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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 묵상

2007.11.15 11:40

폭우 조회 수:405 추천:20

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하나님은 비록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내어쫓으셨지만
여전히 그들을 하나님의 지으신 창조물로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본래 창조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그들에게 자녀를 허락하시고 이 땅에 충만하도록 하고 계신것은
여전히 그들을 통하여 이 땅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다.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4: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린다.
그들이 드린 제사의 성경의 무었이었는지
또는 그들이 드린것이 제사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었는지를 살피기 보다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수 있느냐는 것이
오히려 더욱 중요한 묵상의 제목일 듯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르치지 않으시면
이들이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를 범한 인간을 향하여 여전히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 계획을 실천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목적을 따라 인간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뻐하는 존재로 남아있기를 원하신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존재로
거듭 세워지기를 원하고 계신 것이다.

가인과 아벨도 그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께 예배하였을 것이고 제물을 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결코 같지 않았으며
인간은 이미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가인의 제물을 열납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이유는
그의 재물에서 찾을 것도 그의 예배 방법에서 찾을 것도 아니라
오히려 그의 마음을 지적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인의 마음...
그는 열납되지 않음을 인하여 분하여 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은 그의 마음이 선을 행하지 아니함으로
죄를 범하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계신 것을 볼 때
그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마음이 이미 예배할 수 없는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다.

나아가 그는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분노하였으므로 그 분노를 아벨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분노의 결과는 하나님의 경고대로 범죄였다.
살인은 하나님의 경고에 귀기울이지 않은 인간의 오만이 낳은 자식이다.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아니하며
자기의 이성을 따라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4: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4: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4: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악함을 다 보여준다.
범죄하여 동생을 죽였으나 이를 숨기기 급급하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것
이것이 하나님 없는 인간의 모습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죄를 범하고도 그로 인하여 호개하기보다 범죄를 가리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행하는 것
그리고 점점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기를 원하며
어둠 속에 안연히 거하므로 빛을 싫어하는 것이다.

가인은 그의 범죄로 유리하는 자가되며
땅은 그의 경작한 결실을 온전히 주지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을 창조하실 때에 땅이 소산을 내어
하나님의 창조하신 인간에게 먹을 것을 내도록 하셨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땅은 수고하여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되었고
이제는 온전한 것을 얻을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을 다시리도록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땅을 인간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기뻐하도록 하셨고 나아가 인간에게 쓸것을 내어주도록 하셨는데
인간은 이 땅을 적대적인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지금도 인간은 땅을 정복하고 그와 전투하려고 하지 않는가?
땅이 인간의 삶을 향하여 투쟁하도록 하고 분투하도록 하지 않는가?
땅만이 아니라 문화와 삶의 모든 영역이 지금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그 첫 창조의 목적을 떠나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과 사우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본연의 삶, 그 창조의 목적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리라.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만드신 것을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
이 땅의 문화와 자연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에 사용하는 것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이 땅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것이리라.

4:13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罪罰)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하나님은 그러한 가인을 또한 용서하신다(?)
그의 삶을 함부로 해하지 못하도록 그를 지키시는 것은
인간의 죄를 벌하시고 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서로를 향하여 서로의 죄를 묻고 갚지 못하도록 하신 것은
인간의 악함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4: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4:17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4:18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4:19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4: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4:21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4: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4: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난다.
그리고 그도 역시 아내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다.
여전히 가인은 자기의 자식을 낳고서도 관심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에게 있음을 본다.
그의 가진 지혜와 재능을 가지고 성을 쌓으며 나아가 이름을 내지만
그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기뻐하고
스스로의 이름, 자식의 이름으로 성을 쌓을 뿐이다.

가인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이다.
그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를 높이며 스스로가 삶의 주인인 것이다.
그의 후손 라멕을 통하여 극명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의 이름을 내며 높이고 나아가 자만하는 것이다.

모든 죄를 갚으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건만
라멕은 자기에게 헤를 가한 자에게 스스로 벌을 준다.
가인을 보호하시는 하나님과 스스로를 보호하는 라멕을 비교하기를
서슴치 않는 라멕을 통하여 하나님을 무시하고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리는 인간의 악함을 발견한다.

그들이 아무리 재능이 있고 문화를 발전시킨다 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재능과 문화가 하나님을 떠날 때에
그것은 그들에게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화일 뿐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행치 아니하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하여 사용하는 ㅇ니간의 전적인 악함을 본다.

지금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으로 나를 만족케하며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닌가?

4: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담은 아벨을 대신하여 셋을 얻는다.
하나님은 가인으로 대표되는 범죄한 인간만을 이 땅에 두시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세우시기를 원하신다.

셋은 하나님의 주신 아들이요 그로 인하여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앞에서 행하는 자로 살아간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낳아 "에노스"로 이름하므로
인간은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한다.

인간이 하나님과 같지 아니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으므로 죽음을 목전에 둔 존재임을 잊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외하는 첫 조건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가 연약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거하며 하나님을 더나서는 죽을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출발점이며 우리의 신앙의 시작인 것이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아는가?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하여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찬양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