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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語 朝鮮後期 批評談論의 두 가지 흐름

2007.09.26 13:22

폭우 조회 수:2587 추천:43

燕巖과 茶山의 차이에 대하여
                                                       ----------고미숙(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연구원)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이 두 사람은 조선 후기 담론지형에 있어 그 누구와도 견주기 어려운 빛과 에너지를 발산한다. 두 사람이 펼쳐놓은 장은 17세기 말 이래 명멸한 수많은 ‘천재’들이 각축한 경연장이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이성의 지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그들이 내뿜는 빛에 눈부신 탓인가? 우리에게 이 둘은 매우 흡사하고 친연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이 글이 착목한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즉,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이 두 거장들이 매우 불연속적이고 이질적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제 살펴볼 터이지만, 그 차이는 그들 각자와 중세적 담론과의 거리만큼이나 확연해 보인다. 그런데 지금까지 둘은 어째서 마치 인접항처럼 간주되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둘을 비춘 렌즈의 균질성이 차이들을 평면화했기 때문이다. ‘중세적 체제의 모순에 대해 비판했고, 조선적 주체성을 자각했으며, 근대 리얼리즘의 맹아를 선취했다.’는 식으로. 이런 평가의 저변에 작동하는 척도가 ‘近代, 民族, 文學’이라는 ‘트라이앵글’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비단 연암과 다산뿐 아니라, 조선후기의 온갖 징후들을 근대성으로 재영토화하는 同一性의 기제이기도 하다. 이 장에 들어오는 한, 차이와 이질성이 예각화되기란 불가능하다. 모든 텍스트가 ‘근대적인 것’에 근접한가 아닌가 하는 척도로 계량화되는 까닭이다.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흐름은 다기하게 구성될 수 있다. 한 시대를 움직이는 지배적 사유의 기저가 흔들릴 때, 그것이 야기하는 균열 및 진동은 일의적 방향성을 취하지 않는 법인바, 실제로 조선후기에 분출된 담론들은 그것이 역동적 힘을 지닌 것인 한, 다양한 지층들로 구성된다. 또 유사해 보이는 계열들 속에도 단일한 지평으로 귀환하지 않는 의미망들이 얼마든지 담겨있을 수 있다. 어떻게 이것들을 풍부하게 포착해낼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이 글은 연암과 다산의 차이를 비평담론의 측면에서 접근해보기로 한다. 차이를 최대한 부각함으로써 조선후기 비평사의 지도를 다시 그려보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것을 바탕으로 중세 외부와 ‘근대성’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쟁점들이 풍부하게 제출되기를 기대해본다.