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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꺾어서라도

2007.08.12 01:54

폭우 조회 수:482 추천:25

뼈를 꺾어서라도

창세기 32장 24절~32절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32: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32:29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32:32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할렐루야!
오늘도 여전히 살아계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인사하기를 원합니다. “저와 함께 예배드릴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와 함께 하나님의 원하시는 기도를 함께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야곱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만드시기를 원하시는지를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또 우리가 너무도 잘아는 야곱의 얍복강가에서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기도는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지금 이 시대를 향한 우리의 기도제목을 설정하고 이를 통하여 우리가 기도할 제목을 얻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야곱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 그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하게 되는 은혜를 얻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원했고 인가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였던 야곱이 그 꿈을 성취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사님들이 오늘 본문을 놓고 “기도”에 대하여 설교하고 또 기도의 간절함이나 끊임없이 전투적으로 하나님께 메어 달리는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여러분과 오늘 본문을 통해 또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말씀 제목 처럼 “우리의 뼈를 꺾어서라도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가르치셔서 하나님의 사람 만드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뼈를 꺾어서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묵상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은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래서 박영선목사님은 이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시는 축복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택한 백성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지금도 부지런히 일하시고 열심히 우리를 가르치시며 바로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고 온 민족의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이며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통해서 원수의 성문의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이어가십니다.
원수 앞에서 승리를 예견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삭의 아들인 야곱과 에서를 통해서도 그 약속을 이어가십니다. 그러나 이 두 형제가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싸우고, 태어나서도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들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장자권을 두고 이삭과 리브가도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는 실로 가문의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십니다. 그래서 외삼촌집으로 도망가는 광야에서 야곱은 하늘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천사들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네 자손이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것이고, 이를 위해 하나님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창28:13-15)
어떻게 보면 야곱의 인생은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는 인생이었지만 그 인생의 행로를 보면 너무도 인간적인 욕심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없는 사람 처럼 보여집니다.
야곱은 이 언약을 자기가 이루려고 속임수와 열심으로 평생을 삽니다. 피곤한 삶이지요. 실제로 일과 아내들 때문에 피곤하였습니다. 밤늦게까지 외삼촌 라반의 양떼를 돌보아야 하고,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면 두 아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야곱의 두 아내(레아와 라헬)는 서로 남편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심으로 인해 아들 11명을 낳았습니다. 몸종까지 동원해서. 이것은 싸움입니다. 아들의 이름들에는 그러한 경쟁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여기에는 야곱의 탐욕도 담겨있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이제 외삼촌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 야곱의 일행 앞에 천사들(마하나님, 하나님의 군대)이 나타나는데, 옛날 벧엘에서 나타났던 그 천사들이 확실합니다. 왜 나타났을까요? 하나님의 군대는 하나님의 적들과 싸우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지요. 야곱은 이 하나님의 적이 에서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적은 야곱 자신 이였습니다!
야곱은 쫓겨나듯이 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옵니다. 그러나 점점 고향을 향해 다가갈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기쁨보다 불안이 가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전력 때문입니다. 형을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챈 것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자기의 종들을 보내어 형의 동향을 살핍니다. 그러나 형 에서는 오히려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야곱을 만나러 옵니다.
에서가 자신을 죽이러 온다는 소식을 접한 야곱은 재산과 자식들을 나누어 얍복강을 건너게 한 후 자신은 홀로 남았고 밤은 깊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낯선 사람이 야곱에게 달려들어 싸움을 하면서 자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야곱은 결사적으로 그 사람과 싸웠고 그 사람은 야곱을 힘으로 이기지 못함을 알고 날이 새려고 하여 떠나고자 합니다.
야곱은 이때까지도 자기의 지식과 열심을 가지고 그 축복을 지키고자 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가 힘쓰고 애써서 이룬 재산과 자식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야곱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머리를 의지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 재물과 자식들을 나눕니다.
두 떼로 나눈 가축과 재산은 혹여 라도 형 에서가 치면 그중 하나라도 남기겠다는 계산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자기의 자식과 아내를 또 나누어 먼저 떠나보냅니다. 그리고 홀로 얍복강에 남았습니다.
그 때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났고 야곱은 그와 더불어 씨름합니다.
이 사람의 정체는 누구일까요? 아마도 홀로 나반의 집으로 향하던 야곱에게 나타나 축복을 보여주시던 하나님의 천사였을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천사가 지금 야곱에게 나타나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자신을 축복하기 위해서 나타났던 그 천사가 왜 지금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을까?’ 야곱의 생각이겠지요. 하나님의 군대는 하나님의 대적을 죽이는 군대인데 그 대적이 바로 야곱이고 그렇기에 이 천사는 야곱과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왜 축복의 사람 야곱이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그가 바로 자기의 힘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려고 하였고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인생을 개척하려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와 동행하고 그를 떠나지 않으마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야곱의 인생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를 의지하는 사람이엇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대적하여 그 야곱의 자아를 죽이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복의 근원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힘으로 살아가려는 그 자세, 살아남으려는 그 자세는 뱀의 후손 계통인 것이죠. 아벨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하여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희생을 통한 승리인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뱀의 후손과 어떻게 전쟁을 벌이시며 또 승리를 이끌어내시는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그 야곱의 힘의 근원지인 환도뼈를 쳐서 위골시키십니다. 이제 야곱은 힘없는 자가 되어서 평생을 살아가야 됩니다. 야곱은 자신의 상대가 지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죽음을 느꼈습니다. 야곱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합니다. 천사는 야곱을 살려주기는 하되 여자의 후손의 속성이 담긴 모습으로 살려주는데,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과거와 앞으로의 운명이라고 합니다. 이 운명 안에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과 기능이 담겨있습니다. 야곱은 이제 새로운 싸움꾼이 되어야 합니다.

얍복강 사건을 흔히들 야곱이 기도하여 축복을 받아내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기도하지 않았고 싸웠습니다. 호세아 12장 4절에 보면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다고 나옵니다. 천사와 싸운 것이 맞지요. 그런데, 이겼으면 기뻐하여야지 왜 웁니까? 여기서 간구하였다는 것은 살려달라고 빌었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이 대목에서 놀랐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았습니다. 내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겠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낮아지심, 희생도 나타납니다. 정말 놀라운 내용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복을 받는 것이라고,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복이 야곱을 소유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것만이 축복의 대상이고 야곱은 축복의 대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복을 드러내고 언약을 이루어내시겠다는 것이지요. 이제는 힘을 의지하려야 할 수 없는 야곱을 통해서 뱀의 후손을 이기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펼쳐집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합니다.
이것이 결코 기도의 열심히 해석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앞서본 호세야서를 통하여 그 일을 이스라엘의 욕심과 죄악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대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에서를 만나러 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의 죄를 해결하고 있지 못한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야곱의 자아를 깨뜨리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도 야곱은 이기기를 원했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자아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버리면 자기는 죽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께 말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제가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당신의 약속을 믿고 얼마나 열심히 살았으며 그 가운데 축복을 얻어 이제 살만하게 되었는데 다시 형의 군대를 통해서 죽게 만드신다면 너무 억울합니다. 이제 나를 살려 주십시오. 안 그러면 제가 당신을 떠나보낼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간절한 기도이고 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그런 간절함 때문에 그를 축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의 환도뼈를 치셔서 뼈를 꺾으십니다.
야곱의 기도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야곱은 자기의 환도뼈가 꺾이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바로 바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의 목숨을 하나님께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나의 고집과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조르고 그 약속을 찾아서 제시하면서 하나님을 압박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에 당신의 백성을 축복하겠다고 하셨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 나를 축복해 주세요. 안 그러면 제가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겠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죽든지 하나님이 나를 축보하시든지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해서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기만 하면 우리의 요구를 다 들어주십니까? 아니요 성경은 결코 기도에 대하여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전에 먼저 우리의 기도의 방향을 고치시는 하나님입니다.
야곱이 자기의 의지로 살아가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그의 뼈를 꺾어서라도 그의 삶의 방향을 트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기를 또 제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자기의 뼈를 꺾으시는 하나님을 마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의 인생의 방향을 조금 수정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아직도 변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드신 하나님이 이제 하나님만 의지하고 자기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만드셔서 형 에서를 만나게 하시고 목을 끌어안고 용서하게 하시는 경험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다시 자기의 생각과 지혜를 다라 행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 만나고 나서도 형을 먼저 돌려보내고 나중에 따라 가겠다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홀로 속곳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긴 시간 자기의 집을 짓고 자식을 기르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겜 까지 가서 그곳에서 가나안 사람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보면 그래서 세검에서의 사건이 나오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곳 에겜에서 다시 하나님의 치심을 받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딸 디나가 세겜에서 욕보임을 당하고 이를 인하여 그의 아들들이 잔인한 살육을 행하는 사건 이후에야 비로소 그가 마음을 정하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자기의 가정에 있는 우상을 제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보습이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끝까지 자기를 의지하는 인간의 약함과 악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열심.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어리석어서 여전히 우리의 계산과 생각을 놓지 못하고 하나님의 발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삶을 산다고 하여도 여전히 우리를 때려서라도 당신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싸워 이겼다는 승리의 이름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이름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생각으 ㄹ따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의 요구를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들어주셔야한다고 악을 쓰며 떼를 씁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응답되면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열심을 내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아직도 우리 스스로를 향하고 있을 때에 우리를 치셔서 우리의 기도 제목을 하나님의 방향을 바꾸어 놓으시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을 변화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이고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때에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상처입고 아파하는 것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과정일 것입니다.
요즘 토요일 새벽마다 함께 묵상하는 빌립보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앞에 신실하게 걸어가겠다고 다짐하는 바울의 고백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그 고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성화를 향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길을 향하여 바로 기도 할 수 있게 하시기를 하나님은 노력하십니다.

사랑하는 윈저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우리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과연 열심만 있는 기도입니까? 아니면 그 열심조차도 없는 기도 입니까? 우리의 지금의 자리를 점검할 수 잇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뜻을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뜻이 이 당 가운데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를 이스라엘로 세우셔서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그 구원의 도구로 사용되어지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지 않으시렵니까? 그럴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온 세상의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은 우리가 구원의 백성이 되고 그 복음의 전달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코 재물의 축복과 건강의 축복만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는 재물은 우리에게 축복 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건강을 허락하셔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다면 우리는 그 건강이 우리에게 축복 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돈 많은 사람도 많고 건강한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 하실 수 없어서 우리에게 재물과 건강을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목표를 세우고 그 뜻을 좆아 간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우리에게 재물과 건강 혹은 더한 것이라도 주실 줄 믿습니다. 야곱을 야곱 되게 하신 하나님 그의 나의 노년이 되었을 때에 신실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고백했던 야곱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강제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으시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의 기도 제목을 점검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듯 안에서 어떻게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지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맡은 사람으로 이 말세지말에 온 세계를 향하여 복음의 일꾼으로 예비하실 하나님의 군대, 하나님의 백성된 교회가 되지 않으시렵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세계를 향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일꾼으로 용사로 우리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우리를 훈련시키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오늘 집에 돌아가셔서 세계 지도를 펼쳐보시고 그 가운데 아직도 하나님의 복음이 얻어 신음하는 나라들을 살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중 하나를 마음에 품으시고 기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곳에 직접 가지 않아도 그곳에 우리의 물질을 보내거나 그곳에 거하는 선교사 한분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나라를 품고 그 나라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기를 소원하며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나라를 품고 기도하는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적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며 나아가 그 일을 이룰 비젼을 우리 마음에 넣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에게 무엇을 전하시렵니까?
자기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 것을 알려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들이 그 땅을 바라보며 기도하다가 그 땅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겠습니까? 오늘부터 우리의 기도를 점검하고 실행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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