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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성경신학”(“Biblische Theologie”)이란 무엇인가?

2006.03.09 15:11

폭우 조회 수:26911 추천:60

“성경신학”(“Biblische Theologie”)이란 무엇인가?


김창선


1. 들어가면서
  
우리 교계는 성경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이러한 애착은 주일 아침 고급스런 가죽 장정의 성경을 손에 들고 발걸음을 교회로 재촉하는 뭇 교인들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으며, 또한 개 교회마다 여러 종류의 성경 공부반을 개설하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학교의 설립에서 마찬가지로 성경에 대해 알고자 하는 뜨거운 관심도 읽을 수 있다. 심지어 숱한 교단의 분열 역시 성경 해석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한 요즈음 교계는 성경말씀 자체를 강조하는 이른바 “강해 설교”에 관심이 많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한마디로 한국 교계는 성경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걸맞게 성서학에 대한 글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성서학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신학 혹은 성경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은 소홀히 다루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러한 태도의 이면에는, 성서학을 엄격한 학문성을 갖춘 전문분야로 생각하기보다는, 성경에 담겨 있는 여러 내용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이해했다고 안주하는 자세, 다시 말해 학문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무비판적이며 자기도취적인 해석 정도로 이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해본다.
   우리는 흔히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한다. 이 말을 비기독교인을 염두에 둔 단순히 자기방어적인 수사적 진술로 여기지 않고, 진정으로 우리의 심정 깊이 받아들이는 한, 우리는 성경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긴다. 그런데 성경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의 신앙고백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는 성경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놓여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만의 사고와 아집에 찬 이해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고 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해를 찾는 일이다. 신앙은 미신, 맹신 혹은 광신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성적인 이해를 필요로 한다(fides quaerens intellectum). 이는 특히 우리 교계에 절실히 요청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과연 우리 교계는 엄격한 학문으로서의 성서학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우려된다. 성서학은 신학 전체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성서학이 “복음의 진리”를 바로 해석하여 제시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될 때, 교계 전체의 정신적 침체가 초래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여기저기서 거론되고 있는 한국교계의 부패상은 우리 성서학계의 부족함과 결코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성서학은 개 교단적인 구습과 옛 사고에 얽매여 이끌려갈 것이 아니라, 교단의 좁은 이해관계를 넘어서 전체 교계를 향도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로써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 책임을 지는 학적인 성서학에 대한 관심이 더욱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필자는 “성경신학”(Biblische Theologie)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문제는 사실상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진부한 대상으로 들린다.1) 그런데 199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시각 하에 특히 독일 신학계의 폭넓은 관심을 받으며 성서학의 한 중심주제로 급 부상한 후, 이 주제는 현재 독일 성서학자들 사이에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2) 이것은 새 천년이 시작된 현재 신학의 모습을 규정짓는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이 우리 신학계에는 별로 소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글에서 필자는 성경신학의 탄생과 발전을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 간략히 살피고, 아울러 신구약성경의 상호 관계성 규명에 초점을 맞추는 “전체성경신학”(Gesamtbiblische Theologie)과 관련된 최근의 연구성과를 소개 및 검토하는 가운데 “성경신학”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고자 한다.

2. 성경신학의 태동과 발전

2.1. 성경신학이 태동하기 이전 시대

   신약성경이 생긴 이래 기독교 초창기에서부터 중세 가톨릭 교회의 시대까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경신학은 발전할 수 없었다. 당시 교회의 교리는 성경의 내용과 일치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에 걸맞게 12세기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는 “신학”(Theology)이라는 단어는3) “성경적”(biblical)이라는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교회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 있던 당시 신학은 당연히 성경적인 것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도 이른바 성서학은 교리학의 보조학문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따라서 성서학은 교회가 표방하는 교리적 진술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 정도로 이해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보편화된 생각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성서의 권위만을 인정하여 성서로 되돌아갈 것을 주창한 종교개혁운동의 영향이었다. 특히 마르틴 루터의 영향 하에 “오직 성서로만”(“sola scriptura”)이라는 개신교 원칙이 설정됨으로써, 성경을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과 스콜라주의 신학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었다. 이 원칙에 따라 성경은 더 이상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에 종속되지 않게 되었으며, 성경의 권위가 교회의 권위를 능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성경의 가르침이 단지 교리를 보조하는 역할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역으로 교리는 성경으로부터 유추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4) 칼빈은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1536년)에서 성경이해가 무엇보다도 우선적이고, 교리는 인식의 원천인 성경으로부터 유추되어 나온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교리에 대한 성경의 우위는 “성경은 오직 스스로 해석한다”(“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는 유명한 말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성경의 자기해석의 원칙은 향후 성경신학의 발전에 토대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자들의 작품은 성경신학과 교의 체계(Lehrsystem) 사이의 관계에 관한 방법론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성경신학(theologia biblica)이 교의신학(theologia  dogmatica)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합리주의와 진보적 사고의 영향을 받아 미신, 편견, 권위적인 사고에 저항하는 17-18세기 유럽의 정신 운동인 계몽주의의 영향이 컸으며, 그 후 가블러의 시대에 와서 성경신학은 드디어 독립된 학문분야로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2.2. 성경신학의 홀로서기

2.2.1. 요한 필립 가블러(Johann Philipp Gabler)

   요한 필립 가블러(1753-1826)는 1787년 3월 30일 알트도르프(Altdorf) 대학에서 교수 취임 강연을 하게 되는데, 이 강연은 향후 새로운 연구 방법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De iusto discrimine theologiae biblicae et dogmaticae regundisque recte utriusque finibus”[= “성경신학과 교의신학의 올바른 구분과, 또한 이 양자의 목적에 관한 바른 정의에 대하여”]. “성경은, 특히 신약성경은 유일하게 빛나는 원자료입니다. 이로부터 기독교의 모든 진실하며 확실한 인식이 샘솟습니다”라고 시작되는 이 강연에서, 가블러는 “독자적이며 변치 않는 기초”로 이해한 성경신학의 역사적인 성격과 “항시 변하게 마련인” 교의신학이 내세우는 지침적이며 교훈적인 성격을 대조시켰다:

“성경신학은 성경기자들이 신적인 문제에 관하여 생각한 것을(quid scriptores sacri de rebus divinus senserint) 전해줌으로써 역사적인 성격을(e genere historico) 띠고 있다. 그와 달리 교의신학은 한 특별한 신학자가 자기의 이해능력, 시점, 시대, 장소, 종파와 학파, 또한 유사한 다른 것들에 따라 이성적으로 신적인 문제에 대하여 성찰하는 것을 가르침으로써 교훈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와 같이 성경신학과 교의신학을 서로 구분하는 가운데, 가블러는 “교리가 주석에 종속되어야 하지, 역으로 주석이 교리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5)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성경신학을 역사적인 연구 분야로 규정한 가운데 다음의 세 가지 방법론을 중시하였다.6)  
첫째, 신구약성경의 내용적인 통일성을 보증하는 영감을 성경신학적 고려의 대상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결코 사람들의 이해력과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무력화시킨 것은 아니라고 보았으며, 또한 신적 권위가 아니라 성경기자들이 무엇을 생각하였는가를 살필 것을 주장하는 가운데, 영감설은 성경적 표상을 교리적으로 사용할 때 비로소 다룰 수 있다는 입장이다. 둘째, 성경신학의 과제를 각 성경기자의 개념과 생각을 주의 깊게 수집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성경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 나타나는 다양한 진술을 구분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문서비평, 역사비평, 철학비평의 도움을 받아 그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셋째, 역사적인 시대구분을 중시하는 가운데, 역사연구로서의 성경신학은 그 정의상 옛 종교와 새 종교의 여러 시대들로 구분된다고 보았다.
   가블러는 훗날(1802년 이후로부터는 명백히) 성경신학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즉, 넓은 의미로 사용된 “진정한 성경신학”(wahre biblische Theologie)과 좁은 의미로 사용된 “순수한 성경신학”(reine biblische Theologie)으로 구분하였다. “진정한 성경신학”이란, 성서기자가 제시하고자 한 진정한 의미를 역사적으로 서술한 신학을 가리킨다. 이때 “진정한”이란 단어는 성서기자의 생각을 왜곡시킴이 없이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철저한 본문 해석을 통해 성서기자가 본래 나타내고자 한 진정한 의미를 제시하는 서술적인 과제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와 달리 “순수한 성경신학”이란 “오늘날 기독교적인 종교의 가르침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는 것만”을 가리킨다. 여기서 “순수한”이란 단어는 항시 변하기 마련인 시대적 사고와 ‘혼합되지 않은’ 차원을 나타낸다. 철학적인 비판을 통해 순수한 성경적인 기본 사고를 세상적인 사고와 구분하여, 순수한 기독교적인 종교의 가르침(reine christliche Religionslehre)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하여 시대를 초월하여 적용 가능한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조직적으로 제시하는 규범적인 과제를 지니게 된다.
   가블러는 “진정한 성경신학”을 “역사적인 종교영역”(historisches Religionsgebiet)에 속하는 것으로서 “본래적인 성경신학”(eigentliche biblische Theologie)으로 이해하였고, “순수한 성경신학”은 “철학적인 종교영역”(philosophisches Religionsgebiet)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역사적 관심에 따라 수행되는 “진정한 성경신학”을 넘어서 교의신학을 지향하는 “순수한 성경신학”의 확립에 있었다. 그것은 곧 자신이 처한 시대를 위한 기독교적인 가르침의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이 점에서 가블러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성경을 시대적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 해석학적 과제를 강조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성경본문을 문헌학적이며 역사적으로 풀이하는 “주석”(Auslegen)과 특별한 추론 배후에 숨겨있는 진정한 이유를 밝히는 “설명”(Erklären)을 구분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7) 또한 가블러는 성경신학을 실천신학의 토대로 이해하여, “기독교적인 설교는 성경의 가르침을 토대로 삼아야지, 그렇지 않을진대 기독교적인 설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시각에서 가블러는 성경신학을 독자적인 연구분야로 부각시키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와 같은 가블러의 입장은 향후 성경신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성경신학의 역사와 문제점에 관해 중요한 연구사를 쓴 “한스 요아힘 크라우스(Hans-Joachim Kraus)”는 가블러에 대하여 “신학사를 서술할 때, 요한 필립 가블러를 ‘성경신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학자로 규정하는 데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8)고 말함으로써 성경신학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가블러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런데 향후 성경신학의 발전과 관련하여 가블러 외에 G. L. 바우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2.2.2. 게오르크 로렌츠 바우어(Georg Lorenz Bauer)
   바우어(1755-1806)는 앞서 언급한 가블러가 몸담고 있던 알트도르프 대학의 근동어학 교수로 1789년에 부름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대체로 동료 가블러의 영향을 입어 성경신학과 관련된 다양한 작품을 바우어가 쓴 것으로 간주하나,9) 가블러와 만나기에 앞서 성경신학에 관한 자신의 주요 생각을 이미 정립한 것으로 보인다.10)
   성경 전체를 늘 염두에 둔 바우어는 구약성경신학(1796)에 이어서 1800-1802년에 “신약성경신학”(Biblisch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을 집필하였다. 이 작품은 신약신학의 분야가 구약신학에서 분리되는 최초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바우어는 신약의 빛을 구약에 투영시키려는 옛 방법론을 거부하는 가운데,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여 다루는 것이 불가피함을 역설하였다. 사고의 발전을 중시하면서 역사비평적이고 비교종교학적인 접근을 선호한 바우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약성경의 사고는 구약성경의 사고에 연결되어 있다. 후자는 맹아이고, 여기에서 전자가 자라 나온다. 신약적 사고가 무엇을 근거로 하였는지를 모른다면, 그것을 결코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유래하였다. 구약성경신학에 이어서 비로소 신약성경신학이 나올 수 있다. 신약성경의 어떤 사고가 새로우며, 어떤 것이 이미 알려진 것이며, 또한 계속 발전된 것인지 또한 응용된 것인지 ... 에 대하여 이러한 발전이 가르쳐준다.”

   바우어는 이와 같은 입장에서 성경신학을 “다양한 시대와 성서기자들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견해에 따라 성경으로부터 나온, 그리스도 앞의 유대인들과 예수 및 그의 사도들이 갖고 있던 순수하며 온갖 낯선 표상으로부터 깨끗해진, 성경으로부터 나온 종교론의 발전”11)을 묘사한 것으로 정의하였다. 이처럼 신구약성경과 관련된 발전의 시각을 강조함으로써, 바우어는 구약과 신약 사이에 놓인 연속성과 동시에 불연속성의 문제점을 성경신학의 역사상 최초로 명백히 드러낸 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12) 바우어의 공헌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구약과 신약을 포괄하는 성경신학적 해석학을 나름대로 정립한 점에 있으며, 신구약 안에 담긴 내적 구조의 연결을 밝히고자 애썼다는 데 놓여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바우어는 오직 문법적이고 역사적인 방법론(grammatisch-historische Methode)을 통해서 연구할 때, 비로소 연구목적에 합당한 “순수한”(=역사비평적인) 성경신학의 연구가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또한 순수한 성경신학 위에서야 비로소 교리사가 구축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바우어가 이성주의에 근거한 역사비평적인 방법론을 철저히 적용한 것은 그의 위대성과 아울러 그의 한계를 보여준다. 성경신학의 구축과 관련하여 가블러가 성서의 증거를 단순히 역사적으로 재건하는 것보다는 성경의 ‘해석’(Interpretation)에 더 큰 관심을 둔 것과 달리, 바우어는 해석보다는 성경 가운데 담긴 다양한 증거를 역사적으로 ‘재구축’(Rekonstruktion)하는 일에 전념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13)

2.3. 가블러와 바우어가 남긴 공헌과 오늘 우리의 상황
   가블러와 바우어로부터 비롯된 역사비평적이며 해석학적인 인식은 향후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당시로서는 놀라운 통찰이었다. 그들이 남긴 통찰은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14)
첫째, 성경을 역사비평적으로 연구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15) 이 인식은 특히 오늘날 우리 신학계 분위기에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마치 역사비평학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문학비평의 시대가 왔다고 보는 시각은 너무 편협한 시각이 아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솔한 생각으로 보인다. “성서연구에 이 역사비평적 방법론의 적용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성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스라엘의 역사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가운데 자신을 계시한 분이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16)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학비평은, 역사적 질문은 제기하지 않고 문학적 구조에 관심을 모으면서 성경을 마치 고전문학처럼 다루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많은 문학 비평가들이 성경의 실제 문제를 회피하고, 본문과 그 주제의 실재 사이를 구별하기를 거부하려 하는 것은 성서신학의 신학적 기회를 심하게 손상시킨다”17)고 본 “차일즈(B. S. Childs)”의 평가는 정당하다. 독일 성서학계는 “역사비평적 방법론은 공격받을 수 없으며, 철저히 적용되어야 한다”18)는 것을 여전히 천명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 첫 번째 인식과 관련하여 성경신학은 교리의 일방적인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 신학을 전문적인 학문 과제로 삼고 연구하는 이들은 예외 없이 신앙 노선과 관련한 이른바 “보수-자유 논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본질적으로 볼 때,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신학자는 이미 자신의 사고 깊이 자리잡은 신앙적 전제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신학은 개개의 학자가 갖고있는 전통 교리적 혹은 신앙적 확신과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지극히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의 확신에서가 아니라, 외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일이 생긴다면, 이것은 신학의 학문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일과 다름없다. 성경신학(혹은 성서학)이 오직 그 자체의 학문성에 기초하여 바로 설 때, 궁극적으로 “교회”(Ekklesia)에 봉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셋째, 성경적 진술에 대한 ‘재구축’과 ‘해석’ 사이의 관계설정이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현재까지 계속 논의되고 있는 문제이다.19) 재구축과 해석 사이의 문제는 앞의 두 가지 사항과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서,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성경은 수 천년 전에 기록된 문헌이기에 시간적이며 문화적으로 오늘 우리의 삶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으며, 이로 인한 당시 사람들의 사고와 현대인의 사고를 연결짓기 위해서는 엄청난 해석의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교계는 이러한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도외시하는 가운데, 과거에 주어진 해석에 매달리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이와 같은 우리의 상황을 고려할 때, 가블러와 바우어가 남긴 성경신학적 노력과 고민은 오늘 우리 신학계를 위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2.4. “성경신학”을 향한 현대적 노력
2.4.1. 성경신학의 필요성
   우리는 앞에서 성경신학이란 개념을 성경 자체의 신학, 즉 거의 1500년 동안 존속해온 교의신학과 구분하여 성경 자체에 담겨 있는 신학과 관련하여 언급하였다. 교의신학이 성경을 따른다고는 하나 성경 자체가 증언하는 진술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교회의 오랜 전통적인 입장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고있는 것과 달리, 성경신학은 정경으로서의 성경 자체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근대에 들어와 가블러와 G. L. 바우어 이래로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은 따로 분리되어 독자적인 연구 영역으로 분화되었다. 이와 함께 성서학의 전문화 현상이 점차 두드러지면서 신구약간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20세기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이를 문제로 여기기 시작한 학자들은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신구약성경신학을 함께 아우르는 “전체성경신학”(Gesamtbiblische Theologie)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구약학자인 “플뢰거(Otto Plöger)”는 1956년에 나온 “개신교 교회 사전”(“Evangelische Kirchenlexikon”) 제1권에서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의 독자적인 진술들 위에 기초한 전체성경신학”을 구축하는 것을 “우리의 역사적 인식과 교리적 요청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시대적 사명으로 보았다.20) 또한 신약학자인 “쉴리어(H. Schlier)”는 그의 논문 “신약성서신학의 의미와 과제”(1957)에서21) 신약성서신학의 과제는 신약 각 문서에 담겨있는 다양한 신학들로부터 통일성을 밝혀내는 일을 넘어, 궁극적으론 “구약성서신학과의 내용적인 통일성을 입증”함으로써 완성된다고 말함으로써 전체성경신학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성서학자들뿐만 아니라 조직신학자들도 성경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빌트베르거(H. Wildberger)”는 “성경신학을 향한 도상에서”(1959)라는 긍정적인 프로그램을 담은 글에서 “아무 연관 없이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을 병렬시키는 것 이상의 것인 성경신학이 성서주석의 과제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하였다.22) 같은 관심을 나타내면서, “벡(M. A. Beek)”은 “구약과 신약 신학을 서로 연결시키지 않고 단순히 나열하는 것보다는, 먼 안목에서 볼 때 성경신학이 기독 공동체에게 보다 만족스러울 것”으로 전망했다.23) 또한 “에벨링(G. Ebeling)”은 신구약의 상호 관련성을 연구할 것을 강조하면서 “성경을 전체로 이해하는 것, 즉 무엇보다도 성경의 다양한 증언들의 내적인 통일성을 묻는 신학적인 문제들을 기술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가운데, 성경신학으로 말미암아 신학의 여러 전문분야가 밀접히 협동작업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24)

2.4.2. 성경신학의 과제
   앞서 언급한 학자들의 진술에서 드러나듯이, “성경신학”의 과제는 한마디로 신구약 성경의 통일성에 대하여 묻는 것이다. 신구약 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질문은 성경의 두 부분을 이루고 있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질문은 2세기 중엽 “마르키온(Marcion)” 이래로 기독교 신학의 첨예한 문제로 오늘날까지 제기되곤 하였다. 예컨대,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은, 신구약성경의 통일성은 단지 외형적인 것일 뿐이고,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에는 오히려 긴장이 큰 것으로 간주하였다.25) 그러면서 마르키온의 영향을 입어 구약을 과소평가 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2세기에 구약을 폐기시키는 것은 하나의 실수였다. 이를 교회가 거부한 것은 정당한 것이었다. 16세기에 구약을 그대로 보유한 것은 종교개혁이 아직 피할 수 없었던 하나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개신교가 구약을 정경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은 종교적이며 교회적인 마비상태의 결과이다.”26) 또한 독일의 저명한 조직신학자로 통하는 “히르쉬(Emanuel Hirsch)”는 구약과 신약의 근본적인 분리를 강조하면서 구약과 신약이 영원한 ‘대립적인 긴장’ 가운데 있다고 보았다.27)
   그러나 구약성서를 기독교의 경전으로부터 제거하려는 시도는 정당하지 못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약성서를 신약성서와 무관한 독립된 두 가지 책으로 보는 시각도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볼 때 타당하지 않다. 나사렛 예수와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 모두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교의 시작서부터 이스라엘의 성경을 공유하였다는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최초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 사건, 즉 예수의 사역과 죽음 및 부활을 “(구약)성경에 따라”(고전 15:3-5) 이루어졌다는 신앙고백만 고려하더라도 신구약성서 사이에는 내적인 연관성이 놓여 있음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구약성경이 없이는 신약성경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신구약 상호간의 관계성을 묻는 성경신학적 과제는 회피할 수 없는 중요한 신학적 과제임을 알 수 있다.28)

2.5. 다양한 성경신학적 모델
   신구약성서의 관계성과 관련된 질문은 어제오늘의 질문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역사와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교회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해석모델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주로 중요한 모델에 국한하여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2.5.1. 약속과 성취(Verheißung-Erfüllug) 모델
   신구약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모델로서, 고대 교회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가장 커다란 영향력이 있는 모델이다. 한마디로 구약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약속이 신약에 와서 성취된 것으로 여기는 해석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구약성서에 담긴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가운데에서 전적으로 “충만해진”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신약성경 가운데 나타나는 구약의 직간접 인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주어진 해석이다. 종말론적인 차원을 강조하는 가운데, 신약에서 출발하여 구약으로 향하는 시각을 취한다. 이 모델이 안고 있는 약점은, 신약의 성취가 구약의 약속에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예컨대,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적인 메시아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 모델을 표방하는 주요 학자들로서 “아이히로트(W. Eichrodt)”, “베스터만(K. Westermann)”, “침멀리(W. Zimmerli)” 등을 들 수 있다.29)

2.5.2. 유형론(Typologie) 모델
   이 모델은 앞서 언급한 “약속과 성취의 모델”을 근거로 한 가운데 이를 한층 구체화시킨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약과 신약을 유형론적인 관계 속에서 연구하는 것으로, 구약의 인물, 관례, 사건, 장소, 신앙적 진술 등을 신약에 나오는 것들을 위한 모형과 예시로 파악한다. 이로써 구약성서의 역사는 신약성서를 위한 전 단계의 역사로 파악된다. 구약이 “원형”(Typos)을 이루다면, 신약은 “대조형”(Antitypos)을 이룬다. 신구약성서는 한 분 하나님을 증거하며 또한 그리스도는 구약성서를 넘어서는 분임을 전제한다. “폰 라트(G. von Rad)”와 “고펠트(L. Goppelt)”가 대표적이다.30) 구약성경 내에서 유사한 유형의 구조를 찾을 수 있으나(예컨대, 출애굽 사건/ 바빌론 탈출 사건),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모델은 신약에서 출발한 사고를 구약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짓다(“아담-그리스도-유형론”이 좋은 예다). 이 모델이 안고 있는 약점은, 신구약 사이에 상응하는 개별적인 면을 찾을 수 있으나, 이를 전체 성경에 적용시키기는 어렵다는 데 놓여있다.

2.5.3. 구속사(Heilsgeschichte) 모델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단순한 역사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구속사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신약의 증언은 하나로 통일된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시각에서 볼 때 역사의 통일성을 나타낸다는 입장이다. 이 모델은 구약에 나오는 신앙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증대하는 대망의 역사로 파악한다. 보스는 계시의 역사를 성서에 보도되는 객관적 사건들과 단순히 일치시켰으나, “쿨만(O. Culmann)”은 구속사를 특별한 형태의 역사로 보는 가운데, 일반 역사와 종종 서로 얽혀있기도 하나 대체로 이와 명확히 구분되는 것으로 이해한다.31) 역사의 특수성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부각시키는 강점을 안고 있는 이 모델은 신약성경 가운데 부분적으로 나타나나(특히, 누가의 작품), 구속사적인 사고 구조를 신구약 전체로 확대시키기는 어렵다는 난점을 안고 있다.

2.5.4. 계시로서의 역사(Geschichte als Offenbarung) 모델
   구속사 모델을 근거로 발전된 것으로, 전체 역사를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하는 해석이다. 이 모델은 보편사를 성경신학적인 해석학 범주로 이해한다. 모든 신학적 진술은 역사의 틀 내에서만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가운데, 역사는 인간 및 온 피조물과 더불어 하나님의 계시로서 세상 가운데 감추어진 미래를 향해 있으며, 그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 가운에 이미 계시되었다고 본다. 역사의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사고로 특징 지어진 이스라엘의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며, 신구약을 포괄하는 역사는 하나로 연결된 하나님의 활동하심 가운데 기초한다는 입장이다. 예수의 부활을 선취된 역사의 종말로 보는 시각을 중시한다. 대표적인 학자로 “판넨베르크(W. Pannenberg)”를 들 수 있다.32) 이 모델의 약점은, 역사와 계시를 동일시하는 시각은 성서적인 계시 이해와 거리가 있다는 데 놓여 있다.

2.5.5. 기독론적인 해석(Christologische Deutung) 모델
   구약의 본문이 담고 있는 독자적인 케리그마에 대해 묻지 않고, 마치 그 본문 가운데 숨겨져 있다고 생각되는 선포를 기독론적인 해석을 통하여 밝혀내고자 한다. 간단히 말해 구약과 신약이 모두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구약은 그리스도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신약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봄으로써 신구약을 서로 연결시킨다. 이와 같은 해석은 이미 신약성서 기자들 가운데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출 17:1-7에 언급된 “반석”을 그리스도로 해석하였는가 하면, 또는 히브리서 1장에 인용되고 있는 여러 시편 구절(시 2:7; 45:6; 97:7; 110:1)을 그리스도와 관련시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의 대표자로 “피셔(V. Fischer)”를 들 수 있는데,33) 구약 성서 가운데 나타난 여러 가지 사고와 이야기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향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럴로(P. Grelot)”는 구약성서 가운데 그리스도 자신이 말하며 사역하며 고난을 받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였다.34) 그러나 구약성서를 천편일률적으로 알레고리의 시각을 통해 오로지 그리스도를 목표로 한 진술로 해석하려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35)

2.5.6. 전승사적인 해석(Traditionsgeschichte) 모델
   이 모델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의 연결을 전승사를 통해 즉, 전승과정의 연속성(Kontinuum) 혹은 통일성(Einheit) 가운데 파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구약성경에서 출발한 전승과정(Traditionsprozeß)이 신약에서 완성된 것으로 여긴다. 전승과정이란 여러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방향을 제시하며 종국의 목적을 지향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종국의 목적은 그리스도 사건이다. 따라서 성경신학의 과제는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전승의 연결 고리와 과정을 찾아 밝히는 데 있다고 본다. 이 모델을 대표하는 학자는 튀빙엔 대학의 구약학 교수로 은퇴한 “게제(H. Gese)”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36) “성경적인 전승은 전체적인 것으로, 구약이 신약 가운데 또한 신약과 더불어 전체가 된다”고 보아, 단지 “하나의, 성경적인 전승형성”(“eine, die biblische Traditionsbildung”)만이 있으며,37) 또한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을 통해 탄생되며, 신약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통일체, 하나의 연속체로 된 전승과정의 마감을 이룬다.”38) 신구약성서에 놓여있는 전승의 연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모델은 그리스도를 지향하지 않는 구약 전승을 배제시킬 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의 독특성이 약화될 여지가 있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2.6. 성경신학을 지향하는 최근의  시도  
   1950-60년대에 여러 학자들이 성경신학의 중요성을 새롭게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 결과가 따르지 못했다. 그래서 폰 라트는 그의 유명한 저서 “구약성서신학” 제2권의 마지막 “회고와 전망”(“Rückblickd und Ausblicks”, 41965) 부분에서 성경신학의 과제가 조만 간에 성취되기 어려울 것으로 여기면서 “그러한 성경신학이 어떤 모습을 띨 지 상상하기 어렵다”는 약간 회의적인 전망을 하였다.39) 또한 “메르크(Otto Merk)”는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TRE) 제6권(1980)의 “Biblische Theologie II”(p. 472)라는 항목에서 신약성서연구의 현재 상황에 따르면 구약과 신약을 서로 긴밀히 연관시키고자 하는 전체성경신학을 지향하는 본격적인 연구가 아직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전체성경신학과 관련된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글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며,40) 본격적인 논문모음집이 연쇄물의 형태로도 출판되고 있는 중이다(예컨대, “Jahrbuch für Biblische Theologie”[=JBTh] 제1권이 “성경신학의 통일성과 다양성”[“Einheit und Vielfalt Biblischer Theologie”]이란 주제로 1986년에 출판). 전체성경신학을 향한 노력이 한층 구체화되면서 1990년대에 와서는 드디어 하나 둘씩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성경신학적인 시도들은 모두 각 저자가 오랜 신학적 숙고 끝에 원숙한 단계에서, 다시 말해 자신들의 거의 평생에 걸친 신학작업에서 비롯된 역작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2.6.1. 차일즈(Brevard S. Childs)
   예일 대학의 구약학 교수 차일즈는 1992년에 “Biblical Theology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라는 저서를 출판함으로써, 성경전체적인 신학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처음으로 실천에 옮긴 사람이다.41) 그의 관심은 정경적인 접근방식(“cannonical approach”)을 통한 성경신학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다. 정경적 접근은 그의 해석학을 이해하는 핵심개념이다. 정경이란 범주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영역을 나타내는 준칙”42)으로 이해하며, 성경신학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문맥으로 간주한다. 정경의 문맥 안에서 성경신학을 수행하는 것은 성경전승이 지니고 있는 규범성을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정경이 된 성경의 최종형태와 정경 안에 정해진  각 성서문헌의 순서에서 차일즈는 신학적인 성경 해석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43)
   이와 같은 정경적인 접근이 나오게 된 배경은, 성경을 역사적 과거의 문맥에만 가두어둠으로써 점차 신앙공동체의 관심을 잃고 있는 기존의 성서접근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특정 주제를 통해 성경 전체의 내용을 관통하는 개념을 찾으려는 시도가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에 놓여 있다. 정경적 접근을 통해서 차일즈는, 주관에 빠진 편향된 성경 해석에 대항하여 정경의 객관성을 지키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로써 구약성경 속에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내용을 찾는 가운데, 구약성경이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문서로서 갖고 있는 고유의 권리를 밝히고자 한다.44)
  
2.6.2. 휘프너(Hans Hübner)
   괴팅엔 대학 신약학 교수 휘프너는 모두 세 권으로 이루어진 역작 “신약정경신학”을 저술하였다: Biblisch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제1권: Prolegomena, Göttingen 1990; 제2권: Die Theologie des Paulus und ihre neutestamentliche Wirkungsgeschichte[=바울신학과 이것이 신약에 미친 영향사], 1993; 제3권: Hebräerbrief, Evangelien u. Offenbarung, Epilegomena, 1995).
   “실존론적 성서해석”(existentiale Interpretation)이라는 불트만의 입장을 수용하는 가운데 휘프너는 성경신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성경신학이란 결국 오늘날 새로운 요청, 즉 전체 성서를 대상으로 하는 신학의 요청이다. 따라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신학적인 통일체로 이해하고자 하는 신학의 요청이다.”45) 거의 모든 신약의 전승자들이 구약의 전승을 자기들의 신학적인 논증에 관련시키는 가운데 구약의 전승을 새롭게 해석하였다는 사실에 신구약성서의 신학적 연관성이 결정적으로 드러난다고 보면서, 신약성서기자들이 구약성서를 신학적으로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를 밝히는 일을 신약성서에 담겨 있는 신학적 작업의 핵심으로 여긴다. 따라서 신구약성서가 맺고 있는 신학적인 관계규명을 위해 신약에 나타나는 구약성서의 직·간접 인용문에 특히 관심을 기울인다. 이때 구약의 인용문은 유대인의 마소라 본문이 아니라 그리스어로 기록된 칠십인경(LXX)을 토대로 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구약의 인용문들이 신약의 본문 가운데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구약성서는 그리스도 사건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새로워진 실존에 적용되는 전적으로 새로운 본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휘프너는 “구약성경 자체”(“Vetus Testamentum per se”)와 “신약에 수용된 구약”(“Vetus Testamentum in Novo receptum”)을 구분한다. 이와 같은 시각을 갖고 휘프너는 신구약성서가 맺고 있는 신학적 관련을 “하나의 신학적 전체로 모으고자”(“zu einem theologischen Ganzen zusammenzuführen”) 한다.
   신약에 전제되거나 인용된 구약과 전승되어 내려온 구약성서 자체를 구분하는 이와 같은 휘프너의 시도는 일면 설득력이 있다. 구약 전체가 신약성서에 긍정적으로만 인용되지 않고, 신약이 구약의 내용을 넘어서는 것을 제시하거나 구약의 내용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구분은, 기독교가 유대인 특유의 히브리 성서 해석의 권리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열린 시도로 간주되나, 구약성서 자체를 기독교적 신학의 관심에서 배제시켰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2.6.3. 슈툴막허(Peter Stuhlmacher)
   튀빙인 대학의 신약학 교수 슈툴막허는 이제까지의 자기의 신학연구를 종합한 두 권으로 이루어진 “신약성경신학”(“Biblisch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을 출판하였다(제1권: Grundlegung. Von Jesus zu Paulus[=기초공사: 예수로부터 바울에게], Göttingen 1992; 제2권: Von der Paulusschule bis zur Johannesoffenbarung. Der Kanon und seine Auslegung[=바울학파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정경과 해석], Göttingen 1999). 앞서 언급한 휘프너의 저서와 동일한 제목을 띠었으나 휘프너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슈툴막허는 신약성서신학을 “구약성서에서 출발하며 구약을 향해 개방된 성경신학으로”46) 이해하고자 한다.
   신구약성서를 따로 서로 분리하여 연구하는 현대적인 경향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면서, “구약과 신약성서는 정경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분으로서 서로 구분되지만, 그렇다고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이들을 분리시킨다면, 신약성서를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또한 신학적으로도 왜곡하여 이해하게 된다”고 경고한다.47)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와 무관하게 정경이 된 것이 아니며, 구약성서는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의 성서로서 교회의 기독론과 구원론 및 윤리를 이루고 있는 성경신학적 토대가 되며, 따라서 신약신학은 성경신학의 두 번째 부분을 이루고 있는 반면 구약신학은 첫 번째 부분을 형성한다고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 위에서 “(구약과) 신약성서의 성경신학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스라엘을 당신 소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보냄 가운데 역사하신 한 분이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증거에 의해 구축된다”고 말한다.48) 튀빙엔의 동료교수 게제의 전승사적 접근을 수용한 슈툴막허는49) 전승에 대한 방법론적인 의심에 반대하는 가운데 성경 전승에 대한 신뢰를 강조한다.
   또한 신약성서는 구약성서를 이스라엘의 성서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약이 제시한 주제와 전승을 수용하며 발전시켰다는 점을 강조하는 가운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신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 선포와 구원선포는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그의 가르침과 더불어 전적으로 구약성서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었다”50)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신구약성서는 대체로 상호 일치하는 주제를 갖고 있다고 전제하는 슈툴막허는 특히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와 화해”(Sühne und Versöhnung)의 주제를 “성서의 중심”(Mitte der Schrift)으로 여기며 이 주제를 통해 신구약성서 사이의 내용적인 연결성을 입증하고자 한다.51)
   이 모델은 구약성서의 독자성과 완전성을 존중하였다는 장점을 갖고 있으나, 신학적으로 중요하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즉 이 모델에 따른 전체성경신학이 미쉬나와 탈무드로 발전된 유대적 전승과, 다른 한편 신약성서로 귀결되는 기독교적 전승이라는 구약성서의 이중의 발전을 인정하는 지에 관한 문제이다.

2.6.4. 튀징(Wilhelm Thüsing)
    가톨릭 신약학자 튀징은 모두 네 권으로 이루어진 신약성서신학을 구상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세 권만 간행되고 중단됨으로 미완성품으로 남게 되었다. 신약성서신학의 토대가 되는 규범을 다룬 제1권은 이미 1981년에 나왔고(“예수에 관한 질문과 부활신앙에 근거한 규범”[Kriterien aufgrund der Rückfrage nach Jesus und des Glaubens an seine Auferstehung]), 오랜 시간이 지나서 드디어 1998년에 제2권이 모습을 드러냈다(“신약성경신학과 예수 그리스도. 신약성경신학의 기초공사 II: 성경신학적 전망을 담은 신약성경신학의 프로그램”[Die neutestamentlichen Theologie und Jesus Christus. Grundlegung einer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II: Programm einer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mit Perspektiven für eine Biblische Theologie, Münster: Aschendorff, 1998]).  1998년 5월 24일 유감스럽게도 빌헬름 튀징이 별세하나, 다행히 제3권의 원고가 이미 탈고된 상태라 이듬해에 출판될 수 있었다(Die neutestamentlichen Theologie und Jesus Christus. Grundlegung einer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III: Einzigkeit Gottes und Jesus-Christus-Ereignis[=하나님의 유일성과 예수 그리스도 사건], Münster: Aschendorff, 1999). 아직 출판되지 아니한 제4권에서는 신약을 전체로 향하는 한 부분으로 보며 동시에 전체로부터 부분을 향하는 가운데 내적 구조를 규명하며 비교하는 내용을 다룰 생각임을 밝혔으나(제2권, p. 15), 고인이 됨으로 말미암아 애석하게도 이제는 더 이상 이룰 수 없게 되었다. 52)
   튀징은 제 2권에서 “성경신학”의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특히 pp. 194ff). 여기에서 그는 신, 구약 성경의 관계에 관한 세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첫째, 성경신학의 범주 안에서 구약의 특징이 전적으로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구약을 신약과 구분하여 조망해야 한다. 그런 다음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전체적인 조망을 밝혀야 한다. 이는 오로지 “신-학”, 즉 하나님 이해의 관점을 통하여 가능하다. 둘째, 성경신학은 구약의 특징과 그 이상의 것을 포함하여야 하며, 또한 신약의 특징과 고유한 그 이상의 것을 포함시켜야 한다. 성경신학은 신구약 성경을 단순히 연결시키고 비교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활동을 통하여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구원현실의 “연속성”(Kontinuität)과 “독특성”(Andersartigkeit)의 양면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성경신학의 목적은 구약과 신약을 신학적으로 연결짓는 것으로,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현실 가운데 놓여 있다. 따라서 성경신학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짓기에 앞서, 양자를 받치는 “축”(Angelpunkt)을 밝혀야 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부활절 이후의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놓여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의 선포, 사역, 죽음, 부활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활동하심을 가리킨다. 유대인 나사렛 예수 안에서 구약성서의 유산과 신약성서적인 구원현실의 맹아가 서로 연결되었다고 보는 가운데, 튀징은 나사렛 예수에 대한 질문이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핵심 질문으로서 성경신학을 구축하는 데 유용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3. 결론

   “성경의 신학적 차원을 회복하자는 도전” 차일즈, <성경신학의 위기>, 34쪽.
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성경신학”과 관련하여 최근 독일학계를 중심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 신구약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질문은 중요한 신학적 질문으로서, 회피할 수 없고 회피해서도 안될 것이다. 신, 구약성경의 통일성, 즉 양자간에 놓인 신학적 상호 연관성에 대한 질문은 이미 신약성경의 증언 가운데 내포되어 있으며,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한 분 하나님의 활동하심이 전체성경의 중심 맥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신앙고백을 담고 있으며 최초의 그리스도 신앙공동체가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구약성경을 배제하고서는, 신약성경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신구약의 관계를 묻는 성경신학의 필요성이 절실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는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된 성경을 서로 무관하게 생성된 전적으로 상이한 두 책의 조합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두 책 가운데 놓인 내적인, 신학적인 연결성을 밝히는 일에 마땅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전체성경신학”(Gesamtbiblische Theologie)을 향한 접근은 지극히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신구약성서의 통일성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 역사비평적인 성경해석과 (조직)신학적인 해석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좁히는 데 공헌할 것이 분명하다.
   신구약성경의 내적인 연결을 나타내는 통일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성경에 속하는 각각의 문서가 지니고 있는 독특성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각 문헌의 독특성에 관심을 갖는 일은 성경의 통일성을 밝히는 작업과 배치된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히브리서 기자가 언급했듯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히 1:1) 한 분 하나님의 활동하심을 각 문서를 진지하게 살펴 옳게 드러냄으로써, 전체 성경에 흐르는 내적인 통일성과 각 문헌의 독특성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단일한 주제 및 특정 시각을 통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전체를 조망하려는 성경신학적 시도가 안고있는 위험성을 경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한 시도로 말미암아, 예수의 삶·선포·그의 십자가죽음과 부활사건에 담긴 옛 전통을 넘어서는 전적인 새로움의 차원이 흐려진다면, 기독교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로회 신학대학교 초빙교수

1) “Biblische Theologie”란 용어는 17세기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간주된다. Wolfgang Jacob Christmann, Teutsche Biblische Theologie (Kempten 1629); Henricus A Diest, Theologia biblica (1643); Sebastian Schmidt, Collegium Biblicum (1671).
2) 논란이 되고 있는 “성경신학”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입장을 담은 유익한 단행본이 출판되었다: Ch. Dohmen/Th. Söding(eds.), Eine Bibel - zwei Testamente. Positionen Biblischer Theologie, Paderborn/München/Wien/Zürich 1995.
3) Cf. G. Ebeling, “Theologie I. Begriffsgeschichtlich”, in: RGG3 VI, 1962, pp. 757ff.
4)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멜랑히톤(Melanchiton)의 저술 Loci theologici(1521)이다. 종교개혁시대의 최초 교리서인 이 작품의 형태와 내용은 바로 로마서에 의존하고 있다.
5) J. G. Eichhorn, Urgeschichte, ed. by J. Ph. Gabler, I (1791), p. XV.
6) H.-J. Kraus, Die Biblische Theologie. Ihre Geschichte und Problematik, Neukirchen-Vluyn, 1970, pp. 53f.
7) 1801년에 쓴 그의 논문 “Ueber den Unterschied zwischen Auslegung und Erklärung, erläutert durch die verschiedene Behandlungsart der Versuchungsgeschichte Jesu”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8) H.-J. Kraus, Die Biblische Theologie. Ihre Geschichte und Problematik., p. 52; cf. 차일즈, <성서신학 上>, 도서출판 은성, 1994, 2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라우스는 가블러의 공적을 극대화시키는 것에는 어느 정도 유보적이다. 가블러는 앞서 활동한 Anton Friedrich Büsching(“Gedanken von der Beschaffenheit und dem Vorzug der biblisch-dogmatischen Theologie vor der alten und neuen scholastischen” 1756)이나 Johann Georg Hofmann(“Oratio de Theologiae biblicae praestantia” 1770)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9) G. L. Bauer,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oder Abriß der religiösen Begriffe der alten Hebräer” (1796). 흔히 바우어의 이 작품을 가블러의 영향에 기인한 것으로 간주한다(H.-J. Kraus, Geschichte der historisch-kritischen Erforschung des Alten Testaments, Neukirchen-Vluyn 21969, p. 151).
10) 이 점을 Otto Merk가 밝혔다(Biblisch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in ihrer Anfangszeit, Marburg 1972, pp. 144ff). 메르크는 바우어의 저서 “구약성경신학”이 가블러의 입장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발전되었다고 보며, 두 사람 모두 같은 스승(C. G. Heynes, J. G. Eichhorn 등) 밑에서 공부하였기에 유사한 사고를 갖게 된 것으로 설명한다.
11) G. L. Bauer, Biblisch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Vol. I-IV, Leipzig 1800-1802 이곳 Vol. 1 p. 6: “eine reine und von allen fremdartigen Vorstellungen gesäuberte Entwicklung der Religionstheorie der Juden vor Christo, und Jesu und seiner Apostel, nach den verschiedenen Zeitaltern und nach den verschiedenen Kentnissen und Ansichten der heiligen Schriftsteller, aus ihren Schriften”.
12) H.-J. Kraus, op. cit., p. 91.
13) O. Merk, op. cit., p. 202. 메르크는 가블러와 더불어 바우어를 가리켜 “성경신학의 두 창시자”(“die beiden Begründer der Biblischen Theologie”)라 부른다 (ibid., p. 270). 두 사람 이후 수많은 새로운 통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적인 차원에서 본질적으로 여전히 가블러와 바우어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ibid., p. 272).
14) Cf. O. Merk, op. cit., p. 270-273.
15) 가블러와 바우어의 이러한 입장을 더욱 첨예화시킨 브레데(W. Wrede)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어진 원자료로부터 성경신학(die biblische Theologie)은 하나의 사실, 즉 외형적이 아니라 정신적인 사실을 밝혀야 한다. 곧 그 사실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올바르게 또한 날카롭게 파악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것이 전부다. 조직신학자들이 그 결과들을 갖고 어떻게 다루며 논쟁을 벌이는가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몫이다”(Über Aufgabe und Methode der sogenannten Neutestamentlichen Theologie, Göttingen 1897, p. 9). 이와 달리 신약신학을 전적으로 역사적인 분야로 보는 시각에 반대하여 슐라터(A. Schlatter)는 “신약신학을 교의신학으로부터 독립시킴은 속이는 허구에서 생겨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Di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und die Dogmatik”, in: G. Strecker(ed.), Das Problem der Theologie des NT, Darmstadt 1975, p. 156]고 선언하였다. 브레데와 슐라터의 논문을 우리말로 읽을 수 있다: R. 모건, <신약신학의 본질>, 박문재 역,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 91-154, 155-204쪽.
16) H. Hübner, “Was ist Biblische Theologie?”, in: Ch. Dohmen/Th. Söding(eds.), op. cit., p. 213. Cf. 김지철, “복음주의적 성서해석을 위한 역사비평의 가능성”, in: <교회와 신학> 11 (1979/11), 164-182쪽, 이곳 167쪽(“성서의 주장에 대하여 역사비평을 사용하기 거부하는 것은 성서의 증거된 역사가 진정한 역사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되는 한편, 신앙에 대한 지성적 요구를 불가능하게 만들며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서로부터 역사를 분리시키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17) B. S. 차일즈, <성서신학 上>,  42쪽.
18) J. Becker, “Christologische Deutung des Alten Testaments", in: Ch. Dohmen/Th. Söding(eds.), op. cit., p. 17. 독일 성서학계는 문학비평을 역사비평에 대립된 것으로 보기보다는 역사비평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19) 예컨대, E. Käsemann, “Vom theologischen Recht historisch-kritischer Exegese”, in: ZThK 64, 1967, pp. 259ff; G. Sauter, “Vor einem neuen Methodenstreit in der Theologie?”, in: ThExh 164, 1970, pp. 15ff, 22ff, 29ff, 88ff.
20) O. Plöger, “Biblische Theologie I. AT”, in: EKL 1, 1956, 510.
21) H. Schlier, “Über Sinn und Aufgabe einer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in: idem, Besinnung auf das Neue Testament; Exegetische Aufsätze und Vorträge II, Freiburg 1964, pp. 7-24, 이곳 pp. 19f(=in: BZ NF 1 [1957], pp. 6-23]).
22)  H. Wildberger, “Auf dem Wege zu einer biblischen Theologie”, in: EvTh 19, 1959, pp. 70-90.
23) M. A. Beek, “Altes Testament”, in: BBH 1, 1962, pp. 66-76, 이곳 p. 76.
24) G. Ebeling, “Was heißt ‘Biblische Theologie’?”, in: idem, Wort und Glaube, Tübingen 1960, p. 89.
25) A. von Harnack, Marcion. Das Evangelium vom fremden Gott, Darmstadt 1985(1판, 1921), pp. 217, 222.
26) Ibid., pp. 217, 222.
27) E. Hirsch, Das Alte Testament und die Predigt des Evangeliums, Tübingen 1936, pp. 27, 59, 83.
28)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신학의 정당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것은 특별히 다음의 세 가지 차원과 관련되었다. 첫째, 구약과 신약의 내용적인 통일성을 주장하는 것은, 구약과 신약에 담겨있는 다양한 신학적 구상에 비추어 볼 때 문제가 있다. 둘째, 신구약 정경은 정경에 속하지 못한 당시의 문헌과 밀접히 관련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정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경신학의 시각을 문제로 제기한다. 셋째, 성경의 가르침과 교리가 일치한다는 전통적인 시각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 제기된 역사비평적인 시각에 의해 의문시되었고, 성경과 교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점차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G. Strecker, “‘Biblische Theologie’? Kritische Bemerkungen zu den Entwürfen von Hatmut Gese und Peter Stuhlmacher”, in: D. Lührmann/G. Strecker(eds.), Kirche, FS Günter Bornkamm, Tübingen 1980, pp. 425-445; idem,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Berlin-New Zork 1996, pp. 4-9.
29) W. Eichrodt, Israel in der Weissagung des Alte Testament, 1951; C. Westermann, Das Alte Testament und Jesus Christus, 1968; W. Zimmerli, “Verheißung und Erfüllung", in: EvTh 12, 1952/53, pp. 34-59; idem, Das Alte Testament als Anrede, 1956.
30) G. von Rad, “Typologische Auslegung des Alte Testaments”, in: EvTh 23, 1963, pp. 143-168; L. Goppelt, Typos, 1939.
31) G. Vos, Biblical Theology. Old and New Testaments, Grand Rapids 1948, pp. 14ff; O. Cullmann, Cristus und Zeit, Zürich 1962. Cf. 차일즈, <성서신학 上>, p. 36.
32) W. Pannenberg, “Heilsgeschehen und Geschichte", in: KuD 5, 1959, pp. 218-237, 259-288; idem, “Hermeneutik und Universalgeschichte", in: ZThK 60, 1963, pp. 90-120; idem(ed.), Offenbarung als Geschichte, Göttingen 31965; R. Rendtorff, “Hermeneutik des Alten Testaments ald Frage nach der Geschichte", in: ZThK 57, 1960, pp. 27-40.
33) W. Vischer, Das Christuszeugnis des AT, 1934; II 1942.  그 외에도 H. Helbardt, Der verheißene König Israel. Das Christusyeugnis des Hosea, 1935; K. Schwarzwäller, Das Alte Testament in Christus, 1966.
34)  P. Grelot, Sens chrétien de l'Ancien Testament, Tournai 1962.
35) G. von Rad는 Vischer의 입장을 비판하였다(ThBl 14, 1935, pp. 249ff).
36) H. Gese, “Erwägungen zur Einheit der biblischen Theologie", in: idem, Vom Sinai zum Zion. Alttestamentliche Beiträge zur Biblischen Theologie, München 21984, pp. 11-30; idem, Zur Biblischen Theologie. Alttestamentliche Vorträge, Tübingen 21983, pp. 9-30.
37) H. Gese, “Der Johannesprolog”, in: idem, Zur biblischen Theologie, pp. 152-201, 이곳 p. 152.
38) H. Gese, “Erwägungen zur Einheit der biblischen Theologie”, in: idem, Vom Sinai zum Zion, 1974, pp. 11-30, p. 14.
39) G. v. Rad,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Vol. 2, München 1968, p. 447.
40)  H. Sebaß, “Biblische Theologie”, in: VF 27 (1982), pp. 28ff; H. Graf Reventlow, Hauptprobleme der Biblischen Theologie im 20. Jahrhundert, Darmstadt 1983; M. Oeming, Gesamtbiblische Theologien der Gegenwart. Das Vehäktnis von AT und NT in der hermeneutischen Diskussion seit Gerhard von Rad, 21987; U. Luck, “Der Weg zu einer Biblischen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in: DPfBl 88, 1988, pp. 343-346; C. Dohmen, “Gesamtbiblische Theologie”, in: Pastoralblatt für die Diözese Aachen 41, 1989, pp. 354-361; F. Mildenberger, Biblische Dogmatik. Eine biblische Theologie in dogmatischer Perspektive, Vol. 1, 1991; C. Dohmen/F. Mußner, Nur die halbe Wahrheit? Für die Einheit der ganzen Bibel, 1993; A.H.J. Gunneweg, Biblische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Eine Religionsgeschichte Israels in biblisch-theologischer Sicht, 1993.
41) 우리말 번역: <성서신학>, 상/하, 유선명 역, 도서출판 은성, 1994. 차일즈는 이미 자신의 저서 “Biblical Theology in Crisis”(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0 = <성경신학의 위기>, 박문재 역,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2) 저서에서 정경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42) Ibid., p. 100.
43) 외밍(M. Oeming, JBTh 3, pp. 241-251)은 각 본문의 특성이 정경이라는 집합 가운데 잠겨버릴 위험성을 지적함으로써 차일즈의 구상에 비판을 가한다. 심지어 차일즈의 “정경적 접근” 자체를 정경적인 접근이라 부를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경의 원칙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경적인 통일된 전망에 이른다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적이며 신학적으로 서로 구분되는 작업을 하게 마련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경은 주제에 따른 완벽한 일치를 나타내지 않고, 살아 움직이며 세분화된 신학적인 숙고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44) 차일즈의 이러한 의도가 그의 저서 가운데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는 H. 휘프너는 정경문제를 해결하려는 차일즈 시도가 결국 실패한 것으로 간주한다(Biblisch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I, pp. 75f).
45) H. Hübner, Biblische Theologie I, p. 14.
46)  P. Stuhlmacher, Biblisch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I, p. X.
47) Ibid.
48) Ibid., p. 38.
49) O. Merk는 슈툴막허가 수용한 신구약을 일직선으로 연결된 전승과정으로 간주하는 “전승사적인 연속성”의 시각을 비판하는 가운데 종교사적인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약성서가 갖고 있는 독특성이 상대화되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Gesamtbiblische Theologie. Eine offene Diskussion”, in: Ch. Dohmen/Th. Söding(eds.), op. cit., pp. 230ff]. 메르크는 신구약성서 사이에 놓인 “거리”(Ferne)를 우선적으로 확실히 인정한 뒤에야 비로소 이들 간의 “친밀함”(Nähe)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다(ibid., p. 235; cf. R. Smend/U. Luz, Gesetz, Stuttgart, 1981, p. 142).
50) Ibid., p. 5.
51) 이와 같은 슈툴막허의 시도를 가리켜 J. Roloff는 “역사적 긴장과 문제점들을 무효화시키는 변증”이라고 비판한다(ThLZ 119, 1994, p. 245).
52) 간행된 제3권 뒷면 표지에 제4권의 제목이 나타난다: “Exemplarische Darstellungen zu neutestamentlichen Theologien.”
53) 차일즈, <성경신학의 위기>, 34쪽.


<초록>
1787년 가블러의 역사적인 강연 이후, 교리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학문영역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성경신학”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다시 학계의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 독일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인 성경신학은 21세기의 중요한 신학적 화두의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거론되고 있는 성경신학이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통일성에 관한 질문이다. 즉, 양 성경의 내적인-신학적인 관계를 밝히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90년대에 차일즈, 휘프너, 슈툴막허, 튀징은 그러한 구상에 따른 영향력이 큰 저서를 출판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성경신학의 역사적 흐름을 짚어보면서 이들 새로운 구상들을 소개하는 가운데 신구약성경의 관계성을 묻는 성경신학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필자 소개>
김창선(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초빙교수)
연세대(독문과, BA)와 독일 괴팅엔 대학 신학부를 거쳐 튀빙엔 대학 신약학 분야에서 신학석사학위(Mag. theol.)와 신학박사학위(Dr. theol.)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