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文學 김윤식교수의 "한국 현대 문학사"

2004.05.31 23:51

폭우 조회 수:2844 추천:11

Ⅰ. 한국 근대 문학사

① 근대

근대의 두 조건은 '국민국가'와 '자본제 생산 양식'이다. 국민국가는 약 200년 전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한 부르주아를 주체로 하는 국가 형태이다. 또 자본제 생산 양식이란 사용가치인 본래적 가치가 교환가치나 시장가치로 전환된 것이다.

② 우리의 근대

우리의 근대는 위의 일반적인 근대의 조건은 물론이고 이런 근대의 조건들을 성취하기 위한 반제국주의 투쟁과 반봉건적 투쟁의 특수성까지 포함된다.

③ 한국 근대 문학사

한국 근대 문학사는 일반적인 근대와 우리 근대의 특수성을 합한 근대와 연결된, 국어의 형식으로된 문학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여기서 국어는 1905년 국문으로 채택된 한글이다.



Ⅱ. 개화기 문학

1. 개화기 소설

① 개화기 공간의 사상

개화기의 사상은 척사파, 동학, 애국계몽으로 분화되었다. 척사파는 주자학의 구질서, 신분제를 기반으로 하는 사상이다. 동학은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하는 평등주의 사상이다. 애국계몽은 자주적으로 근대를 추구하려는 친서양적인 사상이다. 이런 세 사상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의 시대 변화에 따라 경쟁 또는 합작하는 역동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② 개화기 공간의 이야기체

개화기의 이야기체는 고대소설, 정치소설, 신소설 세 가지로 분류된다.

③ 이인직

이인직은 원래 중간 계층 출신으로 정치적으로 변변치 못했다. 1902년 40세의 나이로 일본에 관비장학생으로 유학했다. 처음에는 동경정치학교에서 수학했으나 중도 포기하고 都新聞社의 견습생 노릇을 했다. 견습생을 하면서 입헌 정치가 확립되고 있던 일본의 정치상황과 정치소설을 목격했다. 정치소설이란 정당 대표나 대변인이 그들 정당 이념을 담아 신문에 개재한 소설이다. 이인직 자신은 국내에서 정치소설을 통한 정치활동을 원했으나 당시 조선은 통감정치 체제로 바뀌고 있어 불가능했다. 통감정치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자 통감의 고급관리로 파견된 옛 일인 스승을 통해 주요 관리를 역임했다.

④ 이인직의 신소설

이인직의 신소설은 <<은세계>>, <<혈의누>>, <<모란봉>>, <<치약산>>, <<귀의성>> 등이 있다. 이인직의 신소설은 자신이 원했던 본격 정치소설은 실현될 수 없어 정치소설의 결여로서의 '준 정치소설'의 특성을 보인다. 그것의 내용은 일본 편향성, 구 정치인의 비판, 신교육이나 문명개화를 통한 사회개조이다. 그의 신소설은 ⓐ 은세계 전반부, 혈의누, ⓑ 은세계 후반부, 모란봉의 특징으로 구분된다. ⓐ는 탐관오리 등의 구 정치인 비판이 주내용이고, ⓑ는 신교육, 문명개화를 통해 그런 봉건 사회의 개조가 주내용이다. 이인직 개인적으로 기존의 봉건 질서에서는 소외된 중간 계층이기 때문에 앞의 내용을 취했다. 하지만 뒤의 내용이 완결되지 못한 것은 당시 사회개조의 현실적인 어려움의 반영이다.

⑤ <<혈의누>>의 특징

<<혈의누>>는 주인공 옥련이 세상을 배우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공간이 평양 ⇒ 일본 ⇒ 미국(서양)으로 확대된다. 주제는 미신타파, 권선징악이다. 표기는 한글과 한자에 토를 단 일본식(루비)를 병용했다.



2. 개화기 시가

① 개화기의 당면과제

개화기의 당면과제는 유교 극복이었다. 이 주자학적 질서와 세계관의 극복은 중국, 일본, 한국 동양 3국이 공유한 과제였다. 게다가 한국은 국가상실이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가중되었다. 즉 개화기에는 반봉건, 반제국주의 투쟁이 당면과제였다.

② 개화기 공간의 시가

개화기 가사는 시기적으로 건양 원년(1896년) 무렵에서 <<태서문예신보>>(1918년) 사이로 구분된다. 개화기 가사는 리듬을 기조로 한 율문양식을 형식으로 삼았다. 그것은 내용에 따라 애국가류, 개화가사류, 사회등란의 비판적 가사류, 창의가로 구분된다. 애국가류는 국가에 대한 애정과 자유독립을 노래한 것이다. 개화가사류는 서양을 막연히 지표삼아 계몽하는 것이다. 사회등란의 비판적 가사류는 주로 <<대한매일신보>>를 통한 사회 비판의 가사이다. 창의가는 의병이 부른 것이다.

③ 최남선

초기에는 출판사 '신문관'과 지식청년들의 모임인 '아카데미아'를 설립하고, 신시와 계몽적 산문을 써서 계몽주의를 펼쳤다. 1908년 종합잡지 <<소년>>을 발간했다. 또 안창호와 청년학우회를 설립했다. 1914년 종합월간지 <<청춘>>을 간행했다. 1919년 3·1운동시 기미독립선언문을 기초했다. 이 때는 주로 독립운동의 성향을 보였다. 1년 6개월 투옥되었다가 1922년 <<동명>>을 발간했다. 이 때에는 역사연구와 시조창작에 힘썼으며 '조선주의'를 폈다.

④ 최남선의 창가와 신시

최남선은 신시, 창가, 시조 등의 문학 창작을 했다. 신시로는 1908년 <<소년>> 창간호의 권두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해당된다. 이런 신시는 주로 외국시의 번역이나 번안물이다. 또 계몽을 주내용으로 한다. 창가로는 1908년의 <경부철도노래>가 있다. 7·5조의 일본식 리듬을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남선은 산문시체를 포기하고 창가 같은 율문형식을 많이 지었다. 이는 개화지식을 보급하는 문자행위 중에서 노래체의 '반복'의 특징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율문양식 중에도 7·5조의 창가는 전통적 유교의 4·4조와 달리 새로운 지식을 위한 새로운 형식이라는 취지가 반영되었다.



Ⅲ. 1910년대

1. 1910년대의 소설

① 이광수

이광수는 189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하였고 1902년에 고아가 되어 어렵게 성장했다. 1903년 동학의 박찬명 대령을 만나 그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1907년 명치학원에서 수학하고 1910년 오산학교 교사가 되었다. 1914년 최남선의 아카데미아에 기거하면서 김성수를 만났다. 김성수의 도움으로 와세다대학에 유학했다. 1917년 <<무정>>을 <<매일신보>>에 발표했다. 1919년 2·8독립선언문을 작성했다. 그 해 흥사단에 가입했고, 임시정부 요원이 되었다. 1921년 귀국하고 동우회를 주도했다. 1922년 민족개조론을 주창하고 <<가실>>, <<허생원>> 등을 발표했다. 1926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하고 흥사단의 기관지 <<동광>>을 발간했다. 1932년 흥사단 운동의 일환인 <<흙>>을 발표했다.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

② <<무정>>의 구조

ⓐ 시대적 진취성 : <<무정>>은 당대의 중심 내지 밑바닥을 흐르고 장차 상승계층으로 되고자 하는 역사적·사회적 방향성에 연결되고, 그 세계관의 최대치를 보여주었다.

ⓑ 사제관계의 견고성 : <<무정>>의 인물들의 관계구조가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학생 관계를 이루고 있다. 형식-선형, 형식-하숙직노파, 월화-영채, 병욱-영채, 형식-모든 인물의 관계가 가르치는 인물-배우는 인물의 관계이다.

ⓒ 누이 콤플렉스의 구조 : <<무정>>은 순진성, 정결성의 구조이다. 유교의 절개와 기독교의 청교도주의가 <<무정>>의 모랄인 순진성, 정결성이다. 그리고 이런 순진성, 정결성은 누이 콤플렉스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런 콤플렉스를 초극하고자 하는 방식은 생명감인 새로운 우주관의 상사력으로 이어진다. 즉 <<무정>>은 누이 콤플렉스와 새로운 우주관의 긴장을 지닌 구조이다.

ⓓ 한의 구조 : <<무정>>에서 애국지사로 설정된 박진사의 딸 영채가 친일파와 건달인 배학감이나 김현수에게 겁탈당하는 사건을 통해 당시 사회의 '신성'이 능욕당하는 한의 구조를 보인다. 즉 이 사건은 구시대의 훼손되지 않은 가치관이 새시대의 훼손된 가치관에 의해 능욕되는 것이다.

③ <<무정>>의 갈등 구조와 당대 사회

<<무정>>은 ⓐ배학감·김현수로 대표되는 훼손된 가치의 세계 ⓑ박영채로 대표되는 능욕땅한 본래적 가치의 세계 ⓒ이형식으로 대표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미정형의 세계로 구분된다. ⓐ에는 당대의 토착부르주아와 약삭빠른 지식층이 ⓑ에는 뿌리뽑힌 선비계층과 서민층이 ⓒ에는 대부분의 지식층 학생과 서민층이 포함된다.



2. 1910년대의 시

① 서정적 장르의 특성

서정적 양식은 현실을 반영하되 삶의 순간적 체험에 일층 중점을 둔 표현방식이다. 현실을 일관된 줄거리없이 부분적·집중적·주관적으로 파악하므로 현실에 날카롭게 육박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수미일관되게 파악하지는 못한다.

② 최남선과 배역시

최남선은 계몽적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서정적 양식과 서사적 양식의 중간 형태인 배역시를 취했다. 배역시는 특정 인물의 입을 통해 표현되는 시이다.

③ 김억과 심혼시

김억은 1918년에 베를렌의 <시작>을 <<태서문예신보>>에서 소개하면서 심혼시를 내세웠다. 하지만 당시 그것을 소화해낼 수 없어 진정한 심혼시를 이루어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1920년대 초의 진정한 소월의 심혼시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의의가 있다.

④ 주요한과 민중시

주요한은 동우회 활동과 <<동광>>에 깊이 관여하면서 민중시 편향을 보였다. 또 민요를 지향하는 성향을 보였다. 이런 주요한의 성향은 김억의 심혼시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⑤ 1910년대의 시

1910년대는 배역시에서 심혼시로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시기였다. 1920년대 우리식 심혼시의 결정인 소월의 시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는 시기였다.



Ⅳ. 1920년대

1. 1920년대의 소설과 김동인

① 1920년대의 새로움

최남선과 이광수는 새로운 사상 및 세계를 펼치기 위해 언문일치를 추구했다. 이것은 주자학적 질서관에 대한 도전이었다.

② 김동인

김동인의 아버지는 기독교 장로이자 평양의 부호이며 애국자였다. 김동인이 철들 무렵은 이미 국가가 망했고 주자학적 세계가 붕괴했다. 또 김동인은 14살에 일본유학을 가서 일본의 낭만주의 예술관을 접했다. 당시 김동인에게는 주자학적 세계나 낭만주의 예술관 모두 낯선 것이었다. 여기서 김동인은 낭만주의 예술관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런 낭만주의 예술관을 언문일치와 새로운 형식의 실행으로 국내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김동인의 소설에는 국적이 없고, 우리말은 없다.

③ 김동인의 '머리 속 소설'

김동인의 '머리 속 소설'이란 소설 창작시 구상은 일본어로 하는 것이다. 그에게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오히려 그런 일본소설을 우리말로 옯기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이는 <약한 자의 슬픔>나 <마음이 옅은 자여>의 '엘리자벳트', 'K남작' 등에서 엿보인다.

④ 김동인의 '인형 조종술'

김동인에게 참된 예술은 작자가 만들어 낸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신 같은 존재이고, 잦신이 창조한 세계를 완전히 지배해야 한다. 이런 인형 조종술이 김동인의 창작 정신이다. 이런 창작 정신으로부터 작품 속에서 자신을 이상화하는 묘사법과 작법이 나왔다.

⑤ 김동인의 '시점 A형식'

인형 조종술의 창작 정신에서 김동인은 '이상적인 자기를 허구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자기'를 지나치게 강조했다. 이것에서 그의 '시점 A형식'이라는 일원 묘사가 나왔다. 시점 A형식이란 자가는 작중 주요인물의 눈에 비친 것에 대하여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김동인의 묘사법은 우리 소설사에서 소설 작법의 엄격성, 시점을 최초로 표명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그의 창작 정신과 창작법에서는 '작품에서 구현된 자기'와의 이중성을 인식하는 제 3의 시점이란 없었다. 따라서 내면탐구가 결여된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는 당시 일본 근대 소설을 단순화해서 수용한 결과이다.



2. 1920년대의 소설과 염상섭

① <암야> 등 초기 3부작의 내적 양식(제도적 장치)

<암야>는 ⓐ주인공 이름이 X인 점, ⓑ주인공의 허무의식에 원인이 모호한 점, ⓒ우리말과는 거리가 먼 '彼', '불쌍한 症' 등의 용어를 사용한 점의 특징을 보인다. 이런 특징에서 작품들이 독창적인 창작이 아닌 어떤 '제도적 장치'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제도적 장치는 아리시마 다케오의 <출생의 고뇌> 등의 일본의 근대 문학이었다. 즉 이 세 작품에서 염상섭에게 현실이란 서양 문학 및 서양화된 일본의 메이지 기간의 소설이었다. 작가가 현실적 기반을 떠나 주관적·추상적 자리에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공허할 수밖에 없었다.

② 제도적 장치로서의 소설사

첫째는 이인직의 신소설이다. 신소설은 일본의 '정치소설'이라는 제도적 장치에서 영향을 받았다. 두번째는 이광수의 <<무정>>이다. 이광수와 최남선의 언문일치는 일본의 언문일치운동이라는 제도적 장치에서 영향을 받았다. 세번째는 김동인의 소설이다. 그의 소설은 일본말로 된 소설이란 제도적 장치에서 영향을 받았다. 네번째는 염상섭의 초기 소설이다. 이것은 특정한 일본 소설이라는 제도적 장치에서 영향을 받았다.

③ 염상섭의 고백체(내면형식)

염상섭 초기 세 작품의 제도적 장치인 아리시마 다케오의 <출생의 고뇌>는 고백 형식의 일종인 편지체로 씌어졌다. 염상섭은 이런 고백체 형식을 통해서 없는 고뇌를 초기 소설에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런 고백의 형식은 그 내용보다는 고백을 즐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고백 자체가 목적이다.

④ 내면의 소설화 계보

염상섭에게서 발견된 내면의 세계가 30년대 초반 李箱에게, 30년대 중반에 <<삼사문학>>그룹 및 최명익·허준에게, 50년대에 장용학에게 이어진다.



3. 1920년대 프로문학의 내적 형식

① 1920년대 맑스주의

1920년대 한국문학사에서 맑스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기구의 근대화와는 무관한 사상으로서 의미가 있다. 또 정치적 운동의 한 형식으로서 의미가 있다. 1920년대 한국문학사에서 정치적 대응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 문학론과 계급주의 문학론이었다. 그리고 한국문학에서의 맑스주의 수용은 일본을 통했기 때문에 일본과 닮았으면서도. 국권상실의 상황이란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즉 한국문학사에서는 계급사상을 통해 조국해방·독립이 우선 목표였다.

② KAPF(Korea Artista Proletaria Federatio)의 계보

ⓐ염군사 : 염군사는 1922년 9월에 조직되었다. 이적호, 이호, 김홍파, 김득수, 심훈, 송영 등이 '해방문학의 연구 및 운동'을 목적으로 조직한 프로 단체였다. 잡지로는 <<염군>>이 있었다.

ⓑPASKYULA(파스큘라) : 1923년 박영희, 안석영, 김영팔, 이익상, 김기진, 김복진, 연학년 등이 조직했다. 주로 당시 사회적으로 저명한 문사들이 그 구성원이었다.

ⓒKAPF(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 : 1925년 8월 23일에 결성되어 1935년 5월 21일 해체되었다. KAPF는 염군사 계열과 파스큘라 계열의 합동단체로서 박영희, 김팔봉, 이익상, 이적효, 이상화, 김복진, 김영팔, 심훈, 조명희, 이기영, 한설야 등이 그 구성원이었다. 문학을 중심으로 미술부, 문학부, 연극부 등의 부서가 구성되었다.

③ KAPF의 방향전환

ⓐ1차 방향전환 : 문호개방과 조직확대를 감행한 1차 방향전환은 자연발생적인 단계에서 목적의식으로 나아간 의의가 있다. 여기에는 <<제 3전선>>을 내세운 조중곤, 김두용, 한식, 홍효민, 이북만 등이 주축이 되었다. 그리고 기관지 <<예술운동>>을 간행했다.

ⓑ2차 방향전환 : 1931년 2차 방향전환에서는 카프가 볼셰비즘으로 기울어 '전투하는 계급의식'을 내세워 '당파문학'을 표명했다. 극좌적 이데올로기를 품은 동경의 소장파인 안막, 김효식, 임화, 권환 등이 주축이 되었고, 이 때 임화가 카프의 서기장이 되었다.

④ KAPF의 내적 형식

ⓐ단편서사시 : 김기진은 소재의 사건적·소설적임을 강조했다. 소설적이란 구체성·사실적이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 단편서사시는 중심적 인상과 분위기를 선명히 했다. 또 단편서사시는 프로시가이기 때문에 프로계급의 용어로 쓰고 세련된 용어나 묘사를 피했다. 그리고 낭독에 적당한 리듬을 창조했다. 이런 단편서사시 형식을 통해 프로문학의 지식인과 민중의 괴리를 극복하고자 했다.

ⓑ매개인물의 소설적 형식 : 프로소설의 내적 형식은 최서해의 <홍염>형, 조명희의 <낙동강>형, 이기영의 <고향>형으로 구분된다. 이런 내적 형식은 매개인물의 유무, 성숙도로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매개인물이란 다른 인물보다도 의식호의 수준이 높아서 다른 인물에 영향을 끼쳐 보다 나은 유토피아에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인물이다. <홍염>형은 자연발생적 프로소설로 소재를 궁핍으로 취하고 지주와 소작인의 대립을 만들고 살인이나 방화의 결말을 지우는 창작방법이다. 여기에는 매개인물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낙동강>형은 문제적 개인이 단독으로만 존재하는 유형이다. <고향>형은 매개인물이 성숙된 단계의 유형이다. <고향>형이 프로소설의 내적 형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KAPF의 내적 형식의 의의 : 단편서사시의 형식과 매개인물 설정은 1920년대 중반에 리얼리즘을 가능케한 계기이다.



4. 1920년대의 시

① 1920년 전후의 한국시

1920년 전후의 한국시 형성과정은 김억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상징시, 황석우로 대표되는 관념적 환각성, 주요한으로 대표되는 서정성이다.

② <<백조>>

백조는 홍로작을 중심으로 한 휘문의숙 출신의 문학청년과 배제학당 출신의 나도향, 박영희 등의 교유에 의해서 탄생했다. <<백조>>는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 등의 여러 장르가 시도된 종합 문예 동인지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인들이 시인이고, 3·1운동 이후 나아갈 지평이 드러나지 않아 장르 선택의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고, 동인들의 미성숙으로 생의 순간적 지각이 시로 발현되었기 때문에 <<백조>>는 시로 편향되었다.

③ <<백조>>의 시인

ⓐ박종화의 <흑방비곡> : 박종화의 시는 한문투가 거의 제거되어 있어 표기의 안정감이 있다. 또 시의 길이가 길다. 이는 장르 미형성의 중간단계로 평가된다. 그리고 상징시의 방법론적 자각이 부족하다.

ⓑ박영희의 <월광으로 짠 병실> : 일체의 현실에 대한 도피이다.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 상당한 리듬의 균형을 취하고 있다. 리듬의 균형을 통해 정서고조를 배려하고 있다. 또 감상적 표현이 세련되어 있다.

④ <<백조>>의 파멸

ⓐ사회적 조건 : <<백조>>파들이 역사에의 무방향성에 놓여있을 때 국낸에서는 새로운 계급 사상이 밀어닥치고 있었다. 그것은 러시아 혁명에서 성공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이다. 당시 국내에도 사회주의 단체가 수백개나 있었고, 이것은 민족주의와 함께 한민족의 응전력이 될 수 있었다.

ⓑ김기진의 역할 : 동경에 유학하고 이던 중 사회주의자 마생구의 영향을 받은 김기진은 <<백조>>파의 박영희와 박종화와 친분이 깊었다. 김기진은 편지를 통해 이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다가 <<백조>>3호때부터 동인으로 참여했다. 이 충격은 <<백조>>의 유미주의를 파괴했다.

⑤ 1920년대 시 장르 선택 조건과 그 의의

1919년을 전후한 한국사회에서는 앞의 방향성의 지평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이 선택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생의 순간적 지각에 의거하는 시의 선택이 가능했다. 이런 시 장르 선택에 의한 1920년 전후의 탐미적·퇴폐적 시는 일종의 예술적 저항의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저항과 계급 이데올로기의 저항은 유사한 것이어서 <<백조>>파의 프로문학으로의 급격한 경도가 가능했다. <<백조>>를 통해 <<태서문예신보>>에서 시작된 모더니티 지향성이 계급 이데올로기로 연결되었다. 이는 조선주의로 이어진 전통 지향성과 나란히 전개되었다.



Ⅴ. 1930년대

1. 1930년대 후반기 KAPF 문인들의 전향

① 전향문학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모랄 추구의 형태로 고민하는 문학으로, 대개 소설이다.

② 인간형과 모랄의 관계

ⓐ후일담 문학 : 어떻게 사느냐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유형이다. 이효석의 <장미 병들다>, 채만식의 <치숙> 등의 동반자 작가들이 이 유형의 작가이다.

ⓑ내적인 삶의 굴절을 문제 삼는 유형 : KAPF 조직에 가담했던 작가들이 전주사건을 전후하여 겪게되는 여러 가지 형태의 내적인 삶의 굴절을 문제 삼는 유형이다.

③ KAPF 문인들의 전향 유형

ⓐ박영희·백철·임화 : 이들은 대정 데모크라시에서 관념 형태로서의 사회주의와 모더니즘에 무방비로 열려있어 내적 저항없이 두 이데올로기를 취사선택할 수 있었다. 박영희는 사회주의를, 백철은 일종의 환상론을, 임화는 모더니즘을 선택했다. 서울 중인 출신의 박영희가 선택한 것은 관념 형태였기 때문에 다른 관념 형태로 바꾸어질 수 있었으며, 천도교 집안의 백철에게 그것은 인내천에서 벗어난 환상이었으므로 일종의 연기력이었고, 가출아인 임화에 있어 그것은 모더니즘에서 오는 감각과 그것의 파멸적 충동에다 계급사상으로서의 관념이 바로 이어진 것이었다.

ⓑ한설야·이기영·김남천 : 이들은 감옥에서 집행유에로 나왔을 때 생활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모색하는 일이 그대로 작가로서의 모색이었다. 즉 그 모색과정을 그리는 것이 창작이었다. 한설야에게 그것은 삶에의 적극성이었고, 이기영에게는 민속적 공동체 속으로 퇴행하는 형식이었고, 김남천에게는 적극성과 굴욕감 속에서의 균형감각 찾기였다.

ⓒ박태원·최명익·김기림 : 모더니즘에서 어떤 곡절을 겪어 리얼리즘으로 이르게 되었는가를 묻는 유형이다. 표층적 묘사의 모더니즘에서 박태원이, 심리묘사의 모더니즘에서 최명익이, 모더니즘의 기법과 계급사상의 결합 측면에서 김기림이 해당된다.



2. 모더니즘시 운동양상

① 모더니즘

모더니즘이란 용어는 근대 이후 나타난 모든 현상을 의미하는 광의와 특정 문학 예술 유파를 지칭하는 협의로 나뉘어진다. 특정 문학 예술 유파는 1920년대 영시에서의 이미지즘과 그것에 유사한 정신·기법이다.

② 시의 변증법적 전개

ⓐ1908∼1918 :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 외래적인 요인(모더니티 지향성)

ⓑ1918∼1925 : <<태서문예신보>>, 김억의 <<오뇌의 무도>>, <<백조>>, <<금성>> 등 - 서구 근대로의 편향(모더니티 지향성)

ⓒ1925년 무렵 : 시조의 부활, 김소월, 한용운 등의 민요적 리듬과 민족의식을 담은 서정시, 조선심 - 전통 지향성

ⓓ1925년 무렵∼1930 : KAPF - 모더니티 지향성

ⓔ1930∼1935 : <<시문학>>, 정지용, 김영랑 등이 우리말의 언어적 측면과 음악적 리듬의 발굴 - 전통 지향성과 모더니티 지향성의 융합

ⓕ1935년 전후 : 제국주의의 탄압이 강화되어 문학도 순문학적인 것으로 나타남 - 서구편향(모더니티 지향성)

ⓖ1930년 중반 이후 : <<문장>>, 유치환, 서정주 등의 인생파,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등의 자연파 - 전통 지향성

③ 모더니즘 시

ⓐ정지용의 <바다>, <향수> : <바다>는 말의 리듬, 이미지의 청신함, 시각적 이미지, 명랑한 감성 등을 통해 1930년대 한국시의 질적 전환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향수>는 농경사회의 가부장제적 세계, 주자학적 질서가 지켜지는 우리 전통의 정신사가 내재되어 있다.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 일본의 지식과 감각을 배웠던 일제 강점기의 많은 지식인들의 정신사가 내재되어 있다.



3. 1930년대 소설

① 이상

이상은 시, 소설, 수필에 걸쳐 두루 착품활동을 한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시의 경우 그가 보여주는 것은 현대인의 황량한 내면풍경이며, <오감도>처럼 반리얼리즘의 기법에 의해 불안과 공포라는 주제를 보여주는 것으로 요약된다. 또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 양식의 해체를 통한 현대인의 삶의 조건을 보여주는데, <날개>의 경우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통해 일상적 현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파편화되고 물화된 현대인의 소외를 드러내고 있다.

ⓐ<날개> : 작품의 화자인 '나'가 아무런 희망도 없는 무기력, 좁은 방으로 표상되는 비정상적인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소설의 주제이다. 소설의 서두에서 주인공의 무기력한 삶이 '박제'로 상징되었다면, 결말 부분에서 표출되는 탈출에의 의지는 '날개'로 상징된다. <날개>는 자의식 세계에 대한 뛰어난 묘사로 한국 소설사에서 심리주의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종생기> : 이 소설에서 화자가 자기의 인생과 죽음에 대하여 보이는 태도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자학과 그 극심한 자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냉소의 극치를 보여준다. 끊임없이 자신의 부정을 감추는 정희의 부정한 행실이 탄로되는 과정에서 자가당착에 빠져버린 것이다.

② 박태원

박태원의 소설은 문체와 표현기교에 있어서의 과감한 실험적 측면과 시정 신변의 속물과 풍속세태를 파노라마적으로 묘사하는 세태소설의 측면이 그 특징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주인공이 아침에 집을 나와 도시의 구석구석을 배회하다가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 동안의 일상이 소설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천변풍경>> : <<천변풍경>>은 약 1년 동안 서울 청계천변을 중심으로 하여 벌어지는 서민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이 묘사의 과정에서 서술자는 주관적 개입을 제한하고 객관적인 표상만을 제시한다. 묘사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이나 비판보다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Ⅵ. 해방공간

1. 해방공간의 역사철학

해방공간은 1945년 8월 15일에서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까지이다. 이 때의 역사철학은 나라찾기와 나라만들기가 혼재된 상태인 과도기적인 것이었다. 여전히 외부세력인 미국과 소련의 군정 밑에 놓여 나라 찾기가 이어졌다. 또 세계 질서의 재편성에 힘입어 나라만들기의 전망이 썩 뚜렷하게 드러났다.



2. 해방공간에서의 문학노선

해방공간에서의 문학은 민족문학 건설로 수렴하는 것이었다. 민족문학 건설의 과제는 나라만들기와 직결되는 것이다. 해방공간의 문학은 세 가지 문학 노선을 에워싸고 조직이 이루어졌다.

ⓐ북로당문학 노선 : 이것은 북조선예술총연맹(1946.3)을 가리키는 것으로, 소련 군정 문화담당관 꾸세프와 김창만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의 당파성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다.

ⓑ남로당문학 노선 : 1946년 10월에 월북한 박헌영은 해주의 제 1인쇄소에다 선전 본부를 두고 남로당을 총지휘했고, 1947년 임화가 거기에 합류했다. 남로당의 민족문학론은 시민성을 토착자본계급의 이념이라 보고, 인민성을 내세웠다. 여기서 인민성은 노동자계급이며, 이것을 다른 계급으로 확산시키고자 했다. 이와 같은 인민적 민주주의로서 민족문학은 좌우합작 노선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익 노선 : 전국문필가협회의 외곽단체인 조선청년문학가협회는 우익 민족문학 단체였다. 김동리로 대표되는 '구경적 생의 형식'으로서의 문학관은 문학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에 관련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점을 충격한 이론이었다.



3. 해방공간의 시

시는 체험의 직접성과 호흡의 급박성으로 미국 소련 점령군과 한민족 사이에 벌어진 혼란과 갈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 <<해방기념시집>>은 해방으로부터 각 지면에 발표된 시들을 광범위하게 모은 것이다. 이것은 추도시적인 진혼곡 형식이며 낭송시적 성격이었다. <<횃불>>은 문학가동맹의 준기관지 격인 <<우리문학>>에서 출간했다. 권한, 박세영, 박아지, 윤곤강 등의 작품 서너 편이 골라져 묶여 있었다. 이것에서는 각 시인들의 투쟁경력이라든가 소속계층 및 세계관의 일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편 본질과 현상이 분리되어 매개항을 찾지 못한 경향이 있었다. 정지용은 8·15 해방을 혁명적 성격으로 파악했는데, 이는 변증법적 인식이 결여된 정지용의 한계로 정지용이 해방공간에서 시를 쓰지 못한 이유이다. 또 김기림은 <나의 노래>, <새나라송> 등에서 터무니없는 낙관주의와 모더니즘의 경박성이라는 한계를 보였다. 이는 김기림이 우리 사회의 역사성, 사회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무이다. 설정식은 청춘, 열정, 예지 등의 선명한 이미지를 창조하여 혁명적 낭만주의 성향을 보였지만, 과학이 아닌 심증적인 것이어서 허무주의로 치닫게 되었다.



4. 해방공간의 소설

8·15광복 직후에 민족 대이동이 있었다. 이들의 귀소 본능이나 삶의 애환이 주된 소재였다. 김동리의 <혈거부족>, 허준의 <잔등>, 계용묵의 <별을 헤다> 등이 그것을 담았다. 한편 순수문학을 지향해왔던 이태준은 문제작 <해방전후>에서 해방공간을 어떻게 파악하는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주인공 현이 어째서 공산당 쪽으로 기울어지는가를 보여 주었다.



Ⅶ. 1950년대

1. 6·25와 문학과의 관련성

① 민족어의 재편성

피난민의 삶과 토착민 사이의 교류 관계는 언어의 혼재를 가져왔으며, UN군의 진주와 함께 외래어와 근대 용어의 도입은 언어의 풍요로움을 가져왔다. 진솔한 우리말과 이러한 새로운 언어의 혼란 속에서 중성적인 문체가 나올 수 있었다.

② 전쟁 자체에 대하여 고한 고발과 비판 형식

전쟁문학은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다. 죽음이 승인되는 전쟁에서 평상시의 가치 기준이 정지하고, 인간 조건을 드러낼 수 있는 극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래서 우리 문학은 6·25를 통해 세계성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③ 정신사적 문제

6·25를 동족 상잔의 측면에서 보면 짙은 죄의식을 수반하는 사건이다. 이런 죄의식이 문학에 반영되었다.



2. 구세대의 6·25에 대한 대응

① 종군작가단

구세대란 일제 강점기에 등장한 문인과 해방공간 3년간에 작가로 데뷔한 문인들을 가르킨다. 6·25가 터졌을 때 이들은 종군작가단을 조직했다. 최상덕, 김팔봉, 박영준, 정비석, 김이석 등은 육군종군작가단을 조직하고 <<전선문학>>을 간행했다. 이선구, 염상섭, 이무영, 안수길 등은 해군종군작가단을 조직하고 <<해군지를 편집했다. 마해송,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황순원, 김동리 등은 공군종군작가단인 창공구락부를 조직하고 <<창공>>, <<코메트>>에 관여했다.

② 구세대의 시와 소설

구세대의 시로는 이호우의 <깃발>, 조지훈의 <첫기도>, 유치환의 <보병과 더불어> 등이 있다. 소설로는 6·25 전쟁이 소설 속에 내면화되어 나타난 박영준의 <용초도 근해>, 민족적 희열 현상의 실상을 다룬 김동리의 <흥남 철수>, 피난민의 삶과 귀소 본능을 다룬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 김이석의 <동면> 등이 있다.



3. 전후세대의 등장

전후문학은 그 활동시기가 전쟁이 끝난 뒤이다. <<사상계>>, <<현대문학>>, <<문학예술>> 등의 출현과 더불어 전후문학이 시작되었다.

① 전후소설

ⓐ손창섭 : 대표작인 <혈서>, <미해결의 장>, <비오는 날> 등에서 드러나는 음울한 분위기와 주인공의 무기력한 상태는절망에 놓인 시대상과의 대응관계를 보여준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모멸의 극한 상태를 집요하게 추구함으로써 메조히즘적 쾌감을 도입하였다.

ⓑ장용학 : 장용학은 우화적인 요소를 소설 속에 끌어들였으며, <지동설>에서 <요한시집>을 거쳐 <<원형의 전설>>까지 우화적 요소가 일관성있게 유지되고 있다. 특히 <요한시집>은 내적 독백체와 시간구조의 혼란으로 종래의 소설 기법과는 다른 것이었다.

ⓒ김성한 : 풍론적 방법으로 새로운 영역을 확보한 김성한의 <달팽이>, <5분간> 등은 주지적 경향을 보였다.

ⓓ오상원 : 오상원의 <유예>는 의식의 흐름 수법을 유려하게 구사했다.

ⓔ선우휘 : 선우휘의 <불꽃>은 기법의 실험 쪽 보다는 정통적인 소설기법으로 쓰여진 것이며, 소설의 사상성을 중시하는 유형이었다.

② 전후시

ⓐ모더니즘 :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낸 박인환, 김수영, 김경린 등의 시운동으로, 이것의 시적 경향성은 가치 중립적 세계관의 도입을 통한 6·25의 포착이었다. 그래서 종래의 기법과는 다르며, 종래의 언어관과도 다른 일종의 기호의 세계에 접근한다. <ONE WAY>, <0157584>, <철조망> 등의 작품이 있다.

ⓑ전통지향의 시 : <보병과 더불어>의 유치환, <역마 앞에서>의 조지훈 등과 함께 박재삼, 이동주, 박희진 등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③ 전후평론

전후평론은 대체로 모더니티 지향성을 갖는 것이었다. 한편에서는 휴머니즘을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분석비평을 시도했다. 김용권이 뉴크리티시즘을, 이어령이 수사학을, 김우종이 은유법을, 유종호가 토착어 비판을 발판으로 비평계에 활력을 넣었다.



Ⅷ. 1960년대

1. 4·19혁명

4·19혁명은 경험주의, 실용주의의 교육을 받은 새로운 세대와 구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4·19혁명은 순간적이나마 자유의 현장성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하지만 5·16 구테타에 의해 1년만에 대치되었다.



2. 60년대 소설

ⓐ최인훈 : <광장>은 4·19가 제기한 민주화라는 자유의 문제와 5·16이 제기한 근대화라는 평등의 문제 사이의 갈등에 대한 문학 차원의 대응이다. <광장>은 이명준의 자살을 통해 이 둘을 포기함으로써 문제제기에 멈추었지만, 이런 문제제기는 7,80년의 전과정을 거치고 90년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방향성과 통하는 것이다.

ⓑ김승옥 : 안개로 표상되는 <무진기행>은 자유 최대의 상한선에서 어떻게 서서히 좌절되어 갔는가에 대한 문학적 응전 형식이다. 또 <환상수첩>과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에서의 바다와 죽음의 이미지는 도시를 향한 환상적 그리움이다. 즉 포즈(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60년대 신선한 감수성의 실상이다.



3. 60년대 시

60년대의 시는 과학이 빠진 본질의 쇠약함, 현상의 엷음에서의 극단론이 선명해진다. 본질 쪽에서는 김춘수가, 현상 쪽에서는 김수영이 대표적이다.



4. 문예지

ⓐ<<창작과 비평>> : 처음에 백낙청이 지식인의 맡은 바 몫을 문제삼고 출연한 <<창작과 비평>.은 시민문학론을 통한 근대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이르고, 민족문학론을 통한 제 3세계와의 통로에 이른다.

ⓑ<<문학과 지성>> : 김승옥, 김현, 김치수 등의 <<산문시대>> 동인들에 이청준과 김주연이 가담해서 <<68문학>>이 간행되었다. 그리고 김병익이 가담하면서 <<문학과 지성>>이 탄생했다. <<문학과 지성>>은 자유의 개념을 내세웠다.



Ⅸ. 1970년대

ⓐ<농무> : 신경림의 <농무>는 농촌공동체의 제의 형식이며, 허무주의와 분노의 감정이 깔려있다. 농촌공동체의 붕괴의 계기는 6·25와 산업화(근대화)이다. 이 두 사건은 자유와 평등의 의식과 관련된 것이다. <농무>는 이런 농촌공동체 파괴 현상에 대한 문학적 항의인 것이다.

ⓑ<삼포가는 길> :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은 70년대에 얻어진 산업사회로의 진입에 관한 문학적 대응이다. 즉 부랑근로자들의 도달점이었다.


이글은 김윤식 교수님의 <한국 현대 문학사>(서울대학교 출판부)와 교수님의 강의록을 요약한 것을 "꿈을 넘어서"라는 홈피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