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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하는 삶 / 계 1:1~8

2008.06.06 14:49

폭우 조회 수:403 추천: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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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하는 삶

요한계시록 1장 1절~8절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샬롬!

오늘도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기위해 모이신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에게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요청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계시록 말씀을 통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왜 하필 계시록이냐고 물으실지 모르지만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계시록을 묵상하면서 고백한 것처럼 지금이 바로 요한에게 계시하시던 하나님의 말씀이 그때와 동일하게 적용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며 그 때에 교회를 향해 하시는 말씀을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밧모 섬에 유배되어 살고 있는 노년의 요한사도에게 하나님은 계시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어진 교회가 첫 위기를 맞고 있던 시기였으며 하나님은 그 위기 가운데 선 교회를 향해 격려하시고 또 책망하심으로 하나님의 교회로 바로 세워지기를 요청하셨는데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이 또한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은 초대교회 일곱 교회를 대표적으로 세우시고 그들을 향해 한하나 결려하시며 또한 책망하고 계십니다. 그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당시에 가장 힘 있고 아름다운 교회들로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문제들이 표면으로 돌출되고 있었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현재 우리 시대의 교회들도 같은 위기에 직면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시는데 그 교회들이 직면해 있던 시대적 위기는 바로 크게 두 가지였다고 계시록을 묵상하면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분석합니다.

그 첫 번째는 영광스러운 것이 하찮은 것으로 변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점점 하찮은 것으로 변하는 시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교회는 고난 가운데서도 복음을 확장하며 하나님의 나라로서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교회가 자라가면서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인본주의적이며 이성적인 본성에서 나타나는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의 대속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게되었고 그 앞에 경배하는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없고 그 앞에서 철저하게 복종하며 경배하는 삶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교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신앙이 이성을 통해 분석되면서 또 그들이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에 의해서 복음이 변질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단들의 출몰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이해와 해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고 자기의 이익과 입에 맞게 그 말씀을 변질 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시도는 인간의 악한 본성과 맞물려 교회 안에 새로운 이단들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한을 통해 일곱 교회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일곱 교회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은 복음이 가지는 위대함이었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세에서 출발했으나 지금은 어려움 속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곧 있을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 교회에 모여 서로의 신앙을 공유하고 믿음을 지켰으나 예수님을 좀처럼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들 앞에 펼쳐진 상황은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환경을 바라보면서 좌절하거나 분노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때를 이단들이 파고 들었고 그들은 성도들에게 비밀한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 했으며 성도들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이라 불리는 이들로 인해서 실패하기 시작했고 서머나 교회는 유대인들의 훼방을 받았으며 버가모 교회도 니골라 당과 발람의 실패를 쫒는 무리들로 인해 책망을 받습니다.

두아디라교회는 거짓 선지자 이세벨로 인해 사데 교회는 행위가 온전치 못함으로 책망을 받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첫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십니다.

반면에 빌라델비아 교회는 유대인들로 인하여 거짓을 말하는 이들이 오지만 하나님이 이를 인해 그들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말씀 안에 든든히 설 것을 권면해 주십니다.

이 모든 책방들은 그 교회들이 몇 가지 훼방을 받고 거기에 굴복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핍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스스로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말하는 이들로 인해 교회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그들의 생각과 말을 따라 하나님을 조금씩 떠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니골라당은 한번 받은 용서는 영원히 계속되므로 이제는 우리가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하는 영지주의의 시작이었고 이는 많은 성도들에게 미혹 거리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나 발람의 유혹을 쫒는 것은 바로 교회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몇가지 종교들이 서로 혼합하면서 말씀이 권위를 잃고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것이었고 이제는 안정이 되어서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진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보다 스스로의 삶을 걱정하고 그 안에서 가질 평안을 원하면서 하나님의 책방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은 하나님을 바로 예배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구원받고 성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다가온 상황은 여전히 세상위의 삶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안에서 새로운 교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상황이 더 중요하고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으로 드려지던 예배는 어느새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다른 종교의 제의나 예배 행위가 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했고 이를 교회가 조금씩 차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새 예배하는 사람들이 경배 받으시는 하나님에게서 중심을 그들 스스로에게로 옮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도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자주 잊어버리고 오히려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예배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이제 인간의 필요로 바꿔치기하는데 익숙해져 버려서 더 이상 예배 가운데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설 곳이 없어져 버리는 상황을 맞이한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는 분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며 또한 지금도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예배 가운데서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그 한분 밖에 없습니까? 혹시 이 예배를 통해서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집중하거나 나의 필요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예배 하는 동안 나의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의식 가운데 늘 자리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만났던 그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는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서 회복되지 못하면 초대교회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것입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찌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셔도 온 세상의 만물로부터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 앞에 설 때에 어떤 자세로 섭니까?

나의 앞에 지금도 서서셔 나의 예배를 받으시는 그 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부족한 마음과 준비를 보시고 나의 성의 없는 찬양을 들으시며 믿음 없는 기도를 귀 기울이시는 그 하나님을 지금 바로 직면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 나를 부르시고 선택하시며 구원하셨고 당신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무런 이유없이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시듯이 예수님의 계보의 조상이 되도록 유다를 선택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성경은 유독 예수님의 족보에 관심을 가지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우리가 보기에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고 세울 수 없는 이들이 있음을 봅니다. 다는 우리가 알지 못하므로 그들의 몇을 둘러보면 그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부름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유다입니다. 이번주 자녀들을 위한 영문 설교로 올려놓은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유다를 예수님의 조상으로 부르셨습니까? 그는 비도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며느리와의 관계를 통해 자식을 낳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손중에서는 이방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창녀로 소개되는 라합도 있었고 룻도 이었습니다. 또 야곱은 거짓의 사람이었고 다윗 역시 여인으로 인해 간음하고 살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로 인해 수많은 우상을 이스라엘에 들여온 사람이었고 므낫세는 참으로 악한 왕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들이 선택되었습니까?

아니 이들은 그냥 조상이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이 어덯게 선택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미 태중에 있을 때에 나를 구별하셔서 당신의 자녀 삼으셨고 그로 인해 나를 위해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고 주셨다는 하나님의 말슴을 통해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이며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그들을 믿으셨고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셨듯이 우리를 부르시고 선택하셨고 믿으셔서 당신의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바로 알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요한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은 그래서 너무도 놀랍고 영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요한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위엄스럽고 영광스러운 단어들을 통해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그런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요한은 10절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하나님은 오늘 주의 날에 우리에게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성령으로 감되어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출발이며 우리의 삶의 회복의 시작이라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만족을 얻으려고 많은 종류의 예배 형태를 찾지만 궁극적으로 예배를 통해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분 이신지를 고백하는 것으로 그분이 어떤 분이시며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시는 분이신지를 고백하는 것이 우리의 예배여야만 하고 이로써 우리는 비로소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을 통해 초대교회에게 바르게 예배하는 공동체로 돌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경배 받으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들에게 닥칠 고난을 위해서 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큰 고난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교회들 마다 이기는 자가 되라고 격려하십니다. 그들이 고난에도 불구하고 참으며 바로 서는 교회가 될 때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상급을 얻을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제 앞으로 되어질 일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안에서 승리하면 이러한 두려운 심판 가운데서도 안연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소유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영광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세워 지기만 하면 너희 앞에 있는 수 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승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의 하나님이 바로 이 세상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이며 너희를 지키시고 함께 하시는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식 때문이다.

또 우리의 삶은 그저 이곳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보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바른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지키실 것이라고 말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바로 예배하지 못합니까?

그분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내산에 임재하셨던 하나님을 지금 우리 예배 가운데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예배는 놀라운 경배로 바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며 너의 아버지라고 말슴하신다면 우리는 다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인하여 기쁠 것이며 그 앞에 기쁨이 충만한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예배가 이러하기를 소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만이 예배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관이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재가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온 마음으로 우리의 온 입술로 그리고 우리의 이성과 감정을 다하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앞에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오늘도 지키신다고 고백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찬송가의 가사 하나 하나를 다 읽어보면서 그들이 고백하는 고백이 나의 것이 되기를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어디에서든지 승리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