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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5 / 1장3-6절

2007.06.07 10:12

폭우 조회 수:488 추천:18

에베소서 강해5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고 그 복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하여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라고 에베소서 1장4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던 그 흠이 없는 상태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셨고 나아가 더 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여 거룩하게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 사는 우리를 선택하시어서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 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았는지에 대하여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뿐 아니라 온 세상이 다 구원을 얻기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잔인한 선택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은 당신의 선하심을 우리에게 표현하시는 계획입니다. 이미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계획을 가지셨다는 것이지 우리 중 누구에게 그 선택되지 못하여 죽을 것을 계획하셨다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배타적 선택이 아니라 온 인류를 향하신 사랑의 선택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되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심으로 그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구원은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대가를 치르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떠하신가에 대한 이해를 줄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신분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시키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소극적으로 우리 가운데 있는 흠과 죄를 제거하시기로 하셨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를 수 있도록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이것에 대한 응답은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응답하여 그 구원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 받은 백성의 자리로 옮기어 지는 것입니다. 물론 그 믿음조차 하나님의 선물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또한 적극적으로 우리의 자유의지를 따라 선택하는 우리의 믿음임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 이 자리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부터 떠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존재에는 이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것이 죄로 인하여 오염되었고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을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존재의 걸림돌이 되는 담을 허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냥 그 구원의 자리로 옮기어 진 것은 아닌 것입니다. 담은 헐어졌을 지라도 우리가 걸음을 옮겨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마음을 무시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은혜를 베푸실 뿐이지 그 은혜를 강제로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조정하시지는 않습니다.
철저하게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에 반응하시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바울은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는데 그 택하심으로 우리를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예정해 놓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우리가 구원 받음으로 아들이 된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우리가 아들이 되도록 하나님의 예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택과 관련된 예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하신 성품을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로 삼으셨습니다.
이 사실은 그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거나 그 거룩하심 가운데 하나님은 기뻐하는 존재가 되는 것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아들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양자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과 갈라디아서 4장은 이 하나님의 자녀 됨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초의 아담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회복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신분이 변화되어진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들이 되는 것은 또한 이미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는 일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실 때에 이미 우리에게 아들의 자리를 주시기 위한 예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거룩에 이르지는 못하였습니다. 아직 흠은 없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르러 하나님과 연합하는 존재는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자유의지가 있었으나 그 자유의지를 하나님을 부인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아담을 통해서 그 에덴동산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에 이르러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실패하였고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 경륜의 비밀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실 예정을 하셨고 그 예정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며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나 모든 인간이 이 권세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인하여 그 이름은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단순히 아담으로의 회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가진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를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법정적인 선언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양자 삼으셨다는 것이고 이것은 이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놓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 안에 우리가 거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연합하여 거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려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며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늘 우리에게 생기는 고민은 이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 안에 연합하여 거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이렇게 부르짖지 않았습니까?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여전히 우리 가운데 악이 죄의 법 아래로 우리를 끌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끝이 아니기에 우리는 찬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내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 아래 거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죄와 하나님의 거룩함 사이에서 싸우며 고통 한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이끄실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사람은 우리의 육체가 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 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악된 육체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죄악된 육체 가운데 거하는 동안 우리에게 이 싸움은 지속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가 썩어지고 부활 하신 예수님을 따라 유리도 하나님의 허락하신 온전한 육체로 부호라 하는 그 때에 우리는 비로소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를 누릴 것입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 실패도 없을 것이고 죄악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자녀됨의 자리를 예정하셨고 그 자리로 우리를 선택하여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크고 비밀하심이여! 라고 외칠 만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또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여서 방종하면 않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구원 받았고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지금은 실패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자녀 그 자리에 이를 것이라고 믿는 믿음은 가상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면 우리는 분명히 두 가지를 얻습니다.
그 첫 번째는 자녀로써 누리는 권세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축복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아들로써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이 땅에서 살아갈 동안에도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그 자녀로 권세를 누리며 살아 갈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죄가 우리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우리의 생명을 헤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살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아들이 되었다면 마땅히 아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왕이 길을 지나가다가 어떤 거지 아이를 보고 그를 불쌍히 여겨서 불러 자기 궁으로 데리고 와서는 그 아이를 양자로 삼아 아들로 입적시켰습니다. 거지는 하루 아침에 왕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옷과 먹을 것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녁이 되어서는 왕에게 와서는 인사를 하고 왕궁을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왜 나가는지” 물었습니다. 왕자가 된 거지는 말했습니다. 잠 자러 간다는 것입니다. 아직 왕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왕궁에 거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힘들어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아니면 왕에서 잘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유였건 간에 왕은 그를 불러 왕자의 방을 주었을 것이고 왕자의 삶을 살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은 그런 아들을 보면서 슬펐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향해 같은 마음을 품으십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 사람의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를 하나님은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다시 불러 그 자리에 합당하기가지 만드실 것입니다. 때로는 엄한 훈육 선생님을 붙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과 이해를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아들의 자리가 아니라 이전에 살던 죄악의 자리를 향해 달려간다면 우리를 양자 삼으신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수도 없음이라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의 영을 받았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이성으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함으로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결단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으로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과 친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은 그 아버지를 사랑할 때 가능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에게 예배하기를 원하신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예배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구약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 행하신 은혜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예배입니다.
성경은 자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설정해서 우리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모습은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 하나님의 사랑은 절정에 이릅니다.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모습으로 돌아오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먼 곳에서 알아보고 달려가 목에 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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