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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가 말하였으니

2008.01.15 12:03

폭우 조회 수:492 추천: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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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6장 32-38절

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를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3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케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접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34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이던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이 될지라

35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36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38 제사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 떼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샬롬!

오늘은 청지기 주일입니다.

서로 함께 인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어제 남선교회 모임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올해 여러분들과 저의 삶이 또 저희 교회의 삶과 생활이 행복하기를 소원합니다. 우선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거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행복하기를 소원하고 나아가서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인해서 서로에게 풍성한 사랑을 나누어주고 또 함께 즐겁게 생활할 수 있기에 행복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청지기 주일입니다.

물론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청지기인 것을 고백하지만 함께 교회의 청지기를 세우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청지기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일꾼이고 그 일꾼의 맡은 바 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언 25장 13절 말씀에서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번 한해 우리 윈저사랑의교회가 또 윈저사랑의교회 모든 청지기들과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하는 얼음냉수와 같은 역할을 감당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에스겔이라는 사람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온 첫 포로자들 가운데 있었던 사람입니다. 포로로 잡혀 올 때에는 아직 이스라엘의 남은 남쪽 유다는 멸망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멸망으로 치달아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야말로 절망 가운데 포로지의 그발강가에 선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나타 나셨습니다.

에스겔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에스겔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선지자로써의 사명을 맡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가 에스겔의 나이 30세였습니다.

1:1 제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1:2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오년 그달 오일이라

1: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이미 그는 제사장 가문의 사람이었고 스스로의 정체성도 제사장의 직임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제사장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당한 사람이라는 것에서 같은 맥락에 있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들인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이렇게 포로되어져 온 상태에서 제사장의 자리와 선지자의 자리는 참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나이 삼십이라면 그가 이제 제사장으로 세워져야할 모든 교육을 마치고 이제 제사장의 반차에 들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런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고 그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는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제사하는 방법을 배우며 나아가 율법을 공부하는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제사장은 비록 포로지라 할지라도 많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자리였음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께 제사하는 역할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로 세워지는 것이었고 백성들은 제사장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율법적인 문제를 판결하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에 봉착할 때에 그 문제의 판결을 율법에 의거하여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혹 여러 부정한 지경에 이른 사람이 정결함을 얻으면 먼저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그로부터 정결하다는 확인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다시 편입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으로 자라온 에스겔을 하나님은 그의 직임을 감당할 나이 30에 선지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후로 긴 시간동안 포로지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급박한 소식들을 전하고 외치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키라”는 것이었고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이제 남은 그 이스라엘의 생명마저 하나님이 꺼 버리실 것이라는 급박한 진노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고 또 그 메시지를 전하는 에스겔을 싫어하고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다가 더욱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가 전하는 메시지 하나님의 말슴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 2장을 한번 찾아보시겠습니다.

2: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

2:4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2: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뭐라고요

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를 보내는 것은 그들이 너의 말을 듣고 돌이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 가운데 누가 있는줄 알게하시기 위해서?

예! 선지자가 있는줄 알게 하시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하실 일을 하셨다는 것을 위해서 선지자를 세우신 다는 것입니다. 마치 기대 없이 행하는 일과 같습니다.

한국에서 “내용증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 아시는 분도 있으실 것 같은데 이게 뭐냐하면 주로 어떤 계약관계에서 그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 계약에 대한 이행을 촉구하고 시한을 정하여 확인하는 작업인데 문제는 그 사실을 법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에 법정에서 증거물을 삼기 위해서 보내는 우편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우편물의 수취인이 대부분 없거나 받아도 그 사실에 반응하지 않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요.

바로 그것입니다. 증거를 만드는 것입니다. 네가 어떠하든지 내할 것은 했다는 증거 말입니다.

그러니 이 선지자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신이 나기보다는 한심스럽고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에스겔의 사역의 시작이었고 계속되는 사역의 내용이었습니다.

2:6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2: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서 그 사역을 하는 에스겔이 평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참 엎친 데 덮친 격이란 말이 꼭 맞는 상황입니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인데 거기에 백성들의 주는 고난가지 겸하여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살면서 백성들이 그 권위를 인정해 준다면 그나마 그 일이 아무리 고단해도 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에게 임하는 것은 오히려 비난과 고난이었습니다. 우리가 떠올리는 선지자의 이미지가 그대로 에스겔의 것입니다.

광야에서 허름한 가죽을 걸치고 박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곧고 힘차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사람! 그래서 그의 외침을 듣고 백성들이 싫어하며 미워하는 사람이 바로 에스겔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가운데서도 에스겔이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셨는데 그 비결이 바로 그 아래 나와 있습니다.

2:8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2:9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므로 그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저주의 말씀이며 나아가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말씀이지만 에스겔에게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므로 꿀과 같이 달콤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슴이 우리에게 힘겹게 들린다 할지라도 그 말슴으로 인하여 우리가 힘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말슴은 결코 우리를 악한 곳으로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바른 길로 또 온전한 곳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능력이 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에스겔에게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에스겔에게 임한 복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언하시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돌이켰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셨기 때문에 이 일을 이루시겠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입니다.

34장부터 시작되는 회복과 축복의 메세지에서 하나님은 “저주에서 축복으로”, “인간의 독재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포기하심에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풍성함으로” 나아가서 “그들의 부정한 불경한 곳에서 돌이켜 정결하고 거룩함으로” 변화 시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불경한 것에서 돌이켜 축복을 허락하심을 인하여 이스라엘이 부끄러워 할 것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회복되는데 부끄러워합니까? 바로 그들이 회복될 만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회복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전하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세우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범죄한 사람은 용서를 구하지 않았는데 그 악한 행실에서 돌이키지 않았는데 오히려 피해를 입은 사람이 먼저와서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겸손히 낮추고 애쓴다면 얼마나 잘못한 사람의 입장이 부끄럽겠습니까?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더욱이 엄청난 용서와 격려를 입은 그들에게 부끄러움이 임하는 것은 그 와중에도 여전히 그들의 행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키시되 완전히 회복시키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거하는 곳을 에덴과 같이 만드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를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 삼으시고 하나님의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교회 청지기로 세우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기뻐하실 만한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일을 감당하기에 얼마나 부족한지요. 이스라엘처럼 자주 불경과 불의에 바지지 않습니까?

연약과 부끄러운 삶을 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일을 이루어 나가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36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겠습니다.

36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아멘”

이보다 더 분명하신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작정하셨기에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그 선언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명인 것입니다. 에스겔이 그의 그 답답한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슴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 왔을 때에 여리고 성 앞에서 도 그 가나안의 정복 전쟁 가운데서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이미 그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서오 여러분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일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유명한 연설이자 설교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그의 글에서도 그의 그 꿈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확신 했기에 그 암울한 상황 가운데서도 여전히 꿈을 꾸지 않았겠습니까?

우리의 2008년이 꿈을 꾸는 한 해이기를 바랍니다.

이 캐나다 남쪽 끝 윈저에서 하나님의 교회로 세우신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한인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나누는 공동체로 우리를 세우시는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소망 가운데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같이 작은 교회가 혹은 이민 교회가 아니면 이곳의 윈저의 정서가 그 모든 것을 방해한다 할지라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꿈꾸지 못하면 이룰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습니다.

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38 제사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 떼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이를 위해 저희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초석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우리를 부르셨으니 그 일을 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을 꾸면서 내가 이곳에서 세움을 입고 할 일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젼을 향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이 일을 이루어주옵소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분명 하나님의 능력과 힘에 의하여 세워지고 인도되어져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를 이끌어 가는 이들의 꿈과 비젼이 없다면 그들을 강제로 꿈꾸게 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이루실 것을 바라보면서 꿈꾸고 또 기도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2008년이 우리의 꿈을 세우고 우리 교회의 꿈을 세우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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