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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와 시현이네

시내집 이야기 3

2004.05.04 00:13

폭우 조회 수:438

토욜날 한가하게 앉아서 TV를 보자니 엉덩이에 발이 달린 시내가 불안한 듯 왔다갔다한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모두 TV를 보니 속이 터지나보다.

그러더니 이리 저리 '시내의 밥'을 찾았다. 아빠는 모른척 보던 프로그램에 집중했고, 나도 그랬다. 그러나 역시 산만한 엄마가 눈을 돌리다가 시내와 마주치고 말았다.

"엄마엄마토끼이야기해줘"
"엄마엄마토끼이야기해줘"

이쯤되면 말해야한다.

"응알았다. 토끼이야기 알았어"

시내는 두 종류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나는 여우할머니이야기-괴담-와 토끼이야기-우화-를 좋아한다.
주로 내가 재우기 위해서 협박하기 위해서 만든 이야기가 여우할머니이야기고, 교훈과 가르침을 위해 만든 이야기가 토기이야기다.
물론 우리 시내는 토끼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 오늘은 지혜로운 토끼이야기를 해주마"

얼른 이야기하나 해치우고 TV봐야지.......

"어느날 호랑이가 말이쥐...."

한문장이 채 만들어지기도 전에 시내가 내 입을 가로막았다.

"엄마 엄마 무슨 호랑이???? 싫어. 토끼이야기해줘"

"그래 토끼이야기인데 호랑이가 먼저 나오는거야 기다려"

다시 우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랑이가 어느날 길을 걸어가는....."

또다시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막았다.

"엄마엄마 무슨 호랑이?"

또 시작이다.

"응 힘센 호랑이. 되었냐"

"엄마엄마 무슨 힘센호랑이"

무슨 힘센호랑이라니..... 늘 이렇게 별것 아닌 것으로 나를 미치게 한다.

"그냥 힘센호랑이. 이름도 모르고 생김새도 잘 몰라 여하튼 그냥 호랑이야. 조용히 안하면 이야기 안할거야"
다시 조용해지고 집중하는 폼을 취했다.

"힘센 호랑이가 어느날 길을 걸어가고 있었..."

또다시 말이 끝나기 전에 시내가 말을 막았다. 속이 부글부글-_-

"무슨 길?"

으이그...... 내가 참자.

"응 그냥 들판같이 잔디가 있는 길. 이젠 되었느냐? "

빨리 말해야지.. 가능하면 빨리 ㅋㅋㅋㅋ

"엄마엄마 어디에 있는 길인데"

헉... 이게 진짜-_-
.
"그냥 길이라구.....길...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길이야 들판."

내 목소리에 기가 팍 죽은 시내는 그냥 듣기로 했나부다.
그렇지 목소리가 커야 되는 구나.......

"힘센 호랑이가 어느날 길을 걸어가는데, 큰 웅덩이에 푹 빠졌어요."

"엄마 엄마 웅덩이가 뭐야"

머리가 지끈 지끈 거린다.

"동물을 잡으려고 땅을 깊이 파놓은 거란다. 되었느냐?"

"엄마엄마 왜 동물을 잡아?"

앗!!

"몰라 동물을 잡아서 죽여서........."

이렇게 잔인한 말은 해서는 안되지...

" 아 나 못하겠어. 얘가 왜이래. 여봇 당신이 해요."

나는 벌러덩 누워서 우리집 유일한 남자에게 부탁했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감있는 왕자의 미소를 지으며 시내를 자기 쪽으로 돌렸다.

"응 시내야 아빠가 토끼이야기를 해줄께"

시내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아빠를 잡아먹기 위해 노려보았다.

아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시내가 질문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입을 벌리고 눈은 멍하니 다른 곳을 주시한 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시내야그냥호랑이가길을가다가웅덩이에푹빠지고말았는데저기서토끼가왔는데......"
아빠는 빠른 템포를 계속 유지하면서 시내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침을 튀기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갔다.

그것이 비밀이었다.

시내는 질문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아쉬워하는듯 보였지만 아빠의 이야기에 끌려다니고 있었다. 질질.........

역시 아빠는 엄마보다 한 수 위였다.

그리고 이 간결하고 깨끗한 결말을 보라
"호랑이가말했어토끼야날구해줘그러자토끼가구해주자호랑이가......
토끼를잡아먹었어요끝"

에잉?
물론 나도 얼떨떨했지만,시내가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아빠아빠왜토끼를잡아먹어왜토끼를잡아먹어토끼불쌍해"
"아빠아빠왜토끼를잡아먹어왜토끼를잡아먹어토끼불쌍해"
:
:
"그게 뭐야. 아이에게 그럴듯한 동화이여야지."
징징거리는 시내를 보니 너무 안되보여서 아빠에게 부탁했다.

"그래 알았어.까짓것"

다시 왕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내야 토끼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어"

시내는 징징을 멈추고 아빠를 바라보았다.

"토끼를 잡아먹은 호랑이는 막 뛰어가다가 돌에 걸려서 넘어졌는데,
죽었어. "

푸하핫!

여하튼 대충 이야기가 끝났다.
아빠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권선징악이였다.

그 다음은 어땠을까?.......
시내에게 아빠가 맞아 죽을뻔했다.
왜냐하면 시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토끼를 죽였으니....
이젠 다시는 산 토끼가 아니라 죽은 토끼이야기를 들어야하니 마음이 아팠나보다.

시내는 내가 지어준 어설픈 토끼 한마리를 무척 좋아했나부다..........
그 토끼를 마음에 꼭꼭 넣어두고 꺼내 보고싶을 때마다 내 이야기를 통해 들은 것이다.
그 토끼로 인해 시내는 즐겁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한 것이다....
이런 우리 시내가 자라서 만약 자기 마음 속에 예수님이 늘 계셔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즐거울까?

.............................................................the end


20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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