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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구약>21세기 한국교회와 성서학, 회고와 전망

2006.04.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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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정 우(총신대학교 교수 / 구약학)


20세기 성서학은 역사비평학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비평학은 문서설로부터 시작하여 양식비평과 편집비평, 전승사와 문학비평과 정경비평에 이르기까지 온갖 변화와 발전을 시도하면서, 20세기 성서 학계를 중심적으로 이끌어 왔다.
물론 역사비평학은 어디에서나 "십볼렛"이 되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으며, 학계와 교계는 찬비평학파와 반비평학파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학문적인 논쟁 뿐 아니라 개인적인 적대감과 나아가 교회 및 교단의 분열까지 만들어 온 것도 사실이다.
찬비평학파는 역사비평학을 참되고 유일한 학문적 방법론으로 보았고,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 혹은 '성서 신봉주의자'(biblicist)로 폄하하거나 조롱하였으며, 반비평학파는 역사비평학의 학문적 허구성만을 주로 드러내면서, 비평학 속에 담긴 반초자연적이고 불신앙적인 전제를 드러내는 데 심혈을 기울여 온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역사비평학의 공과를 여기에서 다 말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이 방법론은 성서의 역사적이며 문학적인 성격에 새롭게 눈뜨게 하였고, 성서학이 단지 교리를 뒷받침해주는 '시녀' 역할을 하는 데서 벗어나 독자적인 고유영역을 찾도록 만들었으며, 고대의 문헌과 현대의 세계 사이에 있는 역사적 거리감을 드러내는 데 기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비평학은 지난 2000년 동안의 성서학 연구사에 있어서 가장 혁명적인 해석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비평학은 그 신학적 뿌리를 계몽주의 시대의 초연신론(이신론, deism) 속에 두었으며,
성서가 담고 있는 역사성을 20세기의 "역사적 진실성"이란 기준으로 부인하거나 약화시키고,
역사와 문학을 서로 대치시켜 '문학적인 것'은 '역사적인 것'이 될 수 없다고 보며,
하나님의 계시로서 스스로를 증거하고 있는 성서의 증언을 외면하고,
나아가 믿음의 공동체의 경전으로서 성서의 권위를 처음부터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계는 신앙공동체로부터 멀어졌으며, 교회는 비평학을 외면하였고, 신학과 신앙은 괴리되었으며,
교회의 믿음과 학자의 확신 사이에는 깊은 갈등을 이루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19세기 말에 출생하였고, 20세기로 접어들며 신학적인 작업을 비로소 시작하였기 때문에, 세계의 학계를 지배한 역사비평학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비평학을 둘러싼 논쟁 속에 지난 100년을 보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역사비평학은 한국초대 교회부터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으며,
반비평학적인 <신학지남>과 친비평학적인 <신학세계>의 대립을 비롯하여 계속적으로 갈등의 핵을 이루어 왔다.
이리하여 역사비평학을 둘러싸고 한국교회에는, 캐나다 연합교회 선교사인 서고도(William Scott) 사건(1926년), 김영주 목사의 "창세기 저작권 문제건" (1934년), <어빙돈 단권 성경주석> 번역 문제건(채필근, 한경직, 송창근, 김재준), 박형룡과 김재준의 신학논쟁(1933년 <신학지남>), 김기수(K. R. Crim) 선교사의 "요나서 해석건"(1966년), 문희석 교수의 <하나님의 구속역사>건 등을 중심으로 논쟁과 갈등이 끊임 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역사비평학은 한 개인의 신학적 입장과 연관된 문제로 제한된 것이 아니었으며,
결국 1947년 4월 10일 조선신학교는 "서양 선교사들의 지배와 보수신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치 아래에 "성경연구에 있어서 비평학을 소개하되 그것은 성경 연구의 예비 지식으로 이를 채택함"을 교육이념으로 채택하고, 역사비평학을 정규 과목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결국 장로교회는 역사비평학을 중심으로 교단이 둘로 나누어지는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비평학자들은 서양의 역사비평학에 대해 보다 신중한 입장을 갖기 시작하였으며,
스스로 이 방법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극복하려는 작업들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와 발맞추어 1980년대로부터 복음주의 신학자들도 역사비평학을 전제론적인 관점에서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보다는 그 문제점들을 올바로 비판할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좋은 관점들을 복음주의적인 테두리 안에서 수용하여 보다 풍부한 성서 이해를 도모하게 되었다.
지난 해 (1999년)에 김세윤은 <목회와 신학>과의 인터뷰에서 역사비평학을 둘러싸고 양극화 되어온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갈등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통합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그가 볼 때, 우리나라 교회 안에서 "좀 과격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복음과 기독교 신앙 전통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복음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리하여 복음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과 적용 보다는 사회적 문제, 문화적 현상, 그리고 이런 것들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복음의 핵심을 회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한 보수신학 쪽에서는 역사비평에 대한 성숙한 태도를 습득하지 못함으로써 성경해석에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또 심지어는 그것에 대해 아예 두려워하기까지 하였다.
그 결과 성경을 아주 문자적, 근본주의적으로 해석하게 되었고 결국 성경과 무관한 스콜라식 신학에 빠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신학이 복음과 유리되어 버렸다"고 보았다(문체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필자가 어휘를 약간 수정하였음).

사실 역사비평학을 중심으로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진 지난 100년의 해석사를 돌아보면, 이 학문적 방법론이 부인되던 시기(1900-1927), 양극화되던 시기(1928-1956), 묵시적으로 인정된 시기(1957-1972), 학술적인 정립기(1973-1989)를 거쳐 여과 및 선별 수용기(1990-1999)로 지나왔음을 보게된다.
우리의 성서학은 이런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큰 나무로 성장하고 마침내 다양한 결실을 이루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리하여 1900년에 창간된 <신학월보>를 필두로  200여 종의 신학관련 정기 간행물들이 만들어졌으며, 1901년에 설립된 평양신학교로부터 시작하여 수십 개에 이르는 신학교육 기관들이 세워지고, 수천명의 신학자들이 신학의 모든 영역에서 기여하게 되었다.
19세기말에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그 어느 피선교국에서도 볼 수 없었던 왕성한 신학 작업이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은 20세기의 교회사의 기적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한국 신학의 발전에 있어서 성서학은 다른 어떤 분야 보다 더 괄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을 해온 영역으로 여겨진다. 특히 시대가 갈수록 성서학 분야에 대한 연구는 심화되고 확장되었으며, 점점 방법론적인 정립과 함께 신학과 사회를 잇는 작업이 뚜렷해지게 되었다.
이제 우리의 성서연구는 구미 학자들의 연구와 비교해 볼 때, 그 방법론이나, 전체적인 방향이나, 연구의 영역들이나 주제들에 있어서 별차이가 없다. 또한 소위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에 있었던 학문적인 격차는 줄어들었고, 성서학 연구는 어떤 지도적인 사람들이나 특정한 학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보다 다원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교회가 성서학을 다른 어떤 분야 보다 더욱 중요시하고 사랑하게 된 것은 우리의 뿌리와 무관하지 않다.
김양선에 따르면, 한국 개신 교회는 "순교자의 피로 개척된 교회, 선교 이전에 창설된 교회, 성서에 기초된 교회"라는 3대 특징을 갖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성서적 교회"로 불릴 정도로 성서는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한국교회 만큼 성서를 사랑하면서 많이 읽는 교회도 드물 것이다." 이런 성서에 대한 사랑이 한국교회의 신학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20세기를 마무리하고 21세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성서학의 과제를 새롭게 설정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1. 성서학의 세계적인 동향을 살펴볼 때, 역사비평학의 시대는 분명히 저물어 가고 있다.
이 방법론은 분명히 21세기까지 학계와 교계를 끌고 가지 못할 것이며 그 "날은 이미 정한 바" 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비평학계 안에서 한없는 수정 작업이 이루어지겠지만, 21세기의 해석학적인 파라다임은 통시적인 연구(diachronic approach)에서 동시적인 연구로(synchronic approach),
본문 단위를 양식이나 편집이나 전승으로 단편화하는 작업(fragmentation of the text)에서 문학적인 총체성 (literary whole)을 찾는 작업으로,
저자 중심(author centered)에서 다양한 독자 중심(reader centered)의 해석으로 넘어가리라고 생각된다.

2.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해석학적인 모델인 역사비평학을 두고 만들어 왔던 이념적 해석(ideological interpretation)의 한계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며 맹목적인 이념 대립과 분열과 반목을 지양하고 보다 본문에 충실한 해석을 지향하며, 나아가 보다 객관적이고 통합적인 해석의 원리와 방법을 새롭게 형성하는 데 더욱 힘써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3. 지난 100년 동안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는 종교개혁의 전통 위에서, 성경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을 바쳐, 이제 우리의 성서학이 발전할 수 있는 기본 토양과 준비를 끝낸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더욱 수준 높은 신학을 하기 위한 기초 준비는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 성서학의 기초가 되는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 성경의 한국판 비평본을 준비하며, 우리의 원어 사전과 문법책을 만들고, 고대 근동과 그리스-로마 세계의 역사와 문헌의 기초적인 비평본들을 집대성하는 작업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0년 동안 쌓아온 우리 성서 및 신학의 모든 유산을 데이타베이스화 하여, 학문의 모든 영역들과 교류할 수 있는(inter- disciplinary) 연구 작업의 초석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4. 이제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우리 가운데서 격렬하게 논의되었던 수많은 신학적인 쟁점들을 보다 성경적이고, 한국적인 해석의 모델 속에서 모두 수렴해 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과 해석적 원리와 방법론을 배태할 준비를 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새 시대를 열어갈 방법론이 어떤 것이 되든 간에 이제 우리의 해석 모델은 복음의 참된 정신을 따라 더욱 인격적이며, 학문과 신앙의 괴리감을 극복하고, 기독교적인 덕과 살아 움직이는 영성을 추구하며, 모든 이념적 차별을 극복하고, 환경친화적이며 우주의 모든 생명을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보전하는 신학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5. 21세기는 다매체(multi-media) 시대로서 다문화적이며 다원화된 사회가 될 것이며, 의사소통은 더 이상 "언어"를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는 온갖 다양한 전통 및 현대적 형태의 예술과 문학의 장르를 사용하여, 성서의 메시지를 첨단의 현대성으로 전할 수 있는 해석적 틀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 끝으로 다가오는 21세기는 그동안 신학연구에 있어서 세계의 빚을 많이 진 한국교회가 진정한 기독교적 신학과, 성서적 신학과, 한국적 신학과 현대적 신학으로 세계 학계에 기여하며,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을 추구하는 종교개혁의 견고한 전통 위에서 새로운 기독교 변증을 시도하여 세계 교회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일을 위해 현재 기독교 지도자들이 더욱 고뇌하며 우리의 기독교를 한층 더 높은 정신적 차원으로 이끌어 올리고 무거운 역사적 책임을 진지하게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성서마당 45호, 특집 21세기 한국교회와 성서학, 회고와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