 사람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며
24:23 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채 발에 신을 신은 채로 두고 슬퍼하지도 아니하며 울지도 아니하되 죄악 중에 쇠패하여 피차 바라보고 탄식하리라
24:24 이와 같이 에스겔이 너희에게 표징이 되리니 그가 행한대로 너희가 다 행할지라 이 일이 이루면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이번 주 내내도록 저에게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나에게 또는 한국교회와 온 세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말씀을 하나님이 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기도하면서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미 에스겔서를 한번 강해해본 경험이 제게 있었지만 저에게 그렇게 강력하게 각인되지 않았던 말씀이었고 그저 이 사태들을 보면서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펼쳐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오늘의 본문을 보게 하셨습니다.
물론 선지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야기 하려고 했지만 오늘의 본문을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떤 생각들을 하고 계십니까?
인터넷과 신문 지상을 덮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으시면서 과연 우리는 어떤 생각들을 할 수 있습니까? 본문을 읽기전에 저는 두가지 분명한 전제를 묵상했었습니다.
그중 하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통 가운데 슬픔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이를 연결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이미 어버이날 나누었던 것이기 때문에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이고 이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우리들에게 향한 마음일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당신이 지으신 인간들을 향하신 마음인 것입니다.


찬양앨범 “또 하나님의 열매를 바라시며”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찬양입니다.
저는 설교도중에 찬양하는 것을 한번도 해본 적이 벗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찬양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 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그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녀로 이 땅을 살아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의 목표이며 또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고통 가운데 슬픔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이를 연결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기전에 목사님들이 하시는 축복기도가 있습니다. 저도 역시 예배를 마치면서 축도로 끝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 축도의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저는 늘 이 구절 가운데 성령의 교통하심이라는 구절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의미를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그 뜻이 정확히 무엇을 우리에게 축복하시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분명하게 그 뜻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성령의 교통하심은 성령님을 소유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으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것이고 이 하나되게 하심의 축복을 온 교회에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낭가서 이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로 묶으시되 하나님의 마음으로 묶으신 다는 것입니다.


NIV는 이구절을 “and the fellowship of the Holy Spirit be with you all. ”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의미가 organize로 다가왔습니다.
즉 성령님은 우리를 연합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하나로 묶으시는 일을 하신 다는 것입니다.


작금의 사태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분명히 온 세계의 교회들을 묶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나아가 온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한민족 교회들을 하나로 묶으시기를 원합니다. 무엇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묶으시기를 원하시는가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마음으로 묶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계는 분명하게 두 개의 큰 힘이 있습니다. 기독교로 대변되는 서방의 세계와 이슬람으로 대변되는 동방의 세계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온 세계를 향하여 서진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이스라엘에서 유럽을 거처 북미와 미주로 그리고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을 거처 이제 다시 서진해서 이슬람의 문화권인 중동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반대로 인간의 반역의 역사는 인간들을 동쪽으로 움직이게 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 에덴 동편으로 쫒겨났고 가인이 범죄함으로 그 동편으로 움직이며 유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창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창 4: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그 반역의 인간들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실 때에 버려두신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대표되어지고 이들이 지금의 중동의 민족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동진해서 이슬람을 중동과 온 세계를 향해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작위적인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세상에는 이 두세력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복음을 받은 많은 민족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지 못하였기에 그 복음의 확장은 어느정도 정체되었고 또 그 복음이 흘러간 국가에서도 교회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차제에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시고 또 격려하셔서 하나님의 복음의 사역을 완성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작은 나라 한국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시고 온 세계의 한국인들 교회들을 들어서 세우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물론 선교의 방법이 어떠해야 하는지 또 다른 민족과 종교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는 아직도 우리가 바르게 하고 세워야할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번 일들을 통해서 한국교회가 바른 선교의 방법을 배우게 하실 것이고 또 나아가 세계에 하나님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민족들에게 구원을 전하실 것입니다.


모슬렘은 기독교가 들어가기 제일 어려운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복음이 제일 피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복음에 소외되어 신음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향해서 아시아의 작은 나라이지만 아픔과 고통의 의미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라 한국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 일을 실행하시기 가지 많은 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1907년 평양에 부흥을 허락하시고도 100년을 기다리셔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실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다급한 요청을 우리에게 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일에 사용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떻게 보면 매우 당황스러운 본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이전에 이미 바벨론에 포로되어져 왔던 한 사람 에스겔을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로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하나님 앞에 회복되어지기를 요청하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씁니다. 제사장 가문의 사람이었던 에스겔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 아내느 ㄴ어저면 이국 땅에서 오롭게 외치는 선지자의 유일한 격려자였고 위로자 였을 것입니다.


에스겔의 사역을 보면 참으로 외롭고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첫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이야기해야 했고 그의 입은 구데 다물어져야만 했습니다. 온 몸으로 여러 가지 기행을 통해서 비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굶어 죽어갈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하면서 박한 음식으로 연명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경고하게 하셧습니다. 그런 에스겔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바로 그의 젊은 아내 였을 것입니다. 30이 조금 넘은 에스겔에게 어쩌면 20대였을 아름다운 아내를 허락하시고 그의 사역길에 동반자를 삼아 주셧씁니다. 그런 아내를 성경은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단 두 번만 언급된 이 아내를 하나님은 언급하시는 그 순간 거두어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자기의 외로운 사역 길에 동반자였고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아무도 자기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그 때에 여전히 곁에서 자기를 지켜주던 아내를 하나님이 데려가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신 후에 그는 하루가 지나기 전에 아내를 잃었습니다.
아내와 마지막을 함꼐 할 수 있는 여유도 하나님은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이스라엘을 향한 경고를 여전히 하게 하시다가 저녁이 되어 그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에스겔에게 이 사건이 얼마나 비통하며 괴로운 일이었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에스겔에게 그 아내를 애도하도록 허락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일상적으로 너무도 정상적으로 지내고 있기를 요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에스겔에게 묻습니다.
너의 아내가 죽었음에도 네가 그렇게 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24:19 백성이 내게 이르되 네가 행하는 이 일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되는지 너는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므로

이에 에스겔은 입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그 의미는 너무도 단순합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내 나의 눈에 기뻐하는 사람을 데려 가신 것처럼 너희의 기뻐하는 것을 하나님이 거두어 가실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도 너희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긍휼은 너희의 바라는 대로 너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24장을 시작하면서 부어지는 말씀 처럼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있는 환상 이후에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의 가장 소중한 땅 그 성소가 이제 무너지고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회복이 이제는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곳에 조금 더 거하면 돌아갈 것이라고 여겼던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 없어지고 그들을 멸망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징계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마음을 살펴보아서 우리늬 믿음을 점검하기를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 가지고 나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기를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아프카니스탄에 억류되어진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는 동일한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윌를 위해 죽이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신실한 종 배형규 목사님을 데려 가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던 많은 이들을 데려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소중한 것을 잃는 슬픔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를 요청하십니다.


우리는 이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민족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시면서 살리기를 원하셨던 온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나는 구원 받았으므로 이 땅에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 것에 집중하는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너의 사랑하는 아들 배형규목사를 내가 데려간다 그를 잃은 슬픔으로 나의 마음을 깨닫기를 원한다. 너희가 아프카니스탄에 억류된 가족들을 기억하면서 고통하고 있는 마음처럼 여전히 아프카니스탄에서 복음 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기억해라.
그들도 나의 사랑하는 여혼들이다. 지금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사단의 세력 아래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시면서 알수 없는 탄식으로 심음하고 계신 성령의 마음을 기억해라 우리가 그 마음을 공유하고 그 성령님의 마음을 나누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소중한 영혼들을 위한 일들을 시작하기를 하나님은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그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 우리들이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 바로 온 세계의 하나님의 사랑하는 영혼들 그러나 하나님을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혈육이 나뉘고 헤어지는 슬픔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도처에 나누어진 민족으로 아픔을 알고 슬픔을 나는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일본에 있는 제일 동포들이 당하는 고통을 통해서 고통을 가한 일본을 용서하게 하시고 그 용서를 인해서 회개가 일어나며 그 회개가 선교의 불길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남과 북으로 나뉜 우리들을 모으셔서 서로의 마음으로 한민족 뿐 아니라 중국과 중동 그리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를 요청하십니다. 동과 서 흑과 백의 중간에서 다리가 될 수 있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세계를 하나님의 복음으로 연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를 통해서 나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안타까움에 동참하시지 않으시렵니까?
저 신음 가운데 고통하는 많은 이들을 기억하면서 우리 가운데 내재된 아픔으로 그들을 품어 안고 함께 기도하지 않으시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계힉입니다.
지금 이 세계에 흩어진 한국교회를 모으시고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다시금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그 성령을 통해 우리를 묶으시고 그 묶으시는 가운데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아가기를 소망하시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바로 지금이 하나님의 때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불같이 온 세계를 향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저 10/40의 창에 있는 영혼들을 향해서 달려가기를 요청하시는 하나님의 시급한 요청에 응답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