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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와 시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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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23절)

온갖 우상으로 가득 찼던 아덴은 심지어 이름 모름이라는 우상도 있었습니다. 인간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창조 세계의 질서를 다스리는 초월한 존재를 알고자 갈망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보여지고 만져지는 피조물(우상) 정도에 멈춰 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식의 한계임을 인정합니다. 
그렇기에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분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인식의 한계를 가진 어리석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문자라는 한계 속에 스스로 들어오셔서 말씀으로 우리를 매일 만나주시는 것은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리하여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며 혹여 내 지식과 인식의 수준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지 않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정말 그러한가 깊이 읽고 또 읽으며 하나님을 찾아갔을 겁니다. 
내 삶의 우선 순위에 항상 말씀을 두며 소중하게 말씀을 받고 상고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