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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 1편

2008.03.08 01:28

폭우 조회 수:540 추천:13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1: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1: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 서사 시편을 시작하면서
"복있는 사람"에 대하여 노래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복'으로 쓰여진 히브리어는 '아솨르'이다.
히브리어에는 '복'으로 쓰이는 단어가 둘 있는데
그중 많이 쓰이는 것이 하나님이 누군가를 축복할 대 쓰이는 '바라크'이다.
이 복은 인간의 어떠함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선하심으로
내려주시는 전적인 복을 이야기 할 때 사용되어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복'이 바로 오늘 쓰여지고 있는 '아솨르'이다.
이것은 주로 시가서에서만 쓰여지고 있는데
이 '아솨르'는 대개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안에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 대한 보상으로 내리는 복에 대하여
인간이 고백 혹은 기원하는 형식으로 사용되었다

즉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고 있는 복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전제로 하고 있는  조건이 있는 복인 것이다.


왜 시편 기자는 시편을 시작하는 이 때에 이러한 복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일까?
이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에 대한 기준이며 자격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전제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한 자가 누리는 복을 노래함으로
구원받은 인간의 축복을 함께 찬양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축복은 인간의 고백 가운데 찬양되는 복이기에
하나님과의 교제 없이 그분의 구원의 감격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노래하고 고백할 수 없는 것이다.


시편 1편은 구원의 감격을 경험한 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에 감격하여
그분의 명하신 말씀을 신실히 지킴으로 누리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는 의인은
결코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악인) 처럼
자기의 가치관과 자기 꾀로 살아가거나 그 길에 서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더욱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그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을 인도할 때
그 하나님의 인도 아래 있는 성도의 삶이 어찌 복되지 않겠는가?
그의 인생이 어찌 물가에 심기운 나무 처럼 견고하지 않겠는가?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않는 이들이
자기의 꾀와 가치를 좇아 가다가 흔들리는 불확실함과 비교 될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율법은 말 그대로 '토라'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지키기를 애쓰는 것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살력 애스는 것일테며
조금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된 자리에 서기 위하려
하나님과 함께 친밀히 교제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삶이다.
그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할 뿐만 아니라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바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인 것이다.

묵상은 행함 없이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머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된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 그 자녀의 모임에 들것이고
이 땅에서는 구원 받은 성도들의 연합인 교회에 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응답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은 망할 것이다. 그들의 인생에서 하나님을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법은 없다.
그의 삶으로 그의 지식으로 혹은 가진 의로움으로도
결코 하나님의 자녀로 그 백성으로 세워질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 말씀이 주시는 삶을 삶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 백성의 자리에 설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 예수님의 구속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를 믿으라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의 삶을 따라 살라고 요구하신다.
이 음성에 반응 하는 것이 바로 복된 삶의 첫 걸음인 것이다.

 

우리는 자주 '복'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오늘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우리가 복있는 사람이기를 요구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삶을 살라고 노래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기대어 사는 인생이 얼마나 행복하며
축복의 삶인지를 그리고 그 결국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를 노래한다.


우리의 삶이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의 인생이 하나님과 함께 있으므로 복되도다 노래하기를
이 세상의 기준은 나를 축복의 자리에 세우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를 축복의 자리에 세우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기뻐할 수 있기를 소원하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는 나의 삶이 말씀으로 변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