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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 이외수 - 훈장(상편)

2004.07.23 05:14

폭우 조회 수:3790 추천:51

勳章


이 외수

<이 작품으로 1975년에 새대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하였습니다.>


[1] 묵은 日記帳

내 아버지의 별명은 미친개였다. 덕분에 내게 붙여진 별명은 미친 강아지였다. 억울했지만 나는 학교에서 곧잘 놀림을 받았고, 자주 내 얼굴은 머큐롬 칠로 장식되어졌다. 그러나 밖에서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나는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누설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극성이 싫어서였다.
만약 누설하면 결과는 뻔한 노릇이었다. 그날로 누구 한 사람 아버지의 그 유명한 박치기에 앞니 몇 대는 족히 부러지고 마는 거였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대개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간혹 아버지가 말이라도 걸게 되면 어물어물 대꾸해 주고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었다.
당연했다.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면 아버지는 무조건 박치기로 해결하려 들었으니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지겨운 사람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술을 무던히도 좋아했다. 마당에 송장메뚜기가 한 마리 뛰어다녀도, “저기 술 안주 한 마리가 돌아 다니는구나, 잡아 오너라.”하고 명령할 정도였다.
사실 아버지는 여러 가지 동물들을 술 안주로 삼았다. 먹어서 죽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모두 술 안주로 삼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 특히 아버지가 좋아한 것은 뱀이었다.
엄마가 병으로 죽고부터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자주 엄마의 무덤을 찾아 갔는데 그 때마다 아버지의 손에는 소줏병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소주를 엄마보다 더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원일아 술 안주 좀 잡아 오너라.”
미리 준비 해 온 안주가 다 떨어지면 아버지는 내게 사냥을 명령했다. 산에는 여러가지 안주들이 살고 있었다. 풀무치, 방아깨비, 새 세끼, 뱀, 도라지, 더덕, 두릅--- 이런 것들은 소금만 있으면 날것으로도 아주 맛있는 음식처럼 아버지의 입 속으로 들어 갔다.
“아버지, 거미도 돼요?”
그러나 거미는 맛대가리 없어, 였다.
나는 독사건 물뱀이건 도마뱀이건 뱀이라면 무조건 잡아다 바쳤다. 흡족한 얼굴로 칭찬해줄 아버지의 얼굴을 생각하며 나는 땅꾼처럼 뱀을 찾아 헤매곤 했었다.
아버지는 틈만 있으면 훈장을 닦았다. 훈장은 언제나 순금의 광채로 번쩍거렸다. 그것은 불행하고 어두운 아버지의 생애 속에서 유일한 위안과 빛으로 존재하였고, 그 유일한 위안과 빛을 아버지는 사람마다에게 자랑하고 싶어하였다. 아버지는 훈장을 닦기 전 언제나 손을 씻었으며 매번 희고 부드러운 헝겊을 새로 준비하였다.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그 훈장을 만질 수가 없었다. 훈장은 소형 철제 금고 속에 보관되어 있었고 금고 번호를 아는 사람은 아버지 뿐 이었다.
아버지는 단 한 가지 노래밖에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요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으로 떨어져 간
전우여 잘 자거라.

괴로우나 즐거우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부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노래 소리만 듣고도 아버지의 기분이 어떤지 금방 알아 낼 수 있었다. 누구네 가게라도 때려 부수고 돌아오는 날은 완전히 노래가 박력 있었다.
그러나 남에게 무시당하고도, 힘이 모자라 그냥 돌아오는 날은 노래가 아닌 울음이었다.
아버지는 외팔이었다. 육이오 때 잘려 버린 거였다.
아버지는 집에, 손님만 오면 나를 시켜 술을 받아 오게 하고, 술이 벌겋게 오르기만 하면 큰소리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맨손으로 인민군 다섯 명을 박살내 버렸다는 이야기. 아버지는 특히 맨손을 강조했지만 대개 손님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면 반드시 아버지는 훈장을 꺼내 보였다.
만약 이야기 도중에 손님이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가 버리면 아버지는 으례 나를 불렀다. 그리고 아까보다는 약간 맥빠진 소리로 그 무용담을 끝까지 들려주고야 말았다. 무슨 고지를 탈환하고 무슨 부대를 몰살시키고, 마침내 맨주먹으로 인민군 다섯 놈을.... 아 나는 몹시도 지루 하였다. 그러나 만약 이야기 도중에 꼼지락거리기라도 한다면, 사내세끼가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 소리와 동시 볼따구니에서 번쩍 번개가 이는 거였다.
아버지는 왜 그리 혼자 있기를 싫어했을까. 계모가 우리집에 와서 살기 전까지 나는 마음놓고 딱지치기 한 번을 못해 봤었다. 학교 가서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내 시간의 전부를 아버지와 함께 보내야 했었다. 아버지는 좀처럼 밖에 나가지 않았다. 줄곧 집에서 술을 마셨다. 그러나 겨울은 달랐다.
겨울은 아버지의 계절이었다. 겨울에 아버지는 비로소 집을 벗어나 활동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소문난 노름꾼이었다. 겨울에 아버지는 항상 넉넉한 돈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지방으로 원정을 가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가 돈을 잃었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한 손으로도 화투를 마술사처럼 자유자재로 주물렀다.
“니 새낀 눈치가 빠르니까 이 애비가 화툴 어디다 감추는지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거다. 자아 잘 봐라.”
아버지는 가끔 나를 앞에 앉혀 놓고 속임수를 연습하곤 했었다.
“어느 놈을 감춰 주랴.”
척 부채꼴로 화투 몇 장을 펴 들고 아버지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었다. 그러면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아버지가 펴든 화투 중에서 가장 그림이 예쁜 화투 하나를 가만히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다.
“좋오아.”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손을 가볍게 한 번 움직였다. 움직이면 부채꼴로 펴져 있던 화투 몇 장이 가지런하게 손아귀로 들어가 쥐어졌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이미 내가 짚었던 화투는 소리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게 되는 거였다. 단 동작 한 번에 아버지는 화투를 손아귀에 정돈하고 동시 내가 짚었던 화투를 귀신같이 감추어 버리는 거였다.
나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슴을 두근거리며 가만히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던 그 예쁜 그림의 화투 한 장을 처음 몇 번은 찾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치 소년 보안관이 된 기분으로 아버지의 몸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없었다. 아버지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는 갱처럼 허옇게 웃으며 득의 만만해 하였다. 아버지는 그럼 그 한 장의 화투를 어디에다 감추어 두었을까. 흐흐.... 뭐, 아버지 맘대로지.
무안하게도 내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기도 했고, 요강 속에 빠져 있기도 했고, 때로는 숫제 문밖에 나가 있기도 했다. 정말 아버지 맘대로였다. 아버지는 한 번 감추었던 곳에는 절대로 다시 감추는 법이 없었고, 아버지가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감추어진 화투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어느 겨울 새벽 아버지는 커다란 가방에 돈을 가득 넣어 가지고 들어와 나를 깨웠다. 가방속에 들어 차 있는 돈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내가 다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계속 소리내어 웃고 웃었다.
“캴캴캴. 으핫핫핫. 흐흐흐흐. 낄낄낄낄. 우헤헤헤. 히히히히...”
아버지는 계속 소리내어 웃으면서 가방을 끌어 안고 방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웃음이라는 웃음은 한꺼번에 모조리 웃어버릴 것처럼 아버지는 오래오래 미친 듯이 웃어 젖혔다. 그리고 웃을 힘이 다 빠져서야
“햐햐햐햐...”
하는 묘한 웃음으로 끝을 맺었다. 하여간 그날 아버지는 최고로 기분 좋아했고 나도 공연히 마음이 들떠서 아무 일도 못했다.
그 후 얼마 안 지나 우리에겐 아주 멋 있는집이 생겼고, 이어 계모와 계집애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조금은 해방될 수 있었다. 밥과 빨래와 청소로부터는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는 마음이 썩 좋은 사람으로 돌변해 버렸다. 대단히, 대단히 신나는 일이었다.
일요일이면 언제나 계모가 나와 계집애의 손목을 잡고 교회로 갔다. 계모는 주일 학교 반사(班師)였다. 애들을 모아 놓고 아주 열심히 그리고 상냥한 목소리로 기도와 성경과 찬송가를 가르쳐 주었다. 가끔 쉬는 시간이 생기면 애들과 함께 숨박꼭질도 하고 집짚기 놀이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며 놀아 주었다. 애들은 모두 계모를 좋아했다.
그러나 웬지 나는 계모가 서먹서먹했다.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모든 것이 또한 서먹서먹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찬송가는 하나도 없었고, 베드로, 요한, 야곱, 유다, 다윗, 베들레헴, 요르단,  겟세마네, 그리스도.... 들과도 나는 별로 친해져 있지 않았다.
내게 있어 교회는 무조건 재미없는 곳이었다. 교회에서 계모가 가르치는 기도와 성경과 찬송가를 배우는 것보다 들판으로 나가 잠자리를 잡아서 꼬리를 잘라 버리고 거기에 풀잎을 꽃아 시집을 보내거나, 개구리를 껍질벗겨 모닥불을 훌훌 구워 먹는 일이 한결 재미있을 거였다. 그러나 만약 내가 기도하는 시간을 틈타 몰래 도망쳐 버리고, 그 사실을 계모가 아버지에게 이르게 된다면 나는 또 입술을 당나발이 되도록 얻어 맞을 게 분명했다.
나는 교회가 지겨웠지만 아버지가 무서워 찬송하고, 기도하고, 계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체 해야했다.
그러나 모든 교회의 지루한 것들 중에서 나는 지루하지 않은 것을 마침내 한 가지 만들어 내었다. 그것은 아주 잠깐 동안 실행되는 나만의 오락이었다.
예배가 시작되면서부터, 나는 구속당한 기분으로 마룻바닥에 앉아, 나만의 오락을 즐길 수 있는 바로 그 시간이 돌아오기를 지루하게 기다렸다. 설교고 뭐고 모두 흥미 없었다. 그런 시간은 나에게 한눈을 팔게 만들 뿐 귀담아 들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 했다. 나만의 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앞에 앉은 애들의 뒤통수와 기계충 오른 자리와, 구멍난 양말과 빠져나온 엄지발가락과, 애들의 별명이며 그 유래 등에 신경 쓰기를 오히려 즐거워했다.
그러는 동안 예배 순서는 바뀌어 갔다. 그리고 점차로 나는 긴장되어 갔다.
“헌금 시간입니다. 모두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윽고 목사님 이렇게 말하면 비로소 내 모든 세포는 눈을 뜨고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한 사람이매미채같이 생긴 헌금 주머니를 집어 들면 나는 마구 가슴이 뛰었다. 나만의 오락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 호주머니 속에는 계모가 헌금하라고 준 동전 한 개가 얌전하게 들어 있었다. 나는 일단 호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 넣고 계모가준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흥분을 가라앉히곤 했다. 그러나 헌금 주머니가 내 앞에 당도하면 나는 계모가준 동전을 그대로 호주머니 속에 남겨 둔 채 빈 손을 태연자약하게 끄집어내었다. 마치 동전을 쥐고 있는 것같이 손을 꾸며서였다.
이 순간 나는 침착했다. 침착하게 빈 손을 헌금 주머니에 집어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를 것이다. 헌금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내 손이 얼마나 기계처럼 정확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가를. 그렇다. 내 손은 헌금 주머니 속에 들어가자마자 재빨리 두 개의 손가락으로 집게를 만들어 하나님의 동전 한 개를 훔쳐 내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나올 때의 내 손은 들어갈 때보다 더욱 더 침착하고 태연자약했다.
그러나 이 오락도 결국 열 번정도에서 흥미를 잃게 되고 나는 다시금 심심해졌다. 그리하여, 또 다른 오락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좀처럼 재미있는 오락은 발견되지 않았다. 교회는 쉽사리 나와 어울려지지 않았다.
교회는 내게 있어 타향 같은 곳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얼굴에 희망이라는 것을 번들번들하게 칠해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집이었다. 목사와도 집사와도 나는 다른 애들처럼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 이렇게 심심한 곳으로 나를 데리고 오는 계모가 약간은 미웠다. 언제나 나는 전학온 지 며칠 안 되는 녀석처럼 겉돌고 있었다. 그저 졸리운 곳이기만 했다.
마침내 나는 정말로 예배 시간에 잠들어 버리는 버릇을 익히게 되었다. 따라서 언제나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당분간 맨 뒷자리에서 나는 마음놓고 잠을 잤다. 어떤 때는 <예배시작>부터 <돌아갑시다. 재미 있는 시간이 벌써 지났네>까지 잔 적도 있었다.
겨울이 되자 나는 또 언제나 난로 뒤에 앉게 되었다. 더욱 졸음이 잘 왔다.
특히 목사님의 그 느린 목소리는 나로 하여금 졸음을 금치 못하게 했다.
어느 겨울 날. 나는 난로 가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난로는 잘피고 있었으며, 목사님의 목소리뿐 주위는 아주 조용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라!”
하는 고함이 나를 화들짝 잠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이 없게도, 참으로 어이없게도 나는 얼떨결에 벌떡 일어섰다. 목사님의 설교는 계속되고 있었다.
“다 함께 일어나서 하나님이 앞으로 나아가 우리의 영혼을 영생의 피로 씻자고 외치면서....”
그러나 여러애들은 목사님에게 시선을 돌려 모두 나를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애들 사이에 잠시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나는 심한 부끄러움으로 어쩔 줄 몰라하며 그대로 서 있었다. 이 때 한 녀석이 못 참겠다는 시늉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우헤헤헤헤.”
그 소리는 상당히 컸으므로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주시하도록 만드는 도화선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나 확실히 나는 용기있는 녀석이었다.
“웃지마, 새꺄!”
라고 큰소리로 말했으니까. 제법 화까지 내면서. 물론 나의 이 돌발적인 언사에 웃음은 뚝 그쳐 버렸다. 목사님의 설교도 뚝 그쳐 버렸다.
“죽어, 너 새꺄.”
나는 처음에 우헤헤헤 하고 웃음을 터트렸던 녀석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인뒤 돌아서서 그대로 교회를 나와 버렸다.
그날 밤 나는 아버지에게 호되게, 호되게 매를 맞았다. 그리고 눈 쌓인 마당 복판에서 계모가 예배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맨발로 꿇어 앉아 있었다.
나는 도망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 손발과 뭄뚱이를 밧줄로 단단하게 묶어 놓았던 것이다.
아, 그 때의 추위와 아픔을 어떻게 표현하랴. 온 몸은 젖 떨어진 강아지가 낯선 집에 팔려 왔을 때처럼 오들오들 떨렸다.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왔고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왔고 마침내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왔다. 사방에서 겨울의
복병들이 이빨을 번뜩이며 나를 노려 보고있었다. 바람이 몰아닥칠 때마다 허이연 눈가루가 내 작은 몸뚱이를 덮치곤 했다.
이윽고 더 이상 추위와 악으로 맞설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억누르고 아버지에게 빌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듣겠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절대로 교회에서 졸지 않겠습니다. 헌금...하고 말하려다 나는 재빨리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마터면 헌금 주머니에서 동전을 훔쳐 낸 사실을 말해 버릴 뻔했다. 나는 다른 말을 생각해내어 거듭 말했다. 그러나 방안에서는 기침 소리 한 번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소주를 비운 뒤 내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혼자 따스한 아랫목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을 것 같았다.
하늘엔 달이 떠 있었다. 달은차디차고 맑았다. 나는 카랑카랑한 하늘을 쳐다보며 아버지를 증오하고 계모를 증오하고 교회를 증오하였다.
코피가 쉴새 없이 방울방울 떨어지고있었다. 그러나 묶여 있으므로 닦고 싶었지만 닦을 수가 없었다. 쓰리고 아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나는 고통과 증오로 이를 악물며 내 모든 세포를 독(毒)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독도 잠시 후에는 시름시름 풀어져 버리고 의식조차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주황색 불빛으로 적셔진 방문이 흔들리고, 땅이 점점 기울어지고,
별들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고....
나는 자꾸만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정도 시간이 더 지났을 때는 아무 것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시야 가득 안개 같은 것만 뿌옇게 떠 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 계모와 계집애가 찬송가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아련하게 아련하게 들려왔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따스하고 찝질한 피가 입안에서 느껴졌다.
무슨 까닭일까. 이 때 내가 두 볼에 주르르 눈물을 흘리게 된것은.
나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찬송가 소리를 들으며 힘 없이 풀썩 앞으로 고꾸라졌다.

“원일이가 나이가 한 살 위니까 오빠다. 인영아, 오빠라고 불러라.”
계모가 그렇게 타일렀지만 계집애는 나를 오빠라 부르지 않았다. 오빠는 커녕 오, 오, 오, 소리도 하지 않았다.
내가 중학을 졸업할 때까지 계집애는 내게 한 번도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대체로 차분한 성격이었다. 좀처럼 소리내어 웃는 법이 없었다. 웃을 일이 있어도 그저 하얀 이를 조금만 드러내고 잠깐 입가에 웃음을 담곤 하였다. 처음 우리집에 와서 살 때부터 줄곧 그랬다.
(삼삼한 계집애다.)
계집애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계집애가하나 우리집에 살게 되었다는 것은 무척 기분 좋은 일이었다.
“너 가져, 너 가져.”
나는 무엇이든 계집애에게 주고 싶어 하였다. 미국 잡지에서 오린천연색 사진도, 물새알 같이 생긴 매끄러운 조약돌도, 분홍색 물을 들인 잎맥표본과 책 갈피에 끼워 두었던 여러가지 꽃잎들도.
그러나 계집애는 결코 그것들을 받지 않았다. 고아원 뒷산에 올라가 떨어질 뻔 하면서 꺼내온 때까치 알도, 심 영감네 과수원에서 몰래 따온 복숭아도 계집애는 받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계집애에 대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계모가 없을때는 계집애를 어떻게 골려 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집안이 텅비어 있던 어느 날, 나는 공연히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계집애를 골탕먹일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단숨에 공동 쓰레기장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 막대기 하나를 집어 쓰레기더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쓰레기장이지, 참 쓰레기장에 버려진 물건들은 지저분했다. 아가리가 벌어진 구두짝, 녹슨 통조림통, 휴지 조각, 깨진 그릇, 약병, 사과 껍질, 연탄재--- 들 속에서 드디어 나는 찾아내었다. 계집아이를 골탕먹이기 안성맞춤인 물체 하나를.
그것은 강아지의 시체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강아지가 아니었다.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죽어 있는 시커먼 털의 징그러움이었다. 나는 계집애의 놀라는 모습을 떠올리며 속으로 히히히힛 웃었다. 그리고 그것을 종이에 싸들고 숨차게 집으로 돌아 왔다.
계집애의 방을 가만히 엿보았다. 책을 보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가슴을 설레이면서 가만히 문을 열었다. 얼핏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야아 너, 이거나 반찬해 먹어라.”
나는 강아지의 시체를 계집애 곁으로 휙 집어 던진 뒤 그것이 장판 바닥에 미끄러져 계집애의 무릎에 부딪히는 걸 보며 문을 닫았다.
“....”
그러나 조용했다. 아무반응도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걸 의식하면서, 기절했다, 라고 판단했다.
큰일이었다. 아버지 얼굴이 떠오르고 식은땀이 흘렀다. 오금이 굳어왔다.
나는 겁을 잔뜩 집어 먹고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어, 어, 어....”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계집애는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방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보라. 한 손에는 강아지의 시체가 들려 있다. 나는 또한번 당황했고,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고, 이어 기가 팍 죽어 버렸다. 계집애는 잠시 나를 똑바로 응시하다가 조용히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침착하게 변소를 향해 발을 옮겨 놓았다.
계집애가 손을 씻고 다시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대로 마루위에 서서 손톱만 자꾸 물어 뜯고 있었다. 그러다가 겨우 계집애를 향해 한 마디를 뱉았다.
“아버지한테 이르기만 하면 죽여 버린다. 계집애.”
그러나 계집애는 그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버지도 계모도 특별한 눈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공갈에 겁을 먹어서 이르지 않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중학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 나는 계집애에게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계집애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줄였던 술을 다시 늘이기 시작했다.
“육군 상사, 임 성수를 뭘로 보는거야, 새끼들.”
그 유명한 박치기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만성 고질병이 재발하듯 아버지의 호전적 기질이 서서히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즈음 아버지는 무슨 공사장 감독 일을 맡고 있었다. 밤이면 밤마다 술에 만취되어 집으로 돌아 왔다. 돌아 와서는 반드시 나를 앞에다 꿇여 앉혀 놓고 기나긴 연설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그 어떤 연설이든 나는 듣기가 괴로웠다. 대개 똑같은 소리를 몇 번이고 되풀이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잘해라, 효자가 되어라, 돈을 많이 벌어라, 용감해라, 아인슈타인을, 심청이를, 오나시스를, 나폴레옹을, 모두 가져주기를 아버지는 내게 빌었다.
“햐, 새끼가 벌써 이렇게 커 갖구선. 임마, 너는 꼭 성공해서 이 애비의 한 쪽 팔이 돼 주어야 한다. 알았지. 알았어, 몰랐어? 알았으면 일루 와.”
아버지는 때로 눈믈을 글썽거리며 내 팔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내 얼굴에 꺼실꺼실한 수염을 비비기도 했는데, 그 때만은 아버지가 한없이 순하고 약해져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어쩌다 공사장에서 보는 사람들과 집에 들어오게 되면 나를 불러 인사를 시키고,
“이 놈이 내 아들이지. 즈이 반 반장이야.”
라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다.
“호오, 공부를 아주잘 하는군요.”
감탄하며 대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아버지의 거짓말이 발각당한 것처럼 무안해 하며 얼굴을 붉혔다.
공사장에 나가면서부터 아버지는 새로운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힘이 절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도시락을 들고 대문을 나서면서부터 아버지는 박력 있게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서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즐거움은 일거리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닌 듯 했다.
짐작컨대 아버지는 불구의 소외감 또는 열등의식을 해소할 장소를 이제야 만나게 된 거였다. 두팔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감독 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의무. 이것들은 아버지에게서 무척 즐거운 일일 수밖에 없을 거였다. 나는 가끔 상상해 보았다. 헐렁한 한 쪽 소매를 국토 건설단 깃발처럼 나부끼면서 등짐 진 인부들을 향해 거센 말들을 퍼붓고 있는 내 아버지의 모습을.
“그깟 박치기 한 대 먹였다고 너무 섭섭하게 생각 마라.”
아버지는 스스로 눈두덩이 부어오르거나 찢어져 버린 인부들을 데리고 와서 술을 샀다.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박치기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여러 층의 나이, 청년도 있고, 중년도 있고, 또 아버지보다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술을 사면서 나를 불러놓고 이놈이 내 아들인데 태권도 초단이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장군감만 태어났었다. 이놈이 제일약골이다, 공부는 썩 잘해서 즈이 반 반장 노릇을 하고 있다. 대학을 보내어 검사를 만들겠다, 하고 거짓 자랑을 하거나 예의 훈장을 꺼내 놓고 맨주먹으로 인민군 다섯 놈을 때려 눕히던 이야기를 꺼내 놓고야 말았다. 그런 밤 우리는 한잠도 편히잘 수가 없었다.
“애비가 취침도 안했는데 이 새끼가 먼저 자빠져 자다니. 군기가 빠졌다. 기상, 기사아앙!”
다음 계모를 깨우고 계집애를 깨우고 하여 별로 중대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당부하고 학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내게는 판사의 위대함, 검사의 위대함, 변호사의 위대함, 고등고시의 위대함을 귀가 아프도록 누누이 설명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버지의 열등의식을 해소할 수 있었던 그 공사장에서 힘 한 번못쓰고 밀려나게 되었다. 인부들이 농성을 벌인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을 더 달라, 감독을 갈아 달라--처우 개선.
그날부터 또다시 아버지는 집에서 군림하게 되었고 조금씩 성격이 변해 가기 시작했다.
“누구한테 잘 뵈려구 화장을 하는 게야?”
계모에게는 자주 그렇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군기가 빠졌구나야. 저 새끼.”
나는 툭하면 <대가리 박아!>였다. 이른바 원산 폭격을 시키는 거였다. 장래 검사가 될 몸이 장판 바닥에 대가리를 박는 것까지는 그리 눈물겨운 노릇이 아니었지만, 계집애가 보는 앞에서 그런꼴을 보인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창피였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할만큼 용기있는 놈은 못 되었다. 나는 되도록이면 아버지를 웃게 해 드리려고 노력했다. 정말이지 검사는 못 되더라도 규율부장 정도는 되어 드리고 싶었다. 아니면 하다못해 반장이라도. 그러나 늘 나는 십등 안팎에서 맴돌았다. 다만 자신 있는 과목이 있다면, 미술,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언제나 칭찬을 받아 왔었다.
일학년 가을 나는 도(道)교육위원회에서 주최하는 학생 실기대회에서 특상을 받았다. 나는 정말 기뻤다. 아버지를 조금은 웃게 해드릴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품고 있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는 얼마나 지루했던지.
대문을 열면서 나는 체중이 약 삼킬로그램 정도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모두들 집에 있었다. 아버지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아버지의 무릎 앞에는 아직도 술이 반이나 남아 있는소주병이 근엄한 표정으로 놓여 있었다.
“아버지 나 상 탔어요, 오늘.”
나는 부끄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리고 상장과 상품을 방바닥에 풀어 놓았다.
“어머어.”
계집애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새어 나온 것은, 또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해 주었던가. 계모는 내게 맛 있는 걸 사 주겠노라고까지 말했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상장을 읽어 본 뒤,
“수채화가 무슨 채소 이름이냐?”
하고물었다. 계집애가 잠자코 있다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물감을 물에 풀어서 그린그림이라고 대충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는 술취한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한참 동안쳐다 보았다. 나는 긴장 하면서 아버지의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으래? 하고 아버지는 말을 시작했다.
“그으래? 고작 환쟁이이나 되겠다, 이거지. 자식이 굶어 죽으려구 환장을 했구만. 임마, 검사가 되랬지. 이 애비가 언제 널 보구 굶어 죽으랬냐. 너도 자식아. 이 애비 맘을 알아 주긴 다 틀렸다. 그래도 이 애빈 네가 성공해서 병신의 몸으로 외롭게 살아온 한을 씻어 주고야 말...딸꾹!”

!

아버지는 날마다 방에 누워 담배만 피웠다. 그리고 자주 버럭버럭 신경질을 냈었다.
“어멈 어디 갔니?”
하루에도 몇 번씩 계모를 찾았다. 찾다가 없으면 나를 시켜 즉시 불러 오도록 명령했다. 유난히 신경질이 늘어갔다. 언제나 계모를 곁에 있도록 명령했다.
(그렇게 하여 사건은 시작 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끊었던 술을 모처럼 마셨고, 다시 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다녀왔다. 나도 이제 늙었어. 아버지의 그 신음 속에는 알 수 없는 비애가 섞여 있었다.
“여보. 당신 다른 데루 한 번 더 시집가지 그래, 이 병신하고 살기도 이젠 지쳤을 게야.”
가끔 계모에게 그런 소리도 했다. 공연한 트집을 잡아 보기도 했다. 다정한 말투로 위로해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지나치게 계모에게 신경을 쓰는 거였다. 먹고 싶은 게 없느냐, 자기가 지겹게 생각되지 않느냐, 전 남편은 어떠했느냐, 그런 것을 묻고 또 물으면서 나중에는,
“당신 정말 다른 데루 시집가지. 아무래도 나보담은 낫겠지 뭘...”
하고 계모 눈치를 살피기도했다. 아버지는 점점 병적(病的)으로 계모를 곁에 두고 싶어했다.
(그렇게 하여 사건은 시작되었다.)
일요일이면 안절부절을 못했다. 망할 놈의 교회, 왜 이리 안 끝나는 거야, 하나님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어멈 오라구 그래--공연히 나만 들들 볶았다. 그리고 교회에서 계모가 무엇을 하며 누가 계모와 가장 친하게 지내는가, 목사는 고향이 어디 어디며 나이는몇 살인가, 목사와 계모가 단 둘이 있었을 때는 없었는가, 하는 질문들을 던져왔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아버지의 눈은 번들번들 빛을 띠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아버지의 관심은 날로 집요해져 갔다. 나는 어느 날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어떻게 설명하면 아버지의 유도 심문에 걸려 들어서 가끔 교회엘 가서 내가 본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해 드렸다.
목사는 미혼남(未婚男). 젊고 건강하며 잘 생겼음. 계모는 누구에게나 상냥하여 모두들 좋아함. 언젠가는 목사의 옷가지도 빨아 주었음.(그렇게 해서 사건은 시작 되었다)
아버지는 광맥을 발견한 광부처럼 얼굴이 상기되어 이 새로운 사실에 대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어느 놈하고 시시덕거리며 이제 오는 게야. 교회가 빨래터야.”
그날 교회에서 돌아온 계모에게 대뜸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계모는 그저 평온한 얼굴로 아버지를 잠시 바라보았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때때로 계모는 아버지를 위해 나즈막한 목소리로 기도하였고, 날로 아버지는 계모에게 이상한 트집을 잡아 난폭해져 갔다.
“누굴 만났지?”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데도 그런 식으로 따졌다. 멀리 갈 때는 꼭 보고토록 지시했다. 순 군대식이었다. 만약 제 시간에 귀대치 않을 경우엔 무조건 손찌검이었다.
“팔이 병신이라고 눈도 병신인 줄 아는 게여? 시겔 봐. 어떤 놈 하고...”
공연한 트집 앞에서 계모는 언제나 침묵이었고 아버지는 더욱 극성이었다.
아버지는 계모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최대한으로 외출을 금했다. 외부 사람들의 출입도 금했다. 월부 책장사나 전기수리공이나 교인들이 대문을 두드리면 아버지는 이상하게 눈을 빛내며 계모를 노려 보았다. 그리고,
“늬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 내가 직접 나가 보고 올 테니.”
하고 살금살금 대문으로 걸어가 밖을 엿보기도 했다. 때로는 형사가 잠복하고 있다가 범인을 덮치듯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을 덮쳐 누르고
“너는 누구야, 뭣하러 왔어, 솔직히 말해.”하며 혼을 빼 놓는 수도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계모는 교회에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변소엘 가는 데도 보고를 해야만 했다. 보고하면 아버지는 갔다 와, 하고 태연히 승낙하지만 계모가 나가는 즉시 문구멍으로 밖을 감시했다. 빨래를 하러갔다가 늦게 돌아온 어느 날, 계모는 차마 눈 뜨고 못볼 지경으로 매를 맞았다. 얼굴이 퉁퉁 붓고 입술이 찢어지고 머리카락이 뽑히고....
한 달에 서너 번은 그런 일이 생겼다. 나는 그만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말리다가 내가 얻어 맞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침착하던 계모도 점점 공포의 빛을 띠기 시작했다. 집안은 형언하기 어려운 음산함에 휩싸여 있었다.
날마다 계모의 신음 소리와 비명을 나는 들어야 했다. 방 구석구석에 핏방울이 튀어 있었고 그핏방울은 조금씩 늘어 갔다. 계모는 그래도 열심히 기도하기를 잊지 않았다.
“주여, 죄많은 우리를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옵시고...”
그러나 계모는 눈에 띠게 야위어갔다. 계모가 경영하던 모든 것이 빛을 잃어갔다. 화단에는 차츰 많은 잡초가자라 오르고 마루는 먼지가 부우옇게 덮여 있었으며 넓은 마당에는 여기저기 휴지들이 흩어져 있었다. 우리는 이 질식할 것 같은 패망의 가옥에서 저마다 모진 외로움을 씹으면서 참담한 표정으로 일 년을 보내었고, <주여, 죄 많은 우리를>과 <말해. 어느 놈인지 말해>라는 비명에서 몸서리를 치며 죽고 싶은 심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이즈음 계집애는 따로 정해 준 자기 방에, 한구석을 넉넉히잡아 철망을 치고, 거기 철망 속에다 목적을 알 수 없는 흰쥐들을 기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광기(狂氣)에 관해서도 계모의 안간힘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백납 같은 표정, 그 침묵의 저변에는 항시 알 수 없는 냉기가 도사리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그녀에 관해 오히려 친근함을 느끼고있었다.
우리는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난 우리들 나이 또래 중에서 가장 불행한 환경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동류항으로 삼고, 너무도 어둡고 습기찬 땅에서 재배되고 있는 여러 해 살이 식물에 불과했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토양에 뿌리를 박고 아버지가 부여하는 물을 빨아 올리면서, 그 나태와 무관심의 관찰 기록부에 검사 또는 효자의 기대로 커 나가고 있었다. 결국 우리들은 아버지의 버림받은 한 생애를 위하여 아버지가 원하시는 꽃을, 아버지가 원하는 열매를 만들어 내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들은 불량 품종으로 시들어 가고 있었다. 계집애와 나는 대체로 말이 없는 가운데 서로의 어둠을 인정해 주면서 조금씩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쥐는 왜 기르니.”
“병이야, 쥐 기르는 병.”
“아버진 외롭다는 거야?”
“치사해.”
우리는 무섭게 번식해 가는 그 실험용 동물들에게 날마다 충실한 먹이를 던져 주면서 아버지의 헐렁한 팔소매와 계모의 겁에 질린얼굴을 잊으려고 애썼다.
“혈액형이 O형이래. 저 쥐들은.”
“아버지는 F형이야. 나는 혈관 속에 피 대신 알콜이 흐르고 있다.”
계모는 이제 실성한 사람 같았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흠칫흠칫 놀라곤 했다. 깊은 밤, 고요의 시간에 홀로 마루 끝에 앉아서 오래오래 우는 버릇도 생겼다. 그러나 늘 아버지가 무섭게만 구는 것은 아니었다. 계모가 앓아 누우면 아버지는 밤을 세워 간호를 해 주었고 손수 부엌에 나가 미음을 끓이거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약을 모아 오기도 했다.
때로는 계모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는 안 그러겠어, 여보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하기도 다. 그러나 계모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쥐들이 너무 많아졌어, 어떻하지.”
“아버지는 나를 꼭 대학에 보내어 검사를 만들겠다는 거야. 붙을 자신 있냐고 묻더군.”
“검사 보담은 화가가 더 좋쟎아?”
“검사가 좋아. 남을 감옥에 쳐넣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 실험용 동물들을 하루 한 마리씩 죽여 나가기 시작했다. 나보다는 계집애가 더 잔인한 살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노끈으로 쥐를 목졸라 죽이는데 불과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면도칼을 집어 들었다. 목을 따서 새빨간 피가, O형의 새빨간 피가 순백색(純白色) 털을 적시는 것을 냉혹한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처음부터 죽여 왔구나. 너 혼자서.”
“이젠 공범이 생겼어.”
“고양이를 사서 저 우리 속에 한 번 넣어 줘 볼까?”
“아마 고양이는 괴로와 할 거야. 자기가 처음 보는 이 흰 털의 음식물이, 먹어서 부작용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느님은 무슨 이유로 내게 이 많은 은총을 내리셨을까, 이렇게 한꺼번에 잡아먹어도 죄가 되지 않을까, 너무도 행복해서 괴로와할 거야.”
“즉 불행을 확인시켜 주는 거지 뭐.”
쥐를 잔인하게 죽이는 법 몇 가지.
꽁무니에 휘발유를 적시고 불을 붙인 뒤 들판에 놓아 주라. 밤에 하는 것이 좋다. 살기 위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 것인가, 지까짓게 달려 봐야 불고기지. 이빨을 모두 뺀 다음 상처 난 잇몸에 바늘 두 개씩을 꽃고 아무데나 내버려 두어라. 필경은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시체만은 잘 묻어 줄 것. 다리에 무거운 납덩이를 매달아 주고 바로 앞에 참기름을 바른 고구마를 놓아 주도록. 절대로 입이 닿지 않는 거리에 놓아주어야 한다. 먹기 위해 바둥거리다 기진하고 말 것이다. 그 때 불개미 집으로 가지고 가라. 털에는 꿀을 말라 놓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조금은 두려움을 느끼며 주고 받았었지만 한 번도 실행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흰쥐들이 줄어들자 우리는 살해를 멈추고 다시 번식을 기다리게 되었다.
아버지도 결심한 바가 있었는지 태도를 완전히 달리하여 우리에게도 부드럽게 대했다. 계모에게도 부드럽게 대했다. 웬지 옛날의 위용은 사라져 버리고 아버지는 아주 양순하기만했다. 그러나 계모를 감시하는 일만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을이 왔다. 사랑만 하다가 죽은 자의 아름다운 피처럼 사르비아 꽃이 우리집 화단에서 피고 있었다. 아침 저녘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 왔고 살갗이 아주 깨끗하게 소독되는 듯한 기분으로 나는 가을의 풍경을 바라 볼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을자주 느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대학 입시 준비가 항시 그늘로 깔려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당분간 물감들과 거리를 멀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만은 가야 한다는 생각이 시종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소망에까지 도달하려면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이었고, 남은 석달간은 몇 양재기 코피를 쏟으며 공부한다고 해도 자신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검사가 될 것을 포기해버렸다. 아버지한테는 미안했지만 실력이 없는 데야 어찌하랴. 미대(美術大學)라면 만만하다.
무슨 일이건 자신 있는 것에 도전하는 것이 현명한 법이다. 나는 현명하게도 미켈란젤로의 후예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러니까 좀 여유가 생겼다.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앞에 대입(大入)이라는 두 글자가적힌 여러 권의 책들을 뒤적거릴 수 있었다. 대입 생물, 대입 영어, 대입, 대입, 대입....
어느 날 나는 햇빛이 너무 좋았으므로 그 대입들을 잠시 팽개쳐 버리고 잊어버렸던 내 그리운 물감들을 찾아 내었다. 물론 실기(實技)도 시험 과목에 들어 있지만, 사실 그걸 더 손에 더 익힐 만큼 내 솜씨가 엉성하다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실기 시험에 대비키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차라리 시간 낭비였다. 그러나 이렇게 햇빛 좋은 날 아무런 목적 없이, 다만 그린다는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틀림없는 여유이자 멋이었다.
나는 이젤을 마당 가에 세워 놓고 화판에 캔트지를 압침으로 부착시킨 뒤, 마루 끝에 앉아서 뜨게질에 열중해 있는 계집애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그리고 빠레트에 물감을 골고루 짜 놓았다. 물감들은 가을 햇빛 속에 녹아서 저마다 고운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붓에 물을 흠뻑 적셔 맑은 색을 만들어 낸 다음 아주 경쾌한 기분으로 칠해 나가기 시작했다. 물감은 매끄럽게 캔트지를 적시며 곱고 투명하게 흡수 되었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완전히 그림에 몰입되어 내 마음까지 모두 붓에 혼합한 뒤, 그 한 폭의 공간을 차지한 계집애의 모습을 완성해 나갈 수 있었다.
계집애는 마치 경험 많은 모델처럼 본래의 자세를 조금도 흩뜨리지 않고 실과 바늘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녀도 거기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림은 내 마음에 들었다. 이미 공간 속에 들어 앉아 뜨게질을하고 있는 소녀는, 계집애를 떠난 가을로 부터 온 한 폭의 완성된 수채화였다. 나는 흡족한 마음으로 내가 만들어 낸 색과 소리와 빛들을 바라보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계집애는 좀처럼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와 무릎과 발 밑에는 가을의 차분한 햇빛이 흥건하게 괴어 있었다. 시나브로 여린 바람이 불어 왔고, 시나브로 불어 온 여린 바람은 계집애의 단발머리를 조금씩만 하늘거리게 해 주었따. 계집애가 경영하는 이 가라앉은 시간 속에서 나도 한 가닥 실이 되어 그 희디 흰 손가락에 감기고 있었다. 계집애는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몇 올을 이따금 손으로 걷어 내곤하면서 말 없이 그렇게 햇빛 속에 젖어 있었다.
사방은 고요했다. 고요하고도 고요하고도 고요했다. 만약 정숙한 삼십대의 귀부인 하나가 엷은 잠옷을 입고 발 뒤꿈치를 든 채 가만 가만 내 곁을 스쳐 간다해도, 나는 그녀의 잠옷자락에서 풀려 나온 실밥 한 가닥이 땅바닥에 끌리는 소리까지 골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계집애를 오래 오래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계집애가 아주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 내었다. 어쩌면 그녀는 우리집으로 들어오게 된 그날부터 나처럼 눈물 하나 가슴에 매달고, 나처럼 황량한 벌판에서 헤매이고, 나처럼 아무와도 친할 수 없는 나날 속에 살으리라고 하느님이 귓속말로 타일렀던 것은 아닐까. 바로 나처럼..... 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만 그녀가 한없이 정다웁게 느껴졌고, 그리하여 마음 속으로 처음 설레임을 가지고 몰래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인영아...)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분명히 나는 그녀의 이름을 소리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불렀는데도, 그녀는 마치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가만히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나를 건너다 보았다.
아---
그 때 내 가슴을 흘러가던 그 알 수 없는 고요의 강물소리 잔잔하게 밀려들어 내 온 몸을 적시던 그 음악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그날 계모는 아버지 몰래 대문을 빠져 나가 하나님을 만나러 교회로 갔다.
아버지는 미친 듯이 계모를 찾기 시작했다. 문이라는 문은 모조리 요란하게 벌컥벌컥 열리어졌고 동네방네 아버지는 찾아 헤맸다. 물론 교회에도 달려가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찾아 내지 못했다.
교회에 마련되어 있는 기도실이라는 방 한 칸을 그저 예배를 보는 교회의 실내만 충혈된 눈으로 흝어보고 이를 갈며 집으로 돌아 왔을 것이다.
아버지는 벼르고 별렀다. 그러나 그날 밤 계모는 돌아오지 않았다. 계모는 밤을 세워 기도를 했을 것이다. 지치고 지친 마음으로.
나와 계집애는 계모가 어디에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결코 아버지에게 알려 주지는 않았다. 이틑날 아침에야 계모는 비틀거리며 대문을 들어섰다. 그러나 계모는 채 마당 중간에까지도 못 와서 쏜살같이 문을 박차고 달려 나온 아버지의 발길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계집애는 다시금 시작되는 아버지의 광기를 바라보다가 철망 속에 갇혀 있던 흰쥐들을 한 마리 한 마리 꺼내어 면도칼로 목을 따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를 말리기 위해 마당으로 달려가 전례대로 몇 대를 얻어 맞았다. 흔히 한쪽 기능이 마비되면 다른 한 쪽 기능이 마비된 기능의 힘을 대신하여 센 힘을 발휘하듯이 아버지의 한 쪽팔은 무서운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번번히 마당에 내동댕이쳐졌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계모를 구타했다. 물론 나도 필사적으로 뜯어 말렸다. 잠시 후,
돌연히 돌연히, 계모가 외마디 소리를 날카롭게 내벹으며 무서운 얼굴로 땅바닥에서 벌떡 일어선 것은 참으로 오싹한 일이었다.
“죽여라! 이 개만도 못한 짐승 놈아, 너 죽고 나 죽자!”
계모의 눈에서 새파란 광기가 서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최초의 반항, 이 돌발적인 사태앞에서 아버지는 멈칫 몸을 굳혔다. 순간 계모는 달려들어 아버지의 가슴팍을 단단히 물고 그대로 실신해 버렸다.

그날 밤 계모와 그녀의 딸은 몰래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나는 상상 할 수 있었다. 딸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 걸음으로 대문을 나서는 한 여인의 가날픈 어깨와 새벽가를 타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고등학교 여학생의 냉혹한 얼굴을.
그녀의 방 철망속에는 여러 마리의 흰쥐들이 피에 물들어 나뒹굴고 있었고, 그것들 중에서 움직이고 있는 놈은 한 마리도 없었다.
아버지는 며칠 동안 그녀들을 찾아 동분서주 바쁘게 돌아다녔다. 열흘이 지나도 그녀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그녀들은 영영 이 불행의 대문을 열지 않을 거였다. 그녀들이 갇혀 있던 감옥이, 그녀들의 인생 중에서 얼마나 가혹한 형벌로 그녀들을 학대했는가를 하나님도 자세히 알 수 있을 거였다.
아버지는 이제 훈장을 닦는 대신 칼을 갈기 시작했다.
“이년들!”
갈다가 수시로 마른 헝겊을 가지고 녹물을 쓱쓱 닦아 낸 뒤 칼날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칼은 물 속에서 갓 건져 낸 민물고기의 비늘처럼 희게 번뜩거렸다. 그것은 아주 싸늘해 보였으며 한 번씩 비늘을 뒤채일 때마다 날카로운 빛살을 쏘아 내 눈을 찔렀다.
“이년들. 내 반드시 이년들을 찾아 내어 배를 찢어 간을 꺼내 대문간에 널어 놓을 테다!”
나는 경멸하고 있었다. 협오하고 있었다. 증오의 못 깊숙이에서 끓어오르는 아버지의 독기, 그 이기주의적 흥분과 무모한 내 몸짓을.
아버지는 오직 나의 적(敵)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내 성적표 보호자란(欄)에 이름 석 자가 적혀 있다는 사실조차도 싫을 정도였다. 적과 보호자의 거리는 너무 멀었고, 다른 의미였지만 동일인(同一人)으로서 내게는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년 시절을 거쳐 소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내 가슴 속에 자리 잡은 모든 슬픔 중 가장 쓰라리고 짙은 슬픔이었다.
“이 개놈의 새끼, 너도 애빌 배반했단 봐라. 눈알을 파내버리고 말테니까!”
칼을 갈며 아버지는 그렇게 못을 박았지만 나는 언제나 한 번쯤 아버지를 배반하고 아버지의 입에서 후회의 말이 쏟아져 나오기를 간절히 한번 기다려 볼 참이었다. 이즈음 나는 공부고 나발이고 다 시들해져 있었다.
어느 날밤, 나는 아버지가 잠든 틈을 타서 살그머니 아버지의 방에 침입했다. 아버지는 코를 골고있었다. 머리 맡에는 이 홉들이 소주 반병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를 뒤적거려 보았다. 얼마간의 돈이 있었다. 내 호주머니로 옮겨 넣었다. 우리가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돈, 한 쪽 팔을 전쟁터에 집어 던진 공로로 나라에서 받아 내는 연금과 그 귀신같은 재주로 화투를 주물러 마련한 목돈이 남의 손을 돌아다니며 불어 난 것과 역시 화투로 장만했음직한 논밭 몇 마지기로 우리는 잘 먹고 잘 입고 넉넉하게 썼다는 점 하나였다.
나는 장롱 속도 샅샅이 뒤져 보았다. 거기에는 돈 다발 몇 개가 깊이 감추어져 있었다. 나는 내일 아침에 일어날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몇 다발을 주머니마다 찔러 넣었다.
나는 그 다음 도망을 생각했다. 그리고 일어섰다. 그 때 내 눈에 띈 아버지의 보물. 바로 훈장이었다. 훈장은 이미 옛날의 광채를 잃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 녹슬고 있는 것이다. 깊이 잠든 아버지의 가슴 위에서. 아버지는 그 옛날의 용맹을 다시 한번 회상하면서 훈장을 꺼내 쓰다듬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을 것이다. 나는 철저하게 잔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미 빛을 잃어서 쇳덩이에 불과한 그 훈장조차도 아버지의 가슴에서 훔쳐 내어 버렸다.

“쎄애끼, 너도 박력 있는 사나이구나.”
“얌마, 술이나 처먹어라. 박력 있게.”
나와 녀석은 취했다.
사람들은 술을 왜 마시는 것일까. 이렇게 맛대가리도 없고 취하면 그저 흐리멍텅하게 정신을 휘저어 놓는 술을. 아버지, 칼, 술, 뱀, 화투, 돈, 겨울, 눈, 핏방울, 사르비아, 가을, 계집애, 흰쥐, 무덤, 뼈, 흙, 가루, 먼지, 재, 물, 햇빛, 수채화, 수채화가 무슨 채소 이름이냐. 상장, 대학, 검사, 외팔이, 소줏병, 사금파리, 대낮, 빨래, 계모, 교회, 종소리, 아침, 찬물, 살갗, 바람, 나무, 집, 처마, 거미, 밤, 어둠, 발소리, 개, 미친개, 미친강아지, 쓰레기장, 비명, 도주, 도주, 녀석의 자취방, 아....쓰펄!
녀석은 우리반에서 가장 악명 높은 존재였다. 정학을 무려 세번이나 받은 바 있고, 퇴학을 눈앞에 두고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녀석은 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돌아다녔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까이도 꼬시고, 애들도 패주고.... 뭐 인생이란 제멋대로 살아야 후회 없는 게 아니냐는 거여다. 공부 따윈 구질구질 하다는 거였다. 나와 녀석은 언젠가 한 번 호되게 싸운 적이 있었다. 일 학년 때였다.
녀석은 원래 인상부터가 맘에 안 들었다. 체격이 다부지고 얼굴이 까무잡잡했으며 날카롭게 찢어진 눈이 항시 이물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녀석은 입학하면서 완전히 우리를 겁주었다. 호주머니에서 손칼을 꺼내어 칠판에 던지면서 앞으로 자기를 많이 귀여워해 달라는 거였다. 녀석의 칼은 정확했다.
백묵으로 그려 놓은 접시크기의 동그라미 속에 영락 없이 들어가 박혔다.
써먹는 단어도 생경했다.
“4같네. 학바리 주제에 꼴복 걸치고 부시기 쪼을 수는 없고.”
말하자면 깡패들이나 쓰는 은어를 썼다는 것이다. 감히 녀석에게 맞붙으려 들지를 않도록 녀석은 미리 이빨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다. 녀석은 체격이
좋은 놈들만 골라서 이른바 깡다구로 때려누임으로써 자신의 실력 여하를 우리에게 확인 시켜 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런 다음 자기가 무슨 멕시코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오만가지 폼을 다 잡으며 학급을 누비고 다녔다.
“똘마이, 어이 똘마이.”
녀석은 누구든 그렇게 불러 놓고 마치 명령하는 투로 말하곤 했었다. 나는 녀석이 아니꼬왔다. 언제고 한판 붙어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점심 시간이었다.
“똘마이, 어이 똘마이.”
벼르던 차에 기회는 왔다. 녀석이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그렇게 말해 온 것이다. 아니꼬와서 원.
나는 녀석보다 체격도 작았고 어느 모로 보나 약세였다. 그러나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매에 단련 되어 있는가를. 나는 말 없이 일어섰다.
그리고 녀석의 면상을 있는 힘을 다해 쥐어 박았다. 확실히 선공(先攻)은 상대를 당황케 하고 상대의 기를 어느 정도 죽이게 만든다. 몸을 비스듬히하고 내곁에 방심한 채 서있던 녀석은 한 방에 풀썩 나자빠졌다. 그러나 녀석은 즉시 일어나 맹수같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우리는 협상하여 변소 뒤로 갔다.
그리하여 싸움은 시작 되었다. 누가 이겼을까. 많이 맞은 쪽은 나였다. 그러나 그날로 싸움이 끝나지는 않았다.
“가서 맞은 만큼 돌려 주고 와!”
아버지는 그렇게 명령 했었다. 나는 닷새 동안을 녀석에게 맞았고, 닷새 후엔 녀석이 죽사발이 되었다. 녀석은 완전히 기가 질려서 전의를 상실한 눈치였다.
그 후 내게만은 녀석이 친절하게 굴었으며 은근히 자기와 함께 휩쓸려 다니면서 싸움질이나 해 주었으면 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내가 돈을 훔쳐 가지고 녀석의 방문을 열었을 때, 녀석은 충심으로 나의 귀순을 환영해 주었다.
나는 녀석의 방에 틀여 박혀 학교에 나가지도 않고 만화책 나부랑이나 뒤적거리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될 수 있는한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불안이 목을 숨통 막히게 죄어 왔으니까.
녀석은 학교에 다녀 와서 내게 몇 가지씩의 정보를 수집해다 주었다.
“오늘 느네 껍데기 왔다 갔어. 널 잡으면 죽여 버린대더라.”
녀석의 말을 들으면 아버지는 하루 한 번씩 학교에 들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잡힐 염려는 아직 없었다. 녀석이 즐겨 찾는 의리라는 것이 배반으로 돌변해 버리지 않는 한, 나는 이 침침한 방 구석에서 하루 백 권씩의 만화책을 읽어치우며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헐렁한 한 쪽 팔소매를 잊고, 나의 견딜 수 없었던 고통과 날마다 나를 목조르던 회의 속에서 벗어나<우리 진도개 만세> 따위와 이름도 들어 본 적이 없는 통속 소설가들의 엄살이나 읽으면서, 아버지의 훈장처럼 나도 녹슬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가끔 녀석은 못생긴 계집애들을 방으로 데리고 왔고 나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기분으로 계집애들의 살을 만져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시 그런 생활들은 또 하나의 어둠이며 발목에 거치적거리는 쇠사슬에 불과했다. 며칠도 못 되어 나는 또다시 숨이 막혀 왔다.
그러던 어느 날,이제는 겨울로 접어들어 음산한 날씨가 계속되던 어느 날. 채 수업이 끝날 시간도 아닌데 녀석이 황급히 방문을 열어 젖혔다. 녀석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난 것이 틀림 없었다.
녀석은 한참 동안 숨을 몰아 쉬면서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니? 라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어 보았다. 그러고도 상당히 오래 머뭇거리다가 녀석은 아주 어렵게 입을 열었다.
“느, 느네 아버지가....어젯밤에...자살...했대. 칼로 모, 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