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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키지 못하면

2008.05.22 10:48

폭우 조회 수:429 추천: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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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키지 못하면

왕하 7장 3절~9절

7:3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7:4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지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 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7:5 아람 진으로 가려하여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 가에 이르러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7:6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7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7:8 그 문둥이들이 진 가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7:9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샬롬!

오늘도 함께 예배할 수 있어서 감사드리고 또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 누릴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이 늘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늬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의 개인과 가정에서 매일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회지에 쓴 글에서 인용한 노래처럼 우리의 일상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많은 것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기를 바라고 그로 인해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이해되지 않을 수는 있더라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 믿음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의롭게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연인 인간이 자기의 노력과 열심히 세상 가운데서 의롭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요? 우리는 자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나의 한계를 보게 됩니다. 이 한계는 우리를 좌절하게 하는 또 다른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를 아십니까? 그분의 삶은 인도의 아주 더럽고 아픈 도시 켈거타에 한줄기 빛으로 온 세상을 비추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따라 인도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와 관련해서 아주 재미있는 아니 어쩌면 충격적인 책이 하나 출판되었습니다.

스스로를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라 일컫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나쁜 의미에서 악마의 변호인이란 이름을 쓴것이 아니라 로마 캐톨릭에서 성자를 추대하기 위해서 그의 삶을 심사할 때에 한 쪽은 그의 성스러운 삶을 증명하려고 노력하고 다른 한쪽은 그의 그런 부분이 잘못 평가된 것은 없는지를 살핍니다. 이 때 그 반대편에 선 사람을 악마의 변호인으로 부릅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자비를 팔다>는 그런 테레사 수녀의 과를 지적하고 있는 책입니다. 히친스라고 하는 사람은 영국에서 출생해서 미국으로 이주한 지식인으로 많은 글들을 쓴 사람입니다. 그는 무신론자인 것 처럼보입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는 2005년 가을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영국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가 함께 실시한 ‘100대 공적 지식인’ 독자 투표에서 5위에 올랐던 사람으로 영향력이 있는 저자입니다. 그가 사실관계에 준해서 착실하게 써내려간 150쪽 분량의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테레사 수녀가 아닌 그녀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책의 모든 내용을 소개할 수 없지만 그는 적어도 테레사 수녀가 자기의 업적에 비해 어두운 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단지 치적을 깎아 내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단편적으로 그는 수녀가 받은 많은 기부금 중에는 검은 돈들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이티의 독재자나 신비주의 이단, 혹은 상업적으로 죄를 범한 사람의 기부조차도 아무런 스스럼없이 받았음을 보여주면서 그녀가 결코 완전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평가가 어떻게 되었든 지간에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사실에 대한 확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3:10에서 말하고 있는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는 진리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연약한 지체입니다. 특별히 아담이 하나님을 떠난 이후에 인간의 속에 들어온 죄성은 인간을 스스로 의롭게 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자꾸 외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잘 노력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가 죄악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바르게 반응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먼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고백하는 곳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마틴 로이드 존즈 목사님은 그의 책 “꺼져 가는 심지와 상한 갈대의 회복”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상한 갈대임을 인정하는 곳에서 신앙이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고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금에 일어나는 많은 재해들을 보면서 이번 한주동안 저는 그런 고민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연약한 인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가하는 문제였습니다. 미얀마의 사이클론이나 중국의 지진은 우리의 잘못이 아닌데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이런 일들을 허락하셨는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이 일의 주권자이기는 하지만 조장자이시거나 계획자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이루어지는 일이기는 하겠지만 그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북쪽 이스라엘이 가장 강성했으나 가장 학했던 시기인 오므리 왕조의 마지막 때 일을 쓰고 있습니다. 아합이라는 악한 왕이 죽고 그의 두 아들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오릅니다. 먼저 왕이된 아하시야는 2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다가 아들이 없이 죽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아합의 아들인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둘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강력한 선지자 엘리야와 그의 후계자 엘리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향해 은혜를 베푸십니다. 문제는 그 은혜를 왕도 백성들도 알지 못했다는데 있습니다.

엘리사는 모압과의 전쟁과 시리야 성경에서는 아람으로 기록된 왕 벤하닷이란 왕에 의해서 끊임없이 침공당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은혜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도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이스라엘을 공격해온 아람의 군대를 물리치시고 그들을 선대해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결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하 6:23 왕이 위하여 식물을 많이 베풀고 저희가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저희가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그러나 여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얼마지 않아서 벤하닷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사마리아 성을 쳐들어옵니다. 그리고 성을 둘러싸고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먹을 것이 없는 극한 상황까지 내 몰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는 그들의 상황이 얼마나 암울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여인이 왕에게 와서 말합니다.

6:26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6:27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6:28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6:29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참으로 참혹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런 상황에서도 그 핑계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의 말을 들은 왕은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성위를 돌아다닙니다.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는 행위는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겸비하는 행동이었지만 왕은 그 행위는 있으나 마음은 없는 상태였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참으로 회개하였다면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왕은 돌연 분노를 발하면서 이 책임을 엘리사에게 돌립니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모처에 있는 엘리사를 잡아 오라고 하고 그를 죽일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어쩌면 이는 왕의 정치적인 행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왕은 철저하게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왕의 군대를 맞은 엘리사가 말합니다.

7:1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응이 참 한심합니다. 이 말을 들은 군대장관이 이를 비웃으면서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창고를 여신다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이성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믿지만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아람의 군대에게 밤중에 나타나서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심으로 그 가진 것들을 다두고 도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몇 명의 문둥병자만이 이 상황에서 그 진으로 들어가기로 작정합니다.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도 않고 그 죄를 인정하지도 않지만 문둥병자들은 자기의 처지 가운데서도 살길을 찾기로 작정합니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생명이 어느 곳에 있으나 죽을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먹을 것을 찾아 아람의 진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아람의 군 진영은 텅 비어있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은금을 챙겨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서로에게 말합니다.

함께 7장 9절을 읽겠습니다.

7:9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이들은 문둥병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한 번 말씀드린 것처럼 성 안에 거할 수 없어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성 밖에 내 쫓겨 살아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결코 성안에 있는 백성들에게 호감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해서도 그들은 결코 바른 마음을 가지지 못할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의 문둥병은 하나님의 저주로 주어진 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사에도 참석할 수 없었던 불가촉 천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께 신실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을 돌이켜 자기들에게 있는 이 축복의 은혜를 나누기로 작정하고 그 말 가운데서 이 일을 인하여 바르게 행동해야 하겠다는 자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왕궁에 가서 사실을 알렸고 여전히 믿지 않는 왕에 의해서 사실로 밝혀지자 온 이스라엘은 이 일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에서 제외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이 일을 이를 수 없다고 한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그는 성문에서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바라보면서 몇 가지 묵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먼저 왕과 군대 장관의 태도와 문둥병자들의 태도를 통한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구원을 얻어도 그 은혜를 들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 은혜를 누릴 수 있는지 아닌지가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동일한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던 군대장관도 이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함으로 보기는 하되 누리지는 못하였습니다.

왕은 이 일을 겪으면서 겉으로는 회개하는 듯이 보였지만 그 마음이 온전히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정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전장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고 그의 왕조는 자기에서 끝이 나는 결과를 얻고 맙니다. 역사상 자기의 집권 시기에 이토록 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기에 그 은혜에서 비껴나가고 만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문둥병자들은 자기에게 당한 구원의 은혜를 기쁨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온 백성들이 구원을 얻고 나눌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설사 그들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 고해도 누구하나 뭐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도 죽기를 각오하고 간 것이었고 그들 역시 사랑 받고 산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성 밖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고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그런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얻어진 것이라해도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에 나누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것이 구원의 감격이며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를 나누지 않는다면 병자들의 말처럼 그들이 화를 입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결코 우리가 잘나서 얻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받을만해서도 아닙니다. 또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 구원을 이야기하게에 주제 넘어 보이는 열악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문둥병자들이 하는 말이 얼마나 가소로웠겠습니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와서 적군의 진지에서 먹을 것과 재화를 얻었다는 을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을 전했고 이것이 백성들을 구했습니다.

내가 지금 처한 환경이 어떠한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얻은 은혜를 나눌 수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해지고 나눠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절망과 구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기근을 경험하고 자식을 먹어야 할 만큼의 고난에 빠진 것이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들의 잘못을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라 보기에도 우리는 쉽게 수긍하기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늘 우리에게 정해진 방식을 따라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강성하게 지켜주시기도 했습니다.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의 시기에도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선한 왕이었던 유대의 요시야왕은 전쟁에서 맥없이 죽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환란이 인간의 악함에서 근거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시종여일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악함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환경 가운데 고난과 아픔을 스스로 초래합니다. 다만 하나님이 그 환란이나 고난을 묵인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악한 우리의 삶에서도 여전히 발견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담 이후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함으로 환란을 면할만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은혜를 베푸셨을 뿐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그 은혜가 분명하게 매번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해서 불평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 예는 그렇게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주 악인의 잘되는 것을 한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이 오래 참으신다는 표현을 빌어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살아서 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정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 죄악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경우는 분명히 우리를 심판하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인 것을 우리는 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그들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히 여기심으로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인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나의 어떠함이 나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선하심에 의해 은혜를 베푸시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우리의 죄악을 씻을 수 없고 우리의 죄성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굳이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셔도 우리의 인생은 아픔과 절망의 연속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책임은 다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이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에 우리를 그대로 두고 보시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주어진 그 고난의 무게는 언제라도 나에게 닥칠 문제입니다.

나의 잘못과 죄악은 언제라도 나를 나락 끝으로 이끌어 내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렇게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으며 나의 삶 가운데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으로 오늘도 내가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그 인생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 은혜는 때로 사람들이 보기에 하찮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아는 이들에게는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윈저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서로 고백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의 입으로 불평하기 이전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에게 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비록 문둥병에 들린 육체를 입고 있다손 처도 우리의 삶이 천국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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