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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와 시현이네

시내집 이야기 4

2004.05.04 00:13

폭우 조회 수:398

*개가 떡이 된 기막힌 사연


시내와 시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길이다.
낯선 여자분이 미소를 쪼개며 나를 반기는 폼이 "도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면 분명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 일거라 생각하며 굳은 표정으로 지나치려했다.

아싸 !
" 영어학습지를 전하는 사람" 이었다.
최대한 친절을 보이며 거절하고 싶었는데,
세상을 다 알려고 드는 호기심에 찬 시내가
덥석 받아서는 챙겨들고 앞으로 달려간다..

으흐흐흐

나도 뛴다.

영어라...-_-;

18년 세월을 영어와 살아왔지만, 여전히 생소한 영어..
영어로 인한 나의 깊은 상처를 아는지 모르는지
시내는 기대에 찬 눈으로 이것저것 물어본다..
그것도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어엄망 이괘 뭐얼지?"

"으응 시내야 엄마를 따라해보렴"

"여기 개는 떡~ , 닭은 취킨 ~ , 고양이는 캣트~ , 새는 버얼드~"

하고 나니 더한 자신감이 생긴다..

집에 도착해서 아빠와 함께 앉아서 스티커를 붙이고 오리고 풀로 붙여 재미를 더해가는 시내 앞에서 아빠는 그 어떤 확신도 그 어떤 발음도 보이지 않고 묵묵히 오려주고 붙여만 주다.

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따라 꽤 과묵하구만..'

아직 영어와 그림을 연결시키는 것이 헷갈리는지 설거지를 하는 내게 자꾸만 물어보는 시내에게 뭔가 기억에 남을 학습법을 생각했다.

"시내야 이 닭은 영어로 뭐지?"
".........."
역시 모르는 군 ... 흠...-_-

"시내야 닭 먹으러 가면 엄마가 치킨 달라고 하지? 그 때 치킨이 바로 닭이라는 것이야 알았니"
그러자 회심의 미소를 보이며 알았다는 듯 끄떡인다..

"응 닭이 우리에게 맛있는 치킨을 주는거야 엄마?"

하 ^^하 ^^하 *^___________^*

역시 내 딸이다.

" 구럼 구럼 알갔지?"

" 자 이제 개 구나. 어디보자.. 개는 그러니까..떡-억- 이라고 발음하는 거야. 자 따라해봐 떠억~ "

그러자 알았다는 듯 시내도 떠억 한다.

흐흐 좀 이상한가 -_-;

그!
리!
곤!

한마디 한다.

"엄마 엄마. 닭은 우리에게 맛있는 치킨을 주고, 개는 우리에게 맛있는 떡을 주는 거지?"

ㅠ.ㅠ

그 뒤로는 가능하면 엄마는 영어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이 눈을 통해 여과해 본 세상은 늘 새롭다..
그래서 작은 아이 앞에서도 진지해 질 수 있나보다.
오늘도 조금더 성숙해져야함을 고민해본다.

............................ the end


200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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