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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같이 / 눅 18:10~17

2008.06.22 00:47

폭우 조회 수:473 추천:29

아이들과 같이
누가복음 18장 10절~17절

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8:15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8:16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샬롬!
오늘도 서로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 당신을 축복합니다.”

오늘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소원하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을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회지에서도 썼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가장 신실하고 순전할 수 있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을 때에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저의 몸이 조금씩 부는 것을 보면 이제 나이가 먹는가보다 생각하기도하고 또 운동을 잘 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잘 제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있구나하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요즘 여름이 되고 나니까 제 몸에서 땀이 나는데 얼마나 전과 달리 땀 냄새가 좋지 않은지요. 아마도 살이 쪄서일 수도 있을 테고 한편으로는 제 삶이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 슬프기도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셨을 때에 가장 아름답고 순전하게 만드셨는데 그리고 그 때의 우리 몸에서 나는 냄새는 향기롭고 또 좋은데 이제 어른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주어지면서부터 우리 몸에서도 좋지 않은 냄새들이 나는 모양입니다. 너무 비약일지 몰라도 아마우리네 삶이 하나님의 만드신 곳에서 멀어지기에 이런 일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 우리네 인간들은 어린아이 때의 순전함을 유지하며 살기 힘이듭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늘 살면 오히려 철이 없다고 생각되고 또 남들에게도 비아냥을 듣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린 아기들이 가지는 순전함과 신실함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도 참 좋겠다 생각됩니다.
인터넷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김현이란 분의 글을 읽었습니다. 아마 교과서에 나오는 김현승의 '눈물'이란 시를 가르치면서 그 시가 노래하는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대해 잘 가르치기 위해 자기들의 삶에서 슬펐던 기억들을 시로 써오라고 한 모양입니다. 그중에서 몇 개를 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열아홉 / 꽃다울 때 / 그 꽃이 / 꽃을 맺어
꽃 위에 / 꽃 있으메 / 아래꽃 / 휘어가니
윗 꽃이 / 아래꽃 보고 / 바람따라 /휘갔네

늘 웃음이 좋은 친구가 쓴 시인데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배경 설명을 원했더니 엄마와의 이별을 쓴 글이라 했답니다. 열아홉에 엄마는 자신을 낳았고 어린 동생도 낳았는데 얼마후 엄마는 세상과 이별을 하고 말았고 그 내용을 시로 쓴 것이랍니다.

한 쪽 불이 나간 형광등 빛
짙게 내려앉은 창문 너머 밤하늘
아이고야
아웅다웅
우당탕탕
어둠 속에 흘러내리는
아이의 슬픔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싸우던 장면을 떠올리며 쓴 시랍니다.

어둠이 낮게 내려진 밤
세상에 젖은 어머니의
어두운 옆모습
/이슬이 시리게 내린 새벽
세상에 젖은 어머니의
어두운 등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의 주름을 보았다
/그날 처음으로
가슴속 깊고 깊은 우물을 만들었고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삶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쓴 시라고 합니다.

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 놓을 걸
그랬나 보다
/이렇게 갑자기
떠나버릴걸
알았다면
/하루의 반나절
목 놓아 울다가
지쳐 잠들고
/이른 새벽 일찍 일어나
꿈이길 바라며
주무시는 어머니께 다가가니
/사진을 보시다
새벽에 잠드셨는지
방안에는 온통 사진들이
/비어있는 어머니의 옆자리를 보고
돌아서는 내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를 여의고 쓴 시라는 이시를 읽으면서 아이는 다 읽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이 시를 읽어달라고 했다고 그는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들을 읽으면서 참 아이들의 마음이 순전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들의 감성이 글 잘 쓰는 시인들의 그것만 못하지 않다고 느끼면서 그들의 순전한 마음이 이토록 슬픔을 아름답게 썼구나 생각해봅니다.
우리들은 이네 성장하면서 슬픔이나 아픔들을 곧잘 잃어버립니다. 또 기쁨이나 즐거움에도 쉽게 반응하지 못하고 내가 가진 환경을 살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그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담아내는 순수한 눈을 가진 모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원하시는구나 하고 말씀을 준비하면서 새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우리의 마음이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은 어린 아이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 이르시면서 그들을 품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16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이 아이들은 다른 것에 집착하지 않고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이며 아버지의 다함이 없는 헌신입니다.
내가 배가 고플 때에 떼를 쓰면 밥을 챙겨주는 이를 기억하고 나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는 이를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머니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자기가 만나고 있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호소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의 피난처요 안전한 항구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들의 마음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 의심 없이 다른 어떤 생각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고 그 하나님의 풍성하심에 기대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되 다른 어떤 마음의 동요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가 젓을 빨 때 어머니의 가슴을 찾듯이 하나님의 가슴을 찾아 기도하고 그 품에 안기기를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다른 어떤 요소가 끼어들 수 없습니다. 우리의 환경도 우리의 체면도 우리가 가진 어떤 잘못도 그 품에서는 용서를 얻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참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좋은 것을 얻은 이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만난 축복을 부러워하고 그들에게 주셨던 것을 나에게도 허락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구약에 나오는 솔로몬일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그 기도를 일천번제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는 그의 기도를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3: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3:6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3: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3:8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3: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3:11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壽)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3: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3:13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들이 많았고 그의 형인 아도니야가 이미 왕위를 얻기 위해 계략을 꾸미던 상황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참으로 절박했을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일천번제를 드린 것은 그의 왕위를 자랑함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행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직 자기의 연약함과 불안한 자리를 놓고 하나님께 메어 달렸을 뿐입니다.
그가 왕위에서 온전한 왕으로 섬기기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그는 의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머니 밧세바와 하나님의 선지자 나단이 있었지만 세상은 어쩌면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장자도 아니었고 그의 신분은 다윗의 범죄로 얻은 아내 밧세바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는 다른 것을 의지하고자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과 비교해보면 그의 행위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는 적어도 이 상황에서 하나님만 붙들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기도가 응답되기까지 열심히 하나님께 메어 달렸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그가 요구하는 기도의 제목은 그가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그리고 그 백성을 어떻게 하나님의 듯대로 다스릴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받으셨고 그에게 지혜와 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의 순전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것이고 하나님께 메어 달린 솔로몬을 하나님은 기쁘게 보신 것입니다.
물론 말년의 솔로몬은 그 마음을 잃어 버렸고 또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용한 것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또 다른 한 종류의 비교를 예수님께서 하고 계십니다.
한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입니다.
바리새인은 그야말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전하게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살았던 삶을 우리중 누구도 살고 있지 못할 만큼 그는 온전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삶에 당당했습니다.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당연히 들어주셔야 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신앙을 하나님께 드러내면서 이만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이유가 충분하다고 믿었습니다. 아바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리는 달랐습니다. 그는 죄인이었고 세상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떳떳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혈세를 받아 배를 불리는 그의 삶은 하나님께 부끄러운 것이었고 그의 행위를 기뻐하는 어느 누구도 없었습니다. 아마 하나님도 그의 삶을 기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 할 때에 절박했습니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으심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다해도 그는 원망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뿐입니다.
그는 자기의 삶이 하나님께 온전하지 않음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긍휼하심만을 바랐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부족함을 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으로 그는 자기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 다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의 말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나아갑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함이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보함 같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원하기 이전에 나의 마음을 다해 순전하게 하나님께 메어달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라도 우리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순전함을 원하십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윈저사랑의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전하게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다른 어떤 문제들을 들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들고 나아감으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실 하나님을 기대하십시다.

이번 주에 우리는 창립기념주일 예배를 준비하면서 저는 오래전부터 이 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우리에게 그리고 이 윈저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사랑하는 친구이자 사역자인 이광재목사와 통화하면서 하나님이 이 친구를 통해 우리를 위로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여건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일을 진행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분을 모시고 우리가 찬양집회를 엽니다.
다른 모든 것을 덮어두고 한 가지만 생각하십시다.
그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우리의 심령을 치유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만 바라보고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분이 우리에게 치유를 주시는 유일한 사람이 아닙니다. 또 그를 통해서만 일하시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누가 되었든 지간에 우리 가운데 소망함이 없으면 또 사모함이 없으면 이 일은 그저 한번의 행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함으로 나에게 주실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를 소망하고 그 은혜를 풍족히 누리게 허락하실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기도한다면 분명히 하나님은 이번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리실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그 은혜를 사모하는가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은혜를 사모하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주실 은혜를 사모하고 그 풍성하신 축복을 주실 것을 기대하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전한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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