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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찾으시는 한 사람

2006.12.04 16:11

폭우 조회 수:481 추천:33

하나님의 한사람

예레미야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마태복음 5:17-24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영화 “황산벌” 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삼국시대 말기에 백제가 멸망을 향해 치달아가는 시기...
나당 연합군에 맞서서 스러져 가는 백제가 힘겨운 전쟁을 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린 영화였습니다. 당나라와 신라 사이에 끼어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진 백제의 의자왕은 이제 마지막 전쟁을 해야할 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황산벌에서 신라군을 저지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는 것이지요. 물론 썩어빠진 정치권들은 이미 질 것을 염려하여 다 뒤로 빠진 상태 나라를 위해 전쟁에 나설 장수조차 없는 때였습니다.
의자왕은 계백장군을 부릅니다.
처량한 왕의 위엄 앞에 계백장군이 무릎을 꿇자 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계백아! 니가 거시기 좀 해야 쓰겄다”

나라를 위해 전쟁을 할 마지막 사람, 왕으로 모두가 도망가고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는 그때에 단 한사람 을 불러 나라의 미래를 맡기는 장면, 물론 둘 다 이 전쟁이 승리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은 의자왕에게 “계백”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가운데서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하시고
이 어두운 세상을 지키고 복음을 맡기실 한 사람을 찾을 때에
과연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부르셔서 일을 맡기실까요?

그때에 하나님이 나를 찾아 오셔서
“요환아! 니가 거시기 쫌 해야 쓰것다”고 말하실 수 있으실 까요?
아니 우리를 찾아 오셔서 그렇게 말씀 하실 때에 나는 “예” 하고 대답할 수는 있을까요?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듣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쪽 유다왕국의 마지막 선왕이었던
요시야왕 치세중에 선지자 활동을 시작하여서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기까지 선지자 활동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선포는 철저하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임할 것인지를 외치는 것에 집중되고 있다.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외치지만
변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바라봐야만 했고 그 멸망을 알려야만 했던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인 것이다.

적어도 지금 5장의 외침을 듣는 이스라엘은 아마도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을 경험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일 것이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기억될만한 므낫세왕의 치세로 이스라엘은 이전의 히스기야의 모든 공적을 잃고 만다.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개혁도 온데간데없어지고 온 땅과 백성들은 음란히 우상을 섬기고 이방을 믿고 따르는 나라가 되고 만 것이다. 그의 아들 아몬은 아버지 므낫세의 길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 악한 길을 더욱 가속시켜 하나님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만다. 그리고 어린 나이의 요시야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요시야는 왕위에 오른지 8년만인 16세때부터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그후 통치 12년 부터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산당과 우상을 제거하는 종교개혁을 시작하였다.

성경은 요시야왕을 다윗왕 이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 기록하고 있고 이때의 개혁을 기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강력한 회개와 돌이킴이 있었고 온 힘을 다하여 나라를 하나님 앞에 바른 나라로 개혁하기에 힘썼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함을 본다.

여전히 개혁의 여파는 겉으로만 회개하는 백성들 사이를 떠돌아 다녔고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도 백성의 마음에 온전한 순종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성전을 개혁되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제사가 드려지는듯했으나 여전히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온전한 백성을 찾지 못하고 계신 것이었다. 그들의 외양이 변했을찌라도 너무나 얄팍한 개혁은 그들의 깊은 속에 있는 악과 죄를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우상을 섬기듯이 하나님을 섬기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따르고 믿던 것들에 그저 하나님 한분이 추가되는 것과 같은 시기를 보내고 만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요시야 왕이 죽음으로 멸망을 향해 돌진하는 유다의 마지막을 막을 아무런 장애물도 없어져 버리고 만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에게 말한다.
나의 말에 순종하는 이가 하나라도 있다면 내가 이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그러나 그 단 한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에 유다는 멸망하고 만다. 성경은 참으로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이 예루사렘에서 하나님의 도성 하나님의 전이 있는 이 성에서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 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심판을 멈추시겠다고........

이것이 당시의 예루살렘의 형편이고 지금 우리의 형편인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이 땅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단 한 사람을 찾으신다면 과연 나는 그 한사람으로 설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고 그 말씀을 따르기 위하여 순종하기 위하여 애쓰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지금 이 땅을 보시면서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하나를 찾으시기를 원하신다. 이 캠퍼스 안에서도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단 한사람을 찾으시기를 원하신다. 수많은 무리 중에 내가 끼어서 그저 중간 쯤에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니가 갈거냐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오늘 두 번째 성경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중 한 부분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 하신다.

예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적어도 바리세인들보다 더 나은 의를 가진 사람들이어야 하고 그 말씀을 따라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사람들일 것이다. 앞에 나오는 팔복에 해당하는 사람들일 것이며 그 엄격한 기준으로 제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슴에 순종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완전히 산상수훈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의 정답이며 한계인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상 많은 이들이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순종하기 위해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이 문제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였고 생명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초래해 왔는지요.
우리는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따를 수 없는 존재들임을 자각하고 맙니다.

예수님이 나아야 한다고 요구하셨던 바리세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적어도 그들은 613가지가 넘는 율법이 해야 할 것248개 계명과 하지 말아야 할 것365개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이 어니었던가? 적어도 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위한 39개의 규정을 지키며 말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예수님은 적어도 그들보다는 의로와야 한다고 그들이 지키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더 온전하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닮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키는 율법을 더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지는 의로움 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이 가지는 의롭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고 죄인이라는 고백으로
역설적이게도 의롭다함을 입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보다 의롭게 산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죄사함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조금 더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위해서
자기의 온 마음을 다하는 바리새인들보다도 더 신실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은 그저 가르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에게 말씀그대로 요구하신 예수님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원하시는 한 사람이 그저 이 땅에서 원하는 욕구와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고 만들어 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이고 자기가 도무지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 지킬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더 온전히 의지할 수 있어지는 것이다. 도무지 다을 수 없는 곳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얻기 위해 그곳에 다을 수 있는 사람의 도움을 청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교만하지도 스스로 부하지도 못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요구를 우리는 들어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어야 하고 애통하는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온유한 사람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기꺼이 핍박을 받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의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렇게 만드시는 은혜를 인하여 감격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사람이 말이다.

필립얀시는 팔복을 이해하는 단초로 두 러시아의 문호를 예로든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부스키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재산을 나누어주고
자기의 하인들을 다 해방시켜 주었을뿐 아니라
자기가 가진 모든 유익드을 더리고 욕망을 이기기위해 고뇌했던 사람은
바로 톨스토이였다.
적어도 그는 자기의 그러한 노력이 매번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을 평생 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렇게 실패하는 자신으로 인해 고민하고 고통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과 삶의 태도는 자기의 작품에 그대로 녹아있다.

반면 엉망으로 사는 사람이었던 도스토예부스키는
자기의 잘못된 삶의 댓가로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가
그 사형집행 바로전에 러시아의 짜르에의해 사면되어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10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성경을 읽게되었고 자기의 생명이 구원을 얻었음에 대한 은혜를 경험한다.
이후 그의 저작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놀라운 고백들이 나오는 것을 본다.

이 두사람의 삶의 여정은 전혀 달았지만
우리는 이 두사람을 통해서 적어도 그리스도인의 삶의 두 관점을 볼 수 있다.

나의 모든 노력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열심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에 기대지 않고는 실패할 수 밖에 없음과
그런 나를 구원하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 말이다.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찾으시는 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거니와
나아가 나의 부족에 대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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