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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想 함석헌의 "겨울이 만일 온다면"

2004.05.31 23:59

폭우 조회 수:1586 추천:21

겨울이 만일 온다면

                                                     함석헌



1. 반항정신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이것은 저  이름난 셸리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아닌가. 겨울이 오면 나는 언제나 그 시, 더구나 이  마지막 구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까지 몇 번인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이것을 불렀고, 부르면 언제나 신이 난다.
문학을 내가 모르고 영문학은 더구나 맛을 알리가 없지만, 또 평생에 좋아서 입에 떼지  않고 외는 글귀도 몇  개 못되지만, 그 몇 개  못되는 중에서라도 마지막까지 잊지않고 부를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구절일 것이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나같이 이렇게 막힌 가슴속에서도 무슨 스완 송이라도 나갈 것이 있겠는지 모르지만, 만일 아무것도  없다면 이 구절이라도 부르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세상에는 일생을 맘껏 살고, 마지막 마무름까지를 잘하여 자기 죽은 후에 무덤에 세울 비석의 글귀까지 미리 지어두고 가는 이가 있다.

   나는 죽은 후에  비석이 설 리는 없겠지만 세워준다  해도 내 영이 살아 있는 한은 벼락이라도 쳐서  그런 못마땅한 것은 아예 그림자도 없이  할 작정이지만, 그래도 세상이 하도 가지가진지라, 혹시라도 어느  어리석은 사람들이 정신이 빠지고 할 일이 없어  그런 짓을 하게 된다면 다른 것으론  용서를 못하여도, 만일 그 비석 위에 이 글귀라도 써준다면 혹 용서를 할지.

  명구, 명문이란 것이 사실  얼마만한 힘을 가졌는지 헤아릴 재주는 없다. 자공이란 사람이 공자님보고 “한 마디 말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행할 만한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하니  공자님이 대답하여 “그건 서니라” 했다  하지만, 과연 자공이 얼마나 그 말씀을  지켰는지?
격언이라 하고 천고에 명언이라 하여 사람들의 입에 늘 오르내리는 말이 기실을 아무 힘이 없는 경우가 대개다.

  루터가 “가장 큰  순교자는 주기도문”이라고 한 것은  이래서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남의 일은 어쨌거나  내가 아는 내 일로는 오늘까지 살아오는, 또 이 앞으로 살아갈 내 길에, 그 방향을 결정하는  데, 이 “서풍”이 아니고는, 이 “겨울이 만일 온다면”이 아니고는 될 수 없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내가 이 「서풍」 노래와  셸리를 알게 된 것은 스물네 살  되던 해다.
공부가 늦어졌던 나는 그  해에야 일본 동경 고등사범에 입학을 했다.  우리 경제원론을 가르치던 선생에 야마다란 젊은  강사가 있었다. 동경제대를 갓 나온, 아직 서생 냄새가 없어지지 않은 청년  학도로서 몸은 결핵형으로 호리호리한데 목이 가늘고 아직 자취생활을 하는 수수한 차림차림에 두 눈에선 빛이 반짝반짝하고 목소리는 나지막하여, 담배를 피우는 일도, 팔아 먹은 지 오랜 늙은 교수들처럼 시시한 소리를 하는 일도  없이, 언제 어느 모로 보나 재지와  진실이 흘러나는 인상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사상이 마르크스주의인  것은 그의 경제학에서 알았고,  후일 대동아전쟁 다시에 무슨 커다란 좌익운동을 하다가 검거됐던 것도 신문에서 보아 알았지만, 그때에 그 사람으로서 그럴  것 같지도 않은 그저 온순한 사람이었느데, 그가 하루는 시간을 시작하기  전에 영화구경 갔던 이야기를 하면서 요새 「이프 윈터 컴스」라는  영화가 왔는데 재미가 있으니 한 번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설명이 그 「이프 윈터 컴스」란 제목은  셸리라는 영국 시인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라는 시에서 딴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내가 나의 일생의 친구가  되는 셸리와 「서풍의 노래」를 알게 된 처음이다. 사실을 셸리의 이름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보다도 예닐곱 해나 전 평양고등학교 시절에 일어 독본을 배우는 데서 나쓰메 소세키의 「산 길」중에 그의 「종달새」 노래의 몇  구절이 나와 있는 것이  있었으므로 그때에 이미 알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앞을 보고는 또 뒤를 보고  무엇을 찾아 애타하는 우리  기껏 웃노라는 그 웃음이건만  오히려 괴롬의 믿바닥에 섰고  한없는 기쁨의 노래 속에도  한없는 슬픔이 늘 깃들어 있구나.

  외기는 하면서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셸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했으니 기억이 됐을 리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 이름을 뜻깊이  새로 들으니 죽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었다.

  영화를 좋게 여기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라  해도 하는 단순한 학생 심리로, 보라는 대로 가보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그때는 물론 어느 정도 감격도 가지고  보았지만, 지금은 기억에 남아  있는 것도 없이 다 잊었다. 역시 무슨 연애 이야기인데 그  마지막이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라는 이 구절로 끝이 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그림은 물이 흘러가듯  다 흘러가버리고 말았는데,  “겨울이 만일 온다면”이란 구절만은 웬일인지 잊을 길이 없었고, 한번  그 시 전편을 꼭 보고 싶었다. 나는 오늘까지도 모른다.  그 야마다라는 사람이 그저 한때 지나가는 이야기로 그 영화를  소개한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역시 공산주의자의  치밀한 선전방법으로 계획적으로 한 건지, 그가 셸리의 사상을 혁명적이라 해서 그랬는지, 그 영화의 작가도 프로  예술가여서 그랬는지, 그의 말을 들어서 그랬는지, 그렇지 않고 내 속에  본래 셸리를 좋아할 요소가 들어 있어  그랬는지, 모든 조건이 다 하나님의 섭리로 맞추어져서 그리 된 것인지, 그것을 나는 다 모른다.

  야마다 씨는 셸리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해준 것이 없다. 또  그날 그 소개를 받은 수십 명 중 얼마나한 사람이 그  영향을 입었는지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가 무슨 생각으로  했든간에, 다른 사람이야 어찌했든간에, 나는 그것이 인연이 되어 몇 해를 두고 잊지 못하다가 역시 셸리의 시집을 사보고야 만 것만은 사실이다. 아주 열심히었다면, 그때 당장  사보기라도 했겠는데 그렇지는 못했고, 그러면서도 잊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말 「서풍의  노래」를 읽게 된것은 서른이나 돼서 오산에 와 있는 동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어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밭에  괭이를 넣어, 영문학이 뭔지 시가 뭔지 알지도 못하는  내가 그것을 우리말로 옮겨서 『성서조선』지에다가 내기까지 했다. 그런  이래 30년 오늘까지 그것은 내 노래요,  셸리는 나의 친구요, 이 앞으로도  아마 그는 끊어지는 날이 없이 내게 위로를 주고 힘을 줄 것이다.

  그러니 알 수 없는  건 인생의 일 아닌가? 제가 하는 건가,  남이 가르쳐서 하는 건가? 교육은  할 것인가, 아니할 것인가?  말을 해서 좋은가, 아니해서 좋은가? 야마다가 우연한 말로 했던 것이 내게  일생의 힘이 됐다면, 말은 우선 해야 할 것  같은데, 또 만일 그가  정말 공산주의를 선전하잔 목적에서  한 것이라면 내 경우에 있어서는  전연 반대의 결과를 낸 셈이니  교육해서 된다 할 수도 없다.

    나는 오늘도 공산주의가  날뛰는 것을 볼 때마다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하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럼 혁명에는 좌도 우도 없고 그저 끊임없이 스스로 새로운 생명의  꿈틀거림이 있을 뿐이란 말인가? 모든 것은 그저 내 가슴속 하나에 있단 말인가?

  어쨌든 나는 셸리가  좋다. 그 「프로메테우스」가 좋고, 그 「에피사이키디온」(Epipsychidion)이 좋고, 그  「느낌의 나무」가 좋고, 그 「종달새」,  그 「구름」이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좋은 것은 이 「서풍이 부치는 노래」다.

  “오 사나운 서풍이여, 너  산 가을의 숨이여” 하는 첫 줄로  시작이 되는 그 시는 첫 글자 그대로 와일드(wild)한, 생기찬 영의 부르짖음이요, 자기 말대로 “예언자의 나팔”이요,  “슬프면서도 녹아드는 혼의  기도”다. 나뭇잎을 흔들어 떨며, 씨를 날려  땅 속에 묻고, 구름을 몰아쳐 폭풍우를  퍼부으며, 죽어가는 해를 위해 만가를  부르고, 지중해를 흔들어 평화의  꿈을 깨쳐 어지럽게 하며, 새 시대의 오는 앞길을 여는 사나운 서풍을 향해 노래를 하다, 외치다 못해,

  사나운 영아 네가 나려무나!

  나를 일으켜주려무나.

  잎새처럼, 구름처럼, 물결처럼

  나는 인생의 가시밭에 엎어졌노라.

  너처럼 그렇게 날쌔고 그렇게 뻣뻣하고 자랑하던 내가.....

하여 울음으로 다투어가며 애타는 기도를 하는 셸리는 저 자신이 이 나를 몇 번이나 엎어진 데서 일으켜 주었는지 모른다.

  일제시대의 그 내리누르는  압박 밑에서 숨이 막히려  할 때에도 황성산 푸른 솔잎을 흔들고 오는 그 서풍은 내 코를 뚫어  새 숨을 넣어주었고, 해방 후 공산주의의 그 살벌한 포악 앞에서 사지가 움츠려지려 할 때에도 몽고 사막, 만주    벌판을 쓸고 압록강을 건너오는 그 서풍은 내 가슴에 새  피를 돌리어 한 몸을 버티고   걸어나갈수 있게 해주었으며, 6.25전쟁에 낙동강 썩은  물가에 솔피처럼 몰려 슬픈 탄식에 지친  혼이 조는 때에도 대서양을 건너 지중해, 홍해, 인도양,  황해를 건너 태평양을 단숨에 끊으려고 불어대는 그 서풍은  나를 깨워 흔들어 새 날을 바라게  하였다. 그것은 슬플 때의 나의 위로요, 맥날 때의 나를 가다듬어 주는 자요, 내가 터무니없는 잘못을 하고 내 혼이 거꾸러질  때 내 손을 잡아 일으켜주는 길동무요,  내 맘이 둔해질 때 나를 책망해  뒤의 것을 잊고 알 수 없는  앞을 향해 막 더듬어 나가게 하는 ‘빈 들의 소리’다.

  내가 셸리를 좋아하는  것은 문학적인 자리에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영국의 일류 시인이라 하지만  그것을 감상할 만한 문학의 힘은 내게  없다. 나는 글을 모른다. 조금 배우려 하던 글도 다 잊어 버렸다. 또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인격이 높은 것이 있어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는 ‘미치광이 셸리’‘무신론자 셸리’의 별명을 들었고, 종내 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쫓겨났으며, 사회에서는 옳은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궤도없는 사랑에 빠져 남의 비난을 받은 그니 인격적으로 별  훌륭한 것이 없으며, 내가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그러한 정도의 생애를 본으로 삼을 것이 못되는 것쯤은 안다.

  또 그의 사업 경력이 두드러진 것이 있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서른도 못되어 뱃놀이를 하다가 바다에  빠져죽은 그에게 큰 사업을  이루어놓은 것이 있을 리 없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다만 그의 불타는  반항정신 때문이다. 그는 타고난 반항아였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는 온갖 구속,  압박, 묵은 것에 대해 죽기로  반항하는 자유의 혼이었다.  「서풍의 노래」의 셋째  절에서 그가 불어오는 서풍에 지중해 고요한 물  위에 뜨는 옛 궁전의 꿈이 깨지고 대서양의 수평이 흔들려 깨지며 바닷속의 해조들이  생기를 잃고 떨며 길을 여는 것을 본 것은, 그가 어떻게  그때 바야흐로 무르익으려는 문화에 있어서 벌써  그것을 벗어버리고 새 시대를 바라는  혼이 사무쳤던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몇 사람 아니되는 새 시대의 정신적  영웅의 한 사람이다. 도덕의 테두리에서 견주어볼 때 그에게 비난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을 그가 가진, 새 시대에 대해 날카롭고 억센 힘으로  나가려는 독수리 같은 정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라를 건지는  용사의 공로는, 그가  어떻게 죽기로 싸워  쳐들어오는 대적을 물리쳤나 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결코 그가 싸움에 나가기  전 마을에서 하던 작은 행동의 잘잘못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반항, 항의, 생명의 바탕이  만일 자유에 있다면 그 자유를 구속하고 빼앗으려는 세력이 밖에서  오고, 말라붙으려는 제도.전통의 때가 안에서 끼려  할 때, 거기 대해  일어나 결러대는  정신이야말로 가장 귀한  도덕이라 할 수밖에  없다. resist, revolt, protest.  다 좋은 말이다. 만일 resist란 말이  없다면 나는 영어를 아니 배울 것이다. 누가 영국을  gentleman의 나라라 하는가? 그렇다, 영국은 과연 gentle 의  나라다. 점잖은, 온순한, 신사의 나라다. 그러나  영국 사람은 결코 코를 땅에 대는 종  같은 온순을 하는 백성이 아니다. 영국  역사는 옳게 말하면 gentle과 resist,곧 점잖음과 결러댐이 섞여 짜인 역사다.

  마그나카르타가  무엇인가?  의회정치가  무엇인가? 스코틀랜드가  무엇인가? 퓨리턴이 무엇이며, 메이플라워가  무엇이며,  미국 독립이 무엇이며, 남북전쟁이 무언가? 다, 다 이 반항정신의 나타난 것 아닌가? 만일 크롬웰, 밀턴, 칼라일, 오코너가 없었던들 영국은  없었을 것이다. 워스워드보다는 브라우닝이 귀하고, 처칠은 잊는 때가 와도 버나드 쇼는 잊는 때가 올 수 없을 것이다.

  영국 역사는 반항의 역사, 항의의 역사,  혁명의 역사다. 영국의 겉옷은 신사복 gentlemanship일 것이다. 그러나 그  속살은 resistance다. 북해의 물결처럼 결러댐이다. 셸리는 그 한 물결이다.

  영국 역사만일까? 어느  역사는 반항, 항의의 역사 아니가? 루소  아니라면 프랑스가 없었을 것이요, 루터가 아니하면 독일이 없었을 것이요, 에머슨.소로.휘트먼이 아니라면 미국은 없다.

  20세기에 제일 큰 세계적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인도의 독립일 것이다. 3억의 민중이 200년 넘는 압박에서 칼에 피 하나  묻히지 않고 해방이 됐다. 그런 일이 이 다음은 몰라도 지금까지 있은 일이 없다.  그런데 그것이 어째서 나왔느냐 하면 간디의‘사티아그라하’에서  나왔다. ‘사티아그라하’는 악의  세력에 대하여 용감히 반항하고  싸우는 일이다. 간디에게 있어서는 가장 첫째  가는 죄악은 비겁이다. 사실 만일  스물다섯 살의 젊은 간디가 아프리카 조그마한  기차 정거장에서 백인 차장이 발길로  차는 대로 일등표를 가지고도 삼등칸으로 수굿수굿 갔더라면, 시골길 역마차에서  마부가 끌어내리는 대로 벌벌 떨고 내려갔더라면, 인도 3억의 자유는 없다.

  그가 그 정거장  추운 밤, 오들오들 떨면서 일생 두고  인종차별이라는 인류의 부끄러운 죄악과 싸울  것을 결심했을 때, 이를 악물고 마차채를  붙들고 끌어내리려는 백인과 모가지가  빠지라고 놓지 않고 싸웠을 때, 인도  민족의 생존권이 보장이 됐다. 오늘도  서양 갔다오는 사람은 다 인도 사람의  자부심이란 굉장한 것이더라 하는데 아직도 손가락으로 밑을 닦는 인도 민족으로서 그런 제노라 내버티는 정신은 간디가 만일‘사루마다’바람으로 대영제국 황제 앞엘 가지 않았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간디의  눈엔 인권의 자유, 존엄이 문제지,  황제니 체면이니 전통이니 그런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간디의 눈은 참의 눈이다. 그러므로 이겼다. 참은 반항한다. 결러댄다. 반항할 줄 모르는 백성은 망한다. 모르겠거든 거울을 대해 네 꼴을 보려무나!



  2. 평화정신

  그러나 내가 반항을 좋아한다면 또 그만큼 못지않게 순종, 온건, 평화도 좋아한다. 반항은 내가 후천적으로  의식적으로, 뜻으로, 사상으로 하는 것인지 몰라도, 평화는 내 선천적으로, 바탕으로, 버릇으로, 감정으로 된 대로 하는 것이다.

  나는 타고나기를  순종으로, 온순으로 났다. 인간  세상에 나서부터 나는 우리 집안에서 싸우는 걸 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다.  나는 언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기네끼리 혹은 근처의 남과 싸우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 어머니가 다투는 것을 본 일도 없고 남과 시비하는  것을 본 일도 없다. 가난이야 물론 가난한 농사꾼이지만 그야말로  평화의 가정에서 자라났다. 나도  누구하고 쌈이나 다툼을 해본 일이 별로  없다. 그러므로 누구에세 매 하나 맞아본 일이 없다. 말썽 없는 내게다 손을 대어 매를 때린 영광은 저 제국주의 일본 경찰과 공산주의 북한 정부에게  돌린다. 그리고 나를 괴롭힌 이들 중에는  민주주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경찰도 한몫끼어 있다.

  어려서부터 착하단 말을  들은 일은 있어도 사납다, 모질다 하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겁 많고  부끄럼 많아 사람 많은 데는 나가지고  못했고 얼굴을 못 들었고 말을 못했다.  절을 시킬 때 그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었다. 절할 경우를 될수록 피했다, 정말  교만해 그런 것은 아닌데  그렇게 안 훈장 따위도 있었다. 어려서 연설을 하라는데 어쩔  줄을 몰랐다. 평소에 놀 땐 제가  뭔지를 내가 잘 아는 동무들이 다 나가 제법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두 다리가 떨려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만 땅에 엎디어버렸다.  그런데 그 내가 이젠 욕 잘한다, 험구라 하는 말을 듣게 되었으니 무슨 일일까?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resist를 좋아한다 그랬지. 그러나 내가  영어라고 처음 얻어들은 말은 이상하게도 그와는 반대되는  gentleman이다. 그러니 그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일 아닌가? 나는 생각할수록  그것이 무슨 운명의 장난같이, 하나님이  일부러 꾸민 창세놀음같이 보여서  못견디겠다. 하기야 영어가  내 사람 노릇에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마는 그것은 내게  있어서는 세계를 내다보는  창문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영어 학자 사이토가 “하늘나라의 말은 아마  영어일 것”이라고 했지만 내게는 정말 부족하나마 영어는 정신나라의 국어다. 그것은 그렇고, 내가 gentleman이라는 영어를 처음 듣게 된 이야기는 이렇다.

  내가 난 것이 1901년이요, 난 곳이 우리나라  맨 서북 끄트머리 평안북도 용천에서도 바닷가니  그때 거기 영어고 무어고  알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때 내 집안 형 되는 이에 함석은이라는 이가 있어서  일본 동경에 유학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여남은 살 되던 때 이야기다. 그때 서울은  또 몰라도 그런 시골서 일본 유학이란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가 혹 방학에  집에 돌아오는 때면 온 문중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동리가 나가 마중을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가 언제  방학에 왔을 때 동네의 애  어른이 다 모인 데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엇다. 그때는  일어나려던 민족이 갓 망한 때인지라 모여만  앉으면 그저 적개심에서 나오는 이야기뿐이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앞섰다는 둥, 서산대사.사명당이 사람  가죽 300장을 받아왔다는 둥, 일본  관리가 어느 미국 선교사한테꿈쩍을 못했다는 둥,  이런 따위 이야기였다. 그가 그때 동경의 선물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지금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이승만 박사의 무슨 일화였다.

  그때 이승만 박사라면 민족의 자랑거리로 여길이만큼  알았다. 그런데 그때 그가 말한 이야기의 내용은 지금  다 잊어버려 알 수가 없고 다만 ‘젠트맨’이라는 한 마디가 남아  있을 뿐이다. 미국 어느 공원에서 청년  이승만 박사가 연설을 했다든가 했는데, 어떤 미국 사람이 퍽  동정을 한다 할까, 감복한다 할까, 그때 들은 느낌으로는, 어쨌거나 그러한 태도로  와서 보고, “젠트맨, 당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운운하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 ‘젠트맨’이란 말은  그때 퍽 이상하게 들렸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타고난 수줍음에 묻지도 못하고 말았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이 깊이 있지만, 그것은 물론 이제  와 생각하면 내가 ‘젠틀맨’의  발음을 잘못 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오랫동안 그 ‘젠트맨’이 무슨 소린가 하고 궁금했었다.

  그 이야기를 하던 그는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와 평양 숭덕학교에 선생으로 조금 있다가 3.1운동을 맞이하게 되었다. 평안남북도 청년운동의 책임을 맡았었고, 사실 평양의 학생들을 모아  3.1운동 때 활동을 하게 일을 만든 것은 그였다. 그 후 안동으로 피하여 몇 해를 있다가  일본 군인의 습격을 몇 차례 받아 죽을 뻔하다가 부상당하고 잡혀 신의주 감옥에 복역하고 나와 폐병으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에 그  눈물을 섞어서 ‘젠트맨’하며  이야기를 하던 그 입 맵시를 내가  지금도 기억하건만 그는 없다. 반항 투쟁하던  그는 없고 ‘젠트맨’은 남아  있다. 그때의 그 젠트맨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될  줄은 참 몰랐고, 그  대통령과 이 서울에서 살  줄은 나도 그때의 그  어린아이로는 꿈도 못 꾸었다.

  그렇게 영어에서 가장 먼저  들은 말은 내 천성답게 젠틀인데, 온순인데, 무슨 까닭으로 내 맘은 오늘 resist를 좋아하게 됐을까? 앞으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젠틀맨이 될 것 같지는 않고, 점점 더 resist 하고 revolt하고 repel하고 protest해야만 될 듯이 보이니! 그런데 또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당년의 젠틀맨 이박사를 머리로 삼는 우리  정부는 무력주의요, 통치주의요, 구속주의인데,  이 서풍에 끼어 반항정신 좋아하는 나는 도리어 평화정신, 세계주의, 빈전론을 부르짖고 싶으니! 영국 역사가 그랬던 것같이 미국 역사, 인도  역사가 그랬던 것같이, 우리 역사는 평화와 반항의 두 정신으로 섞어  짜지 못하나? gentle은 받아들고 resist는 골라든 나로 서는 그래야만 될 것같이만 보이는데.

  죄악을 정말  이기는 참 반항은  평화정신으로만, 비폭력으로만  될것 아닌가? 모든 사람이 다 자유로  온전한 발달을 할 수 있는 참평화,  창조적인 평화는 죄악의 세력에 대해  한 몸을 내놓고 날쌔게, 끈덕지게 결러대서만  될 것 아닌가? 남은 몰라도 나는 gentle과 revolt의 두 바람이 마주쳐  돌아가는 회오리바람을 탄 사람이다. 반항은 하지만 미워하진 말자, 싸우기는 하지만 주먹질은 말자.  모순인가? 모순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모순이 무서울 것 없지  않나? 삶은 모순인데. 모순이란 옛말은, 한 사람

이 창도 만들어 팔고  방패도 만들어 파는 데서 나왔다 한다.  창을 들고는 내가 만든 창은 못 뚫을 방패가 없다 하고, 방패를  들고는 내가 만든 방패는 어떤 창을 가지고도 못 뚫는다 했기 때문에, 묻는 자가  가서 “그럼 네 창으로 네 방패를 치면 어떠냐?”하니 대답을 못해 그래서로 맞지 않는 말을 모순이라 한다지.

  그 사람이 대답은 못한 대신 살았을 것이다. 살자니 둘 다 팔았지. 이 창만 가지면 된다는 사람들, 창을 맘껏 쓰고는  누구와 살려나? 창을 팔아먹을수록 방패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칼은 죽이지 말잔 칼이지 죽이잔  칼이 아니다. 주먹은 쥐지 말잔 주먹이지  쥐잔 주먹이 아니다. 주먹을  쥐면 힘이지만, 사실 그 힘은 쥐지 말고  펴서 열 손가락을 놀려서만  써지는 것이다. 손을 펴서  서로 잡으면 살지만 주먹을 쥐면 아버지 아들  새도 서로 죽임이다. 안는 팔, 이끄는 손은 쥔 주먹으로는 아니된다.

  모순, 무서울 것 없다. 나는 그냥  회오리바람을 타고 갈 것이다. 회오리바람이 무서운 것은  그 변두리에 있는  놈이지, 회오리바람의 중심엔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더라. 그러게 그대들은 보지 않았나, 회오리바람의 중심이 하늘에 통하는 것을 용이 오른다 하지 않았던가?  나는 저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끄물거리는 등잔도 불지 않으면서,  누구를 칠 듯이 채찍을 만들어 성전에서  장사꾼을 내몰며 “형제보고 어리석은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 하면서, 한  나라의 임금보고는 ‘여우’라고  하는, 그래 그 결과  십자가에 달린 저 모순의  사람 중의 모순의 사람이 좋더라.

  금년도 겨울이 닥쳐온다. 20세기도  50대를 지나고 있다. 내 머리에도 얼음 폭포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겨울이 아닌가? 겨울이다.  겨울이 온다. 겨울이 왔다. 해마다 오는 겨울이건만 이 어리석은 인생들이 처음 당하기나 하는  것처럼 벌벌 떨고 갈팡질팡하지 않나? 겨울 준비는 됐나?김장을 해놓고 장작을  사서 더미면 겨울 준비는  다 됐을까? 역사에 오는 겨울, 맘에  오는 겨울을 어찌하리오? 셸리는  어디 갔나? 젠틀맨은 무엇을 하고 있나? 정말젠틀맨은 헨리 파트리크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 평화’하기만 하겠

나? 비겁이 평화일까? 폭력이 정말 이김일까? 그렇다.  서풍만 한번 불면 공중에 흩날리는 잎새 모양으로 ‘누르테, 검은테, 헤멀끔, 불그스름, 염병 맞어’ 새 시대의 폭풍에 쫓겨가는 무리, 그러나 또 저희도 모르게 그러면서도  새 역사의 시를 뿌리는 무

리 앞에 서풍 노래밖에 무슨 노래를 부르리오.

  그럼 나는 셸리와 아울러  나의 만가를 부르련다. 예언의 나팔을 불련다. 브라우닝도 와서 같이 참여하라. “가장 좋은 것은 아직도 아니 왔다!”

  나는 저 숲처럼 네 거문고로 만들려무나

  내 잎새가 그 잎새같이 떨어지기로서 뭐냐?

  힘있는 네 하모니의 부르짖음은 그 둘 속에서

  깊은 가을 소리를 뽑아내지 않겠느냐?

  슬프기는 하건만 녹아드는 듯한 갈 노래

  무서운 영아 네가 나려무나! 이 부시대는 자야

  시든 잎을 날려 다시 살려내듯 내 죽은 사상을

  누리기에 몰아쳐주려무나

  그리하여 이 부르는 노래로 인하여

  꺼지지 않는 아궁이에서 재와 불꽃을 날리듯이

  내 말을 인류 속에 흩어주려무나!

  내 입술을 통해 저 잠자는 땅 위에

  예언의 나팔을 불어주려무나! 오 바람아!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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