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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와 시현이네

시내집 이야기 19

2005.09.21 11:56

폭우 조회 수:459

이제 시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지 3주째가 되어간다
그래봐야 오늘로 11일째...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양의 학교에 시내는 적응하고 있다.

학교가던 첫날
시내는 한편으로 굉장히 들떠있었고
또 다른한편으론 걱정과 두려움이 있어보였다.
그래도 천하의 시내가 아니던가....

처음 자기반으로 가서
선생님 - 참 친절하게 생긴 여자선생님(엄마같은) - 과 인사를 나눈 시내는
자기 이름이 쓰인 -물론 영어로- 자리에 가서 앉는다.
"녀석을 저기에 놓아두고 가도 될까?"
마음 한쪽에 아련한 아픔을 품고 문에서 멀어진다.
녀석은 걱정말라는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선생님을 바라본다.

아내와 나는 손을 흔들고는 조심스레 집으로 향해 왔다.

하루종일 녀석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고
점심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녀석에게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여기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모두 어쩌면 고등학교까지
1~12학년이 모두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오후 3시30분까지 수업을 한다.
덕분에 녀석도 점심도시락을 싸가지고 학교를 간다.

또 점심시간에는 자기 도시락을 먹고는
각자 교실 밖으로 나가서 놀고 쉬는 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서 다음 수업종이 울리고 교실로 들어올 수 있다.

녀석을 만나러간 12시 20분
녀석이 눈물을 흘리면서 차가오는 주차장길로 걸어오는게 아닌가
가슴이 무너지면서 시내를 불렀다.

시내야!
녀석은 반색을하고 달려온다.
"다 엄마들이 와서 데려가는데 나만 엄마가 않오잖아 그래서, 꼭 고아원에 온것 같았어"
녀석은 점심시간에 식사를 빨리 마치고 엄마를 기다린 모양이다.
그래도 녀석이 엄마를 보더니 조금 기분이 좋아졌는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한다.
그새 친구들과 안면을 튼 모양이다.

짧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시 녀석을 학교에 놓아두고 와야하는 종이 울린다.
녀석은 애써 환한 웃음으로 줄에서서는
끊임없이 손키스를 날린다.
아마도 부모를 안심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또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들어가 학교 수업을 한 시내를
수업이 마칠때가 되어서야 데리러 갔다.
3시 30분
마치는 종이 울리자 마자 얼른 나와서
자기 가방을 둘러메고는 품에 안기는 녀석
그 작은 가슴에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래도 녀석은 학교에서 잘지냈다고
친구들과 공부하는데 재미있었다고 우리를 안심시킨다.

조잘조잘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폼이
아마도 자기가 눈치껏 수업을 따라가고 있는것이 못내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그렇게 녀석의 첫날 학교생활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아뿔싸 녀석은 시내가 아니던가.
학교를 나오면서 한마디 날린다.
"엄마, 나 오늘 변기에 손 씻었어!"
"?!"
"응 머라고?"
"나 오늘 밖에서 놀고 손이 더러워서 씻으러 화장실을 갔는데 손을 씻으려고 보니까 손 씻는데가 없는거야.
그래서 아무리 찾아봐도 손을 씻을수가 없는거야."
"복도에 있는 물먹는데 있잖아"
"아 거기는 물만 먹지 손을 씻는데는 아니야. 아무도 거기서는 손을 안씻어"
"그럴리가 있냐!"
"학교에 손씻는데가 없을리가 없지. 화장실에 손 씻는데가 없어"
"응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거야. 그래서 친구들이 다 나간다음에 호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었지"
"물 받아두는데 뒤쪽에 있는거?"
"아니!"
"그럼 ?!!"
"응"

녀석은 태연한건지 아니면 당황스러운건지 알수가 없었다.
"윽 일단 손부터 놓고 이야기하자"

마음이 무너지는것을 참으면서
녀석과 함께 다시 학교로 들어 갔다.
"시내야 한번 같이 찾아보자"
"여기 손씻는데 있네"
복도에 있는 화장실에 버젓이 세면대와 변기가 있는거였다.
"에이 거기는 선생님들만 쓰는데야"
그러고보니 거기는 직원들 전용이었고 아마도 녀석은 그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래 그럼 너희 화장실에 들어가보자
나는 남자 화장실로
녀석과 엄마는 여자 화장실로
아무리 찾아봐도 정말 없었다.
화장실에 세면대가 없다니.....
그리곤 둘러보니 이상한 곳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둥글게 생긴것이 꼭 우리 공동세면대 같이 생겼는데
세면대 위쪽에는 둥글게 파이프가 둘러져 있고 끝이다.
손을 넣으면 자동으로 물이 나올려나?
돌리는 것도 누르는 것도
센서도 없는 이것이 분명 세면대가 맞을텐데.....

한참을 찾다가 발 밑에 역시 둥글게 있는 파이프를 발견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밟아보니
위쪽 파이프에서 샤워처럼 물들이 나오는게 아닌가.
바로 이거 였구나
나도 이렇게 당황하는데 녀석은 어땠을까.

"시내야!"
나는 기쁜 마음에 녀석을 부르며 나왔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도 화장실에 있는 모양이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녀석들과 아내가 만족한 표정으로 나온다.
"우리도 알았어"
"이제는 어떻게 손을 씻는지 알았지"
"응, 정말 난 그런게 있는지 몰랐지"

녀석의 첫날 학교 생활은 또다른 에피소드를 만들고 끝이 나고 있었다.

처음 녀석의 말을 듣고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는지
손은 씻고 수업에 들어가야겠고
손을 씻을 방법은 못찾겟고
말은 안통하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상황에 아이가 놓인 것 같아서.....
그런데 녀석은 얼마나 대견한지
나름대로 그 난관을 헤쳐 나갈 지혜를 발휘하고 있었다.
비록 어른인 내가 생각할 때에는
그것이 안스러운 행동일지라도
녀석은
그자리에서 울지도 않고
그 당황스러운 현실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타결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녀석의 삶 가운데
오늘과 같은 일들이 또 닦치리라.
부모가 도와 줄 수 없고
자기의 현재까지의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그럼에도 녀석은 오늘처럼 용기있게 해결 할 수 있을게다.
비록 가장 좋은 길은 아닐지 몰라도
혼자서 울거나 물러서지 않으면서
나름의 길을 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녀석은
손씻기 전에 몇번 물을 내리고 깨끗한 물에 씻었다고 말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