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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2008.05.03 23:51

폭우 조회 수:509 추천:37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이사야 58장 3절~9절 상반절까지

58:3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58: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58:5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58: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58: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샬롬!
오늘도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가까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힘들 때에는 가가이서 위로해 주시면 좋겠고 나의 어려운 상황에서는 나의 그런 힘겨운 일들을 빨리 와서 해결해 주시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참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는 듯 생각되어지고 나의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나는 홀로인 것 같아 보입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은 나와는 덜 친하시고 저분과는 굉장히 친한 것 같아 보여서 섭섭할 때도 있습니다. 아니 꼭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가끔은 내 옆에 있는 친구나 혹은 부모님처럼 가까이 계시고 친밀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우리의 바램입니다.
얼마 전엔가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또 요즘은 “긍정의 힘”이란 책이 여러 버전으로 나와서 우리에게 읽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한분이시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들이 이야기 하는 하나님은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성경에서 살펴보는 하나님과 전혀 다른 분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섬길 것을 요구하시면서 처음 경계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님 이외에는 이 세상에 신이 없으므로 그 하나님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거나 망령되이 이름을 부르지도 말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을 무엇으로든지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고 난 이후에는 우리의 죄성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우리의 욕심과 죄의 마음 위에서 하나님도 바라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바로 알 수 있고 그 앞에 요구되어지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고 계시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하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해서 애써 금식하기를 즐겨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와 금식을 두고 하나님께서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그들에게 나의 백성이라 부르시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라로 지키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단 한 가지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들도 거룩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으로 그들의 대적을 무찔러 주실 것이며 그들의 일용할 것을 먹일 것이며 그들의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전에 와서 부르짖으면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하나님의 응답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주 금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되어가는 때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으니까 얼마나 자주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겠습니까? 그들은 지금 그들에게 닥친 위기 상황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무너지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우리만은 지켜 주실 것을 기도하는 것이 바로 이들이 했던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전혀 응답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58:3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그들은 안타까운 외침을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금식하며 간절히 하나님을 찾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알아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금식하고 재를 뿌리며 참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회개를 듣지 않으시고 그들의 돌이킴을 보지않으신다는 것입니다.
5절이하에 보면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재와 굵은 베를 깔고 펴며 그 위에서 금식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죄가 잘못 되었음을 고백하고 우리가 가는 이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회개하는 이들의 회개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더구나 그들이 금식하며 그들의 죄를 돌이키고 있음에야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외치는 회개를 듣고 그들의 회개가 하나님의 기뻐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너무도 잘아는 이 회개의 기도 뒤에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6: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仁愛)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6: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들은 회개 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잘못을 바로 알아서 하는 회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의 이익을 위해 잠간 하고 마는 회개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나의 작은 실수를 그저 고개 한번 숙이는 것으로 무마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아보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아침 안개와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쓰기를 요구하십니다.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옷을 찢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찢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겉으로는 회개 하지만 우리의 마음으로는 전혀 하나님을 향해 돌아가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의 돌이킴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확한 힌트를 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지, 또 우리가 하나님께 돌이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만 하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 친밀하게 우리의 곁에서 우리와 동행하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58: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이와 같기만 하다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생활하는 것이 기쁘며 또한 즐겁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아픔을 치료하시기를 급속하게 하시고 나의 앞 뒤로 하나님의 영광과 의가 동행하며 하나님을 부르기만 해도 하나님은 그 때마다 응답하신다고 하시니 참 우리가 꿈에도 그리는 신앙 생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죽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나 누리는 삶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이 삶을 누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하루 하루가 이러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시고 하나님의 응답을 매일 경험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의 앞뒤를 호위하는 삶 말입니다.

그럼 그 비결을 살펴보아야 겠지요.
저하고 얼마간 신앙생활을 하시고 제 설교를 익숙하게 들어오신 분들은 이상하게 이렇게 말을 해도 그리 표정이 기뻐지지 않으시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이렇게 실컷 축복의 삶을 소개한다고 말해놓고는 늘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주시는 축복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류의 축복이 아니라고 말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전제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이 있을 뿐입니다.
6절과 7절을 한번 같이 봉독하시겠습니다.
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58: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언젠가 한번 나눈 말씀이어서 이미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비결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시는 것으로 만족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살인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이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일용할 것을 먹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식하는 이유는 너무도 단순합니다.
내가 위기 상황에 있고 나의 기도 제목이 너무도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의 그 간절함을 알리는 것이 바로 금식입니다. 하나님도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간절함에 어울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금식은 하지만 여전히 오락을 찾아 얻고 온갖 일을 시킨다고 말씀하십니다.
금식은 하지만 여전히 다투고 주먹질하면서 “우리의 금식을 들어주십시오.”라고 외친다는 것입니다.
58:3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58: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58:5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다시 말하면 그들이 금식은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는 일상의 생활은 여전히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약한 이들을 압제하고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 심지어 연약한 친지들을 피해 집 안으로 숨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기는 하지만 지금 내 삶을 유지하는 것은 그대로 놓아 두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설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요구하시고 또 나아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이웃 사랑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우리의 일용할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기도하기느 ㄴ하지만 우리의 삶은 한도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셔도 무방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금식을 보실 때에 우리가 재를 뒤집어쓰고 있는지 밥을 하나도 먹지 않고 있는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는지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때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금식하기를 원한다면 지금 나의 삶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 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와 언약하신 그 하나님의 언약은 잊은 채로 내 생각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기를 “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을 지키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밥을 먹지 않고 스스로를 어려움 가운데 처해 놓으면서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어리석은 길을 가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이 이 세상이 요구하는 것이고 우상들을 섬기는 이 세상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굶거나 희생을 바치거나 무엇인가 적극적인 우리 쪽에서의 행동이 동반되면 하나님도 우리를 향해서 주목하실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혹시 엘리야와 싸우던 바알선지자들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그들의 신이 응답하지 않으니까 그들의 몸을 헤하면서 까지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상이며 우리가 속고 있는 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나의 말을 듣고 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그 하나님과 친밀하게 사는 것은 먼저 나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나의 생활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에 두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58: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58: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58: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니리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58: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58:14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마지막으로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안식일을 바로 지켜 하나님의 성일로 존귀히 여길 것을 권면합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인정하고 그 앞에 우리의 삶을 내려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자적으로 무슨 뜻이냐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이 완성하시고 안식하시는 그 날을 기뻐하고 사사로이 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삶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겸손한 표시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스스로 인정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친밀히 동행하시는 삶을 맛볼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두고서 내 스스로의 생각에 빠져서 내 마음대로 신앙하고 기도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또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기도를 어떤 내용으로 할 것인가 이전에 내가 기도하는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내 마음에 원하는 대로 내 생각대로 나의 삶을 계획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하고 있다면 아무리 우리가 금식 한 다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삶을 맞추기를 원하고 나의 마음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곳에 두기를 원하면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온 세상을 변화시킬 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보시고 나를 자비의 손길로 용서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서로의 삶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