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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008.03.16 13:12

폭우 조회 수:477 추천:27


마가복음 8장 27절~35절

8:27 예수와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노중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8:28 여짜와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8: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계하시고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8:32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8: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샬롬!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우리 서로에게 인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애매히 고난당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으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려주일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의 구속을 기념하는 오늘의 예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기념하며 찬양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변화산에서 그 모습이 변화되시는 장면 바로 앞에 나오는 기사입니다. 특별히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있는 마가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되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십니까?
물론 우리는 이미 성경을 읽고 또 예수님의 사역과 기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나아가 우리를 위해 구속자로 오신 메시야임을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의 마음속에 그러한 고백이 있는지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함께 묵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사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했고 또 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성경을 알고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가득한 것을 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욱 많고 오히려 예수님에 대한 기록들이 거짓말 취급을 받기 일쑤인 것을 봅니다. 그런 와중에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신지에 대해 의문부호를 달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에 대해서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과연 예수님에 대하여 무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만났고 또 예수님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고 참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오늘 마가복음은 그 사실에 주목하면서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전체적으로 읽고 이해하다가 보면 그 기록들 사이에서 분명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있고 고백하고 있으며 또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의 정체는 계속해서 가리워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8장에 오기까지 그 어느 누구도 예수님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 인식하고 있지 못합니다. 뱃세다 들판에서 여러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그 걸음을 북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요단강의 기원이 되는 헐몬산 기슭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을 가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드냐?”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번 질문하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에 대답하는 사도 베드로의 놀라운 고백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있지 못합니다. 아니 고백하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직 인식하고 있지도 못한 것을 봅니다. 그들은 마치 아직도 예수님을 향해서 분명하지 않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마가복음 8장에 이르는 동안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은 귀신들입니다. 귀신들린 이들을 고치시려고 할 때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께 말하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자들을 포함한 그 누구도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당신에 대해서 굳이 알리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당신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밝히고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신 것을 인해 고난당하시고 결국 죽음에 이르시기까지 한 것을 보면 예수님이 당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굳이 숨기실 이유가 없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오늘 비로소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십니까?”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벳새다의 한 소경을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고치시는 장면이 조금 특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8: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8:23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8:24 우러러 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8: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예수님은 소경을 고치시는데 한 번에 고치시지 않으시고 두 번에 나누어서 안수하시고 고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어떤 의도가 있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은유라 할 수 있십니다.
소경은 분명히 예수님을 찾아왔고 예수님은 그를 데리고 나가셔서 그 눈을 안수하심으로 고치십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어렴풋이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뚜렷하고 완전하게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상태로 고쳐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예수님이 안수하심으로 그의 눈이 완전히 밝아져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또 세상을 밝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바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을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들 중에는 오늘 본문에서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제자들도 있었지만 또 어떤 이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이적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에 불과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눈은 어쩌면 이제 예수님의 이적과 가르치심을 따라서 한번 안수 받은 소경과 같은 수준까지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이 그저 평범한 선생님은 아니시라는 것과 나아가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까지 알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오늘 본문 이전에 여전히 예수님의 이적을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능력이나 함께 하심의 믿음을 공유하지 못했던 제자들처럼 불완전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이 사람들을 하나님은 완전히 눈뜬 상태로 인도하셔야 합니다. 그들의 입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를 선포하는 사람들로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의 안수가 더 필요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고 또 부활 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비로소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고 알며 나아가 그 일을 전하는 증인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데 이러한 시간이 흘러야 했을까요?
그것은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정체를 밝히기 이전에 그들의 입으로 고백되어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과 그 가르치심을 듣고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그 믿음의 확신에 이르기까지의 연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적은 그런 의미에서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하는 또 다른 도구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이들을 자유케 하신 것은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죄 사함의 구속이 이루어지면 인간이 누릴 자유이며 하나님의 자녀된 이들이 누릴 하나님의 나라 그 시작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적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깨달아가고 그 일을 이루시는 예수님에 대한 명확한 믿음이 생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조금씩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신 것을 알아가게 돕니다. 그래서 비로소 오늘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을 고백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적을 통해 고백하게된 예수님의 정체는 어쩌면 하나님의 원하는 수준까지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백을 한 베드로가 바로 예수님의 책망을 듣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지만 예수님의 구속의 죽으심을 이해 할 수 없었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당신의 고난과 죽으심을 말씀하시자 이를 부인하고 반대하기에 이릅니다.

아마도 모든 제자들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이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지 능력의 사람인지 나아가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이신지를 고백하게 되었는데 느닷없이 고난과 죽음이라니요. 그들의 입장에서 전혀 알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이며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적으로 이 땅을 고치실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이 땅을 사하시는데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구속의 사역을 전하고 완성하심에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며 능력이지만 그 일을 증거할 증인들을 세우심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바로 깨달은 제자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고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그들이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온전하신 메시야이심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을 바로 깨닫는 첩경이 되는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실 때에 비로소 그의 죽으심이 온 인류를 구원하는 대속의 댓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한 선한 인간의 죽음이라면 그 죽음이 아깝고 또 억울하기는 하지만 그로 인하여 온 인류가 구원을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저 하나님이 현현하신 것이라면 하나님의 죽으심은 그저 죽으시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므로 그의 죽으심이 아무런 고통이나 속죄의 의미를 담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또한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만이 이 구원의 사역을 감당하시는 대속의 제물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고백하는 제자들의 고백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고백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목격하고 그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고 하는 고백은 참으로 하나님의 구속을 경험한 바른 고백이 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굳이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는지를 바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은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되고 가르쳐지며 그들의 심령에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이적과 기사를 통하여 능력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을 뵈었고 그 능력의 하나님을 고백했다면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의 죄악을 속죄하시기 위해 아들을 죽이셔야만 하는 공의의 하나님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로써 비로소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바로 보고 고백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끊임없이 이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과 제자들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불완전하고 또 자주 실패하는 모습인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의 바로 앞에도 그러하고 뒤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 역시 하나님의 구속을 증거 할 제자들로 부족해 보이거나 자주 실패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의 죄를 대속할 십자가를 향하여 가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적을 향하여 그 권력의 달콤함을 향해 달려가는 제자들을 봅니다.
예수님의 이적에는 환호하지만 그의 고난과 죽으심에는 냉담하던 수많은 무리들을 또 우리는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 길을 가셨을 뿐만 아니라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고 그들을 격려하시며 다시 세우셔서 결국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제자를 삼으시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이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물음을 오늘 우리에게 해 보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도 여전히 이 물음에 바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구원받음으로 누리는 축복이나 은혜는 바라보지만 예수님이 죽으시고 고난 받으셔야만 했던 나의 죄악을 바로 바라보지는 못하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여전히 예수님이 고치셨음에도 불구하고 희미하여 바르게 보지 못하는 소경처럼 구원은 받았으나 예수님에 대해서도 바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도 희미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나의 죄를 인함이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공의의 대가였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함께 나눌 성찬예식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찢기신 살과 나를 위해 흘리신 보혈의 피를 대하면서 나의 죄인 됨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라고 나아가 그 죄인된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진 이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이적을 믿으며 이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능치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지금도 바라보시며 나의 생명을 당신의 아들 생명처럼 여기시는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여전히 우리를 향해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라고 명령하시고 당신의 제자 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제자로써 거듭나기 위하여 그분의 고난을 묵상하고 그분의 가신 골고다의 십자가의 길을 나도 따라 가리라 고백할 수도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길은 결코 애매히 고난만을 받는 길은 아닙니다. 그 길은 사랑의 길이며 은혜의 길입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그러했고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했듯이 그 길은 성령님과 함께 가는 길이며 나아가 그로 인하여 한없이 기쁘고 즐거운 길임을 압니다.

우리 윈저사랑의교회가 또 그 속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그분의 완전한 구원자 되심을 묵상함으로 오늘도 물으시는 그 물음에 답하여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고 나아가 그분의 제자로 그 자녀로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따라 골고다까지 가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분명하게 새겨지고 드러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하여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말씀을 마칠까합니다.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8: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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