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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이야기

2009.03.20 14:07

폭우 조회 수:450


온 나라가 폭염과 불법 도청 사건에 휘둘려 허우적거리던 2005년 여름 프랑스 파리에서는 랜스 암스트롱이 세계적인 도로 사이클경주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일곱 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상에는 기적 이상의 것들이 있다. 랜스 암스트롱의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도 그런 일에 속한다.

올해 36세인 랜스 암스트롱은 25세가 되던 해인 1996년 고환암에 걸려 사경을 헤맸다. 치사율 49%의 고환암 환자였던 그는 고환 한쪽과 뇌 조직 일부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다시 살아난 그는 스스로를 가장 멋지고 가치 있게 쓸 방법을 찾았다. 고심 끝에 그는 인간 한계의 시험장이자 죽음의 레이스로 불리는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하기로 했다.

99년 여름 투르 드 프랑스에 처음 출전한 랜스 암스트롱은 극적으로 우승했다. 이를 지켜본 언론들은 '기적'이라고 소리쳤다. 다음 해에도 그는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했고 또 우승했다. 세계의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아우성쳤다.

그 뒤 2001년부터 투르 드 프랑스의 모든 관심은 과연 랜스 암스트롱이 또 우승하는가였다. 폭염 속에서 자그마치 총연장 3500여km를 달려야 하는 죽음의 레이스 투르 드 프랑스에서 그는 2002년에도, 2003년에도, 그리고 2004년에도 우승했고 2005년 레이스에서 마침내 7연패의 위업을 이뤘다.

도대체 그에게 무엇이 있기에 죽음의 레이스로 불리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 내리 일곱 번 우승할 수 있었던 걸까?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랜스 암스트롱의 믿기지 않는 심폐기능이다. 둘째는 요한 브뤼닐 감독의 완벽한 작전능력이다. 셋째는 팀 동료들의 희생에 기반한 팀플레이다.

랜스 암스트롱의 심폐기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종횡으로 넘나드는 레이스 중 특히 산악지형에서 2위와의 간격을 멀찌감치 띄워놓곤 할 정도로 탁월한 심폐기능을 지녔다.

또 투르 드 프랑스는 폭염 속에서 약 3주 동안 총 연장 3500여km를 구간별로 나눠서 달리는 말 그대로 죽음의 레이스이기 때문에 체력 안배와 자로 잰 듯 정확한 작전운영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벨기에 출신의 요한 브뤼닐 감독의 탁월한 작전운영이 없었다면 랜스 암스트롱의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아울러 미 우정국 사이클팀에 소속된 랜스 암스트롱은 그의 팀 동료들의 희생적인 팀플레이 없이는 아마도 내리 일곱 번씩 우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팀 동료들은 자신의 우승을 위해 달린 것이 아니라 랜스 암스트롱을 우승시키기 위해 달렸다. 팀 동료들은 앞서 달리며 바람을 막아주고 그가 오버하지 않게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해 주었다. 또 앞으로 치고 나가는 다른 팀 선수들을 견제하며 랜스 암스트롱이 7연패의 위업을 향해 거침없이 달릴 수 있게 했다.

결국 랜스 암스트롱의 자질, 브뤼닐 감독의 전략, 동료들의 희생적인 팀플레이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졌기에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는 가능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단 1%의 희망만 있어도 달린다"는 랜스 암스트롱의 불굴의 의지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절반의 가능성만 있어도 할까 말까 망설인다. 하지만 그는 단 1%의 가능성과 희망만 있어도 주저없이 도전하고 달린 것이다. 그것이 사경을 헤매던 고환암 환자를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투르 드 프랑스 7연패의 주인공으로 만든 진정한 원동력이었다.

더구나 "너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적인 것들의 기초로 삼아라"는 어머니의 말을 마음 깊이 새기고 '부정'을 '긍정'으로 변환시킨 마음의 연금술 덕분에 랜스 암스트롱은 지금 우리 앞에 이 시대의 진짜 영웅으로 서 있는 것이다.

덥고 짜증나는 세상이다. 그러나 삶의 레이스는 오늘도 계속된다. 이기려면 자질도, 전략도, 팀플레이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부정'을 '긍정'으로 스위치 전환하고 단 1%의 희망만 있어도 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인생의 레이스에서 나도 챔피언이 될 수 있다

"투르 드 프랑스의 우승을 상징하는 노란색 유니폼 상의(마이요 존느)보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암투병 환자 기금마련을 위해 제작된 노란색 플라스틱 팔찌였다".

고별무대였던 2005 프랑스도로일주사이클대회(투르 드 프랑스)에서 7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인간승리의 주인공 랜스 암스트롱(미국)에 대한 찬사다.

1996년 세계랭킹 1위의 사이클선수 암스트롱은 생존률 절반 가량의 고환암 진단을 받았다. 이미 암세포는 그의 폐와 뇌에 퍼져 있는 상태였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고통스런 항암치료뿐이었다. 하지만 암스트롱은 "이렇게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은 처음 본다"는 의사의 말처럼 새로 찾아 올 인생을 위해 끊임없이 페달을 밟았다.

"고통은 순간적이다. 결국 고통은 사라지고 다른 게 그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중도에 포기하면 고통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말로 집약될 수 있는 암스트롱의 불굴의 정신력도 결국 암투병의 산물이었다.

암스트롱은 1999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암스트롱은 그 뒤로도 매해 3주가 넘는 기간동안 3400여 Km를 달려 인간 한계의 시험무대인 투르 드 프랑스를 올해로 7년째 석권한 것.

대회 7연패를 이루는 동안 암스트롱에겐 많은 얘기거리들이 뒤따랐다. 숱한 세계적 스타들을 여유있게 제압했던 암스트롱에게 금지약물 복용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암스트롱은 2001년 대회를 앞두고 프랑스 당국의 의혹 제기로 큰 어려움을 겪었고 2004년엔 암스트롱의 약물복용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기한 이라는 책이 출판됐다. 하지만 암스트롱과 그의 팀 동료들은 도핑 테스트 결과 양성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003년 암스트롱은 필생의 라이벌인 독일의 얀 울리히와 접전을 펼쳐야 했다. 번번이 암스트롱에 뒤져 대회 2위에 머물렀던 울리히는 제15구간에서 응원 나온 한 아이에 걸려 넘어진 암스트롱을 쉽게 역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울리히는 사이클을 세운 채 암스트롱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고 동등한 상황에서 다시 경주를 시작했다.

우승은 암스트롱의 몫이었지만 '아름다운 질주'를 한 울리히는 암스트롱 이상의 찬사를 받았다. 암스트롱의 대회 연속 우승에 라이벌인 울리히가 도움을 준 셈이었다.

일부에선 '사이클 영웅' 암스트롱이 텍사스 주지사에 도전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암스트롱은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를 달성한 뒤 "내가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암 퇴치와 가족이다"라고 소문을 일축했다.

'암스트롱 재단'을 통해 암 퇴치에 앞장 서 온 암스트롱은 전 세계 5000만명에게 팔린 '강하게 살라(live strong)'는 글귀가 새겨진 1달러짜리 노란색 팔찌로 전세계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해줬다.

암스트롱은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테러리즘보다 암을 훨씬 두려워 하고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예산은 약 40억 달러지만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치르는 데 아마도 하루에 10억달러를 썼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한 '사이클 영웅'보다는 암 투병에 승리한 사람으로 불리고 싶다는 암스트롱의 새로운 도전은 이미 막이 올랐다.

* 랜스의 글중에...


#1.
내게 다시 한 번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정말 올바르게 살겠다고.
그리고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암이 내 육신을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정신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암이란 진단을 받기 전의 나는 대단한 게으름뱅이였다.
100%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도 상당한 액수의 월급을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 자신에게 말했다.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2.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가 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면서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깨달음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면, 매일 아침
신선한 기분으로 깨어나 내게 특별한 또 하루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활기차고 목적 의식이 뚜렷한 하루하루를 이어가자고
다짐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가 내게 오로지 사이클에만 매달려 장대비 속에서도 여섯 시간씩
높은 산을 오르내리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게 바로 내 대답이다.

#3.
누가 내게 묻는다면 인생이란 거짓된 한계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싶다.
운동선수로서 내게 던져진 도전의 과제는
사이클을 타고 그 한계를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병상에서 그 한계를 시험해보는 것은 한 자연인으로서의
내게 주어진 도전의 과제였다.
암은 누구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도전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나의 도전 과제였다.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이건 나로 하여금 높이 뛰어올라
그 장애물을 넘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4.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세상을 보는 관점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내가 하는 선택이다.
결정은 바로 내가 하는 것이다.

#5.
세상에는 자신감을 사거나 조작하려는 사람,
또는 그런 체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자신감을 거짓으로 꾸며낼 수가 없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 내게 그 방법을 묻는다면,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하겠다.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노력해야 한다.
2003년 뚜르 드 프랑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온몸을 부숴버릴 듯한 노력과 함께...

#6.
1999년 내가 뚜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전혀 미스터리도 아니었고 기적의 약물 때문도 아니었다.
다른 선수보다 치밀한 훈련과 테크닉의 힘이었고,
투병 경험과 그에 버금가는 희생의 대가였다.
내가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나고 묻는다면, 그렇게 답할 수 밖에 없다.
누구든 큰 일을 이루겠다는 야망이 있다면,
강한 의지와 사소한 부분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주의력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큰 일을 이룬 위인들을 쭉 살펴보라.
어떤 이들은 카리스마가 있었고, 어떤 이들은 없다.
어떤 이들은 키가 크지만 어떤 이들은 작다.
어떤 이들은 뚱뚱하지만 어떤 이들은 호리호리하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은
어떤 어떤 한 가지 일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집중력이다.
1999년 이후로 나는 오직 하나, 뚜르 드 프랑스에만 전념했다.
개인적은 도전의 의지이기도 했지만 우리 팀 전체를 위한 객관적인
목표이기도 했다. 레이스는 나 아닌 타인을 물리치는것이라기 보다는
나 자신을 경쟁의 상대로 삼는 일이다.

" 나는 점점 더 나와의 경쟁에 익숙해졌고 전보다, 작년보다,
지난달보다, 아니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레이스를 하게 되었다.

#7.
고통이 주는 진짜 대가는 이런 것이다. 바로 자기 인식, 자각이다.
그러나 고통 앞에서 포기한다면 고통은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항복이라도 그 고통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된다.
포기하고 싶을 땐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고통과 평생함께 살고 싶은지 고통 아닌 다른 것과 함께 살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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